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64)
*설해 심나영
《 '엘 콘돌 파사(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마치 잉카의 영물이자 자유의 상징인 콘도르가 대지를 내려다보며 날갯짓하는 그 선율이 귓가를 스치는 듯 하다.
맑고도 쓸쓸하게 흩어지는 그 소리는, 때때로 지난 세월의 마디마디를 건드리며 안데스 산맥을 넘어온 바람을 불러들이면서, 콘도르가 광활한 창공에 높이떠서 그 큰 날갯짓
을 하는 장엄한 풍광을 상상케 한다.
페루 원주민들에게 콘도르는 하늘과 땅을 잇는 영물이자, 죽은 영웅의 영혼이 깃드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이 곡은 단순히 '새가 지나간다'는 의미를 넘어, 억압받는 민중들이 다시 자유를 찾기를 갈망하는 간절한 기도이자 투쟁의 상징이었다.
저항의 역사를 품은 이 애잔한 선율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평온과 위로를 건네고 있다.
'엘 콘도르 파사(El Cóndor Pasa)'는 그 아름다운 선율만큼이나 깊고 뜨거운 역사를 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여러 가수들이 불렀다.
1913년, 페루의 음악학자이자 작곡가인 '다니엘 알로미아 로블레스(Daniel Alomía Robles)'가 작곡했는데, 그는 안데스 산맥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채집한 토착 민요를 바탕으로 곡을 구성했다.
본래 이 곡은 같은 제목의 '사르수엘라(스페인의 전통 음악극')에 삽입된 테마곡이었다. 이 극의 내용은 18세기 페루에서 스페인의 식민 지배와 가혹한 노동에 저항했던 독립 운동가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투팍 아마루 2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버전 때문에 이 곡이 마치 그들의 자작곡이나 단순한 포크송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1965년, 파리에서 남미 그룹 '로스 잉카스(Los Incas)'가 연주하는 것을 들은 폴 사이먼이 그 선율에 깊이 매료되었다.
폴 사이먼은 이 곡을 구전 민요로 알고 가사를 붙여 발표했다가 나중에 '로블레스'가 작곡가임을 확인하고 저작권을 정리하는 소동도 있었다.
원곡의 가사(케추아어)는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민족적 슬픔과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고 있지만, 폴 사이먼의 영어 가사는 '땅에 발을 딛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보다 보편적이고 서정적인 개인의 염원을 담고 있다.
페루에서는 이 곡을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민족의 혼으로 여긴다.
투쟁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 누구에게나 위로를 주는 곡이 되었다.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된다는 전설이 깃든 노래이며 부활의 꿈을 의미하기도 한다. 콘도르는 매의 일종으로, 총 길이 1.3m 이상으로 매과 중에서 가장 큰 종(種)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에 멸망한 나라 잃은 잉카인들의 슬픈 꿈이 담겨있는 듯하면서도 우수에 찬 선율이 가슴을 적신다. 잉카인들이 스페인 군대를 피해 도망친 마지막 도시라는 마추픽추 위로, 안데스 산맥 너머로 유유히 큰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날아다니는 콘도르가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그런 분위기의 곡이다. 콘도르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뜻한다. 먼저 '독수리'하면 두 날개를 활짝 편 채 날아오르는 모습을 떠올린다.
억압받는 민중의 고통이 끝내 노래가 되어 승화되었듯, 우리의 삶 또한 나를 감싸고 있는 무거운 집착들을 조금씩 내려놓을 때 비로소 저 콘도르 마냥 자유의 비상을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다 알지만서도).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 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게 체념이든 포기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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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노트]
<'독수리'에 관한 단상>
올해 초 태화강에서 탈진 상태로 발견되어 치료를 받은 독수리와 오른쪽 안구에 상처를 입은 상태로 구조된 독수리가 치료를 마치고 자연으로 돌려 보내졌다는 소식을 접한다.
독수리는 하늘의 왕답게 용맹스러움, 지혜로움 그리고 하늘을 날아 다닌다는 공간의 초월성 등을 의미하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는 독수리와 관련된 많은 신화와 문화가 있다.
그리스인들은 천둥 번개를 관장하는 제우스의 새로 독수리를 선택했고 잉카에서는 태양의 상징이자 수호령이었다. 오스트리아는 현대에도 머리 둘 달린 독수리를 문장으로 이용한다. 미국의 상징 역시 독수리다. 멕시코 군대가 보여주는 뱀을 감은 독수리도 그렇다. 동부 인도에서는 독수리가 천둥의 신 인드라의 사자였다.
이집트에서는 독수리가 태양을 상징했고 성스러운 새, 성조로 취급됐다. 로마 그 자체로 인식된 로마제국의 상징도 독수리였으며 나치의 상징도 독수리였다.
국내에서는 독수리를 대학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곳도 있다. 두곳 다 필자의 모교이기도 한 부산대와 연세대가 그렇다.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인도에서는 화장을, 한자 문화권에서는 매장 풍습이 있는 데 비해 티베트에서는 독수리에게 시체를 뜯어 먹도록 하는 조장(鳥葬) 또는 천장(天葬)의 풍습이 있다. 조장은 조로아스터교가 원조다. 살았을 때 남의 살(육식)을 많이 먹었으니 이번에는 당사자가 독수리 밥이 될 차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때 영혼은 독수리를 타고 승천하고 독수리가 돌아올 때 영혼은 다시 지상으로 환생한다고 믿었다. 니체가 말한 영겁회귀(永劫回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도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금지된 불을 훔쳐다 준 죄로 바위에 묶여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께서 6년간 머물면서 법화경을 설하신 곳인 라즈기르에 있는 영취산도 독수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신령스러운 독수리산이라는 뜻을 지녔다.
성서 '이사야서'에도 "여호와를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으려니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가겠고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으리라"며 독수리가 등장한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요한복음을 집필한 요한의 상징도 독수리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가 전한 궁극의 계명인 '사랑'을 가장 심도있게 집필한 복음이기에 복음사가로서의 활동을가장 높이 나는 독수리에 빗대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El Condor Pasa/ 철새는날아가고
https://youtube.com/watch?v=NOWDQEz7-Fs&si=qMnVCWh553WHNH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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