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1) 한나의 서원 기도
삼상 1:1-18
오늘 3부 예배부터 ‘사무엘상’ 강해 하려 합니다.
우리말 성경은 ‘사무엘서’가 상과 하로 나누어져 있지만, 히브리 원어 성경에는 ‘사무엘의 책’(‘세페르사무엘’)이란 제목의 한 권의 책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들의 집필자들로 인해 한 권의 책이었던 책이 두 책으로 나뉘어 졌습니다(70인 역 LXX, 열왕기도 마찬가지).
사무엘서의 내용은 주로 이스라엘 신정 왕국의 건립 및 초기 왕들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중심인물이 사무엘이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무엘을 저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삼상 25:1에 사무엘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사무엘 이후의 역사가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록된 때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진 직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7장까지 최후의 사사인 사무엘의 출생과 활약상에 대하여 또한 그의 말기에 왕정체제가
요구되게 된 배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8-15장에서는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마지막 16-31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부름을 받은 다윗과 그를 핍박하는 사울의 이야기, 그리고 사울 왕가의 몰락과 숱한 어려움을 겪고 드디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는 다윗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엘가나의 가정>
오늘 본문은 ‘엘가나’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절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이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습니다. 또 1절에서는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만 보면 우리는 그를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릅니다.
대상 6:16-28, 33-38에 보면 그가 레위 지파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기업이 없기 때문에 전국에 흩어져 살면서 종교적 직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엘가나의 조상들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직분을 감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어디에 거주하든지 그 사람의 소속은 분명합니다. 소속은 변하질 않습니다.
미국에 살아도 국적 변경을 하지 않는 한 한국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속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살아도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인 것은 변하질 않습니다.
그 있는 자리가 선교의 자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나와 브닌나>....
그런데 이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2절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구약 성경에 종종 일부다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조차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시대와 인습에 기초해서 묵인된 것일 뿐이지 ...
결코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창 2:24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를 만드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거느렸을 경우 대개 심각한 갈등과 비극이 따랐던 점에 의해서도 입증이 됩니다.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암흑기인 사사 시대에는 일부다처제가 보편적 사회 현상이 되었는데, 이는 당시 주변의 이방 민족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삿 9:1).
엘가나는 아마도 정실부인인 한나가 잉태하지 못하여 아내를 더 얻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자녀를 거느리는 것을 하나님의 풍성한 복으로 (시 127:3-4)....
무자한 것을 하나님의 저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더욱 첩을 얻어서라도 아들을 낳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행위도 그 시대의 풍습에 따른 것일 뿐 성경의 원리는 아닙니다.
엘가나의 가정에 일어난 갈등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 갈등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3-8절>
3절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4절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5절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절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엘가나는 매년 에브라임 성읍에서 성소가 있는 실로에 가서 만군의 하나님께 규칙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매년 제사를 드릴 정도로 신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출23:17).
이스라엘 장정들은 매년 유월절(무교절), 오순절(칠칠절), 초막절(장막절)에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제사 드리지 않는 자가 많았지만...
엘가나는 이 말씀을 따라 제사를 드리러 실로에 간 것입니다.
아무리 경건한 믿음의 가정이라 해도 아내가 둘이면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편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함으로 두 자매간에도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서로 첩(실바, 빌하)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더 많이 낳으려는 경쟁도 벌였습니다(창29장).
얼마나 치열했던지 ‘합환채’ 사건도 있었습니다.
레아의 장남 르우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머니 레아에게 합환채를 선물했습니다. 합환채(合歡菜)는 고대부터 불임 여성을 위한 최음제(催淫劑)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본 라헬은 합환채를 두고 언니 레아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결국 라헬은 레아에게서 합환채를 사고, 그 값으로 남편 야곱이 언니와 동침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맥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미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형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가로되 그러면 형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형과 동침하리라 하니라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창 30:14-16)
이렇게 해서 레아가 임신하여 다섯 번째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잇사갈’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니 역시 편애가 일어났습니다.
엘가나는 첩 브닌나를 얻었지만, 한나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제물의 분깃을 나눌 때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엘가나의 행동은 브닌나의 질투를 일으킬 뿐이었습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심히 격분하게 하며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애도 못 낳는 주제에...”라는 말로 한나를 조롱하였을 것입니다.
한나는 이런 브닌나의 조롱을 받을 때마다 너무 괴로워서 울고 먹지 않았습니다.
이에서 보듯 엘가나가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도 가의 가정은 고통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간단합니다. 그가 첩을 얻었기 때문입니다(6절 - 한나와 브닌나를 '적수'라고 표현)
한 남편과 아내로 기뻐하시고 만족하시길 바랍니다.
자녀가 없어도 아내로 만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입양이 대안).
