[스크랩] 융 [Carl Gustav Jung, 1875.7.26~1961.6.6]|

작성자한킹|작성시간13.04.30|조회수378 목록 댓글 0

Ⅰ. 서 론  


우리가 심리학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십중팔구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를 머리에서 기억해 낼 것이다. 융은 프로이트만큼의 대중적 지명도가 없지만 그 또한 깊은 세계를 갖고 있다.

 융은 프로이트가 가장 아끼는 동료이자 제자였다. 정신분열증 연구에 정신분석의 방법을 최초로 적용한 융은 수년간 프로이트와 함께 연구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프로이트의 유아성욕론과 본능적 충동의 강조, 그리고 정신 내용을 개인적 경험에만 한정시킨 것 등에 대해 반대하고 1913년 그와 결별하였다. 대신 융은 개인적 경험 뿐 아니라 종족적 경험에 의해서도 인격형성이 영향을 받으며, 성적 욕구보다는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가치관에 의하여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기도 한다는 생각 등을 기초로 분석심리학의 이론을 체계화시켰다.

 융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융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주는 내용을 살펴본다.

 

Ⅱ. 본 론

 1. 칼 구스타프 융의 삶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의 창시자이다.

  융은 1875년 7월 26일 스위스 북동부의 콘스탄스 호반에 있는 케이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혁파 목사의 장남으로, 살아남은 단 하나의 아들이었다. 융이 태어나기 전에 어려서 죽은 형이 둘 있었다.

  융은 스위스 바젤 대학 의학부를 나온 뒤 취리히 대학 의학부 정신과의 오이겐 블로일러 교수 문하에 들어가 그곳의 교수직에 있으면서 단어연상검사를 연구하여 '콤플렉스'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정신분열증의 심리적 이해와 이에 대한 정신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 당시 프로이트 학설에 접하여 한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프로이트의 초기학설인 성욕중심설의 부적절함을 비판하여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분석 작업을 통해서 얻은 방대한 경험 자료를 토대로, 원시종족의 심성과 여러 문화권의 신화, 민담,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종교현상들을 비교 고찰한 결과, 인간심성에는 자아의식과 개인적 특성을 가진 무의식 너머에 의식의 뿌리이며 정신활동의 원천이고 인류 보편의 원초적 행동 유형인 많은 원형(原型)들로 이루어진 집단적 무의식의 층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의식을 자율적으로 보상하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케 하는 핵심적인 능력을 갖춘 원형 즉, 자기원형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의 학설은 병리적 현상의 이해와 치료뿐 아니라 이른 바 건강한 사람의 마음의 뿌리를 보다 깊고 넓게 이해하고 모든 인간의 자기통찰을 돕는데 이바지하고 있으며, 시대적 문화, 사회적 현상의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초로서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신학, 신화, 민담학, 민족학, 종교심리학, 예술, 문학은 물론 물리, 수학 등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2. 정신

“인간이 일생을 통해 해야 할 바는, 타고난 전체성을 되도록 최대한으로 분화된 것을 일관성 있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융의 심리학에서는 퍼스낼리티 전체가‘정신’이라고 불리운다. 정신은 의식적, 무의식적인 모든 생각과 감정 및 행동을 포함하고 있다. 정신은 개인을 규정하며 그 사회적, 물리적 환경에 적응시키는 지침의 구실을 다한다. 정신이라는 이 개념에서 인간은 애당초부터 하나의 전체라는 것이 융의 근본사상임을 긍정하고 있다.

  정신은‘의식’,‘개인무의식’,‘집합무의식’으로 구별된다.


1) 의식   

  개인이 알고 있는 마음의 부분은 의식뿐이다. 의식은 출생 이전에 나타난다. 주위의 대상을 분간하는 어린이의 의식적 주의는 융이 ‘생각’,‘감정’,‘감각’,‘직감’이라고 부르는 네 가지 심적 기능의 적용을 거쳐서 나날이 성장해 간다.

  개인의 의식이 타인으로부터 분화되어 가는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 부른다. 개성화의 목표는 가능한 한 완전히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즉‘자기의식’에 있다.


