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간의 여유, 해저 2만 리와 다시 만나다-
이천에서 아침 일과와 저녁 일을 이어가는 하루 속에서 점심시간을 중심으로 한 시간 남짓한 여유가 생겼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하루의 풍경은 달라진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든든한 한 끼를 해결하는 것. 발길이 향한 곳은 이천 외곽, 논밭 한가운데 자리 잡은 신둔 팥죽집이었다.
(경기 이천시 신둔면 황무로528번길 6)
이천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오래 사랑받아 온 곳이다. 걸쭉하고 진한 팥이 가득한 팥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짧은 여유시간에도 마음까지 든든해졌다.
식사를 마친 뒤 향한 곳은 이천 온천공원이었다.
(경기 이천시 애련정로136번길 84)
그곳에는 조용히 책을 읽으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북카페가 있다. 잠시 쉬어가려 들렀던 그곳에서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꽂이 한쪽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 권의 책. 바로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였다.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읽었던 그 책과는 달랐다. 어린이용으로 축약된 이야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삽화와 완역된 내용이 담긴 한 권의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오래 묻어두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1870년에 세상에 나온 이 작품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고 경이롭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잠수함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였다. 그러나 쥘 베른은 상상의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만들어 바닷속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가 상상했던 잠수함의 모습은 훗날 실제 잠수함 기술 발전에 영감을 주었고, 인간이 바다 아래 세계를 꿈꾸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시대를 앞서간 생각은 처음에는 이해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내는 사람들은 때때로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역사는 그런 선구자들의 상상 위에서 발전해 왔다.
나에게 해저 2만 리는 어린 시절 꿈꾸던 모험의 기억이다. 그 책 때문에 한때 직접 잠수함을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적도 있었다. 드럼통을 이용해 잠수함을 만든다며 도전했다가, 물 위에 띄워보기도 전에 드럼통 안에 갇혀 물에 빠질 뻔했던 아찔한 추억도 있다.
그때의 소년은 진심으로 바닷속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이천의 작은 북카페에서 다시 만난 '해저 2만리'는 그 어린 시절의 꿈을 조용히 불러냈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점심시간이었다. 하지만 따뜻한 팥칼국수 한 그릇과 책 한 권은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으로 바꾸어 놓았다.
가끔 인생의 가장 좋은 여행은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잊고 있던 나 자신의 기억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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