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황당인보기 - 정한숙
● 요점 정리
배경 : 6 25 후 서울. 성품이 다른 두 친구의 우정.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특징 : -애잔한 정조와 연민의 정서가 두드러짐
-고풍스런 분위기와 문체
주제 : (속세에 눈이 먼 석운과 깨끗한 선비인 수하인의)우정의 미묘성과 전통의 미풍이 사라져가는 데 대한 반성. 전통과 정신주의가 퇴락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과 고결한 정신주의자의 자부심
● 등장인물
* 강명진(호: 수하인) - 성품이 곧고 단아한 인물. 문방사우를 만지며 사는 깨끗한 선비이 며 옛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심성을 지닌 인물.
* 석운 - 배금 사상에 물든 세속적 인물. 벼슬을 하자, 더욱 현실에 눈이 멀게 됨.
● 줄거리
- 친구인 석운이 벼슬을 하자, 수하인 강명진은 기념이 될만한 정표를 선사하고 싶어하던 중, 우연히 석재 한 방을 발견하고 흥분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십오륙 년 전쯤 서화(書畵)를 즐기던 거부(巨富) 이모(李某)가 보여주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전황석은 값을 따지자면 금값의 열 배가 넘지만 수하인은 친구 석운에게 줄만한 내력 있는 물건을 구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도장을 파기 시작한다. 온갖 정성과 땀으로 완성한 인장(印章) 한 방을, 풀칠한 양단 헝겁으로 산홍이가 만들어 준 갑(匣) 속에 넣고 바라보는 수하인은 새로운 싹이 돋아 오르는 양 흐뭇해한다.
- 수하인이 석운을 찾아갔으나 석운은 없고 그의 아내가 맞이하는데, 석운의 아내는 무슨 골치 아픈 부탁이라도 하려고 찾아온 것으로 넘겨짚어 수하인을 대한다. 석운의 아내는 요즘 가끔 청탁조로 들어오는 뇌물을 받아 축적하는 재미가 한창인 터라, 수하인이 건네는 선물이 그저 하찮기만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들어오자 수하인이 머리가 돈 것이 아니냐며, 격(格)이 낮다고 험담을 해댄다. 석운 역시 수하인의 인장 선물이 눈에 차지 않았다. 다만 수하인다운 일이라는 생각밖에는…….
- 한편, 석운에게는 교분이 두터운 오준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석운의 집을 무상으로 출입하고 있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오준이 찾아왔다. 그러자 석운은 수하인이 가지고 온 인장을 내보였다. 오준 역시 수하인을 조금 아는 터라, 천지가 변해도 수하인의 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나누며 인장이 별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오준은 석운에게 결재 도장 하나를 새겨다 줄 것을 약속하고는 그 인장을 들고 나와 도장 가게로 들어가 맡기고는 인장을 파 달라고 했다. 마침 도장 가게 주인이 수하인을 아는 사람이어서 다른 재료로 도장을 파 주고는 대신 수하인의 인장을 사들여 그것을 다시 수하인에게 되돌려 주게 되었다. 도장방 주인은 수하인으로부터 그 인장을 새긴 돌이 전황석이라는 말을 듣고는 취기가 싹 가심을 느낀다. 그러나 수하인은 그것이 도장방 주인의 복이라며 받지 않는다.
- 다음날 수하인은 오준이 주문한 도장을 자신이 직접 계혈석에 새기면서 전황석에 새기던 때의 솜씨가 아님을 느낀다. 도장방 주인 역시 인면(印面)을 들여다보면서 수하인의 솜씨라기엔 너무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수하인은 산홍이를 옆에 앉힌 후 참지 한 권에 천 개나 되는 인장을 연대순으로 찍어 인보(印譜)를 만들었다. 맨 나중에 전황석 한 방을 찍은 뒤, 산홍과 더불어 살아온 인생을 그린 인보를 보면서 처음으로 삶의 보람을 느낀다. 산홍이가 연적의 물을 따라 먹을 갈자, 수하인은 인보의 표지에 [전황당 인보기(田黃堂印譜記)]라 썼다.
● 이해와 감상
-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된 단편 <전황당 인보기>는 우정의 미묘성과 사라져 가는 전통의 미풍을 전아한 문체로 그린 작품으로, 속세에 눈이 먼 사람과 문방사우를 만지며 사는 깨끗한 선비 사이의 갈등과 삶의 애수를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정한숙 문학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인 전통의 현대적 파악이라는 측면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전아한 문체로 전통에 대한 향수를 통해서 현실의 황폐한 삶의 모습을 서정적인 세계로 끌어들이는 소설적 기법은 정한숙의 개성적 세계로 평가된다.
- 전통의 현대적 파악이라는 측면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전아한 문체로 전통에 대한 향수를 통해서 현실의 황폐한 삶의 모습을 서정적인 세계로 끌어들이는 소설적 기법은 정한숙의 개성적 세계로 평가된다.
- 이 소설은 서사성보다는 서정적 세계 제시가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과거의 모습을 그리려고 하다 보니, 연민의 정서와 애잔한 정조를 띠면서 고풍한 멋이 풍겨나온다. 이 소설의 서사구조는 '관계에 진출한 친구에게 도장을 선물하지만, 그 도장이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와 서운해 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정도의 서사 구조로는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한다. 따라서, 복잡한 스토리의 전개를 뒤로 하고 옛 것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제시하여 잔잔한 정서를 유발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있다.
- 이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않는 지절(志節)'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선비로서의 면모'와 '장인(匠人)으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선비의 면모를 통해서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지절과 아취(雅趣)'를 드러내며, 장인의 면모를 통해서는 '기예(技藝)의 멋과 일에의 집착, 그 세계만이 지니는 신비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작가가 형상화하고자는 전통의 속성일 것이다. 이 작품에는 묵은 세계의 육중함, 그 속에 은밀히 도사리고 있는 보수성의 정신적 가치, 그것이 쇠잔되어 가는 것에 대한 잔잔한 슬픔이 전편에 흐르고 있다.
- 이 작품에서 정한숙은 문방사우의 전통적인 미풍을 세속인의 몰이해와 대조하면서 치밀하게 그려 놓고 있다. 그것은 사라져 가는 인장예술의 말로로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미풍과 양속 그리고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애석함이 거기에는 베여 있다. 정한숙은 이 작품을 고어투로 쓰고 있다. 이러한 문체상 특징은 이 작품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것과 고풍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세속적 현실에 대한 환멸을 시적 서정성으로 느끼게 하는 효과를 획득하게도 해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축약적인 문장을 통해 고풍스런 운치와 암시적 효과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