① 자아

  융은 의식적 마음의 구성을 가리키는 말로‘자아’를 언급한다. 자아는 의식적인 지각, 기억, 생각,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 전체 속에서 자아는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의식에 대한 문지기라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맡고 있다. 자아에게 그 존재가 인정되지 않으면 관념, 감정, 기억, 지각은 자각될 수 없다. 자아는 퍼스낼리티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보증한다. 심리적 자료의 취사선택에 의하여 개별적 퍼스낼리티의 연속적인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가 의식화를 허용하느냐, 않느냐는 상위기능에 의해 결정된다. 감정적 유형인 사람의 자아는 더욱 많은 정서적 경험의 의식화를 허락할 것이다. 그리고 경험이 자아에게 얼마만큼 불안을 주는가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약한 경험은 자아의 문에서 간단히 거부당하지만, 매우 강한 경험은 그 문을 부수고서 들어갈 것이다.

  

2) 개인무의식 (Personal Unconscious)

  자아에게 인정받지 못한 경험들은‘개인무의식’에 저장된다. 개인무의식은 의식적인 개성화와 어울리지 않는 모든 심리적 활동과 내용을 받아들이는 저장소이다. 또는 괴로움을 주는 생각, 미해결의 문제, 개인적 갈등, 도덕적 갈등 등과 같이 억압되거나 무시된 것도 있다. 개인무의식의 내용들은 보통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 개인무의식은 꿈의 형성에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① 콤플렉스

 개인무의식에서는 여러 내용이 뭉쳐져서 한 그룹을 이루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콤플렉스’라고 한다. 콤플렉스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용어로도 사용된다. 어떤 사람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가 무엇인가에 몹시 몰두해 있어 다른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속된 말로 저 사람은 ‘장애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콤플렉스가 반드시 개인의 적응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콤플렉스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영감과 충동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초기에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융은, 콤플렉스의 기원은 아동기 초기의 외적 체험에 있다고 믿는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콤플렉스는 인간성 내에서 아동기 초기의 체험보다 훨씬 깊은 그 무엇으로 생길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집합무의식’이다.


3) 집합무의식(The Collective Unconscious)

  집합무의식은 융이 대개‘원시적 이미지’라고 부르고 있는 잠재적 이미지의 저장고이다. 원시적 이미지는 정신의 맨 처음의 발달단계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이 이미지를 조상 대대로의 과거로부터 이어받고 있다. 융은 인간의 뱀에 대한 공포나 어두움에 대한 공포가 이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집합무의식의 내용은 일정한 개인적 행동의 원형을 미리 규정하고 있는데,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그것에 따라야 한다. 이를테면 집합무의식 속에 어머니의 잠재적 이미지가 존재해 있으면 그 이미지는 어린이가 현실의 어머니를 지각하여 어머니에게 반응함으로써 신속히 명확한 꼴을 취한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잠재적 이미지가 표현되는 기회는 많다. 그러므로 집합무의식의 모든 측면을 개성화(의식화)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과 교육 및 학습의 기회가 필요하다.

 

① 태고유형

  집합무의식의 내용들을‘태고유형’이라고 부른다. 같은 뜻의 말은‘원형(Archetype)’이다. 융은 일생의 마지막 40년간은 태고유형에 관해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태고유형을 인생의 과거 경험의 기억상과 같은, 완전히 발달한 심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어머니의 태고유형은 한 어머니 또는 한 여성의 사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경험에 의하여 현상해야 할 음화(陰畵)와 같은 것이다.

  태고유형은 콤플렉스의 핵심이 된다. 태고유형은 중심으로 작용하여, 자석처럼 관계있는 경험들을 끌어당겨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예를 들면, 신의 태고유형에서‘신의 콤플렉스’가 발달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모든 태고유형과 마찬가지로 이 태고유형도 처음에는 집합무의식 속에 존재해 있다. 개인이 세계를 경험함에 따라서, 신의 태고유형과 관계있는 경험이 그것에 붙어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이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선악의 기준으로 지각하고 판단하며, 악인에 대해서는 천벌을, 선인에 대해서는 회개를 요구한다. 이 예는 콤플렉스가 극단적인 무한정한 힘을 가진 경우의 예이다. 이 사람의‘신 콤플렉스’가 퍼스낼리티 전체를 점령하지 않고 퍼스낼리티의 일부로서 작용한다면, 그는 인류를 위해서 크게 봉사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퍼스낼리티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태고유형은 네 가지이다. 


