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못하는 나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의 뒤에는
위대한 포기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포기했고
자녀까지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평생 자기를 사랑하며 살았던 야곱은
얍복강에서 자기의 삶의 방식을 포기한 후에야
이스라엘의 복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갈 때
12겨리의 소와 많은 상속재산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를 때
배와 그물을 직장과 부친까지도
포기해야 만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체면과 자존심을 포기했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재산과
명예와 권력을 포기했습니다.
바울 목사님도 자신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던
많은 지식, 인맥, 재물, 권력을 다 배설물과 같이
버린 후에야 예수님을 똑 바로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앙의 길은 포기의 길입니다.
이사야 56장 10절과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가만히 보면 우리는 포기하지
못한 목자들입니다.
탐욕이 여전히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지식과 자존심을 높이 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져줌의 참 의미를 모르고
무조건 내가 이겨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이길 필요가 없는 것을!!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고,
내 눈이 보는 것이 많고 들리는 소리가 많아서
마땅이 보아야 할 양떼와 소떼를 보지 못하고,
마땅히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침묵하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인의 길에
서지 못하고 개가 되었습니다.
손에서 핸드폰조차 놓지 못합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서도
핸드폰을 단 1시간도 꺼 놓지 못합니다.
텔레비전조차 포기하지 못합니다.
외모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외모를 포기하지 못하니 몸매 가꾸느라
자녀도 돌보지 않고, 건강을 잃고
사명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다이어트 하느라고
기운이 없어서 축 쳐져 삽니다.
기운 없다는 말이 자랑이고
피곤하다는 말이 자랑입니다.
먹지 않고 화장만 합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은 위대한 포기를
하며 살았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목숨 포기하고,
신체 포기하라, 순교하라 하지 않으십니다.
과거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보다
너무 편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누리고 싶어서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외칩니다.
“당신이 더 포기하시라고!!”
“더 내 놓으시라고!!”
잠도 돈도 명예도 자존심도 욕심도
핸드폰도 외모도 드라마와 영화도
스포츠도 오락도 자녀들도 애완견도 옷도
자동차도 가방도 신발도 모자나 악세사리나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편리함이나 현재의 쾌락은
물로 더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늘 외칩니다.
“당신이 더 포기하시라고”
위대해지고 싶지도 않고,
믿음대로 살고 싶지도 않고,
미래의 상급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오늘 하루 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그러니...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포기가 그렇게 어려운건가!
아무것도 놓치 않으면
이젠 더 이상의 것을 잡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 천국과 상급,
영생과 안식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026년에 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더 나은 미래가치를 위해서
현재 가치 있다고 느껴왔던
그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