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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일기 중에서 부모,5형제,아들,조카20여명이 살육....

작성자관리자|작성시간12.02.19|조회수77 목록 댓글 2

錦溪日記

성명

 노인(魯認)

생년

 1566년(명종 21)

몰년

 1622년(광해군 14)

 公識

 錦溪, 錦里

본관

 咸平(咸豐)

권수제

 錦溪集

판심제

 錦溪集

간종

 활자본(목활자)

간행년

 1823年刊

권책

 8권 2책

행자

 9행 20자

규격

 25.2×17.8(㎝)

어미

 上下三葉花紋魚尾

소장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소장도서번호

 4-5802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71

‘선조 32년 2월’ 금계일기중에서 부모,형제,형제,처자가 왜적의 칼날에 죽은 부분만 발취

3월 15일

맑음. 진ㆍ이는 술과 안주를 풍성하게 갖추고 달 밝은 저녁에 손님을 맞아 수작하기를 예의로 하더니, 얼마 안 되어 진ㆍ이가 손님과 더불어 문답하기를,

“조선에 육품(六品) 관리로서 성은 노(魯)이며 이름은 모(某)라고 하는 자가 있는데, 정유년 난리에 부모ㆍ형제ㆍ처자를 아울러 20여 골육이 다 적의 칼에 죽고 그만이 홀로 목숨은 보전했으나, 포로로 이 땅에 들어와 돌아가지 못하고, 밤낮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우는 모양은 보통 사람이 보아도 몹시 불쌍히 여겨지는데, 하물며 그 사람됨이 시ㆍ문에 능하고 서ㆍ화에도 능하며 또 의기가 많은 사람임에리까! 대체로 그가 몹시 바라는 것은 우리들과 배를 같이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탐지한 왜놈의 사정을 천조에 고하고 포로되어 일본에 있는 자들을 모두 쇄환(刷還)한 뒤 뒷날 복수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 하니, 그의 원통한 회포는 하늘에 사무치고 그 성의가 장합니다. 이 사람과 배를 같이 타지 않겠습니까?

하니, 손님이 말하기를,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진ㆍ이가 말하기를,

“이 주막 안에 있습니다.”

하매, 손님이 외쳐 말하기를,

“그를 불러오시오.”

하였다. 나는 의관을 단정히 하고 나아가 읍(揖)하고 앉으니, 손님이 써서 보이기를,

“그대는 어느 나라 사람이며, 직업은 무엇이며, 어떠한 연유로 이 지방에 들어왔습니까?”

하였다. 내가 당초에 진ㆍ이와 문답했던 말로 대답해 보이니, 손님이 말하기를,

“그대의 기상을 보니, 과연 오랑캐 지방에 장사지낼 인물이 아닙니다. 장차 우리들과 배를 같이 타고 바다를 건너가면 복건성(福建省)군문(軍門)에서 마부와 말을 내어 북경으로 호송하여 주겠습니다.”

하므로, 나는 곧 일어나 절을 하고 감사하기를,

“나의 지극한 소원은 다만 여기에 있습니다.”

하니, 손님이 술을 권하며 □□□ 말하기를,

“다시는 의심하며 염려하지 마시오. 내 꼭 데리고 가겠소.”

하매, 진ㆍ이도 또한 기뻐하며 손님에게 사례하고서 말하기를,

“몰래 갯가로 나가 배를 수색받는 걱정을 피하시오.”

하니, 손님이 손뼉을 치며 감탄하기를,

“이 계획은 기묘합니다. 다만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하고, 인하여 노래도 부르고 비파도 타며, 크게 취하여 자신을 잊는 데에 이르렀다. 나는 곧 절구 시 한 수를 지었더니, 손님이 읊고 감탄하며 다시 큰 잔을 청해 마시고 파하였다. 나는 진ㆍ이와 더불어 같이 문밖으로 나가 송별하니, 달은 이미 중천에 뜨고 날씨가 좋았다.