 A. 페르소나(假面, Persona)

  개인의 진정한 자기가 아니라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자신을 은폐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페르소나는 사회상황과 사회관습의 요구에 응답하는 쓰는 가면이다. 이것은 사회가 부과하는 역할이며 사회가 연출하도록 사람에게 기대하는 부분이다. 페르소나는 공적 자아요, 사람이 세상에 노출시키는 자신의 일면이며 사회적 자아이다.

  페스낼리티에 있어서 페르소나의 구실은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 페르소나에 압도된 사람은 자기의 본성에서 소외당하게 되며, 지나치게 발달한 페르소나와 퍼스낼리티의 미발달 부분의 갈등 때문에 긴장 상태 속에서 살게 된다. 때로는 자기의 페르소나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기도 한다.

  자아가 페르소나와 동일화하는 것을‘팽창’이라고 하는데, 정신건강에 대한 페르소나의 팽창은 위험하다. 페르소나가 팽창한 사람은 기대되어 있는 수준에 합치하지 못할 경우, 열등감과 자책감에 몰리기도 한다.


B. 아니마와 아니무스(Anima /Animus)

  페르소나가 정신의 겉면이라면, 정신의 내면은 아니마와 아니무스라고 할 수 있다. 아니마의 태고유형은 남성적인 정신에서의 여성적인 측면이고,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은 여성적인 정신에서의 남성적인 측면이다. 남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여성에게 계속 노출함으로써 아니마의 태고유형을 발달시키고, 여성은 남성에게 노출함으로써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을 발달시켰다.

  융의 말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상을 유전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규정을 만들어 그 영향을 받아 특정한 여성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아니마의 최초의 투사는 어머니에게 행해지고, 아니무스의 최초의 투사는 아버지에게 행해진다. 후에 남성은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감정을 야기시킨 여성에게 아니마를 투사한다. 남성이‘정열적 매력’을 느낀 경우, 그 여자가 그의 아니마의 여성상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아니무스를 투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앞에서는 지나치게 발달한 페르소나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음을 보았는데, 아니마나 아니무스의 경우는 문화적 억압 등에 의해 위축되거나 미발달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페르소나와 아니마/아니무스의 불균형의 결과로, 남자가 아니마를 강화하여 여자답게 되거나 여성이 아니무스와 동일시하여 남자처럼 보이게 한다. 


C.그림자(Shadow)

  아니마/아니무스는 이성에게 투사된다. 즉,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 되는가는 아니마/아니무스에 의해 결정된다. 한편 당사자 자신의 성을 대표하며 동성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태고유형이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다른 어떤 태고유형보다도 인간의 기본적인 동물적 본성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림자는 진화의 역사 속에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태고유형 중에서도 가장 강하며,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할 것이다. 특히 동성의 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의 최선의 것과 최악의 것의 근원이다. 인간이 공동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그림자에 포함되어 있는 동물적 정신을 길들일 필요가 있다. 길들이는 것은, 그림자의 징후들을 억눌러 그림자의 힘에 대항하는 강한 페르소나를 발달시킴으로써 달성된다. 자기 본성의 동물적 측면을 억누르는 사람은 문명인이 되겠지만 그때에는 자발성, 창조성, 강한 정서, 깊은 통찰의 원동력을 줄여야 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림자 없는 생활은 천박하고 무기력한 것으로 되기 쉽다. 자아와 그림자가 훌륭히 조화를 이루면, 개인은 생기와 활력에 넘쳐 있다고 느낀다. 자아는 본능에서 나오는 모든 힘을 방해하지 않고 통과시킨다.

