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天下(http://cafe.daum.net/koeisam9/)
게 시 판 : 삼국지 삼국지토론
번 호 : 497
제 목 : 위연의 자오곡 계책 저지 이유..(펌)
글 쓴 이 : - 서량의 금마초 -
조 회 수 : 154
날 짜 : 2003/07/14 21:15:27
내 용 :
이 작전은 바로 < 손자 >의 '방비하지 않는 곳을 치고 뜻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간다'는 기습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과연 위나라가 쉽게 여기에 속을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위군 총대장이 하후무이므로 분명 이 작전대로라면 주력을 북쪽에 배치할 것이고, 따라서 장안은 무너지면 위군은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갈량의 지적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 검증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위군의 배치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옹주(雍州)에는 곽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조비 당시에 사양정후 겸 옹주자사를 임명받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위군의 옹주경영은 장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옹주목은 필히 이곳 장안에 주둔해있었을 것입니다.
곽회는 < 연의 >와 < 정사 > 모두에서 탁월한 활약을 보였던 위국 명장입니다. 명장 마초도 장안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는데 위연이 곽회가 지키는 장안성을 뚫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장안공략은 미지수였던 겁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위연이 단시일내에 장안을 도모하기란 매우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럼 위나라 전체가 촉군의 장안성 공략을 충분히 알고 대비책을 세울 시간을 갖게 되지요.
구원군은 탁고(托孤)의 중임을 입은 조진이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조진은 문제 때에도 옹주자사를 지내 이곳 정세에 밝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제갈량은 촉군의 최대 약점인 병참선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농우를 탄탄히 하지 않고 서둘러 장안을 쳤다가 만일 위의 경우처럼 장기전으로 나간다면, 농우는 바로 촉군의 약점인 군량 보급로를 위협하는 전략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위연의 전략은 반드시 '장안을 점령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제갈량은 '서쪽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 한실재흥의 여론을 조성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태로운 군량 보급로를 만일 전면적으로 포기하고 서쪽으로만 간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만일 위군이 한중으로의 퇴로를 끊고 북과 동쪽에서 일제히 공격한다면...?
그리고 위연이 끌고 간 5000의 병사가 다치게 되면 예기가 꺾일 수 있다는 제갈량의 말은 타당합니다. 곽회와의 시간을 끌게 된다면, 이미 위연은 본대와 연락이 끊긴 상태이므로 단기로 끌고 간 그의 군량미는 금세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갈량 이외의 그 어떠한 촉한의 장수라도 강유를 물리칠 정도의 재략을 가진 곽회가 지키는 장안성을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장안이 하후무의 명령을 받든다고 하지만 하후무가 곽회에게 출정을 명령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곽회가 설령 명령을 받았다면 장안성을 수비하라는 명령이었을 겁니다.
마초군도 내정관에 불과한 종요가 지키는 장안성을 책략을 써서야 함락시켰습니다.
그렇다고 제갈량이 직접 자오곡으로 나아가게 되면, 위군에게 만일 검각을 끊길 경우 촉군은 한중으로 돌아가더라도 극심한 피해를 무릅쓰고 가야 합니다.
제갈량의 방법으로 북벌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기병작전을 도모하여 북벌을 감행하자는 뜻인데 그러한 방법으로 제 1차 북벌을 제외하고 사마의가 지키는 중원이 과연 뚫릴 수 있을 것인지는 또한 미지수입니다.
제갈량은 정면승부로도 사마의를 버거워했습니다. 하물며 기병작전은 어느 정도의 정보로도 금방 간파되기 마련입니다. 제갈량도 기병작전을 몇 번 시도해보긴 했지만 번번이 사마의에게 막히고 맙니다. 강유가 후에 9차 북벌을 시도할 때를 보십시오. 그 얼마나 많은 기병작전을 사용했습니까. 그리고 병사를 갈라놓은 그 작전은 번번이 진태, 등애 등에게 가로막혀 참패하고 한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제갈량이 정공으로 승부하지 않았다면 촉한의 운명은, 어쩌면 미리 그것을 간파한 사마의에 의해 검각 외 주요 요새와 전장터가 끊김으로서 돌아갈 길이 막힘에 따라 군량부족과 사기저하로 제갈량이 죽고 난 뒤 끝장이 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첫째, 위연의 별동대는 결코 장안성을 함락 시킬 수 없었으며 둘째, 제갈량은 촉한 전체의 운명을 짊어진 자신의 군대를 기병대로 소모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정면승부로 사마의를 제압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제갈량이 사용한 병법은 구태여 북벌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닌,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신들보다 6배나 국력이 강한 위로부터의 침공을 미리 저지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위는 결국 방어작전만을 시도함으로써 제갈량의 뜻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그리고 조진이 출정할 때 이렇다 할 장수가 없었던 것이 맹장들이 각처의 요지와 중요한 관애를 지키고 있어
빼내오기 어렵다 했는데 그 장수들이 오와 촉과는 멀리 떨어진 중원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하후무가 아닌, 하후패가 도독이 되어 출정하였다면 강유를 제대로 기용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강유가 위에 제대로 기용되었다면 촉의 원정은 어느 정도의 저지를 받았을 것이고 사마의가 복직되기까지 시간을 버리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남안, 천수, 안정 땅도 변방의 접경지대로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데 제갈량이 아닌 별동대가 그 곳을 점령하려 하였다면 아마 크게 다쳤을 것입니다.
