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알곡 (눅 3:15-17)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 시간에 “천국의 알곡”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성도입니까? 알곡 성도입니까? 아니면 쭉정이입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분도 빠짐없이 알곡이 되시기 바랍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작가 헤밍웨이는 원래 신실한 신앙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도자 무디와 친했고, 그의 아버지는 선교사의 비전을 가진 신실한 의사였습니다. 또한 그의 어머니도 오직 예수만 알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밍웨이도 청년 때까지는 신앙생활을 잘했지만 나중에 인기를 얻고 노벨상까지 받으면서 점차 세상 것만 따르고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의 어머니는 무수히 경고했습니다. “얘야! 너 그렇게 하면 세상에서는 잠시 성공해도 영원히 망하는 거란다.” 그래도 계속 딴 길로 나가 하나님을 등지고 살다가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는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 근처에서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쏴서 자살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처럼 공허하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어도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니 공허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쭉정이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쭉정이가 아닌 알곡 성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15절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마음에 메시아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모형을 발견합니다. 이처럼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알곡이라는 말입니다.
고후13:5에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하셨습니다.
요일5:12에는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마음에 예수가 있는 걸 확인할까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나의 생명의 구주이시고, 항상 예수를 마음에 생각하며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확신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알곡은 생명이 있고 쭉정이는 없습니다. 알곡이나 쭉정이는 외관상 같아 보여도 비벼보면 알곡에는 생명이 있지만 쭉정이는 생명이 없습니다. 요14:6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생명은 예수입니다. 그냥 예수 믿는다 정도가 아니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단지 마음의 위안이 필요해서 혹은 착한 마음이 좋아서 혹은 사업상 종교인으로 살아간다면 생명 없는 쭉정이일 뿐입니다. 마음에 예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알곡처럼 끝까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유혹과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 지키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2-33) 하셨습니다. 마지막 천국 갈 때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알곡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 말고는 다른 구원이 없음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16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요한이 베푼 물세례의 의미가 특이한데 우리가 받는 세례는 예수를 나의 주로 시인하고 죄를 씻고 장사하는 의미이지만, 요한의 세례는 죄인임을 인정시키는 세례입니다. 즉 “너는 죄인이다. 그래서 너는 회개가 필요하며 너는 너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니고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힘으로도 선행으로도 물질로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예수 플러스알파여도 안 됩니다. 교회 나올 때 내 선행이 없어 불안하다면 아직 예수를 100%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면서도 플러스알파라면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복음이 무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외에 마리아나 베드로나 바울 같은 중계자가 필요하다든가, 할례나 안식일과 음식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든가, 혹은 자기 교회나 자기 단체에 속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예수 말고 다른 중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직 예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직 예수만 보여주셨잖아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오직 예수 한 분으로 온전히 구원 받은 한 편 강도와 같이 구원에 다른 조건이 없음을 알고 내 공로 내 방법 다른 조건 다 던져버리고 예수 공로만 의지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행4:12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벧전1:18-19에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무엇이라 책망했습니까?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1-3) 책망했습니다. 오직 예수의 고백이 없으면 알곡 성도가 아닙니다.
3.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16절 하 반절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세례 요한 얼마나 겸손합니까? 이 겸손이 알곡 성도의 모습입니다. 벼 이삭도 그렇지요. 벼 이삭이 처음에 나올 때는 모두 머리를 쳐들고 나오지만 알곡은 날이 갈수록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어떻게 나 잘난 대로 살 수 있습니까? 예수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고후5:15에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요일5:1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일부러 낮추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샘 슈메이커는 “하나님께 10퍼센트 순종하면 10퍼센트의 행복을, 50퍼센트 순종하면 50퍼센트의 행복을, 100퍼센트 순종하면 100퍼센트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천국은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고, 또 어린아이 같은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천국 곳간에 들어가는 겸손한 알곡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죄악을 성령의 불로 태우는 사람입니다.
16절 하 반절-17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같은 의미인데 성령세례는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회개하여 예수에 대한 참 믿음을 갖는 것인데 불세례라고 말한 것은 마음의 죄를 태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잠기면 잠길수록 생명으로 풍성해질 뿐 아니라 우리의 죄는 사라지게 됩니다. 모조리 불로 살라버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알곡이 됩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참 믿음을 소유하고 은혜 가운데 살고 있다면 이미 성령의 세례 가운데 있다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더 깊이 은혜가운데 나가시기 바랍니다. 더 생명으로 충만하고 더 새롭게 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약점은 있고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다른 점은 그 죄를 늘 하나님 앞에서 성령의 불로 태운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세요. 성령의 세례가 임하니까 온전한 믿음이 됐지 않습니까? 성령의 타작마당을 통과할 때만이 하나님 나라의 곳간에 들어가는 참 알곡이 되는 것입니다.
워싱턴 D.C. 네셔널쳐치의 메어리 캐스린 백스터는 지옥을 체험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한 곳에 이르니 너무나 애처로운 여인의 부르짖음이 있었습니다. “오, 주님 이 지옥은 너무 잔인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고문과 고통 속에 지냅니다. 주님, 제가 그때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을 영원토록 후회합니다. 항상 당신이 나를 위하여 계실 줄만 알았어요. 결국 사탄이 나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저는 사탄을 점점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사탄이 원하는 일을 더 좋아하고 죄짓는 것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는 차를 타고 가다가 그만 남의 집을 받아버렸고 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제발 이 곳을 나가게 해주세요.” 라고 울부짖는데 불속에 휩싸인 그녀에게 "심판은 이미 끝났다."라는 말씀 외에는 들려줄 말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쭉정이의 최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한 사람도 버림 받지 아니하고 모두가 구원 얻어 천국 백성 되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알곡입니까? 쭉정이입니까? 우리 모두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믿되 오직 예수밖에는 구주가 없음을 시인하고 진실로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서 성령의 불로 죄악을 불태워 거룩하여져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천국의 곳간에 들어갈 수 있는 온전한 알곡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