  그림자 속의 나쁜 요소를 의식에서 내쫓기만 하면 처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으로 물러났을 뿐인데, 만인 위기나 어려움에 부딪치면 그림자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자아에 힘을 뻗친다. 그림자는 굉장한 내구력을 가지고 있어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림자의 끈질김은 나쁜 일이나 좋은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림자는 동성과의 관계를 결정한다. 그림자가 자아에 받아들여져 화목하게 정신 속에 편입되어 있는가, 아니면 자아에 퇴짜맞아 무의식 속에 내쫓겨 있는가에 의해 동성과의 관계는 우적으로 되거나 적대적으로 된다. 남성은 퇴짜맞은 그림자의 충동을 남성에게 투사하기 쉽다. 여성도 동일하다.

 

D. 자기

  '자기'는 집합무의식 속의 중심적인 태고유형이다.‘자기’는 질서, 조직, 통일의 태고유형이다. 모든 태고유형들과 콤플렉스 및 의식 속의 태고유형의 표현형태를 끌어당겨서 조화시킨다. 퍼스낼리티를 통일하여 그것에 일체성과 불변성의 감각을 준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자신 및 세계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말하는 경우, 그것은‘자기의 태고유형이 그 구실을 효과적으로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의 태고유형은 거의 중년이 될 때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이유는 자기가 어느 정도 완전히 나타날 수 있기 위해서는 퍼스낼리티가 개성화를 통해 충분히 발달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퍼스낼리티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실현을 달성하는 데에 있다. 자기실현을 달성하느냐, 못하느냐는 자아의 협력에 크게 의존해 있다. 자아가 자기의 태고유형으로부터의 메시지를 무시한다면, 자기의 평가와 이해는 불가능할 것이다. 완전한 자기의 실현을 이룩하기보다는 자기를 인식하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융은 강조한다. 자기인식은 자기실현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관해 조금도 모르면서 자기 힘을 충분히 발휘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의 태고유형은, 외적인 의식적 자아와는 전혀 다른 내적인 길잡이다. 자기는 인격을 규정하며, 조절하고, 좌우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퍼스낼리티를 성숙시키고 그 지각능력을 높일 수 있다. 자기의 발달을 통해 인간은 자기의 일생을 한층 더 자각하며 파악하고 지배하는 힘을 얻는다. 자기는 우리가 개성이라 부르고 있는 운명적 통일체의 가장 완벽한 표현이다.1)


3. 상징과 꿈

  융은 다른 어떤 심리학자보다도 상징화 과정에 관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함으로써 이 분야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융의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은 ‘태고유형’과 ‘상징’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두 개념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상징은 태고유형의 외적 표현이다. 태고유형은 집단 무의식 속에 깊이 묻혀 있어, 개인은 그것을 모를 뿐 아니라 알 수도 없다. 따라서 태고유형은 상징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태고유형은 개인의 의식적인 행동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집단 무의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고 한다면, 상징, 꿈, 공상, 환상, 신화, 예술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1) 확대법(Amplification)

  <<변형의 상징>>은 어떤 젊은 미국 여성의 잇따른 공상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다. 융은 이 실례와 그 후의 연구들에서 사용한 분석법을 ‘확대법(amplification)'이라고 불렀다. 이 방법에 의하면, 분석자는 특정한 언어요소 또는 이미지에 관해 가능한 한 지식을 모두 알아야 한다. 이 지식은 여러 근원에서 얻을 수가 있다. 즉, 분석자 자신의 경험과 지식, 그 이미지를 낳은 사람으로부터 얻어지는 정보와 연상, 역사상의 참고자료, 인류학적 또는 고고학적 발견들, 문학, 예술, 신화, 종교 등이다.

  예를 들면 한 젊은 여성이 <나방과 태양>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이 시는 태양한테서 단 한 번이라도 ‘기쁨의 시선’을 받으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방에 관한 시였다. 융은 태양을 구하는 나방의 이미지를 확대하는 데 38페이지에 이르는 문장을 쓰고 있다. 확대과정에서, 융은 괴테의 <파우스트>, 아우렐리우스의 <황금의 당나귀>, 기독교의 <성경>,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경전 구절, 마틴 부버, 토마스 칼라일, 플라톤, 근대시, 니체의 <어떤 정신분열 병자의 환상>, 바이런의 <시라노드 베르주락> 기타 많은 참고자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확대법은 분석자의 상당한 학식과 박식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알 것이다.

