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숙(痴叔) - 채만식
◐ 줄거리
- ‘아저씨'는 일본에 가서 대학에도 다녔고 나이가 서른셋이나 되지만, '나'가 보기에는 도무지 철이 들지 않아서 딱하기만 할 뿐이다.
착한 아주머니를 친가로 쫓아 보내고 대학입네 하고 다니다가 신교육을 받았다는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무슨 사회주의 운동인지를 하다가 감옥살이 5년 만에 풀려 났을 때, '아저씨'는 이미 피를 토하는 폐병 환자가 된다. 식모살이로 돈 100원을 모아 이제 좀 편히 살아보려던 참이었던 아주머니는 그 아무짝에도 쓸모 없게 된 '아저씨'를 데려가 할 짓 못할 짓 다 해서 정성껏 구완하여 이제 병도 어지간히 나아가지만, 정작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면 또 사회주의 운동을 하겠다고 말한다.
'나'가 보기에, 경제학을 공부했다면서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돈을 벌어서 아주머니에게 은혜를 갚을 생각은 않고, 남의 재산 뺏어다 나누어 먹자는 불한당질을 또 하겠다니 분명 헛공부한 게 틀림없다.
'나'가 친정살이하던 아주머니 손에 자라서 그 은공으로 딱하게 여겨 정신 좀 차리라고 당부를 해도 '아저씨'는 도무지 막무가내다. 일본인 주인의 눈에 들어 일본 여자에게 장가들어 잘 살겠다는 '나'를 도리어 딱하다고 한다. 그러니 '나'가 보기에 '아저씨'는 도통 세상 물정도 모르는, 참 한심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구성
발단 -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하고 폐병에 걸려서 앓아 누워 있는 오촌 고모부 아저씨 소개.
전개 - 아주머니의 고생담과 '나'의 성장 과정.
위기 - 철저히 일본인으로 동화되어 살아가겠다고 생각하는 '나'.
절정 - '나'와 아저씨의 대립.
결말 - 아저씨에 대한 '나'의 실망.
■요점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 배경 : 일제 시대. 군산과 서울
* 문체 : 반어적인 대화체, 경어체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어조 : 풍자적 어조
* 표현
-독백체, 풍자와 반어의 효과
-회상의 기법 사용
●갈등구조 :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아저씨'와 그의 비현실적인 사고방식을 비난하는 '나'의 갈등
▶칭찬 - 비난의 역전 기법 : 표명상으로는 긍정적 인물로 내세운 '나'를 부정함. 칭찬, 비난의 전도라는 아이러니에 의해 풍자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를 통해 비판하고자 한 것은 일제의 우민화(우중화) 정책이다.
* 주제 : 지식인이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사회적 모순과 노예적 삶의 비판
◐등장 인물
* 나 - 작품의 화자로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현실 순응자. 보통학교 4학년을 마치고 일본인 밑에서 사환으로 있는 소년. 일제(日帝)에 의한 식민지 상황을 전적으로 긍정하고 기꺼이 일제에 동화되어 가겠다는 인물.
* 아저씨 -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사회개혁의지를 가졌으나 그 뜻을 실천하지 못하는 당대 지식인의 전형적 인물 .대학을 나온 뒤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이제는 병이 들어서 폐인이 되다시피한 지식인.
▶ 채만식 <치숙(痴叔)>에서의 반어법(反語法), 풍자(諷刺)
- 화자인 소년은 일본인 주인 밑에서 일하는 생활에 만족하는 인물이다. 일인 주인이 나를 각별히 귀여워 하고 신용을 하니까 한 십 년만 더 있으면 다루 장사를 시켜 줄 눈치라고 좋아한다. 일인에게 잘 보이고, 안일한 생활을 꿈꾸는 소년이다. 더구나 일인 주인이 내지인 여자를 중매(中媒)서 준다고 한 말을 기대하고 있다. 조선 여자는 거저 주어도 싫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년의 눈에 비친 아저씨는 '미쳐 살기(殺氣)가 든 놈들이 세상 망쳐 버릴 사회주의를 하려 드는' 인물이다. 소년은 세상이 망해서 뒤집히면 '그래 나는 어쩌란 말인가? 아무 것도 다 허사가 될테니 그런 억울한 데가 있드람?'라고 말함으로써 소년은 자신이 신뢰할 수 없는 인물임을 독자에게 탄로나게 된다.
▶ <태평천하>에서 '윤직원 영감'과 '소년'의 유사점
- 자신의 안일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철저히 개인주의적 인물이다. 따라서 소년은 '믿을 만한 인물이 못되는' 서술자이다.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입에서 당시 지식인인 아저씨가 비판되지만, 사실 '소년'이 비판되어야 함을 반어법을 사용, 풍자하고 있다.
