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립사진미술관에서 만난 고향의 기억-
도봉구에 들른 김에 발걸음을 옮긴 곳이 있었다. 바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건물의 외형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사진이라는 예술을 담아내는 공간답게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곡선과 선, 빛과 공간이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한 장의 사진 속 장면처럼 다가왔다.
우리의 기억과 추억을 이토록 오랫동안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사진은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창문이다. 오래전 살던 집,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의 얼굴까지도 한 장의 사진 속에서는 다시 살아난다.
마침 방문한 날은 전시 준비 기간이라 작품을 관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4층에 마련된 북스테이 공간에서 뜻밖의 보물을 만났다. 사진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서 혹시 나의 고향, 고흥의 오래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던 중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들을 발견했다. 전라도 곳곳의 당산나무, 마을을 지켜온 사장나무(당산나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오랜 세월 마을 어귀를 지켜온 나무들.
그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을 빌었고, 아이들은 뛰놀았으며, 어른들은 잠시 쉬어가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산나무는 마을 공동체의 기억이었고, 우리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깃든 공간이었다.
그 사진들 속에서 오래전 고향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고흥 금산면, 거금도와 관련된 사진 자료였다. 책자의 첫 페이지에는 약 10년 전 거금도에 살던 한 분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익숙한 고향의 이름과 낯익은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마음이 따뜻해졌다.
거금도와 남양면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스쳤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다. 그 사이 사람도 변하고, 마을의 모습도 변한다. 하지만 사진 속 풍경은 그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채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사진은 과거를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인지도 모른다.
오늘 서울시립사진미술관에서 만난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고, 고향의 냄새였으며, 사라져가는 우리의 삶의 흔적이었다.
화려한 전시 작품을 보지 못한 아쉬움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았다.
사진 한 장이 얼마나 깊은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지, 그리고 고향이라는 이름이 사람의 마음속에 얼마나 오래 살아 있는지를 다시 깨닫게 된 하루였다.
#서울시립사진미술관
#세상은어수선해도
#나만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