  확대의 목적은 꿈, 공상, 환각, 그림 등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의 상징적 의미와 태고유형적 근원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이를테면, 융은 나방의 시에 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나방과 태양>의 상징의 밑바닥을 깊이 정신의 역사적 여러 층까지 파고 내려가는 발굴 도중에서, 묻혀 있던 어떤 우상, 태양 - 영웅, 즉 ‘벌겋게 달아오르는 듯한 머리카락 위에 새빨간 왕관을 쓴 아름다운 젊은이’를 발견했다. 숙명적으로 죽음을 안고 있는 인간은 영원히 접근할 수 없지만, 지구의 주위를 돌아 낮 다음에 밤을, 여름 다음에 겨울을, 삶 다음에 죽음을 끌어들이고, 다시금 광채를 되찾아서 새로운 세대에 빛을 준다. 이 시를 쓴 여성은 진심으로 그(태양)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그 여자의 영혼(나방)의 날개는 그를 위해 타버리는 것이었다.” 태양(영웅)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고유형의 표현, 즉 태양의 위대한 힘과 광채를 체험해 온 무수한 세대의 인간의 산물을 본다.


2) 상  징

  융에 의하면 밤중의 꿈에 나타나는 것이든 한낮에 깨어 있는 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든,  상징은 두 가지 중요한 목적에 유용한다. 상징은 만족되지 않은 본능적인 충동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를 나타내고 있다. 상징의 이러한 측면은 상징을 충족되기를 바라는 욕구의 위장으로 보는 프로이트의 사고와 일치하고 있다. 융에 의하면 상징은 위장 이상의 것이다. 상징은 원시적인 본능 충동이 변형된 것이기도 하다. 상징은 본능적인 리비도를 문화적인 또는 정신적인 가치로 보내려고 한다. 문학이나 에술, 그리고 종교도 생물학적인 본능의 변형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견해다. 융의 상징 이론의 본질적인 특징은 그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나타나 있다. “상징은 누구나 알고 있는 무엇인가를 덮어 감추는 기호는 아니다. 상징의 가치는 그런 데 있지 않다. 반대로 상징은 미지의 영역에 전면적으로 속해 있는 무엇이나, 혹은 앞으로 속할 무엇인가를 유추를 통하여 해명하려는 시도를 나타내고 있다”.

  상징이란 특히 태고유형을 표현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융은 인간의 역사는 보다 나은 상징, 즉 태고유형을 의식적으로 완전히 실현하는(개성화하는) 상징을 탐구해 온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상징이란 정신의 표현이며 인간성의 모든 면의 투영이다. 상징에는 본능에 의해 인도되는 과거 지향적인 측면과 초월적인 인격의 궁극적인 목표에 의해 인도되는 미래 지향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동전의 어느 면을 사용해도 상징을 분석 할 수 있다. 과거 지향적인 분석은 상징의 본능적 기반을 해명하고, 미래 지향적인 분석은 완성, 재생, 조화, 순화 등에의 인류의 동경을 분명히 한다. 전자는 인과론적, 환원적 분석이고, 후자는 목적론적 분석이다. 상징의 완전한 해명을 위해서는 양자 모두 필요하다. 융은 상징이 넘쳐 흐르려는 본능적인 충동과 욕구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견해에 이끌려 상징의 미래 지향적인 측면이 무시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징의 정신적 강도는 언제나 그 상징을 산출해 낸 원인의 가치보다 크다. 이것은 상징이 성립된 배후에는 추진력과 견인력 양자가 있다는 의미다. 추진력은 본능 에너지에서 오고, 견인력은 초월적인 목표에서 온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상징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따라서 상징의 정신적 강도는 인과론적인 결정인과 목적론적인 결정인의 총화이므로, 인과론적 요인 하나보다는 큰 것이다.


