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씨연대기 - 황석영
●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 배경 : 6.25전쟁 전후
* 시점 : 전지적 작가시점
* 주제 : 분단된 남북 상화에서 겪는 민족의 고통
● 인물 탐구
한영덕은 한 마디로 고직식한 인간이다. 한영덕은 대학 병원에 근무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행하지 않았다. 태도가 분명하지 않다고 위에서는 벼르고 있었고 입영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한영덕의 이와 같은 행동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 이는 주인공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데, 앞으로 이와 같은 이유로 갈등이 많겠다는 것을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영덕은 자신의 성격 때문에 많은 고초를 당한다. 인민 병원에 근무하고 있을 때 한영덕은 특별동을 위해 봉사해야 했다. 그리고 서 교수가 도망치자고 했을 때 그에 따랐어야 했다. 그러나 한영덕은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았다. 그로 인해 한 교수는 처형된다. 가까스로 살아나긴 했지만 한 교수가 현실과 조금만 타협했더라면 처형의 위기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한영덕의 위와 같은 성격이 문제되는 것은 불합리한 현실 때문이다. 한영덕 교수의 부친 한홍진 목사가 국토를 뒤덮은 이 미친 전쟁이 하느님의 힘으로 그치게 해 주십사 밤마다 기도를 드려야 하는 현실이 아니었다면 한영덕의 성격은 오히려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라 하겠다.
* 출전 : 〈1972년. 창작과 비평〉
● 줄거리 :
한영덕은 낡고 비좁은 다세대 적산(敵産) 가옥(家屋)(적산가옥 : 자기 나라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가옥. 우리 나라에서는 일본 소유였던 가옥.)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살고 있는 늙은 노인이다. 그는 장의사에 빌붙어 시체 치우는 일을 거들며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뇌혈전(동맥경화 따위로 인해 뇌의 혈관 속에 핏덩이가 막혀 뇌가 부드러워져서 일어나는 병)으로 쓰러져, 이웃의 연락을 받고 온 친구 서학준과 누이동생 그리고 친딸이 바라보는 가운데 한 많은 생을 마친다.
젊었을 때 주인공 한영덕은 김일성 대학 의학부 산부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 때 6 25전쟁이 일어나 대학 병원 내부는 온통 술렁술렁하는 분위기에 휩싸인다. 인민군이 남한 땅 깊숙이 진격하고 부상자가 속출하자 의대 부속 병원 의사들이 의무 군관으로 징집되어 전선으로 출정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영덕은 성분이 나쁜 탓으로 입영 명단에서 빠져 병원에 남는다. 한영덕의 아버지가 기독교 목사였기 때문이다. 한영덕은 의약품과 의료 기구가 많이 부족한 가운데 전쟁 부상자를 치료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위급한 민간인 환자를 우선적으로 치료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반동 분자로 낙인 찍혀 투옥된다. 결국 그는 유엔군과 국군이 평양에 입성하기 직전에 총살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한영덕은 왼쪽 귀 옆에 탄환의 찰과상만 입을 뿐 전신은 말짱한 채 기적적으로 살아 남는다.
국군은 평양에 입성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평양에서 철수한다. 한영덕은 가족을 남겨 두고 혼자 남쪽으로 내려 온다. 남으로 온 한영덕은 대동강을 함께 건넜다가 되돌아간 아들이 혹시 인민군으로 출정해 포로로 잡히지 않았을까 해서 포로 수용소 주변을 배회하다가 의심을 받고 연행되어 심문을 받기도 한다.
한영덕은 육군 병원 군의관으로 있는 고향 친구 서학준을 통해 누이동생 한영숙을 만나 몸을 의탁한다. 그러나 누이의 신세만 질 수가 없어 박씨 성을 가진 무자격자가 경영하는 산부인과 의원에 취직해 불법 낙태 수술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 후 전쟁 미망인인 윤마담과 재혼을 해 살아가던 한영덕은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 간다.
그 후 박씨의 병원에는 무면허 의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의료 감시반이 들이닥친다. 이를 한영덕이 고발한 것으로 오해한 박씨는 정보대에 한영덕을 간첩이라 투서한다. 그리하여 한영덕은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다. 그 후 누이동생 한영숙의 끈질긴 노력과 친구 서학준의 도움으로 겨우 풀려나지만, 삶의 의욕을 잃고 폐인이 되어 윤마담과 자신의 딸을 버려둔 채 집을 나온다.
