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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장소 중심설교] 사마리아 (2026.06.07 주일)

작성자아름권사|작성시간26.06.07|조회수34 목록 댓글 0

사마리아

 

사마리아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 북 왕국인 이스라엘의 임금 오므리는 비싼 값을

치르고 산 땅 사마리아에 기원전 9세기 초 새로운 수도를 세웠다.각주1)

그곳은 남 왕국인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8km 떨어져 있었다.

 

사마리아는 주변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도시였기에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가 쉬웠고

또한 남북뿐만 아니라 동서를 잇는 주요 도로가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으므로 오므리 임금

이후 한때 번영을 구가하기도 했다.

 

사마리아는 처음에 한 도시의 이름이었지만 후에 이스라엘 또는 에프라임처럼 북 왕국 전체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사마리아는 지정학적인 좋은 위치와 값진 곡물이나 올리브, 포도 등을 생산할 수 있는 비옥한 땅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은 페니키아, 시리아 등 이방 국가들과의 교역이나 교류가 잦았던 이유로 이방 종교와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았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순수성을 잃을

가능성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북 왕국이 기원전 721년경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했을 때 아시리아 임금은 많은

사마리아인들을 다른 곳으로 추방하고 사마리아에는 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민족들을 데려와 정착시켰다. 이후 사마리아인들은 이민족들과 피가 섞여 혼합 인종이 되었고

그들의 종교 역시 이민족들이 갖고 들어온 이방 신들 때문에 혼합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사마리아는 아시리아에 뒤이어 차례로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의 통치 아래서 기원전 30년경 사마리아는 헤로데 왕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는데,

이때 헤로데는 사마리아를 세바스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했다.

사마리아는 파괴되고 재건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살아오다가 기원후 66-70년 유다인들의 반란 때 다시 파괴되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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