3) 꿈

  1900년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출간되자, 융은 즉시 그것을 읽고 1902년에 발표한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자주 인용했다. 그러나 융의 정신관은 프로이트와 크게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융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떠나 독자적인 사상과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융의 꿈 이론은 프로이트의 그것과 크게 대립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일생 동안 ‘성’문제를 계속 고집해 갔다. 가령 꿈 속에 성 이외의 테마가 나타나면, 그것은 사실 배후에 성적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솔직히 나타낼 수 없으므로 다른 형태로 변형 가공해서 나타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꿈은 감춘다’, ‘꿈은 속인다’라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문화적 정신적인 이미지에 관해서도 억압받는 성욕이 변형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정신성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융은 압도적으로, 꿈이 무의식의 작용에 의해 나오는 한 의식의 작용을 감추거나 왜곡하거나 하는 것이 꿈의 일반적이고 기본적 성격이라는 것을 도저히 옳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융은 그 후 오랫동안의 경험에서, 무의식은 의식의 작용에 대해 오히려 완고하게 저항하여 자율성을 가지고 자신을 밀어 내는 것임을 확인해 간다. 그는 꿈은 “순수한 자연이고, 속임수가 없는 자연적인 진리다”라고 쓰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상하게 성에 구애되었으므로 이론적으로 무리를 거듭했는데, 꿈이란 하나의 감추거나 가공한 형상이라는 생각은 그 두드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 융은 “꿈은 속이지 않는다”라는 신조를 갖고 솔직한 마음으로 환자의 꿈에 대해 말한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꿈은 보상적이다. 꿈은 정신이 소홀히 한, 따라서 미분화된 측면을 보상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결여된 균형을 이루려고 한다. “꿈의 일반적인 기능은 정신 전체의 균형을 재건하는 꿈의 재료를 산출함으로써 심리학적 균형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융은 꿈의 해석에서 ‘고정된’ 상징체계나 꿈의 해석의 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꿈을 꾼 당사자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심적인 조건에 많은 것이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특정한 꿈의 요소를 분석할 때에는 꿈을 꾼 당사자의 연령, 성별, 인종 등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요소라도 사람이 다르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또 사람이 같아도 때가 다르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융은 꿈의 의미에 대해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열고 임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그것을 미리 구상된 이론적인 틀에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이라고만 생각한 데 비해, 융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체면문제 또 도덕적인 이유로 억압받는 경우 등 성적인 도덕만이 원인이라고 한정할 수 없고 그 외에도 다른 원인이 많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융이 경험부족으로 아직 모른다는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4. 정신 유형


1) 정신적인 태도

    a. 외향성 : 객관적인 정신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함

    b. 내향성 : 주관적인 정신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함


2) 정신적인 기능 

    a. 합리적 기능 : 사고, 감정 (판단행위 필요)

    b. 비합리적 기능 : 감각, 직관 (이성 판단행위 불필요)


3) 인간의 유형

① 외향적 사고 타입

  이 타입의 사람은 객관적 사고를 일생의 지배적 정열의 위치로 높이고 있다. 전형적인 이 타입의 사람은 객관적 세계에 대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배우는 데 전력 투구를 하는 과학자다. 자연 현상의 이해, 자연 법칙의 발견, 이론 구성이 그의 목적이다. 외향적 사고 타입이 가장 발달한 사람은 다윈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이다. 외향적 사고자는 자기 본성의 감성적 측면을 쉽게 억압 할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간미가 없고 냉혹하며 교만하게 까지 보일지도 모른다.

  억압이 너무 심하면 감정은 곁길로 벗어날 수밖에 없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때로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 그는 독선적이고 완고하며 허세를 부리고 미신적이며 남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감정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그의 사고는 볼모 상태가 되거나 빈곤해지기 쉽다. 그 극단의 예는 주기적으로 정신병을 일으키는 괴물인 지킬 박사 혹은 ‘미친 과학자’다.


② 내향적 사고 타입

  이 타입의 사람은 사고가 안으로 향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존재의 현실을 이해하려고 하는 철학자나 실존 심리학자가 그 전형이다. 극단의 경우에는 그의 탐구의 결과는 현실과 거의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는 드디어는 현실과 연결을 끊고 정신분열증에 걸릴지 모른다. 그는 외향적 사고 타입과 같은 성격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 그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즉 무의식 속에 억압된 감정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무감동하고 쌀쌀해 보인다.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같은 타입의 소수의 열성적인 신봉자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기의 사고를 남에게 인정받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그는 완고하고 고집이 세며, 인정이 없고 교만하며, 짓궂고 냉담한 경우가 많다. 이 타입이 강화되면 점점 사고가 억압된 감정 기능의 비실행적이고 특이한 영향을 받게 된다.


