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용주의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실용주의”라는 말은 참 친숙하다.
현실에 맞게 판단하고, 당장 필요한 해결책을 찾으며, 성과를 만들어내는 태도라는 점에서 실용주의는 분명 삶의 중요한 지혜가 될 수 있다. 이상만 좇다가 현실을 외면하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사회 운영에서도 필요한 자세다.
그러나 삶과 역사는 실용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의 삶에는 효율과 성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무엇을 옳다고 믿는가 하는 신념과 철학이 함께 자리한다.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가치와 원칙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편의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겪어온 갈등의 뿌리 중 하나에는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 친일 청산의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의 가치 기준과 정의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져 왔다.
이승만 정부는 건국 초기 국가 운영을 위해 인재를 활용하는 현실적 선택을 했다. 행정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인력을 기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실용주의적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제강점기에 권력과 기득권을 누렸던 일부 세력이 다시 국가 운영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고, 반대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인사들은 고초를 당하였으며 그 고행이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21세기를 사는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에 대한 갈등으로 뿌리깊게 이어지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실력은 매우 중요하다. 일을 잘하는 사람,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 어떤 방향으로 사용될 것인지,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특히 권력기관 개혁과 같은 민감한 과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업무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개혁이 지향하는 가치와 국민이 요구하는 변화의 방향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
실용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최고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능력 있는 사람을 쓰되, 그 능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도록 하는 가치와 철학이 함께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역사를 잊은 사회는 같은 고민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실용과 원칙, 능력과 가치를 어떻게 균형있게 조율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국민이 신뢰하는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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