두어 가락 맑은 노래 비파에 맞춰 부르니 / 數曲淸歌和寶瑟하늘에서 들려오는 선악 같구려 / 如聞仙樂白玉京밤늦도록 손님과 즐기는 것 좋기만 한데 / 遠客良宵宜可樂해천에 바람 자고 달빛마저 밝구나 / 海天風順月分明

3월 28일

맑음. 이른 아침에 뱃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여, 각기 의관을 정돈하고 가리키며 서로 바라보고 말하기를,

“저편 산은 곧 나의 고향인데, 정오 전에 댈 수 있다.”

고 한다. 임 차관(林差官)이 뱃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가는 뱃사람이 혹 물으면, 군문에서 보낸 관리라고 대답하라.”

하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항구에 닿으니, 마을마다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투어 나와서 소리쳐 묻기를,

“이것은 어떠한 배냐?”

하니, 대답하기를,

“군문에서 보낸 관리가 동해로부터 돌아왔다.”

하니, □□□□ 기뻐하며, 좌석 위로 올라와 바라보기도 하며, 혹은 뱃머리에 와서 묻기도 한다. □□□□ 뱃사람들도,

“우리 집 우리 식구가 모두 잘 있는가?”

□□□□ 하며 대답하고 묻는다. 배가 포구에 닿으니, 술병을 가지고 와서 위로하는 자가 계속하여 끊이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한 장관(將官)이 모자를 쓰고 관복을 입고 이인교(二人轎 교자)를 타고 □ 한 쌍을 들고 건보(健步) 건보는 사령(使令)이다.15쌍 남짓과 추종자 1백여 사람을 거느리고, 위의를 성대히 갖추고 빠른 걸음으로 와서 묻기를,

“이 배는 어느 방향에서 왔느냐?”

하니, 임 차관도 의관을 정돈하고 내려가서 장관과 서로 인사[揖]하고 의자에 마주 앉아 그의 맡은 바를 대답하고, 곡절을 자세히 진술하니 장관이 말하기를,

“비록 군문에서 보낸 배라도 일본으로부터 왔으면, 배 안의 사람과 물건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점검한 뒤 각 관청에 알리는 것이 곧 경비 장관의 규칙이니, 배 안을 샅샅이 조사 점검하라.”

하매, 임공이 말하기를,

“나는 오로지 간첩으로 왕래하니 조금도 의심할 만한 사람은 없고, 다만 조선에 6품관 한 사람이 포로로 적국에 잡혀갔다가 나를 보고 호소하기를, ‘그대를 의지하여 바다를 건너서 탐지한 바 왜놈의 실정을 중국 조정에 고하고 인하여 고국으로 돌아가서 복수할 계책을 예비하려고 한다.’ 하며, 밤낮으로 피눈물을 흘리므로, 그 뜻이 장하고 그 성의가 충실하였기 때문에 이 사람이 거느린 포로 세 사람과 명장(明將) 동 제독(董提督)이 조선에서 싸우다가 패했을 때에 적군에게 포로가 된 세 사람, 아울러 7인을 배 안에 데리고 돌아왔고, 이 밖에는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장관은 그를 불러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곧 나와 내려가서 재배를 했다. 장관이 글로 써서 보이기를,

“그대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만일 조선 사람이라면 어찌 곧바로 본국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수만 리 타국으로 오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해 보이기를,

“우리나라는 비록 초료(鷦鷯 뱁새)와 초목일지라도 모두 왜놈의 피해를 보았고, 더구나 나는 정유년(1597, 선조 30) 가을에 부모ㆍ형제ㆍ자질ㆍ처자 아울러 20여 명이 모두 왜놈의 칼에 죽고 나만이 다행히 모면하였습니다. 한때에 같이 죽지 못하고 포로로 적국에 들어가서 그 정세를 탐정하건대, 수길(秀吉 일본의 관백 풍신수길)은 비록 죽었어도, 남은 도적은 분하고 부끄러워하며 잔악한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였으니, 짐짓 후퇴한 것을 가지고 깨끗하게 숙청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진정(秦庭)에서 곡(哭)하여 저 오궁(吳宮)에 못을 파기로 계획했기 때문에 몰래 단아한 군자인 임(林) 선생의 배를 타고 수만 리 거센 파도를 고생하며 건너왔습니다.”