●신빙성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 혹은 오류에 빠지기 쉬운(fallible) 화자
- 자기가 서술하는 일들에 관한 인식과 해석과 평가가 미성숙(未成熟), 무교양(無敎養), 무지(無知)로 인해 잘못되기 쉽거나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화자를 말한다. 보통 순진한 사람이거나 어린이가 나레이터로 설정되는데 이때의 화자를 말한다. 화자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차이는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일 때가 있다.
1. 주요섭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
* 옥희 :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6세의 여자 아이
2. 채만식 소설 <치숙>
* 소년은 '믿을 만한 인물이 못되는' 서술자이다.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입에서 당시 지식인인 아저씨가 비판되지만, 사실 '소년'이 비판되어야 함을 반어법을 사용, 풍자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 1936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단편 소설. 일본인 상점의 점원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나'가 사회주의 운동을 한 후 생활고에 빠진 숙부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부정적 인간이 긍정적 인간을 조롱․비판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이중(二重)의 풍자성을 지니고 있다.
- <치숙>은 1인칭 주인공인 소년이 혼자서 이야기를 지껄이는 형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일본 군국주의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점령하여 경제적 수탈과 정치적․문화적 탄압을 서슴지 않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자조와 비판을 바탕으로 사회에 대한 풍자를 주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칭찬 비난의 역전 기법'으로 사상의 자유로운 토론을 금지하는 일제의 강압 통치를 조롱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 이 소설은 이중의 풍자성을 지닌다고 했는데, 이 말은 풍자하는 주체와 풍자되는 대상을 함께 조롱한다는 의미이다. 즉, 소설 <치숙>은 표면상으로는 긍정적인 인물로 '나'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현실에 야합하는 '나'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논리를 명쾌하게 반박하지 못하는 '아저씨'의 한계도 지적하고 있다.
- 작가는 '나'에 대한 칭찬과 '아저씨'를 향한 비난을 결말에 가서 상호 역전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피력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인 '아저씨'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나서지는 않고 있다. 이 작품은 사회주의 이상을 철저히 추구하지 못하는 '아저씨'와 한 소년을 철저하게 우민화(愚民化)시키는 일제(日帝)를 동시에 부정함으로써 결국 모든 것을 부정하는 수준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러한 풍자의 이야기 속에서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가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치숙>은 작가 채만식의 자전적 소설인 <레디메이드 인생>과 마찬가지로 일제치하에서 무능할 수밖에 없었던 인텔리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무지하고 세속적인 인물인 조카 '나'가 주인공인 아저씨의 비현실적 사고방식을 비난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는 화자는 아저씨를 한심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포부를 자랑스럽게 떠들어대지만, 실상 그것은 작가의 시선과 독자의 평가에 의해 다시 풍자되고 있다. 이것은 지식인의 위치에 있는 아저씨를 일제치하에서 민족주체성을 상실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화자가 비판하게 함으로써 당시 현실을 역논리와 풍자로써 뚜렷이 보여주는 작가의 의도된 수법이다.
<치숙>은 상황적 아이러니라는 구조를 통해 풍자를 핵심으로 하는 작품이다. '나'라는 어린 소년이 화자로 설정되어, 소년이 아저씨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기술함으로써 소년의 피상적 관찰이 전면에 부각된다. 소년의 미숙함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소년과 아저씨의 관계에서는 이미 소년의 시각이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려주는 효과를 가진다. 이렇게 소년의 관찰에 의존하는 것은, 아마도 아저씨류에 대한 당시 세인들의 판단이 소년 수준을 넘지 않는다는 작가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소년이 부정적 인물임으로 해서, 부정적인 인물이 부정하는 대상은 그 실상이 어떠할지는 몰라도, 일단 부정적 인물에 의해 그려진다는 전제에서 대상에 대한 이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다.
<치숙>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사안 중에 하나가 '사회주의'이다. 나와 아저씨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사회주의관은 매우 편향적인데, 나(조카)는 저급한 쪽으로 쏠려있다고 한다면 아저씨는 이상론에 치우쳐 있다. 아저씨에게 조카가 속물이듯이, 조카에게는 아저씨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조카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점은 매우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당대 일반인의 시각을 대변한 것이라고 볼 때, 잘못된 사회주의관을 비판하는 성격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작품이 된다.
<치숙>은 동일 비중의 사건이나 어구를 반복하거나, 비어·속어를 편향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작가 채만식의 풍자와 반어의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으며, 허무주의만 가지고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작가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작품이다. 또한 이 소설의 성과는 주제의식에 있어서도 드러나지만, 무엇보다 소설적 장치에 있어서 빛을 발한다. 아이러니를 이용한 풍자의 수법으로 대상의 실상을 그리고 있는 이 점이 바로 채만식 문학의 높이이면서 당대 한국 문학의 한 수준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