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 /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 세계문화유산 -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2018년 8월18일(토)
통도사는 가까운 곳에 있어 가끔 갔지만 자세히 본 기억은 없다.
1979년 3월, 교회 청년들과 야유회 온 것이 첫 만남이었다.
통도사 앞을 흐르는 청류(淸流), 계곡이 좋고 5리쯤의 송림이 아름다운 곳이다.
대학 때 학과 야유회나, 영축산 산행 후 이곳을 들렸었다.
올 때마다 대충 둘러보고 갔다. 조금 자세히 본 곳은 대웅전, 금강계단 등이다.
점심 후 집을 나섰다.
통도사, 석남사, 운문사를 돌고 배내봉 야간 산행을 할 심사였다.
절입구 주택가에 2시 30분경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하였다.
통도사입구 주차장은 만원이다.(주차료 2,000원)
문화재관람료 3,000원이다. 본당이 있는 곳까지 걷는 게 좋다.
솔밭길, 몇 백 년된 소나무와 몇 십 년된 소나무들, 용트림하듯 모두 모양이 각각이다.
올 여름의 폭염은 이제 끝인가 보다. 솔솔 솔바람이 시원하다.
법구경을 새긴 바위들 몇 점이 보인다.
솔밭길이 끝나는 곳, 바위란 바위엔 빼곡히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게 무슨 의미일까? 절에 와서 죽음의 의미를 모르다니.
나는 바위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 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때까지 이 바위를 들고
지옥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영축총림(靈鷲叢林) 산문(山門)이 보인다.
산문에 가기 전에 '부도원(院)'이 있다. 이렇게 많은 부도를 본 적이 없다.
예전부터 현재까지 이곳을 지나간 고승대덕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통도사 경내 안내도>
책 명찰순례1 권에 실린 그림과 비교, 그리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책 '명찰순례'는 최완수란 분이 월간조선에 매월 연재한 것을 모아서 발간한 책이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연재하였다고 한다.
솔밭길.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란 명찰을 달고 있다.
바람은 춤 추고 소나무에서 시원한 향기가 나는 길이다.
하늘로 곧게 올라간 소나무는 안 보인다. 모두 용트림하고 있다.
이곳에도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보이는 바위엔 이름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경내 계곡 건너엔 주차장이 크게 조성되었다.
주차장이 없었으면 좋겠다. 연로하신 분이나 장애를 가지신 분들을 배려한 주차장은
있어야 하겠지만 사찰에서 일하거나 수행하는 건강한 분들에게 이곳이 필요할까?
무풍한송로를 걸으며 삶과 삶을 생각하고 부처의 말씀을 되새긴다면
법당에 다다르기 전에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그렇게 다가가는 것이 겸손이 아닐까?
일주문이 아니다. 산문이다. 키가 큰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통도사는 대사찰이다. 계곡을 따라 남향의 건물이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다.
선덕영왕 15년(646)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삼보(三寶)사찰 중 불보(佛寶)사찰이다.
대장경이 있는 합천 해인사는 법보(法寶)사찰, 순천 송광사는 승보(僧寶)사찰.
이렇게 삼보사찰이라 칭하는 것은 절의 품격을 높이려는 인간의 욕심이다.
누가 이렇게 정한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그런가 보다 하면 된다.
통도사는 불교 문화재의 보고이다.
국보 1점, 보물 21점, 지방유형문화재 146점 외 3만여 점이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창건하였지만 전란 등으로 소실되어 신라시대 건축물이 거의 없어서
국보가 1점뿐인 것 같다.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대다수 조선시대 중수한 것이다.
부도원.
흩어져 있는 부도들을 월하(月下)방장의 교시로 1993년, 이곳으로 모았다고 한다.
월하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신 분으로 유명하다.
이곳엔 부도 60여 기, 비석 50여 기가 있다. 규모가 있어서 그런가 밭이 아닌 원(院)이다.
부도원엔 들어 갈 수가 없다. 넓은 부도원 주위에 전기선 있다. 절도 때문일까?
오래된 부도탑을 가까이에서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장승, 토속신앙과의 융화일까?