③ 외향적 감정 타입

  융에 의하면 이 타입은 여성 쪽에 많다고 하는데, 사고보다도 감정을 우위에 놓고 있다. 이 타입의 사람은 변덕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상황이 달라지면 거기에 따라 그의 감정도 변하기 때문이다. 상황 속에 약간의 변화만 있어도 그의 감정은 변한다. 그의 허풍을 떨고 감정적이며 과시적이고 기분파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강한 애착을 느끼지만, 그 애착은 변하기 쉽고 사랑은 쉽게 미움으로 변한다. 그의 감정은 상당히 상투적이며 언제나 최신 유행을 좇는다. 사고 기능이 크게 억압되어 있을 경우, 외향적 감정 타입의 사고 과정은 원시적이고 발달되어 있지 않다.


④ 내향적 감정 타입

  이 타입도 여성에게 많다. 감정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외향적 감정 타입과 달리, 내향적 감정 타입은 자기감정을 사람들에게 감추고 있다. 그는 말이 없고 가까이 하기 어려우며 무관심하고 그 마음속을 헤아릴 길이 없다.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한편 조화되어 있고 침착하며 자신 있는 인상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는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비적인 힘 또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는 ‘조용한 물은 깊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사실 그는 대단히 깊은 과격한 감정을 갖고 있으며, 때때로 그것이 폭발해서 격정의 회오리가 되어 친척이나 친구들을 놀라게 한다.


⑤ 외향적 감각 타입

  이 타입의 사람은 주로 남자이다. 그의 외계에 관한 사실을 수집하는 데 흥미를 느끼며 현실주의적이고 실제적이며 빈틈이 없지만 사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앞날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별로 고민하지 않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주색을 즐기고 쾌락과 스릴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의 감정은 얕고 단순하다. 그는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위해 살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짓궂은 호색가 혹은 의젓한 탐미주의자가 된다. 그 관능적인 성향 때문에 그는 여러 가지 중독, 도착,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기 쉽다.


⑥ 내향적 감각 타입

  모든 내향자와 마찬가지로 내향적 감각 타입도 외적 대상과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의 정신적인 감각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내적 감각에 비하면 외계는 평범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통해 표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는데, 그가 만들어 낸 것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는 조용하고 수동적이며 자제심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무관심한 데 불과하다. 사고와 감정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⑦ 외향적 직관 타입

  이 타입에 속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여성이며, 엉뚱함과 불안정이 특징이다. 그는 외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낡은 세계를 미처 정복하기도 전에 새로운 세계를 추구한다. 사고 기능에 결함이 있으므로 자기의 직관을 오랫동안 끈기 있게 추구하지 못하고 새로운 직관에 매달린다. 그는 새로운 기업이나 대의의 추진자로서 남달리 힘을 기울이기를 사양치 않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오래 흥미를 갖지 못한다. 평범한 일에는 싫증을 느낀다. 기발한 일이 그의 생명의 양식이다. 그는 잇따라 일어나는 직관에 생명을 허비한다. 호기심을 갖고 열광적으로 새로운 일에 뛰어들지만, 믿을 만한 친구는 못 된다. 그의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본의는 아니지만 사람들을 곧잘 실망시킨다. 취미는 많지만 곧 싫증을 느낀다. 한 가지 일을 오래 계속하지 못한다.


⑧ 내향적 직관 타입

  예술가가 이 타입의 대표자이지만 몽상가, 예언가, 괴짜, 기인도 이에 속한다. 내향적 작관자는 친구들에게는 때때로 수수께끼의 인간으로 보이고, 자기 스스로를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외적 현실이나 일반통념과 접촉이 없으므로 같은 타입의 동료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원시적인 이미지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지만, 그 자신도 그 이미지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다. 외향적 직관자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여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찾아다니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직관을 발전시키지 못하므로, 직관적 사고자처럼 정신 과정의 이해에 크게 공헌하는 일도 없다. 훌륭한 직관을 갖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쌓아 올리고 발전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이다.