한영덕의 친딸 혜자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도 울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를 새롭게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임종 후 잠시 잠에 빠졌다가 새벽에 눈을 뜬 혜자는 아버지의 유품 중 수첩을 들고 그 집을 빠져 나온다. 고별식은 끝났고 이제 그는 망령마저 떠돌 수 없도록 땅속 깊이 묻힐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한씨 연대기}는 1972년 <창작과 비평>지에 발표된 단편소설로서, 6 25 전쟁을 전후하여, 분단된 남과 북에서 한 고지식한 인간이 겪게 되는 희생의 기록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분단 상황 자체에 대한 투시가 아니라 그 상황에다 주인공 한영덕의 인간성을 대응시켜 놓았다.
한영덕의 인간성은 어릴 때부터 그와 함께 자라나 의사가 되었고, 북한과 남한을 한영덕과 함께 모두 체험했지만, 성격적으로는 정반대인 서학준 박사와 대비되어 형상화된다.
한영덕에 대한 서학준의 평(評)은 이렇다.
"한 군은 내 생각에두 너무 고디식하구 순수했디요. 그게 이 친구의 단점입네다. 난 이 사람하군 정반대디만 어릴 적부터 쭉 같이 자랐댔구, 도재 남을 속일 줄두 모르구 융통성두 없는 이 사람 성미가 짜증이 아멘서두 밉질 않았디요. 아니 오히려 그런 면을 도와했대시오."
이렇게 성격이 정반대인 서학준이, 소설 속 사건 전개의 주요 대목에서마다 한영덕에 비교됨으로써 한영덕의 인간성이 더욱 잘 드러나 보이는 효과가 있다.
한영덕은 후퇴했던 국군이 삼팔선을 넘어 북진하게 되자, 잠시 몸을 피했다가 국군을 맞이하자는 서학준의 제의를 뿌리친다.
"난 여기 남갔다. 환자가 있는데 의사를 죽이기야 하갔나……. 머 죄진 게 있어야디."
이것이 한영덕의 소신이었다.
재래(在來) 한국 백성이야 원래 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일제의 발 아래 짓밟혔고, 이제는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지은 죄 없으면서도 자기 마음만 믿고 소신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된 세상에서 한영덕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김일성 대학 의학부 교수이며 의사인 한영덕은 한 소녀의 위급한 환부 수술에 몰두하다가 원장으로부터 질책을 받는다.
"까짓 애들은 또 낳는 거요. 지금 경무원이 기총 소사의 관통상을 입구 피를 흘리는데, 이런 따위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요?"
그러나 이 질책에 대한 한영덕의 대답은 간단했다.
"좀 비켜 주시오. 어둡습네다."
이리하여 한영덕은 평양을 철수하는 인민군에 의해 처형당하지만,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살아나 월남(越南)하여 아들을 찾으려고 포로 수용소 주변을 서성이다가 간첩 혐의로 붙들려 고초를 겪는다.
그 후, 무면허 의사들과 동업을 하다가 남의 죄를 뒤집어 쓰게 된다. 그뿐 아니라, 모략에 의해 지난날의 간첩 혐의까지 다시 거론되어 참혹한 고문을 당한다. 겨우 풀려난 한영덕이 다시 사회로 나왔을 때엔 이미 폐인이 다 된 상태였다.
이렇게 시달리고 행패를 당해 죽어가야 하는 죄 없는 사람, 고지식한 사람의 한 생애가 곧 분단 세대의 본질인 것이다. 이 본질을 {한씨 연대기}의 한영덕으로 표상된 것이다.
아직도 분단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지만, 한영덕 노인의 딸 혜자처럼 미래 역사의 자식들은 탄생하고 있다. 이 {한씨 연대기}에서 딸 혜자는 분단된 남과 북의 비인간적 체제에 시달리다 죽은 아버지의 매장을 목도하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한 시대의 비극으로 수렴하고, 죽은 아버지의 유품에서 수첩을 챙겨 들고 새벽에 상가(喪家)를 뛰쳐나와 제 몫의 다른 삶을 향해 떠난다.
불의에 찬 역사의 희생자에게 집을 뛰쳐나가는 딸 혜자를 설정한 것은 '끝내 일어선다'는 주제 의식의 표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