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要領不得(요령부득)..'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

작성자도사|작성시간04.11.01|조회수176 목록 댓글 0
要領不得(요령부득)


【자 해】要(구할 요) 領(옷깃 령) 不(아닐 부/불) 得(얻을 득)


【 뜻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사물의 요점(要點)이나 관건(關鍵)을 파악(把握)할 수 없음'을 이르며,
또한, '말이나 글의 要領(요령)을 잡을 수 없음'을 가리키는 말.


※ 要領(요령) ; [要]는 사람의 허리, 즉 [腰]와 같은데, 여기서는 허리띠를 뜻하며,
[領]은 사람의 목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옷깃을 뜻하는 말로서,
[要領]이란 '사람이나 사물에서 가장 중요한 곳'을 가리키므로
'가장 요긴한 곳, 즉 핵심(核心)'을 의미한다.


옛날 옷을 접는 데는 법도가 있었다.
즉, 허리 부분과 옷깃을 잘 수습해야 법도에 맞출 수가 있었다.
그래서 要領(요령)이 사물의 가장 요긴한 곳을 가리키게 되었다.
뜻이 전하여, '경험에서 얻은 오묘한 이치'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또, '꾀를 부려 줄거리만 적당히 해 놓는 짓'을 이르게 되었다.


【동의어】不得要領(부득요령)


【English】 要領不得(요령부득; Cannot get the important point)
-To miss the point.(요점에서 벗어나다)
-Beside the mark.(요령부득인)
-Not to get the gist.(요점을 잡지 못하다)
-To be unable to grasp the key points.(주요(主要)한 점을 파악하지 못하다)


【出 典】史記(사기) 大宛列傳(대완열전), 漢書(한서) 張騫列傳(장건열전)


【故 事】


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의 일이다.

당시 만리장성 밖은 수수께끼의 땅이었다. 그러나 용맹한 흉노는 동쪽 열하 (熱河)에서부터 서쪽 투르키스탄(중앙 아시아 지방)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을 펴고 빈번히 한나라를 침범 약탈했다.


한나라는 흉노의 상황을 파악하여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한 무제는 직접 포로로 잡힌 흉노 병사들을 심문하였다. 잡혀온 포로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흉노의 왕은 월지(月氏) 왕국을 무찌르고, 그 왕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었습니다. 월지 백성들은 살던 곳을 버리고 달아나며 항상 흉노를 원수로 생각하고 있으나, 함께 흉노를 치려고 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제는 기원전 2세기 중반에 흉노에게 쫓겨 농서[감숙성(甘肅省)]에서 서쪽 사막 밖으로 옮겨간 월지(月氏:大月氏)와 손잡고 흉노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월지에 다녀올 사신을 공모한 결과 장건(張騫:?∼B.C. 114)이란 관리가 뽑혔다.


건원(建元) 3년(B.C. 138), 장건(張騫)은 100여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서쪽 이리 (伊犁:위구르 자치구 내)란 곳에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월지를 찾아 장안 [長安:서안(西安)]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농서를 벗어나자마자, 뜻밖에도 흉노에 붙잡혀 흉노의 왕에게로 보내졌다. 흉노의 왕은 장건에게 말했다.


"월지는 우리나라의 북쪽에 있는데, 한나라가 어떻게 그곳에 사신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월(越)나라에 사신을 보낸다면 한나라는 이를 허용하겠는가?"


이때부터 흉노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장건은 활짝 트인 성격으로 해서 흉노에게 호감을 사 장가도 들고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탈출할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포로가 된 지 10년 이 지난 어느 날, 장건은 처자와 일행을 데리고 서방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우뚝 솟은 천산(天山) 산맥의 남쪽 기슭을 따라 타림 분지를 횡단한 그들은 대완국(大宛國), 강거국(康居國)을 거쳐 마침내 아무 강 북쪽에 있는 월지의 궁전에 도착했다.


장건은 곧 월지의 왕을 알현하고 무제의 뜻을 전했다. 이때 대월지는 국왕이 흉노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므로, 백성들은 이미 그의 아들을 왕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대월지는 이미 대하국(大夏國)을 정복하고,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다. 대하국은 땅이 기름지고 외부의 침략도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대월지의 백성들은 이미 편안하게 살면서 흉노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왕의 대답은 의외로 부정적이었다.


"월지는 서천(西遷) 이후 기름진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왔소. 그러니 백성은 이제 구원(舊怨)을 씻기 위한 그런 쓸데없는 전쟁은 원치 않을 것이오."


장건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당시 월지의 속국인 대하국(大夏國)까지 찾아가 월지를 움직이려 했으나 허사였다. 이 일을 사서(史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끝내 사명으로 하는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한 채'[<騫>從<月氏>至<大夏>, 竟不能得<月氏>要領] 체류한 지 1년이 지나 귀국 길에 올랐다."


장건은 귀국 도중에 또 흉노에게 잡혀 1년 넘게 억류되었으나 부하 한 사람과 탈출, 13년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B.C. 126).


그로부터 3년 후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진 장건은 계속 서역(西域) 사업에 힘썼는데 그의 대여행은 중국 역사에 많은 것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동서의 교통이 트이면서 서방으로부터 명마(名馬), 보석, 비파(琵 琶), 수박, 석류, 포도 등이 들어오고 한나라로부터는 금과 비단 등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크 로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 注 】
* 월지(月氏) : [月支]라고도 쓴다. 중국 고대에 서역에 있던 나라의 이름으로, 원래 감숙성, 청해성 부근에 있었으나, 한대에 흉노에게 쫓겨나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부근에 정착하였으며, 그 후에는 [대월지(大月氏)]로 불리었다.


* 대완국(大宛國) : 중앙 아시아 페르가나 지방에 있었던 작은 나라.


* 강거국(康居國) : 아랄해 동쪽 시르강 하류의 키르기스 초원에 있었던 터키계 (系) 유목 민족의 작은 나라.


* 대하국(大夏國) : 일명 박트리아 왕국. 힌두쿠시 산맥의 계곡, 아무 강 상류의 좁은 지역에 있었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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