  이것으로 여덟 가지 성격 타입에 대한 설명을 마치기로 한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 든 각각의 타입의 예는 극단적인 것이다. 극단적인 예에서는 의식적인 태도는 고도로 ‘발달되어’ 있고, 무의식에 억압된 태도는 사실상 ‘미발달’상태에 있다. 정상적인 경우처럼 무의식적인 태도가 저항 또는 균형효과를 보여주지 않으므로, 의식적인 태도는 극단이 된다. 이러한 성격 묘사는 실제의 성격보다 캐리커처에 가깝다.   


5. 융과 프로이트의 비교

  프로이트와 융이 결별이후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새 지평을, 그리고 융은 <분석심리학>의 새 지평을 심리학 분야에서 개척하였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는 프로이트이고 오히려 융은 많은 이들에게는 생소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의 세계는 프로이트의 세계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융과 프로이트는 가치관 및 세계관의 차이를 갖는다. 양자의 핵심 개념인 "무의식"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의식에서 무시되거나 잊혀진 내용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듯, 뭉쳐져서 억압된 것, 즉 개인 무의식 차원만을 인정하나, 반면, 융은 개인 차원을 초월한 인류의 기본적인 관념, 예를 들면 신화, 종교, 민담 등에서 표출되는 공통의 관념 즉, 원형으로서의 "집단무의식" 또한 중시한다.

  또한 리비도를 프로이트처럼 성적(性的)이 아니라 모든 지각·사고·감정·충동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로 간주하였고, 마음은 쾌감원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이 에너지에 의해 자율적으로 조절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부정적인 면에 촛점을 맞추고, 무의식은 정신병의 근원이고, 의사는 이러한 무의식의 실타레를 풀어 헤쳐서 그 굴레로부터 환자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의식화한 체험내용은 대개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억압된 것이며, 그것은 성적인 욕망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말실수, 망각, 공상, 꿈, 정신장애의 증상에서 찾았다. 융은 무의식의 부정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측면 또한 중시하며, 특히 집단 무의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내면의 신비한 세계에 이르도록 하고,  종교가 지향하는 영적인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채널로 보고 있다. 무의식이 활동하는 가장 큰 무대가 꿈인 것을 양자 모두 인정하지만 그러나 꿈에 대한 양자의 관점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프로이트는 꿈을 전적으로 그 사람의 무의식이 억압된 결과로서 해석하며, 꿈은 철저히 과거행위에 의존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반면, 융은 꿈이 가지는 프로이트적인 측면을 인정하지만 무엇보다도 꿈의 예시적인 측면을 중시한다. 융은 의식과 무의식이 합일되는 삶을 자기실현의 과정으로서 삶의 목표로서 지향하는데, 이것으로 인도하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하고 꿈을 통해서 무의식이 지시하는 바의 의미, 의식이 인식하지 못하는 삶의 진실에 귀 기울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프로이트와 융의 가장 큰 차이는 종교에 대한 관점에서 드러난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외디프스 컴플렉스로 인한 일종의 강박증 증세로 보는 반면, 융은 종교를 집단 무의식과 긴밀히 연계된 인간 심성의 가장 깊은 측면으로 보며, 인간의 종교적인 심성은 분열된 자기를 실현해 가는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프로이트와 융을 비교해 보면, 프로이트는 생물학적·과학적인 데 대하여 융은 종교적·철학적 색채가 짙다. 그의 심리학은 정신분석이라기보다는 구제법(救濟法)2)에 가까웠고, 심적 결정론이라기보다 목적론을 강조했다.

 

 Ⅲ. 결 론  

  사실 융이 인류를 향해 새롭게 선보인 개념은 몇 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개념은 앞으로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개념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왜냐하면 그의 개념은 이론가의 책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철저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진지한 숙고의 과정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융은 심혼의 의사로서 자기실현의 가설을 몸소 실천하였을 뿐 아니라 20세기 유럽이 낳은 정신 과학자 중에서 동양사상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함으로써 동서에 다리를 놓았으며, 새 천년에 인류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 사람이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행복을열어가는사람들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