하니, 장관이 말하기를,

“과연 이는 조선 사람이다.”

하고, 또 효순 등 세 사람을 부르기에, 내가 말하기를,

“한 사람은 전라도 흥양현(興陽縣) 사람이고, 한 사람은 경상도 밀양현(密陽縣) 사람이며, 한 사람은 서울 사람입니다.”

하였다. 이윽고 동 제독의 부하로서 포로되었던 3인이 장관 앞에 스스로 나아가 중국말로 그 내력과 원인을 자세히 진술하니, 장관이 말하기를,

“임군의 말이 사실이었다.”

하고, 다음으로 일본의 사정을 물으므로 나는 붓으로 그 대략을 진술했다. 장관은 우리들 7인 및 임과 진ㆍ이를 데리고 아문(衙門)으로 돌아가서 다례(茶禮)를 마친 뒤에, 인하여 술잔을 권하고 나에게 시를 요구하므로, 나는 곧 절구 두 수를 지었는데, 장관이 읊고 감탄하였다.그 첫 번째

일본에서 멀리 띄운 조각배 한 척 / 一葦遠放扶桑下문득 중국에 닿으니 열흘이 못 되었네 / 便到中華日未旬고각이 울리는 군문에서 호령을 들으니 / 鼓角轅門聞號令포로가 되었던 □□ 걱정 없는 봄이네 / 俘人□□太平春

그 두 번째

물가에 비 지나니 경치가 새로운데 / 雨過汀洲景物新버들 꽃 눈같이 날아 푸른 마름 덮였어라 / 楊花如雪覆靑蘋일이 없어 다락배는 한가로이 떠 있고 / 樓船泛泛閑無事군졸들은 이목의 인자함을 칭송하여라 / 士卒都稱李牧仁

[주D-001]진정(秦庭)에서 곡(哭)하여 저 오궁(吳宮)에 못을 파기로 계획했기 때문에 : 초 나라의 신포서(申包胥)가 진(秦) 나라에 호소하여 잃었던 초 나라를 회복한 일과 춘추 시대에 월 나라가 오 나라를 멸망시키고 오 나라의 궁성에 못을 판 일.[주D-002]이목(李牧) : 중국 전국 시대 조(趙) 나라 북변(北邊)의 어진 장수. 그는 항상 대(代)ㆍ안문(雁門) 지방에 있으면서 흉노를 제어하였다. 《史記 秦始皇紀》

4월 14일

비. 좌영이 내 방으로 와서 말하기를,

“그대가 빨리 귀국하고자 하면, 다시 귀국하기를 재촉하는 글[催歸文]을 군문에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기에, 내가 묻기를,

“군문은 어느 날 문을 열어 좌당(坐堂)합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이번 15일이 문을 여는 날이오.”

하였다. 내가 곧 글을 지어 원고를 정서할 때에 홍 수재의 집 종이 와서 초대해 가려고 하였다. 나는 모레 글을 올려야 한다는 사유를 편지로 써서 사양하고, 16일로 기약을 했다. 저물녘에 나는 지은 글을 좌영에게 보였다. 좌영이 다 보고 말하기를,

“마음에 슬픈 회포를 자세하고 간곡하게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못내 애처로워하게 되었군요.”

