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62)
《일상 속의 예술, '버스킹(Busking)'》
우리는 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혹은 관성처럼 이어지는 일상의 궤도를 따라.
그러다 문득, 그 단조로운 풍경 속에 낯선 선율이 파고드는 순간이 있다.
악기 케이스 하나가 무대가 되고,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걸음이 객석이 되는 버스킹(Busking)의 시간이다.
버스킹은 화려한 조명도, 거창한 서사도 없다. 그저 길 위에서 스스로를 소리로 환대하는 이들의 몸짓일 뿐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노래하고, 누군가는 지나간 계절의 아쉬움을 하모니카ㆍ기타ㆍ색소폰 등 각종 악기에 혼을 담아 불어낸다. 그 소리는 무심코 지나치던 이들의 귓가를 지나,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틈새를 가만히 두드린다.
길 위에서의 연주는 완벽하지 않다. 간혹 자동차 경적 소리가 섞이기도 하고, 공연자의 손끝이 차가운 바람에 떨리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날것의 생명력'이야말로 버스킹이 가진 진짜 매력이다. 박제된 음반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지금 이 순간, 이 장소
에서만 공유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기이며 분위기다.
버스킹은 멈춤을 가르쳐준다.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짧은 찰나, 우리는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고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무명(無名)의 연주자가 건네는 위로는, 대단한 철학보다 따뜻하고, 거창한 선언보다 다정하다.
그 무명의 연주자가 때론 '나' 자신이 되어보고픈 것이다.
오늘, 혹시 길가에서 울려 퍼지는 작은 소리를 듣게 된다면 굳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잠시 그 곁에 서서, 그 소리가 내어주는 빈자리에 잠시 머물러 보길. 길 위의 소리는 어쩌면,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응원일지도 모르니까.
버스킹은 단순히 장소에서 벌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그 장소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연금술’과 같다.
늘 지나치던 지하철역 환승 통로, 삭막한 공원 벤치나 팔각정, 비 오는 날의 버스 정류장이, 연주자가 멜로디를 시작하는 순간 ‘콘서트홀’로 변신한다.
평소라면 눈도 마주치지 않을 낯선 사람들이 같은 음악을 듣기 위해 반원형으로 모여드는 모습에 어찌 가슴이 설레이지 않겠는가.
버스킹은 무균실 같은 공연장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음과 싸우며 피어나는 예술이다.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바람 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까지 버스킹의 반주가 된다. 이 모든 것은 곧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대변한다.
때론 악기 줄이 끊어지거나, 때론 바람에 악보가 날아가고, 때론 블루터스 밧데리가 방전 되고, 때론 공연 중에 민원으로 인해 경찰이 출동하는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발생하는 버스킹만의 드라마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불안전함'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증거일 수 있다.
처음 케이스를 열고 악기를 꺼낼 때 그 찰나의 망설임. '누가 봐줄까?'라는 두려움과 '나를 표현하고 싶다'라는 욕망 사이의 줄타기.
잔잔한 떨림과 긴장감을 뒤로 하고, 나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알리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그 곳으로 불러 세운 것이다.
그런 가운데 미흡하나마 나의 연주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을 때 느끼는 쾌감과 안도감, 충만감, 성취감을 어떻게 표현할까.
열성 관객이 슬쩍 놓고 가는 지폐 한 장의 무게, 지나가는 이들과 미소 띈 눈빛으로 순간순간 주고받는 '감정의 교류',
이런 것들 모두가 버스킹의 매력아닐까.
버스킹은 시대의 정서를 기록하는 가장 낮은 위치의 기록물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의 버스킹과 축제 분위기일 때의 버스킹은 선곡부터 달라야 된다고 본다.
마치 이번 6ㆍ3선거 유세에서 보여 주었듯이 그 지역 특성에 맞게, 그 특정 후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대변하는 곡을 '선거 패러디 곡'으로 선별하였듯이 말이다.
버스킹은 도시의 지금 이 순간, 그 시민들이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보여주는 ‘도시의 일기장’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악기를 다루는 사람의 순수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일까? 음악 자체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하는
자문도 해 본다.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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