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0일 백두대간 23기25회차 산행기(생달리~차갓재~대미산~부리기재~박마을)

작성자심곡|작성시간26.06.22|조회수90 목록 댓글 2

하지 전날 한동안 괴롭히던 이른 더위를 식혀주는 여름비가 밤부터 내리더니 하루 종일 그칠 생각이 없다.

그래도 산행 때는 날이 좋아 숲의 시원함도 느끼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전망 좋은 바위 위에서 경치 감상도 하면 좋으련만 바람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 이듯 산행도 그렇다.

계획했던 대로 소백산을 가야 하나 폭우 주의보로 산행지를 바꿨다. 지난 산행의 날머리인 저수령에서 생달리로 하산한다는 변경 공지도 우중 산행에 따른 난이도와 거리 때문에 다음 구간인 대미산 구간으로 최종 결정하여 산행하기로 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처럼 기상이 좋지 않을 때는 꼭 이어가지 않더라도 비교적 안전하고 쉬운 산행지로 변경하는 것이 좋다.

전망도 없는 산행구간이니 고개 푹 숙이고 차라리 비를 즐기며 산행하기로 한다.

 

오늘의 들머리인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生達里). 대간산행을 하면서 참 여러번 왔던 곳이다. 와인 동굴과 연결 지어 기억되는 곳. 산과 달만을 바라볼 수 있는 두메산골이라는 뜻에서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으며 그 후 생달로 변경되었다는 설과 마을어귀에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졌는데도 죽지 않고 살았다 하여 산다리라 하였고 그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는 두 가지 속설이 전해 오고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들도 참으로 다양하다.

 

하차 후 잠시 마을 길을 걷다 올라오면 와인 동굴이 있다 카페이름 CAVE. 문열고 들어갈 시간이 없으니 다음 황장산 구간을 지나면 하산 때 오랜만에 들어 봐야겠다.

비가 계속 오니 작은 계곡물도 수량이 제법 많다. 조심스럽게 모두들 잘 건넜다.

대간길에 올라서면 물 건너는 일이 없으니 빗물이 흘러들기 전에는  등산화가 젖을 일이 없다. 산행할 때 신발이 젖으면 여간 편하지가 않다.  비 올 때 신발에 물이 안 들어거게 요령을 가르쳐 줘도 새겨듣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신발에서 물을 쏟는 모습이란.... ㅋㅋㅋ

 

이내 작은 차갓재에 도착한다. 이곳 말고 차갓재를 넘으면 동로면 명전리에 서너 농가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차갓골이 있다. 

대간길은 대개 도의 경계나 군의 경계를 지나는데 이곳은 오롯이 동로면 가운데를 지난다.

 

비에 젖은 휴대전화가 또 오작동을 시작한다. 셧터도 제때 반응을 하지 않아 연신 마른 수건으로 손을 닦고 화면을 문지른다.

사실 사진 찍을 데도 별로 없는 곳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산행에 집중한다.

 

고운 산길에 비를 머금은 풀들과 나무들이 싱그럽다. 그 사이에 문경 “산들모임”에서 세운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지석이 다소곳하다.

이곳이 차갓재다.

이렇게 써 있다.

 

백두대간

남한 구간 중간지점

해발 786 북위 36º 40’  동경 128º 15

경북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차갓재

백두대간이 용트림하며 힘차게 뻗어가는

이곳은 일천육백여 리 대간 길 중간에 자리한

지점이다

넉넉하고 온유한 마음의 산사람들이여

이곳 산 정기 얻어 즐거운 여정 이어가시길

 

뒷면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통일이여! 통일이여!

민족의 가슴을 멍들게 한

철조망이 걷히고

막혔던 혈관을 뚫고

끓는 피가 밝게 흐르는 날

대간길 마루금에 흩날리는

풋풋한 풀꽃 내음을 맘껏 호흡하며

물안개 피는 북녘땅 삼재령에서

다시 한번 힘찬 발길을 내딛는

네 모습을 보고 싶다.

2005년 7월 15일

문경.  산 들 모 임

비록 스쳐 지나가듯 힐끗 보고 지나가는 돌 하나지만 이를 세우기 위해 이 무거운 돌을 회원들이 목도해 올려 세운 정성이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라 생각한다.

처음 세울 때 장승도 있었는데 지금 장승 한쌍은 보이지 않는다. 산속살이가 외로워 아마 마을로 내려갔나 보다.ㅎㅎ 

다시 평택 여산회 백두대간 종주대가세운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지석이 있다.

대간 거리는 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를 참조했다고 한다.

 

백두대간 남쪽 구간 거리는 측정한 단체나 기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산림청의 백두대간 구간은 688,9km다. 여기에 진부령에서 향로봉까지 12.3km를 합치면 701.2km가 된다.

이정목에 표시된 대로 하면 721.1km이고

50m 자를 가지고 379명의 대원이 힘들게 실측한 포항 셀파 산악회의 대간 거리는

위의 표지석 대로 734.65km다.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하던 이곳 차갓재 근처가 중간지점인 건 맞다.

산행하면서 참고만 하면 될 듯.

