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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청춘과 낭만을 대변했던, 바블껌의 '연가(戀歌)'》

작성자운형|작성시간26.06.17|조회수16 목록 댓글 0

#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67)

 

《청춘과 낭만을 대변했던,​ 바블껌의 ‘연가(戀歌)’》

 

​세상에는 수많은 노래가 있고, 그 노래마다 각자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어떤 노래는 단순히 듣고 즐기는 대중가요의 영역을 넘어, 한 시대의 공기를 바꾸고 수많은 이들의 청춘과 낭만을 대변하는 문화적 상징이 되기도 한다. 혼성 듀오 바블껌(Bubble Gum)이 부른 ‘연가(戀歌)’가 바로 그런 곡이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캠프파이어의 모닥불 앞에서, 혹은 친구들과의 여행길에서 기타 반주에 맞추어 불러보았을 메가 히트곡이다.   

 

 ​많은 이들이 ‘연가’를 순수 국산 창작곡으로 알고 있지만, 이 곡은 사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 민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원곡의 제목은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로, 마오리족어로 ‘영원한 사랑’ 혹은 ‘잔잔해지는 호수의 물결’을 뜻한다.

 ​이 노래에는 눈물겹고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뉴질랜드 북섬의 로토루아 호수, 그 한가운데에 있는 로토코코 섬에 살던 ‘투타네카이(Tutanekai)’라는 청년과 호수 건너편 본토에 살던 높은 부족장의 딸 ‘히네모아(Hinemoa)’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서로 깊이 사랑했지만, 신분 차이와 부족 간의 극심한 적대 관계 때문에 만남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히네모아를 만나지 못해 애타던 투타네카이는 밤마다 호숫가에 서서 뉴질랜드 전통 플루트인 ‘푸토레토레’를 불며 그리움을 달랬고, 히네모아는 그 애달픈 소리를 이정표 삼아 밤마다 호숫가에서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두 사람이 배를 타고 도망치려 한다는 눈치를 챈 히네모아의 부족들은 호숫가의 모든 조각배를 숨겨버렸다.

​연인의 음악 소리는 들리는데 갈 방법이 없자, 절망에 빠진 히네모아는 위대한 결단을 내린다. 허리에 빈 박을 매달아 부력을 만든 뒤, 차갑고 어두운 밤 호수를 맨몸으로 헤엄쳐 건너가기 시작한 것이다. 목숨을 건 수킬로미터의 사투 끝에 마침내 연인의 품에 안긴 히네모아, 그리고 이들의 목숨을 건 위대한 사랑에 감복한 두 부족은 결국 오랜 반목을 멈추고 두 사람의 결합을 허락했다. 이들의 위대한 승리를 기리기 위해 마오리족이 대대로 불러온 노래가 바로 ‘포카레카레 아나’이다.

 

 ​이 애절한 사랑 노래가 지구 반대편인 한국 땅에 처음 소개된 것은 비극적이게도 6·25 전쟁 때였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출신의 병사들이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연인을 그리워하며 진중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포탄이 빗발치고 피와 눈물이 얼룩진 전쟁터에서, 뉴질랜드 병사들이 나지막이 읊조리던 ‘포카레카레 아나’의 애틋한 멜로디는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한국인들의 가슴을 깊게 울렸다. 참혹한 전쟁의 아픔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던 이 노래는 휴전 이후에도 파란 눈의 선교사들과 구전(口傳)을 통해 한국 사회에 조금씩 퍼져나갔다.

 

 ​그렇게 묻혀 있던 멜로디를 1970년대 초, 이규대·조준우 부부로 구성된 혼성 듀오 ‘바블껌’이 발굴하여 아름다운 우리말 가사를 붙여 ‘연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게 된다. 당시 대한민국은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포크 문화’의 황금기였다.

