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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사운드 오브 사일런스(Sound Of Silence)'》

작성자운형|작성시간26.06.16|조회수30 목록 댓글 0

#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66)

*네이버에서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사운드 오브 사일런스(Sound Of Silence)'》

 

 

 소리는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때론 시각보다 소리가 더 중요할 정도로 인간은 소리에 사실 더 민감하다. 무성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시각적인 정보가 있어도 답답하고, 긴장감이 훨씬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얼추 제대로 보이지 않는 영화도 소리가 살아있으면, 긴장감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소리는 인간의 삶에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예민하다. 눈을 가리면 인간은 촉각이나 후각보다 바로 청각에 집중할 정도로 청각에 예민하며, 사망할 때에도 가장 늦게 상실하는 감각이다. 세상이 아무리 시각적으로 변화하였어도, 소리 없는 세상이 얼마나 답답한지는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이 소리에 의존하는지 알 수 있다.

 

 소리는 소리의 진동수에 의해 소리의 높낮이가 결정된다. 진동수가 큰 음이 높은 음이다. 소리의 높낮이는 음계로 표시하는데, 진동수가 2배로 커진 음을 한 옥타브 높은 음이라고 하고 이를 12단계로 나누어서 계명을 붙인다. 이 경우 한 단계 오를 때마다 진동수는 21/12

1.0595 배씩 커진다. 그러므로 같은 옥타브 안의 C음에 대해 F음은 진동수가 4/3배, G음은 3/2배 크다.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는지? ​가끔은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멈춘 밤, 지독한 고요가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만나기도 한다. 그 서스펜스 같은 고요를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그려낸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The Sound of Silence)'가 있다.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를 이야기 하면서 이 노래를 부른 두 남자의 운명 같은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불협화음(?)을 자랑했던 듀오,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이다.

​두 사람은 뉴욕 퀸즈의 한 동네에서 자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톰과 제리처럼 늘 붙어 다니던 소년들은 열여섯 살에 '톰과 제리'라는 이름으로 팀을 만들어 음악을 시작했다. 외모만큼이나 두 사람의 역할은 극과 극으로 뚜렷했다.

​폴 사이먼은 자그마한 체구에 지독하리만치 섬세한 감성을 가진 '천재 작곡가'이자 시인이었고, 아트 가펑클은 훤칠한 키에 '천사의 목소리'라 불릴 만큼 맑고 고결한 미성을 가진 보컬리스트였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 그들의 ‘무음(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는 감미로운 선율도 아름답지만, ‘무음(침묵)의 소리’라는 역설적 표현이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아 더 사랑받은 명곡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제목부터 참 시적이다. ‘침묵의 소리’라니, 소리가 없는데 어떻게 소리가 들린다는 걸까? 

최근 들어 ‘무음의 소리’라는 표현이 역설(paradox)이 아닌 정설(orthodoxy)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미국의 연구진에 의해 발표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상황도 바로 소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곡을 영화 <졸업(The Graduate, 1967)>의 쓸쓸한 오프닝과 엔딩 장면으로 기억할 것이다. 버스를 탄 주인공 뒤로 흐르던 그 처연한 통기타 소리 말이다. 하지만 이 불후의 명곡 뒤에는 눈물겨운 반전 스토리, 즉 ‘침묵 속에 묻힐 뻔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1964년,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이라는 두 스물두 살 청년은 부푼 꿈을 안고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이 곡은 청년 폴 사이먼이 매일 밤 불을 끄고 화장실에 들어가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고독하게 기타를 튕기며 만든 곡이었다. 그래서 첫 가사인 "Hello darkness, my old friend(안녕 어둠, 나의 오랜 친구야)"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앨범은 고작 수백 장밖에 팔리지 않았고, 상심한 두 청년은 "우린 안 되나 봐"라며 결국 팀을 해체하고 각자의 길로 떠나버린다.

 

 ​그대로 묻혔다면 대중음악사의 가장 큰 손실이었을 것인데, 신의 장난 같은 반전은 이듬해에 일어난다. 두 청년도 모르는 사이에, 프로듀서 톰 윌슨이 기존의 포크풍 노래에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사운드를 슬쩍 덧입혀 라디오에 흘려보낸 것이다.