출처: 삼넷 諸葛武候님의 글..
게 시 판 : 삼국지 삼국지토론
번 호 : 497
제 목 : 위연의 자오곡 계책 저지 이유..(펌)
글 쓴 이 : - 서량의 금마초 -
조 회 수 : 154
날 짜 : 2003/07/14 21:15:27
내 용 :
이 작전은 바로 < 손자 >의 '방비하지 않는 곳을 치고 뜻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간다'는 기습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과연 위나라가 쉽게 여기에 속을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위군 총대장이 하후무이므로 분명 이 작전대로라면 주력을 북쪽에 배치할 것이고, 따라서 장안은 무너지면 위군은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갈량의 지적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 검증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위군의 배치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옹주(雍州)에는 곽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조비 당시에 사양정후 겸 옹주자사를 임명받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위군의 옹주경영은 장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옹주목은 필히 이곳 장안에 주둔해있었을 것입니다.
곽회는 < 연의 >와 < 정사 > 모두에서 탁월한 활약을 보였던 위국 명장입니다. 명장 마초도 장안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는데 위연이 곽회가 지키는 장안성을 뚫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장안공략은 미지수였던 겁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위연이 단시일내에 장안을 도모하기란 매우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럼 위나라 전체가 촉군의 장안성 공략을 충분히 알고 대비책을 세울 시간을 갖게 되지요.
구원군은 탁고(托孤)의 중임을 입은 조진이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조진은 문제 때에도 옹주자사를 지내 이곳 정세에 밝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제갈량은 촉군의 최대 약점인 병참선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농우를 탄탄히 하지 않고 서둘러 장안을 쳤다가 만일 위의 경우처럼 장기전으로 나간다면, 농우는 바로 촉군의 약점인 군량 보급로를 위협하는 전략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위연의 전략은 반드시 '장안을 점령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제갈량은 '서쪽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 한실재흥의 여론을 조성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태로운 군량 보급로를 만일 전면적으로 포기하고 서쪽으로만 간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만일 위군이 한중으로의 퇴로를 끊고 북과 동쪽에서 일제히 공격한다면...?
그리고 위연이 끌고 간 5000의 병사가 다치게 되면 예기가 꺾일 수 있다는 제갈량의 말은 타당합니다. 곽회와의 시간을 끌게 된다면, 이미 위연은 본대와 연락이 끊긴 상태이므로 단기로 끌고 간 그의 군량미는 금세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갈량 이외의 그 어떠한 촉한의 장수라도 강유를 물리칠 정도의 재략을 가진 곽회가 지키는 장안성을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장안이 하후무의 명령을 받든다고 하지만 하후무가 곽회에게 출정을 명령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곽회가 설령 명령을 받았다면 장안성을 수비하라는 명령이었을 겁니다.
마초군도 내정관에 불과한 종요가 지키는 장안성을 책략을 써서야 함락시켰습니다.
그렇다고 제갈량이 직접 자오곡으로 나아가게 되면, 위군에게 만일 검각을 끊길 경우 촉군은 한중으로 돌아가더라도 극심한 피해를 무릅쓰고 가야 합니다.
제갈량의 방법으로 북벌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기병작전을 도모하여 북벌을 감행하자는 뜻인데 그러한 방법으로 제 1차 북벌을 제외하고 사마의가 지키는 중원이 과연 뚫릴 수 있을 것인지는 또한 미지수입니다.
제갈량은 정면승부로도 사마의를 버거워했습니다. 하물며 기병작전은 어느 정도의 정보로도 금방 간파되기 마련입니다. 제갈량도 기병작전을 몇 번 시도해보긴 했지만 번번이 사마의에게 막히고 맙니다. 강유가 후에 9차 북벌을 시도할 때를 보십시오. 그 얼마나 많은 기병작전을 사용했습니까. 그리고 병사를 갈라놓은 그 작전은 번번이 진태, 등애 등에게 가로막혀 참패하고 한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제갈량이 정공으로 승부하지 않았다면 촉한의 운명은, 어쩌면 미리 그것을 간파한 사마의에 의해 검각 외 주요 요새와 전장터가 끊김으로서 돌아갈 길이 막힘에 따라 군량부족과 사기저하로 제갈량이 죽고 난 뒤 끝장이 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첫째, 위연의 별동대는 결코 장안성을 함락 시킬 수 없었으며 둘째, 제갈량은 촉한 전체의 운명을 짊어진 자신의 군대를 기병대로 소모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정면승부로 사마의를 제압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제갈량이 사용한 병법은 구태여 북벌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닌,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신들보다 6배나 국력이 강한 위로부터의 침공을 미리 저지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위는 결국 방어작전만을 시도함으로써 제갈량의 뜻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그리고 조진이 출정할 때 이렇다 할 장수가 없었던 것이 맹장들이 각처의 요지와 중요한 관애를 지키고 있어
빼내오기 어렵다 했는데 그 장수들이 오와 촉과는 멀리 떨어진 중원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하후무가 아닌, 하후패가 도독이 되어 출정하였다면 강유를 제대로 기용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강유가 위에 제대로 기용되었다면 촉의 원정은 어느 정도의 저지를 받았을 것이고 사마의가 복직되기까지 시간을 버리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남안, 천수, 안정 땅도 변방의 접경지대로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데 제갈량이 아닌 별동대가 그 곳을 점령하려 하였다면 아마 크게 다쳤을 것입니다.
출처: 삼넷 諸葛武候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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