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소년은 서울서 왔다는 윤초시의 손녀딸을 처음 만난다. 소녀는 모든 점이 낯설어 소년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지만, 매우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는 소년은 자기와 동떨어진 상대라 생각한 나머지 소녀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어느 날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수줍은 소년은 둑에 앉아서 소녀가 비켜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때 소녀는 하얀 조약돌 집어 '이 바보'하며 소년 쪽으로 던지고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막 달려간다. 소년은 그 조약돌을 간직하면서 소녀에게 관심을 갖고 소녀를 그리워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 개울가에서 소년과 소녀는 다시 만나다 '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일이 있니?'하며 벌 끝을 가리키는 소녀와 함께 소년은 시간을 보내게된다.
그들은 무도 뽑아 먹고 허수아비를 흔들어 보기도 하면서 논길을 달려 여러 가지 꽃들이 어울러진 산에 닿았다. 소년은 꽃묶음을 만들어 소녀에게 건넨다. 마냥 즐거워하던 소녀가 비탈진 곳에 핀 꽃을 꺾다가 무릎을 다치자 소년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생채기를 빨고 송진을 발라 주었다. 소년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양 소녀 앞에서 송아지를 타기도 하였다.
그때 소나기가 내렸다. 비안개 속에 보이는 원두막으로 소년과 소녀는 들어갔으나 비를 피할 수 없었다. 밖을 내다보던 소년은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는 소녀를 위하여 수수밭 쪽으로 달려가 수숫단을 날라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좁디좁은 수숫단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위해 주려는 마음이 생기고 서먹했던 거리감도 모두 해소된다. 돌아오는 길에 도랑의 물이 엄청나게 불어있어 소년이 등을 돌려 대자 소녀는 순순히 업히어 소년의 목을 끌어안고 건널 수 있었다.
그 후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소녀를 그리워하며 조약돌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가 개울가에서 소년과 소녀는 다시 만난다. 그 소나기에 감기를 앓았다는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보면서 '그 날 도랑 건널 때 내가 업힌 일 있지? 그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하는 말에 소년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날 헤어지면서 소년은, 이사가게 되었다고 말하는 소녀의 눈동자에서 쓸쓸한 빛을 보았다.
소녀에게 줄 호도알을 만지락거리면,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하다가 잠이 들락말락하던 소년은 마을 갔다 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소녀의 죽음을 알게 되며, 소녀가 죽을 때 "자기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핵심정리
* 갈래: 단편 소설, 성장 소설. 순수소설
* 배경: 여름에서 가을까지의 어느 농촌(양평 근처)
* 시점: 작가 관찰자시점(부분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어린 시절의 순박한 동심을 잘 드러내는 간결하고 평이한 문체.
* 의의: 잃어버린 꿈의 세계를 되살리게 하여 인간이 가진 순수한 세계를 재확인시켜 줌.
* 주제: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
등장인물
* 소년: 순박하기만 한 시골 소년.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하지만 소녀를 만난 후 적극적으로 변함. 동적인 인물.
* 소녀: 윤 초시네 증손녀. 서울에서 온 아름답고 귀여운 소녀. 적극적이고 명랑하며 솔직하고 대담함. 정적인 인물
구성
* 발단: 소년과 소녀가 개울가에서 만남.
* 전개: 소년과 소녀가 산에 놀러 갔다가 소나기를 만남. 함께 개울물을 건넘.
* 위기: 소녀가 병이 듦. 다시 만난 소년과 소녀의 헤어짐. 만날 기약이 없음.
* 절정·결말: 소녀의 죽음.
황순원
평남 대동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 교수, 예술원 회원을 역임함. 1931년 [동광]지에 시 '나의 꿈'을 발표 한 후 문단에 등단. 1934년 첫 시집 {방가(放歌)}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함. 1935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을 함께 발표하고, 1940년 단편 소설집 {늪}을 간행하면서 소설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에는 교직에 몸담으면서 [독짓는 늙은이](1950), [곡예사], [학], 등의 단편과 [별과 같이 살다](1947),[카인의 후예](1953), [인간접목](1955) 등 장편소설을 발표함. 그의 작품 세계는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문체와 스토리의 조직적인 전개를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의 문체는 설화성(說話性)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하는가하면 , 비극적인 현실을 심원한 사상이나 종교로서 감싸고 이해하려는 주제 의식의 확대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해설
<소나기>는 1953년5월 <신문학> 4호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관찰자 시점이면서도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작가 황순원은 초기에는 시를 쓰다가 1940년 첫 단편집[늪]의 발간을 계기로 단편 작가로 전환한 후 다시 장편 소설로 자기 문학 세계로 확대시켜 나갔다. 이 소설의 제목은 배경적 기능과 함께 그 가슴 저린 사랑의 순간적 일회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그 사랑의 순수함을 강조하거나 비극적인 결말에 애석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감정과 소녀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애잔한 느낌은 모두 독자의 몫이다. 이 소설은 판단 대신 여운으로써 남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유년(幼年) 시절이 있다. 사람은 그 유년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 추억의 내용에 관계없이 아름다움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황순원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성숙한 세계로 입문하는 통과 제의(通過祭儀)의 시련을 지니고 있다. 소녀와의 만남, 조약돌과 호두알로 은유되는 감정의 교류, 소나기를 만나는 장면, 소녀의 병세 악화, 그리고 소녀의 죽음....... 이러한 스토리 속에서 사랑이 움트는 소년과 소녀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면서 내면적으로는 한 소년이 소녀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하여 유년기를 벗어나는 통과 의례적 아픔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소녀의 죽음은 소년에게 고통을 남기면서 유년기에서 성년에 이르는 성숙의 어려움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