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가 아니고는 (마 4:1-1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이 시간에 “십자가가 아니고는”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몇 해 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출판되어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상명대학교 중문학교수인 김경일 교수가 쓴 책으로, 저자는 이 책에서 유교의 기원과 왜곡과정을 소개하면서,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었음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후 “누가 죽어야 누가 산다.”는 이 논법은 대중들에 의해 그들의 주장에 따라 여러 가지의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그처럼 비판적인 시각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각에서 우리들도 한 번 해보십시다.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살고 내가 죽어야 모두가 삽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12:24-25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어야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말씀입니다. 본문에 직접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구구절절 흐르는 그 문맥 속에 주님은 내가 십자가에 달려야 인류를 구원할 대사역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대속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요, 십자가 없이도 얼마든지 대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시험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다가오는 시험입니다.
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을까요?
1. 십자가 없이 물질로는 구원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절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 말씀을 단지 배고프신 예수님에 대한 시험으로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 금식은 공생애를 앞 두시고 하신 금식이란 점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죄인을 구원하는 대속사역의 방법을 가지고 흥정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떡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 아무런 박해도 없이 모두가 너를 메시아로 추앙하고 따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성공이 올 것이라. 이 얼마나 달콤하고 호소력 있는 유혹입니까?
실재로 그런 유혹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오병이어 기적으로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실 때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14-15절) 왜 떠나가셨을까요? 예수님은 그런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 없이 물질로는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구원 받은 것은 물질로 받은 것 아닙니다. 그래서 벧전1:18-19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했습니다.
물질은 우리 삶에 절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도 물질은 꼭 필요합니다. 물질은 날개와 같아요. 우리의 사역에 물질의 큰 날개가 붙으면 상상할 수 없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은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은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물질로 구원 얻는 것 아닙니다. 부자여도, 헌금을 많이 해도, 선한 일을 많이 해도 그것으로는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며, 사탄이 주는 그럴듯한 물질적 제안을 물리치셨습니다. 물질은 절대 필요하지만 물질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십자가 없이 어떤 능력으로도 구원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5-6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두 번째 마귀의 시험도 참으로 달콤합니다. 성경까지 곁들어 주니 양심에 거칠 것도 없습니다. 기사와 이적으로 예수님의 전지전능성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거룩한 성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표적을 보이면 모두가 예수를 메시아로 섬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그 정도의 표적은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초대교회 당시 사마리아에 큰 능력의 마술사 시몬이 있었습니다. 마술이 뭡니까? 눈속임입니다. 그런데 시몬의 마술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사마리아 사람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 사람이 크다”(행8:10)고 추앙했습니다. 시몬은 자신을 “자칭 큰 자”(행8:9)라고 높이면서 스스로 하나님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남은 속여도 자신이 거짓인 것은 자신이 잘 아는지라 사도들이 안수하여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돈을 주어 성령을 사 자기도 성령을 주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에게 저주 받고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나중에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려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다가 낙상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가 거기서 성공했다면 거짓 메시아로 등극했을지도 모릅니다.
기적 앞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본래 유대인들은 표적 표적 표적, 표적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표적을 좋아했습니다. 막8:11에도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만큼 표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큰 표적을 보며주면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십자가 대속 없이 그 어떤 표적으로도 구원할 수 없음을 아시기에 주님은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역에 이적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표적을 샤머니즘으로 너무나 간단하게 정죄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라”(요14:12) 막16:20에도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표적이 필요하면 주실 것을 믿으세요.
물질도 그래요. 물질의 은사를 기복신앙으로 몰아세우지 마세요. 기복신앙이란 복에 기반을 둔 신앙으로 복을 위한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도 버릴 수도 있는 복 본위가 기복신앙입니다. 물질의 은사는 기복신앙과는 다릅니다. 물질의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대단히 귀한 은사입니다.
그렇지만 물질로도 능력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 달리심이 없이도 구원하실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3. 십자가 없이는 그 어떤 쉽고 위대한 비전을 갖고도 구원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사탄을 숭배하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거부하셨습니다.
8-9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누가복음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4:6)
마귀는 자기와 타협하면 아무 수고도 없이 아담이 잃어버렸던 왕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유대인들의 메시아만이 아니라 세계 천하만국의 통치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달콤하고도 엄청난 비전을 제시하는 말입니까? 단 조건은 자기에게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교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100% 거짓입니다. 만약 듣는다면 예수님마저도 사탄의 수하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10절) 물리치셨습니다. 꿈도 비전도 좋지만 나에게서 난 것이라면 나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지나치면 비전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복음 말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럴사한 종교통합을 통해 단숨에 이교도들을 얻는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가 정체성을 잃고 죽는 것입니다. 이교는 아무 손해가 없고 우리 기독교만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11:4에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책망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어떤 달콤한 말을 해도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 해도 성경과 다르면 사탄의 환상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으로 다가와도 다정한 손길로 다가와도 성경으로 다가와도 성경의 핵심진리와 다르면 배척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떠나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또 다시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면서 사탄의 시험을 이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을까요? 십자가 없이 물질로는 구원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 어떤 능력으로도 구원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그 어떤 위대한 비전일지라도 구원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한 분이 죽으셔서 그를 믿는 자마다 살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시험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말씀에 굳게 서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오직 예수의 믿음으로 승리하고 또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