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깊은 해우소

모든 게 적절해 아름다운, '곱들락 한 집'을 품은 마을

작성자흐르는 강물처럼...|작성시간26.06.12|조회수2 목록 댓글 0

제주에는 '곱들락하다'는 말이 있다. 원래 제주어가 다의적이고 압축적이다시피 이 말도 표준어로 무슨 의미라고 딱 꼬집어 얘기를 할 수 없다. 토박이들이 느낌으로 와닿는 말, 그저 보는 순간 "아! 곱들락하다"라는 말을 순간적으로 내뱉을 뿐이다.

제주어사전에는 "곱들락하다"는 형용사로 "아주 매끈하고 곱다"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글쎄 그런 의미인지는 가끔 이 말을 사용하는 나도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예쁘기고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단정하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한 듯,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주적인 표현이다. 외형상 느끼는 곱다란 의미와는 또한 다르기도 한다.

'곱들락한집' 이야기

AD

 

그런 의미를 가진 곱들락 한 집들이 제주시에는 곳곳에 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제주시 공모사업으로 1년에 5개소씩 선정을 한다 하니 지금까지 매년 거르지 않고 했다면 꽤 된다. 일단 공모를 거쳐 선정을 하지만 특혜나 지원금은 없다. 상패를 주고, 집 입구에 걸어 놓을 수 있는 현판을 줄 뿐이다. 일종의 명예나 선택, 인증의 의미가 담겨 있을 뿐이다. 단지 시청 내 주택과의 게시판에 선정 내역을 상설 전시하고 홍보를 해준다고 하니 어쩌면 큰 혜택일는지도 모른다.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집, 도심 속 생태공간으로 조성되어 주변 환경과 조화되어 경관이 뛰어난 집을 선정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실 제주의 전통 가옥에서 정원은 없다. 단지 '우영팟(우영밭)'이 있을 뿐이다. 한 뼘만큼의 땅도 소중하던 시절, 먹거리에 도움이 안 되는 잔디를 심고, 조경수를 심는 일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자랐다. 먹고사는 게 풍족해진 요즘, 제주에는 예쁜 정원을 가진, 아니 우영팟이 앞마당과 잔디밭으로 변해가는 집들이 많다.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 보면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돌담과 올레사이를 차지하고 있던 농가의 우영밭들이 예쁜 정원으로 변신한 곳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혀 상상도 못 한 일들이라 가는 곳마다 한참을 멈춰 섰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카메라에 담고서야 걸음을 재촉한다.

곱들락 한집 전경 ⓒ 강창석관련사진보기


내가 아는, 그리고 자주 들리는 곱들락한 집은 고성1리에 있다. 집에서도 멀지 않지만 신청 과정부터 스토리를 알기에 꽤 익숙한 곳이다. 아직도 농촌에 사는 분들이 행정기관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어렵다. 모르고 지나가기가 태반이고, 설령 필요하면 리사무소에서 이장이나 사무장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이 일도 이장의 손에서 시작되어 이장의 손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을에 볼거리가 없는데 곱들락 한집으로 선정이 된다면 마을에 또 하나의 명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기대 속에서 신청을 했고, 선정이 되었다.

고성 1리 곱들락 한집의 위치부터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을 안길 깊숙한 곳에 있다. 오래 전 고성간이학교가 있던 근처다. 사거리에 마을 공동수도가 있던 곳 맞은편 '올레 막은창' 집이다. 제주에서는 올레 끝집을 막은창 집이라 부른다. 50여 미터가 되는 제주의 전통 올레 양옆으로는 대여섯 집들이 있다.

돌담과 우영밭, 안밖거리 집, 감나무, 무화과나무가 담너머로 여기가 제주임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올레에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돌과 시멘트로 든든하게 지은 집들이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레 입구에 서면 내 생각의 회로는 급정지를 하고 타임머신을 탄다. 제주의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올레, 이 올레에는 1971년생 돼지해에 태어난 동갑들이 5명이나 있다고 한다. 이 올레에 들어설 때마다 이장이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 골목은 돼지골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애월읍 고성 1길 9-6, 곱들락한 집은 1970년대 건물이다. 개조가 1970년대경이고 그전 처음은 모른다. 제주의 옛 집들이 그렇듯이 벌어 먹는 밭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전통적인 모습으로 안거리, 바깥채 2채가 자리를 잡았고, 안채인 듯한 집 옆에는 장독대와 수돗가였던 자리가 그대로다.