한다. 그 글에,

“엎드려 생각건대 나는 윤리의 명분을 밝히는 나라의 한 죄인으로, 이미 본국에 있던 날 절의(節義)에 죽지 못하고 목숨을 아껴 호랑이 굴속에서 살다가 예의의 본거지인 중국에 억지로 건너와서 동방을 돌봐 주시는 위엄하신 천자 앞에 무례한 짓을 하니, 그 죄악을 추구한다면 무어라 할 수 없는 죄악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온 집안이 왜적의 칼날에 죽거나 이리저리 떠도는 그 참혹한 화를 입었으니 또한 천하의 한 가련한 신세입니다. 이와 같이 참혹하고도 측은한 말씀을 인자한 친청(親聽) 아래에 심히 호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절실히 슬프고 민망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 마음속 슬픈 회포를 모두 털어놓으니, 각하께서는 사랑하시고 용서하기 바랍니다. 대개 정유년 난리에 70세 된 늙은 부모와, 형제 5인과 아들 조카를 아울러서 20여 골육이 각기 임하(林下)에 □□□□ 왜적 수만 명이 와서 본 고을을 함락하고 □□□□ 생각으로는 일시에 함께 죽고자 하였으나, □□□□ 붙들려 가서 적진에 갇혔습니다. 그 뒤로도 적진(賊陣)이 한달을 머물면서 깊고 궁벽한 산골짜기를 나날이 수색하여 살육한 것이 많고 적음으로 공로의 경중을 분별했으니 병들고 노쇠한 부모가 그 사이에서 어찌 해를 모면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비록 백 가지로 추측해 보아도 집안의 친척은 다 죽어 간뇌(肝腦)가 땅바닥에 버려져 여우와 이리의 밥이 되었을 것이니, 가만히 생각하면 피눈물이 흐르며 오장이 찢어지고 혼이 나가 미칠 것만 같아 세상이 깜깜합니다. 슬픈 한 생각은 다만 돌아가서 금년 겨울 눈이 내리기 전에 돌아간 부모의 백골을 거두고 영혼을 불러 선영 아래에 장사지내고 싶을 뿐입니다. 더구나 왜적은 비록 도망갔다 하지만, 짐짓 후퇴한 것을 가지고 영구히 깨끗하게 씻었다고는 할 수 없음에랴. 이에 □□□□ 일찍 고국에 돌아가 오궁(吳宮)에 못을 파, 원수 갚을 계책을 미리 준비하고자 합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합하께서는 특별히 일찍 돌아가도록 명하소서. 대저 마음에 원한이 맺힌 자는 그 슬픈 소리가 목석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며, 정에 감동된 자는 그 정성이 귀신에게도 사무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서서(徐庶 촉한(蜀漢) 영천(潁川) 사람) □□□□ 만일 촉(蜀) 나라 임금을 속였어도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나는 슬프고 괴로운 정이 마음에 얽혀 있을 뿐 아니라 고국으로 돌아가서 원수를 갚으려는 성의도 사리에 맞고 급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다만 저희 나라의 근심만이 아니며, 실은 천자(天子)께서 7~8년간 우리나라를 위해 밤낮으로 근심하셨던 일입니다. 호랑이 입에서 겨우 모면하여 여기에 체류하여서는 괴로움이 쌓여 병이 되었고 한 시각이 3년보다 갑절이나 되오니,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사랑하고 용서하셔서 곧바로 돌려 보내어 국가와 부모를 위한 성의를 다하게 하시면 천만 다행하겠습니다. 격절하여 방황하는 마음을 견딜 수 없어, 삼가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하였다.

4월 16일

맑음. 앞서 약속한 수재(秀才) 홍이난(洪二難)이 사개(使价 심부름하는 사람)를 보내서 초청하므로, 나는 곧 그 사개와 더불어 그 집으로 갔는데, 이난이 나를 맞이하고 기쁜 마음으로 세 번 읍하고 사양하며 중당(中堂)으로 들어가 앉으니, 좌우에는 도서(圖書)요, 맑은 향기는 탑(榻) 안에 가득하였다. 내가 먼저 써 보이기를,

“어제는 군문에 글을 올리는 일로 좋은 약속에 응하지 못하였으니, 그 지키지 못한 죄가 많았습니다. 오늘은 좋은 초대에 곧바로 와서 먼젓번 일을 속죄합니다.”

하니, 이난이 말하기를,

“이미 글을 올려 상 받은 소식을 들어 압니다. 그 글을 보고 싶습니다.”

하기에, 내가 주머니 속에서 내보이니, 이난이 다 보고 말하기를,

“족하(足下)의 글은 그 충성이 해를 꿰뚫었으니, 한갓 글을 잘 쓴 것이 아닙니다. 군문에서 은자로 상준 것이 참으로 마땅하다고 느껴집니다.”