​결과는 대폭발이었다. 해체했던 두 청년은 자신들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로 내닫고 있다는 소식을 각자 다른 나라에서 듣게 된다.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원석이, 세상의 소음과 만나 비로소 다이아몬드가 된 순간이었다.

 

 ​이 노래가 6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는 이유는 가사가 가진 깊은 ‘시적 성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듣지 않고 말만 하고 있으며, 귀 기울이지 않고 듣기만 한다."

"아무도 감히 그 침묵의 소리를 깨뜨리지 못한다."

​폴 사이먼이 청년 시절에 쓴 이 노랫말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지하철 안에서, 혹은 카페에서 모두가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소통 없는 대화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 않나? 군중 속의 고독, 수많은 말들이 오가지만 정작 진심은 전해지지 않는 차가운 세상. 시인은 이미 1960년대에 영혼 없는 소음들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경고를 날렸던 것이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오늘 밤에는 잠시 이어폰을 빼고, TV 볼륨을 줄이고, 방 안의 불을 꺼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내 오랜 친구였던 어둠과 고요에게 슬며시 인사를 건네보자.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이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침묵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깊은 언어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나, 때론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된다. 입을 닫고 혀를 가둘 때, 비로소 만물은 제 이름을 나에게 속삭이기 시작할 것이다.

눈을 감는 순간, 끊임없는 존재에 대한 의심이 되살아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이거나 답답해지는 것은 아닐것이다. 청각이 시각보다 무서운 것은, 자의적으로 차단할 수 없는 열린 신체기관이기 때문이다. 들음으로써 우리는 사물의 형상과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부처님이 관음(觀音)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닫듯, 들음으로해서 볼 수 있게 되는 능력이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무엇을 해도 잘 안 풀리고 계속 막히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억지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입을 닫고 자신을 축적하는 것이다. 이것이 침묵 나아가 묵언의 시작이다. 묵언은 단순히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에너지를 밖으로 흩어내지 않고 안으로 모으는 과정이다. 사람은 말을 하면서

계속 에너지를 밖으로 내보낸다.

그런데 아직 질량이 약한 상태에서

계속 주장하고 설명하고 판단하면

에너지가 쌓이지 못한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어느 시기에는 

반드시 묵언의 시간이 필요하다.

묵언을 하면서 보고 듣고 겪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계속 축적된다.

그러면 안에 에너지 질량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질량이 커질수록:

분별력이 달라지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풀리지 않던 문제의 답이 스스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억지로 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공이 차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지혜가 열리는 것이다."(상담 연구소 글에서 인용)

 

 불교의 능엄경에는 듣는 것을 수행하여 제2의 눈을 만들라는 말이 나온다. 불교뿐만 아니라 가톨릭 또한 '들음의 훈련'을 위해 피정의 집 등에서 묵언수행을 한다. 

법정스님의 말을 인용한다. "홀로 있으면 귀가 열린다. 내 안의 소리 사물이 소곤대는 소리, 때로 세월이 한숨 쉬는 소리, 듣기는 곧 내면의 뜰을 들여다 보는 일이다". 기도 또한 결국 '신의 음성을 홀로 듣는 일'이니, 들음은 '보는 능력'보다 영혼의 촉지에 더 큰 반향을 실어내는 듯 하다.

 

 시인은 고요의 벌판에 서서 기어이 

침묵의 가사에 귀를 대어본다

​아, 비어 있는 줄 알았더니

이 지독한 고요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진심이 가득 차 있었다. ​

오늘 밤, 시끄러운 세상이 건넨 상처는 저 고요한 침묵의 강물에 깨끗이 씻어두고, 내 안의 가장 깊은 시(詩) 한 구절을 가만히 받아 적어 보려 한다.

그것이 명상이든 묵상이든 침묵이든 피정이든 묵언이든 말없음이든 간에 말이다.

 

 

 

 

/문화 칼럼니스트 최진태

 

*Simon & Garfunkel - The Sound of Silence (lyrics, 번역)

https://youtube.com/watch?v=HZVkk_aQ0BI&si=2GlPpQh9NwFv12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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