곱들락한집,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안밖거리 ⓒ 강창석관련사진보기

 

곱들락한집에 있는 제주 전통의 장독대 ⓒ 강창석관련사진보기


주인장의 말을 빌리면 이 집의 역사는 이랬다. 원래 과수원이던 자리. 어머니가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밭을 물려받아서 농사를 지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저히 농사는 못하겠다고 하고, 지금의 정원 모습으로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정원으로 하기에는 너무 넓은 지라 귤나무와 우영밭, 잔디밭, 꽃밭들이 공존하고 있다. 주인장이 골프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잔디밭을 잘 다듬어 놓았다. 파란 하늘을 이불 삼아 그냥 드러눕고 싶은 정도다.

그 잔디밭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귤나무들이 굵직하고 울퉁불퉁한 몸통을 가지고 서있다. 여기서는 모든 게 명물이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것은 이 집을 둘러싼 거대한 '잣담'이다. 아주 정교하고 넓게 잣담을 잘 쌓았고, 그위는 리어카가 갈 정도의 잣길이 나있다. 정교하고 운치 있게 쌓인 잣담은 제주의 마을을 더욱 정감 있게 만들어 준다. 농익은 돌챙이의 기교가 한껏 묻어있는 작품이다. 이 잣길 위에 올라서면 동네 너머로 먼 한라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말 그대로 한 점 장애물이 없는 탁 트인 전망이다.

집을 감싸고 있는 제주 전통의 잣담 ⓒ 강창석관련사진보기


편안함과 멋있음,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곳

잣담 위에서 안거리를 보면 우영에는 제주말로 양애(양하)가 자라고 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시골에 할머니집 뒷문을 열면 조그만 우영밭과 집사이에 대나무 같은 뭐가 자리 잡고 있어서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게 제주 시골집의 시그니처였던 양애였다. 난 지금도 제주의 농촌을 얘기할 때 대나무밭과 양애를 꼽는다. 한층 제주스러움을 더해주는 풍경이다. 금방이라도 마루의 뒷문을 열고 세월이 묻어있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이 나올 것만 같다.

제주의 전통 농가 우영에 있는 양애(양하) ⓒ 강창석관련사진보기


잣담과 안거리사이의 잔디밭은 넓은 뒷마당이다. 지난해 더운 어느 날에는 여기서 노천 버스킹을 하기도 했다. 요란한 전자음과 함께 올레 안집에서 들려오는 낯선 팝송을 듣고 앉아있는 주민들의 모습은 변해버린 이 마을의 모습 만큼 낯설었지만 다름이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집 우영에서 버스킹 모습, 자연이 만들어준 객석 ⓒ 강창석관련사진보기


가끔 찾는 이 공간, 한 바퀴 돌고 다면 편안함과 멋있음, 아름다움이 교차한다. 편암함은 우리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에, 그리고 확 달라진 지금 시대에 보더라도 불편이 없게 조금씩은 변화를 주었기에 낯설지가 않아서 오는 감정일 것이다. 멋있음은 물밀듯 밀려온 다름을 우리가 필요한 만큼, 수용이 가능한 만큼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모든 게 적절했기에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느낌과 감정을 담은 제주 사람들의 감성적 표현이 "곱들락하다"는 한마디다. 아마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한다. 보는 이들의 마을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다. 방금 들어왔던 올레를 돌아나가면 또 다른 올레로 연결이 된다. 수십년을 살아왔던 모습들이 돌담너머로 비친다. 돌담 너머로 고개를 들면 마을 모두는 내 시야에 들어 온다. 조용하고 편안하다. 곱들락한 마을이다. 마을은 집을 닮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