벽사의 역할을 하니 없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돌장승의 얼굴이 벅수이다.
통도사성보박물관, 관람료가 없다.
도자기와 탱화, 괘불 등 불교회화전문박물관이다.
보물급 탱화와 괘불을 가까이 보아 좋다. 관내 사진촬영은 금지다.
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인 내가 서럽다.
야생화자수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담백하고 아담한 들꽃자수를 감상하였다.
떡이 있어 출출한 배가 환호성을 질렀다.
박물관 입구의 포대화상, 여타 절에 있는 석조물과는 얼굴이 다르다.
이 포대화상은 귀엽고 인자하게 보인다. 포대화상은 가난한 자들을 돌본 승려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 화상이 복(재물)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그런 풍조가 대한민국에도 유입된 것 같다.
일주문. 조선(1770년)
영축산통도사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솜씨라 한다.
국지대찰(國之大刹), 불지종가(佛之宗家)의 주련은 '해강 김규진'의 글솜씨라 한다.
평소에도 신도들이 많은 절이다. 여름엔 피서객까지 더해진다.
세계문화유산 '산사, 한국산지승원'으로 등재되면서 관광객이 더 늘어난 것 같다.
천왕문. 18세기경 건립.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0호
사천왕의 조각상이 크지만 무섭지 않다. 어느 곳에 가면 위협적인 얼굴도 있는데
이곳 사천왕들은 귀엽다. 주관적 느낌이지만.
북방 다문천왕(비파), 동방 지국천왕(보검)
남방 증장천왕(용과 여의주), 서방 광목천왕(보탑)
영산전은 하노전의 중심건물이다.
통도사는 하노전, 중노전, 상노전 등 3개 지역으로 구획되어 있다.
이런 구획이 있는 절은 통도사뿐일까?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고려전기 조성)과 극락보전.
영산전과 극락보전 사이 뒤로 보이는 건물은 명월료(종무소)이다.
극락보전, 조선(18세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정면 3칸, 팔작지붕이다.
아미티불이 모셔졌다.
아미타를 줄여서 미타라고 한다. 중국에서 그렇게 만들었다.
아미타는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으로 번역된다.
만세루, 조선(19세기경),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3호.
약사전 맞은편에 있다.
통도사는 산지지만 지형이 계곡을 따라 길게 늘어섰다.
일반적으로 만세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마당을 만난다.
불교용품판매점이라 들어 갈 까닭도 없고 관심도 없다.
약사전. 조선(18세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
영산전을 중심으로 맞은편에 만세루, 좌측에 극락보전, 우측에 약사전.
전통적인 가람배치다.
약사전 외벽의 그림이다. 뭘 의미할까?
불이문. 조선(18세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불이문을 통해 대웅전을 보다니, 만세루를 지나 대웅전 보는 것과 같겠다.
관음전. 조선(172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관음전 뒤에 봉발탑, 용화전, 대광명전이 있다.
관음보살상
용화전. 조선(172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
용화세상, 미륵의 세상은 언제 오려나?
용화전 앞의 봉발탑.
탑이라고 하면 안된다고 한다. 발우, 석조발우(石造鉢盂)라 하여야 한다.
(통도사 홈페이지)
미륵불.
고려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석조에 호분칠(胡粉漆)를 하였다.
사찰 안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
자료엔 서유기에 관한 그림이 그려진 현존하는 유일한 예라고 한다.
사진촬영금지....대놓고 촬영할 수 없어 멀찍이 떨어져서 줌으로 찍었다.
문화재보호차원에서 촬영을 금한다면 이해하고 그리해야겠지만
성물숭배차원이라면 인정할 수 없다.
(멀찍이 떨어져서 촬영하는데 어느 보살이 촬영하지 말라고 한다.)
성물이란 말조차 나는 거북스럽다. 성스러운 것은 신이며 사람이지 무생물인
조각품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가진 상징성은 이해하기에 함부러 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숭배한다면 이건 문제이다.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스런 분을 사진촬영한다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다. 아~하~~~아니올씨다.
대광명전. 조선(1758년). 보물 제1827호
중노전의 중심건물이다.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여래 등 삼신불을 모셨다.