두 부인의 싸움에 보다 못한 엘가나가 나서서 한나를 위로하였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며 열 아들보다 한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남편의 말도 한나의 고통을 위로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6절은 아주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6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그녀가 임신하지 못한 것이 그의 남편 때문도 아니고, 그녀 자신 때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생명이 하나님께 달린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소중합니다.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한나를 미워하셔서 임신을 못 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25년간 임신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창18장).
하나님은 이삭과 리브가가 20년 동안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창 30장)과 삼손의 어머니인 마노아의 아내(삿 13장),
그리고 신양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나이가 늙도록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사랑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나>,...
사랑하는 성도님들 !
인간에게 주시는 고통은 때로 우리를 연단시키고 하나님께 더욱 다가가게 하시는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에게 가시를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바로를 보내서 괴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는 사울 왕을 보내서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는 보디발의 처를 보내서 괴롭혔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께 나가고 기도할 수 있고 생명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미꾸라지와 메기 - 미꾸라지를 잡아먹는 것은 메기입니다.
만약에 먼 나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오면 대부분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꾸라지가 있는 곳에 메기 몇 마리를 넣으면 미꾸라지는 죽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칩니다. 이렇게 발버둥 치다 보면 미꾸라지는 생명력이 넘치게 살아갑니다.
한나가 당한 괴로움은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9-10절>
9절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의 고통은 그녀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만일 만사형통하였다면 그녀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겠습니까?
그녀는 하나님께 나가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의 슬픔을 다 하나님께 쏟아 놓았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자신에게 오는 고통을 하나님께 다가갈 기회로 선용합니다.
원망과 탄식으로 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더욱 하나님께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는 은혜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을 하나님께로 옮기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나의 위대한 점입니다. 브닌나와 싸우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의 갈등이 있습니다. 사회와의 갈등, 집안의 갈등, 교회 내의 갈등, 개인 간의 갈등….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갈등을 하나님과의 갈등으로 바꾸어서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와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야곱은 이때 하나님께 나가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모든 어둠은 물러가고 해가 돋고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인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사장이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것을 보고 칼을 빼 들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과 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믿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온전히 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라기는 우리도 한나가 브닌나와 다투고 싸우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온 것처럼, 오직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아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한나의 서원>
서원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11절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면 그를 평생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고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서원기도는 최후에 막다른 길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함부로 서원하면 안 됩니다.
욕심을 가지고 서원하면 안 됩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으로 서원한 사람은 응답이 되어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키지 못할 때 죄책감을 느끼고 살게 됩니다. 한때의 기분과 감정으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한나는 자신이 서원한 것을 지켰습니다.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면 자신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처음 만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는 서원은 잘못한 것입니다.
그의 무지하고 경솔한 서원은 결국 무남독녀인 딸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야곱은 집을 떠날 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몰랐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온다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면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서원을 드렸습니다. 훗날 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깨우쳐 주심으로 자신이 한 서원을 다 지킬 수 있었습니다.
<엘리의 오해>.....
제사장 엘리는 그녀가 술 취해 떠드는 줄 알고 그녀를 책망하였습니다.
<12-16절>
12절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절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 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절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한나는 너무 괴로워서 속으로 말하고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입술만 움직였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슬프면 하나님께 부르짖어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슬픔이 극에 달하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억이 막히고 기가 차서 속으로만 고통스럽게 기도합니다. 이것은 온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놓는 기도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애절한 성도의 기도를 술 취했다고 꾸짖은 것은 능히 반격을 당할 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할 수 있는 최대의 존경심을 가지고 ‘내 주여’(15절)라고 엘리를 불렀습니다. 이런 한나의 태도는 술 취함의 오해가 벗겨지는 것은 물론 그의 신앙을 증거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나는 자신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엘리에게 막말을 하거나 상대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 안에서 목자인 엘리를 공경하였습니다. 한나는 자신을 마음이 슬픈 여자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심정을 통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주의 종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의 축복>......
한나의 말을 들은 엘리는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녀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17-18절>
17절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놀라운 것은 엘리의 축복기도를 듣고 한나의 마음속에 근심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에 응답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부족하지만, 주의 종의 입을 통한 축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은 목자가 연약할지라도 그를 통해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이 부족하더라고 그를 쓰셔서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주의 종이 허물이 있을지라도 주의 종을 하나님 안에서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야 영적인 질서가 서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들이 부족하더라도 축복이 통하여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오늘 한나와 같이 비록 고통 중에 있다 하더라도, 사람과 다투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쏟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 다가가는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다가오는 자녀를 내치지 않으십니다. 이미 우리가 구하지 전에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십니다. 입술로 우물우물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도라도 하나님은 다 알아들으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늘 교제하고, 응답받아 간증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