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안경규 선배님과 “파스쿠찌”/안성환(23회)
어제 오후, 17회 안경규 선배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음 날 울산에 업무차 내려오신다는 말씀이었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라 시간을 내어 “파스쿠찌”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 머릿속에는 “파스쿠찌”가 아니라 “스파쿠찌”로 야무지게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약속의 날이 되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출발해 여유 있게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비게이션을 켰다. "스파쿠찌!, 스파쿠찌!, 스파쿠찌!" 몇 번을 외쳤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은 서울이니 충북이니 엉뚱한 곳만 알려준다. 몇 번을 반복해 불러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요즘 내비게이션이 왜 이러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사이 벌써 목적지 근처까지 왔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스파쿠찌'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지나가던 젊은 아가씨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이 근처에 스파쿠찌 커피숍이 어디 있습니까?"
아가씨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혹시... 파스쿠찌 아니에요? 여기 2층인데요."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바로 코앞이었다. 순간 나도 웃음이 뻥 터졌고, 아가씨도 함께 웃음이 뻥 터졌다.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한참을 웃고 말았다.
예전 같았으면 얼굴이 빨개질 만큼 민망했을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실수조차 웃음거리가 된다. 이게 나이 들어가는 증거일까, 아니면 세상을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보게 된 성숙의 모습일까. 분명한 것은 작은 실수 하나가 낯선 사람과 웃음을 나누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바보 같은 착각도 함께 웃고 나면 금세 좋은 추억이 된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완벽해서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파스쿠찌'를 '스파쿠찌'라고 부르는 엉뚱한 순간들 때문에 더 재미있고 더 인간적이 었는지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실수는 늘어날지 모르지만, 그 실수를 웃음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고 즐거운 여행이다. 그렇게 웃음을 정리하고 선배님을 기다렸다. 선배님은 초등학교 시절 6년 내내 학생회장을 놓친 적이 없을 만큼 리더십이 뛰어난 분이다. 생각이 바르시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의 폭이 넓어 오래전부터 존경해 왔다.
오늘 선배님과 나눈 두 시간여의 대화는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잘 살 것인가(Well-being), 어떻게 품위 있게 나이 들 것인가(Well-aging), 그리고 어떻게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Well-dying)에 대한 깊은 이야기였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뜻깊은 만남이었다. 선배님께서 들려주신 세 가지 가르침은 남은 내 삶의 훌륭한 나침반이자 지침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
“파스쿠찌”를 “스파쿠찌”로 착각했던 작은 해프닝은 웃음으로 끝났지만, 오늘 선배님과의 만남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소중한 배움으로 남았다. 인생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실수마저 웃음과 배움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 자문자답한다.
2026년 6월 15일 선배님과 헤어진 뒤, 안성환(23회)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