대광명전의 비로자나불
장경각. 조선(18세기 이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4호
경을 보관하던 곳.
개산조당(開山祖堂).
솟을 대문과 개산한 자장율사 진영이 모셔진 해장보각.
세존비각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4호
양산 통도사 석가여래 영골사리부도비. 불사리의 행적을 기록한 비
대웅전. 조선(1644년). 국보 제290호
상노전의 중심건물이다.
정자형(丁字形) 건물. 대웅전엔 불상이 없다. 적멸보궁이라 금강계단에 불사리탑이 있기에.
편액 (동 대웅전, 서 대방광전, 남 금강계단, 북 적멸보궁)이 걸려있다.
정자형 건축물은 사찰에서 보기 어렵다.
금강계단. 석가모니불의 정골사리가 모셔진 곳.
예전에는 자유롭게 금강계단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지금은 정해진 날만 가능하다. 산령각에 사진촬영하였다.
응진전. 조선(1677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
응진전 외벽 그림. 달마도라고 하는데 위 부분이 사진에 안 나왔다.
명부전. 조선(1888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창건은 고려 공민왕 때라고 한다.
대웅전 앞엔 500평 규모의 청법전(聽法殿)이 있다.
청법전 앞에서 촬영. 영축산 정상이 삐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삼성각......산령각
지공(指空/인도 승려), 나옹(懶翁), 무학(無學) 등 3인의 대선사를 모신 곳.
구룡지(九龍池)
전설이 있지만.....
5층석탑.
보수작업을 1990년대 초에 한 것 같은데 보기가 그렇다.
탑전(塔殿), 불상이 없다. 창문으로 탑이 보인다.
5층석탑에서 산으로 가는 오솔길이 있어 조금 올라갔다.
내려다 보는 풍광이 좋다.
영축산의 정상과 그 능선도 그립다.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에 배롱꽃이 멋드러지게 피었다.
수 십장의 사진을 찍었다. 박물관 앞엔 흰배롱꽃이 활짝 피었다.
조금씩 소멸하여 가는 고목. 옛날 기억을 되살리니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
언제가는 터조차 남지 않겠지? 무한함이 무엇일꼬? 유한의 존재가 무한의 존재가 되려니 어렵다.
통도사 암자 순례길도 나의 버킷 리스트에 들어가 있는데 언제할꼬?
통도사는 아주 큰 절이다. 3시간이나 머물렀지만 이곳저곳 다 보지 못했다.
기도접수처인 화엄전, 영각, 범종각 등등 무심히 본 곳도 많다.
다음엔 통도사 홈페이지에 접속, 공부를 하고 방문하여야겠다.
산문을 나와 승용차에 오르니 오후 5시 30분. 조금 피곤하다.
야간 산행을 체념하고 귀가하였다.
통도사는 올해 유네스코 제43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로부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13번째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안동 봉정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영축산(靈鷲山)
영축산은 고대 인도 마가다(摩迦陀, Magadha)국의 수도(首都)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기사굴산(耆闍堀山, Gijjhakuta)을 번역한 이름.
기사는 축(鷲), 굴은 두(頭)을 의미하므로 직역하면 <축두산>이라 하여야 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취'를 '축'으로 읽는다.
일반인들이 '(독)수리 취'로 인식하여 '영취산'이라 한다.
영취산, 영축산, 축서산(鷲棲山), 취서산 등 모두 같은 산을 의미한다.
축서사(경북 봉화), 축서암(통도사) 등 절이나 암자의 이름도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양산 영취산은 <영축산>으로 결정되었다.
함양, 창녕, 여수 등 영취산도 불교와 연관 짓는다면 <영축산>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아니고 산정에 신령한 독수리가 앉아서 이름을 <영취산>으로 했다면 바꿀 필요 없다만.
책과 인터넷 검색으로 영축산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위 사진은 통도사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종교 단체에서 으뜸이니 버금이니 다투어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든 석가모니든 모든 성인은 상석을 다투지 않았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생명은 모두 귀하다고 하였고 그 무게 역시 똑 같다고 하였다.
'이 절이 으뜸이다, 저 절이 버금이다'라 다투는 것은 지극히 속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