 

그나저나 포항 셀파 산악회는 대단한 열정이다. 존경해도 되겠다.

점심 먹은 927봉.

다행히 타프를 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잠시 비가 잦아들었다.

이런 날씨에도 막걸리를 지고 온 회원들이 있다.

입만 가지고 간 나는 몇 잔을 얻어먹었다. ㅎㅎ

문수봉 삼거리에서 회원님들이 아르바이트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후미에게 삼거리에서 급하게 좌회전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뒤에서 따라간다.

 

달리 특징이 없는 등로에서 평평한 안부가 나오기에 새 목재인 줄 알고 표식을 찾으니 아무것도 없다.

아닌가 보다.

기어코 삼각점이 있는 새 목재를 찾지 못하고 문수봉 삼거리로 오른다.

오늘 구간 중 오르막이 길어 가장 힘든 구간이다.

이곳이 문수봉 갈림길이다. 대미산을 가려면 올라와 급하게 좌회전을 해야 한다.

비탐구간이라 산행 내내 제대로 된 이정목 하나 없었는데 중요한 분기점인 이곳에도 없다.

그래도 대간길인데 행정기관의 조금의 배려가 요구된다. 

지금부터 문경시 동로면을 벗어나 충청북도(제천)와 경상북도(문경)의 경계를 따라 걷게 된다.

북쪽으로도 등곡지맥을 따라 도 경계가 이어지고 도 경계를 버리고 직진하면 매두막, 하설산, 어래산으로 이어진다.

 

등곡지맥​
백두대간인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쳐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의 한천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38km의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문수봉(1,162.2) , 큰 두리봉
(1,079.3), 석이봉(826.3), 야미산(525.8), 갈미봉
(450.4), 떡갈봉(543.5), 등곡산(589.0), 황학산
(449.7), 장자봉 (420.1) 등을 만나며 그 맥은 
충주호로 스며든다.

 

지맥 이름은 제일 높은 봉우리 이름을 붙이는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자. ㅋㅋ

 

쓰러져 있는 철제 기둥을 똑바로 세우고 산행을 이어갔다.

 

잠시 남쪽으로 걷다 보니 슬그머니 대미산 정상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삼각형의 산인데 정상은 전망도 없이 이런 모습이다.

대미산(黛眉山   1,115m) 다른 한자이름으로는 大彌山, 大美山, 戴眉山.

『여지도서』에 “ 대미산(黛眉山)은 문경 동북 30리에 있는데 동쪽의 풍기 소백산으로부터 와서 본 현(문경) 여러 산들의 주맥이 되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산 정상부에 눈썹만큼의 ㅡ봉우리가 돋아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조선 환여 승람』에는 이황 선생이 대미산(大美山)으로 명명했다고 하여 이전과 한자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정상석은 이황선생이 이름 진 大美山이다.

 

대미산에서 방향표지 팻말이 있는데 그리 가면 여우목 고개 가는 길이다. 이어서 운달산으로 이어지는 운달지맥의 시작점이다.

 

운달지맥

백두대간 대미산에서 분기하여 여우목고개, 마전령, 장구령, 운달산(1100m), 조항령, 단산(959m), 달고개, 월방산(360m), 약천산(211m), 천마산(274m), 큰고개로 이어져 내성천에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8.8 km 산줄기로 동쪽 대하리천과 금천, 서쪽 산북천과 조령천의 분수령이 된다.

 

대간길은 정상석을 지나야 한다. 

부리기재까지는 얼마 안 남았다. 유일한 이정표는 낮게 있어 지나칠까 회원들에게 주의를 요한다.

다행히 부리기재에서 기다린다.

이곳 부리기재, 오늘 대간길이 여기까지다.

이곳에서 박마을로 급경사길을 내려가 오늘 산행을 마무리했다.

비 탓을 할 수밖에 없다. 사진도 없고 별 이야기도 없는 구간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늘 특별한 기억이 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많아 러셀을 하거나 해가져 문 어두운 밤에 부리기재에서 내려오거나 했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 하산길이 나에게는 익숙하다. 그러니 오랜 친구처럼 반갑기도 하다.

박마을의 사과나무도 여전하다.

왜 박마을 일까?

1680년경 밀양박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한 이후 박 씨 가문의 30여 가구가 집단으로 거주하여 박 씨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여 박마을 또는 박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비 예보가 있음에도 예약 취소를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거의 만차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 모두들 산에 진심일까. 남들이 보면 산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산에 미쳐있는 사람들이다.

산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극도로 느끼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 산꾼들만 아는....

그리고 그곳에는 산우님들이 있다. 같이 가는 친구들이다. 그야말로 성별 불문에 노소 동락이다.

산에서는 우리가 나고 내가 우리다.

뒤풀이의 즐거움을 못 잊어 서울 도착 후 성대한 지맥을 또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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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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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푸치노(장선미) | 작성시간 26.06.22 문수봉에서 보이는 산군들의 모습이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대단하네요.
    리스트에 추가합니다.ㅎ
  • 작성자비수리 | 작성시간 26.06.24 우중산행을 담담하게 묘사하셨네요 지나고 나니 그래도 좋은 하루였어요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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