​바블껌 특유의 맑고 청아한 화음과 경쾌한 통기타 리듬은, 원곡이 가진 본래의 애절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밝고 건강한 ‘청춘의 낭만’으로 멋지게 재해석해 냈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밤 만나리라”라는 가사는 어떠한 시련이 와도 사랑을 지켜내겠다는 마오리족의 설화를 현대적으로 완벽하게 녹여낸 명문장이었다.

 

 통기타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코드 구성 덕분에, ‘연가’는 대학가, 대성리나 가평으로 떠나는 기차 안,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둘러앉은 캠프파이어의 싱어롱(Sing-along) 문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국민 애창곡이자 청춘의 해방구가 되었다.

​ 

 ​바블껌은 이규대 씨와 조준우 씨, 두 사람으로 구성된 1970년대의 대표적인 혼성 포크 듀오이다. 재밌는 점은 두 사람이 시인의 대학원 모교이기도 한 연세대 동문이자 대학 시절부터 사랑을 키워온 ‘캠퍼스 커플’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청년 문화의 중심지였던 YWCA 청개구리 집 등에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음악적 교감을 나눈 두 사람은, 대학 졸업 후 1971년에 공식적으로 팀을 결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까지 골인하며 대한민국 가요계의 보기 드문 ‘부부 듀오’가 되었다. ‘바블껌(풍선껌)’이라는 팀명처럼 이들은 통통 튀고 싱그러운 하모니를 자랑하며 당시 어둡고 엄숙했던 사회 분위기에 신선한 청량제를 선물했다.

 

 ​바블껌은 단순히 ‘연가’ 한 곡만 남긴 팀이 아니다. 이들은 당시 한국 가요계에서 ‘번안곡’과 ‘동요·건전가요’를 대중적인 포크 음악의 반열로 끌어올린 선구자였다.

​“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그녀만 보면"으로 시작하는 '짝사랑' 역시 바블껌의 대표곡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포크 가요의 정석이었다.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이 곡도 원래 프랑스 노래를 번안한 곡인데, 유쾌하고 따뜻한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어 당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가수 박상규 씨가 불러 큰 인기를 끌었던 '조약돌' 이 곡 역시 사실은 바블껌의 이규대 씨가 직접 작사·작곡하여 선물한 노래인 것이다.

​이처럼 바블껌은 자극적이지 않고 무해하며,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음악을 추구했다. 통기타 하나와 두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온 세상을 따뜻하게 채우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청년 문화를 휩쓴 ‘가요 정화 운동’과 ‘대마초 파동’ 등의 거센 풍파는 바블껌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청년들의 포크 음악이라는 이유로 활동의 제약을 받거나, 곡의 분위기가 너무 가볍다는 황당한 이유로 방송 금지를 당하는 등 시대적 아픔을 겪어야 했다.

​결국 이들은 화려한 무대 위를 떠나 대중의 기억 속으로 잠시 가려지게 된다. 팀의 리더였던 이규대 씨는 이후 음악 기획 및 제작 등 무대 뒤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길을 걸었고, 대중 앞에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내려놓았지만 그들이 남긴 ‘연가’와 음악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비바람이 세차게 치던 바다가 마침내 잔잔해지듯, 우리의 인생 여정에도 수많은 풍파와 시련이 찾아오고 또 지나간다. 바블껌의 ‘연가’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거친 파도를 지나 마침내 가닿을 ‘잔잔한 평화’와 ‘영원한 사랑’의 가치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노래가 먼 이국땅의 슬픈 민요에서 시작해 한국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국민 가요가 된 것처럼, 음악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을 연결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나보다. 

어제도 이 노래를 신나게 이중창으로 합주 연습을 하고 왔으니 말이다.

울적하다가도 이 노래만 연주하면 세상이 밝아지고 눈이 환해지니, 

역시 명곡은 명곡인 모양이다.

영원한 사랑 ‘포카레카레 아나

(Pokarekare Ana)’여!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바블껌  -  연가 (원곡 : Pokarekare Ana) 1972  - 뉴질랜드 마오리족 민요 -

https://youtube.com/watch?v=V_SToVW81us&si=szRnBeS-tJZj8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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