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 (요 15:7-11)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 시간에 “진정한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일까요? 그 말씀 드리기 전에 저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이야기입니다. 톨스토이는 볼품없는 외모로 태어났습니다. 넓적한 코와 두꺼운 입술 작고 찢어진 눈까지 자신이 봐도 무엇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었습니다.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외모를 비관하며 말했습니다. “나 같은 외모의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어” 하지만 성장하면서 행복은 겉모양이 아닌 속마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풍요로운 마음과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행복의 절대조건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된 후 톨스토이는 다시 한 번 행복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완벽한 행복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인생의 행복이 참된 신앙을 통해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톨스토이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부활’이라는 유명한 명작을 써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행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럼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올까요?
1.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말씀 안에 거할 때 행복할까요?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어떻게 거하는가? 예수의 실체를 만나지 않고서 어떻게 그 안에 거하는가? 우리 주님께서 그 힌트를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라는 말씀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과 동의어입니다. 즉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 봐야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영접했습니까? 보이는 실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고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나의 구주라는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하였습니다. 믿는 것이 곧 영접입니다. 롬10:6-8에도 예수님을 찾아 하늘에 올라갈 필요도 없고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예수의 실체를 만나지 않아도 복음을 믿으면 주 안에 거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안에 거해야 행복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 인하대 경영학부 김의철 교수는 “벼락부자들에 대해 심층면접을 한 결과 많은 돈이 생긴다고 그만큼 행복해지는 것은 아님을 알았다. 부자가 된 뒤에 오히려 극단적으로 불행해진 경우가 많았다는 사례에 기초해 볼 때 필요 이상의 큰돈과 행복은 상관이 없거나 오히려 반비례 관계”라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행복이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성경 말씀과 같습니다.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십시오. 이단의 말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요이1:9에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고, 그것이 약속하신 말씀을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과 함께 온갖 아름다운 것까지 믿기만 해도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날마다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어도 안 된다면 회개하십시오. 예수님께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2. 행복은 예수를 닮을 때 옵니다.
8절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여기 열매가 무엇일까요? 역시 8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그 답은 아버지께서 영광을 많이 받으시는 것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려면 좋은 열매를 많이 맺여야 합니다. 마3:10에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육신에 속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에 속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예수님의 올바른 제자는 그렇게 삽니다. 엡4:17-24에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성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거룩입니다. 최근에도 주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잘못해서 방송언론에 오르내려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었습니까?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얕은 신학적 지식 가지고 허튼 일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그건 하나만 알고 그 이상은 모르는 말입니다.
고후 8장의 말씀은 연보에 관한 말씀이지 부자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고후8:9에 예수님의 가난해 지신 공로로 우리가 부요할 권세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말씀이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모본입니다. 예수님이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해 진 것처럼 우리들도 그 부요를 사랑 안에서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연보를, 13절에서는 균등을 말씀하고, 15절에서는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눔을 말씀합니다. 성경 한 부분만 보면 잘못되기 알맞습니다. 전체적인 문맥을 보아야합니다.
딤전6:6-8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성경은 족한 줄 알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열매, 예수님 닮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이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영화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3. 행복은 사랑할 때 옵니다.
9-10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진정한 행복은 예수의 사랑 안에서 옵니다. 성령으로 아버지의 사랑, 예수의 사랑이 임할 때 그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황홀감을 엑스타시라고 하는데 엑스타시가 따로 없습니다.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엑스타시입니다.
어떻게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할까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여기 아버지의 계명도 사랑이요, 예수님의 계명도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대로 죄인을 사랑하사 낮고 천한 세상에 오시고 죄인을 용납하시고 품어주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것처럼 우리들도 그 사랑 받았으니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관심 가질 때 예수 안의 따뜻한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주십니다.
너희가 큰 사랑을 받았으니 너희들도 용서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나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법적으로 용서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와 한 몸 된 신부이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용납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적인 말씀이 아니라 관계적으로 돌아서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용서하고 사랑할 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만나 주십니다.
4. 행복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옵니다.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에 성령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충만이라는 단어에서 성령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 안의 그 충만한 기쁨은 성령의 기쁨이십니다. 눅10:21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기쁨은 중요한 열매 중의 하나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성령 안에서 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희락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회개하여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엎드려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하나님을 높여야 임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길러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예배하는 성도,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도록 행복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예수를 만나고, 성령의 열매 맺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여 예수의 사랑을 받고, 날마다 하나님을 높여 예배하고 경외하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가장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