하고, 종을 불러 차를 올리게 하고, 또 술을 가져와서 따르게 하였다. 뜰에 가득한 화초에서 향기로운 바람은 옷깃을 스쳐가는데, 서로 두어 잔을 수작하니 이미 한낮이 되었다. 문밖에 손님 세 명이 찾아와 수재가 나가 맞아 올라왔는데, 모두 젊은 수재였다. 나도 서로 읍을 하니, 세 손님이 말을 하기를,

“이분이 조선의 관리입니까?”

하니, 홍 수재가 말하기를,

“바로 그렇습니다.”

하였다. 세 손님이 기뻐하며 앉고, 또 나를 상객(上客) 자리에 앉게 하였다.세 손님은 나의 흰 의관 차림을 보고 먹는 채소 반찬을 보며 말하기를,

“족하는 흰 의관을 어째서 입었습니까?”

하니, 홍 수재가 대답하기를,

“그는 정유년 난리에 한집안의 부모 형제 처자가 모두 왜적의 칼날에 죽었다.……”

하였다. 세 손님이 다 듣고는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족하께서는 꼭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으니,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하늘이 반드시 살아 돌아가서 끊어진 제사를 지속케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예의를 지켜서 구구하게 채식만을 한다는 것은 자막(子莫 중국 전국 때 사람으로 변통성이 없었음)의 고집보다도 심합니다. 바라건대, 족하는 권도에 따라 몸을 보전하여 살아 돌아가서 충효의 정성을 다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므로, 나는 대답하기를,

“삼년간 상제 노릇하는 일은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귀천 없이 똑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풍속은 한결같이 주회암의 《가례(家禮)》를 따르기 때문에, 비록 서민일지라도 초상 때부터 담제(禫祭 대상을 지내고 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 때까지 고기를 먹지 않는데, 하물며 사대부(士大夫)로서 비록 역경에 처했을 때일지라도 어찌 예의에 벗어나서 오랑캐의 풍속을 따르겠습니까?”

하였다. 좌우가 감탄하며 말이 없다가,

“훌륭합니다. 누가 조선을 변방 오랑캐라고 하겠습니까? 그와 같이 법을 지키고 예를 아는데.”

하기에, 내가 대답해 보이기를,

“소련(小連)ㆍ대련(大連)이 부모 상사를 당하여 예법을 잘 지켰는데 이도 곧 동쪽 오랑캐 사람이었으니, 오직 족하는 진(秦) 나라에 사람이 없었다고 하지 마시오.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封)하여 국민을 팔정(八政)으로써 가르칠 때에 귀국의 일곱 □□은 왕의 교화를 입지 못하여 오륜(五倫)을 알지 못하다가, 당(唐) 나라 이후부터 비로소 천자가 정치하는 교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역대를 자세히 생각하여, 우리나라를 미개한 데에 비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니, 좌우가 서로 돌아다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족하의 말에는 이치가 있습니다.”

하였다. 종일토록 조금씩 술을 마시다가, 또 저녁밥을 먹고서야 파하였다. 홍 수재가 1푼 은자로 이인교(二人轎)를 사서 나로 하여금 타고 돌아오게 하고, 또 비단으로 만든 도복(道服 수도하는 사람이 입는 옷)을 나에게 입혀 보내었다. 좌영사(坐營司)에 돌아오니, 아객이 기뻐하며 축하하였다. 꿈에 부모와 처자를 보았다.

[주D-001]소련(小連)ㆍ대련(大連) : 다 동이(東夷)의 사람으로 부모상(父母喪)을 잘 치렀다 함. 《論語 微子》

 

 

 

첨부파일 ‘선조 32년 2월’ 금게집중에서 부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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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2.21 금계공을 욕보이는 금계공의 후손은 각성하라...
  • 작성자노상일 | 작성시간 12.02.23 우리 노씨집안에 이렇게 훌룽한 분이 계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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