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미학의 제국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조 경 란
환상문학 또는 환상소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이탈로 칼비노를 언급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우리에게 소개된 칼비노의 대부분의 작품들, 이를테면 『코스미코스케』 『우리들의 선조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제로 사냥꾼』 『사랑은 어려워』 『이탈리아 민담』 등은 리얼리티와 환상이 혼합되고 직조되어 그만의 톡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환상과 우화는 칼비노에게 있어서 리얼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였는지도 모른다. 칼비노는 환상이라는 것은 독자가 텍스트에 일정한 거리감이나 무중력 상태를 유지하며, 일상적인 경험들이나 지배적인 문학적 관습들에서 벗어난 대상들 혹은 관계들에게로 이끌어주는 또다른 논리의 수용을 암시해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칼비노의 환상은 그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논리와 과학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과학과 수학적 지식을 환상과 절묘하게 결합시킨 『코스미코스케』와 『제로 사냥꾼』에 이르면 그것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 대담에서 그는 환상과 관련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 서술의 핵심은 어떤 예외적인 특이한 사건의 설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특이한 사건이 그 자체로서 전개되어가는 ‘질서’를 서술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주변에는 마치 수정의 결정체가 형성되듯 침전되어 가라앉는 이미지들이 그물과 대칭형 틀이 형성되는 것이다.”(『동서문학』 1987년 8월호) 뒷날 『우리들의 선조들』로 묶여지는 삼부작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칼비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이 글을 쓰기 위해서 나는 그 동안 읽었던 칼비노의 소설들을 다시 훑어볼 기회를 가졌는데 "나무 위의 남작"만은 책을 구할 수 없던 탓에 미처 읽지 못했다). "반쪼가리 자작"과 "존재하지 않는 기사"에서 칼비노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쫓는 모험을 시도한다. "반쪼가리 자작"은 전쟁에 참여했다가 폭격을 당해 육체가 악한 부분과 선한 부분으로 나누어져버리는 메다르도 자작의 이야기이다. 그 반쪼가리 인간들은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들 각자는 바로 자신이 존재해야 할 부분, 망토로 가려진 검은 구멍에 대고 칼을 겨눈다. 칼비노는 반쪽으로 나누어진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소외되고 상처입은 군상들의 모습을 어떤 가식이나 수사 없이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에서는 존재하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람발도와 브라다만테가 존재하지 않는 기사, 형체도 없이 갑옷 속에서 영혼만으로 존재하는 아질울포를 쫓는 모험의 연속이 이어진다.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희망을 잃은 브라다만테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를 찾아다닌다. 이 소설은 존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쫓는, 예민한 상상력과 현실을 뒤집어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펼쳐진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는 그의 인식의 존재를 감싸주었던 갑옷과 투구를 남겨두고 사라져버린다. 결국 그의 존재는 허공으로 흩어지고 만 셈이다. 하지만 누가 그를 두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사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질울포는 비록 육체는 없었지만 정신만은 명백히 존재했던 기사인 것이다.
나는 이제 천천히 ‘거미집 속의 오솔길’로 들어간다.
『거미집 속의 오솔길』(문장, 1978)은 내가 처음 읽게 된 칼비노의 소설이며 그가 쓴 첫 소설이기도 하다. 도시 구석구석 헌책방을 순례하고 다니던, 내게는 ‘김화영 옮김’이라는 활자가 일종의 고유명사로 자리잡고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이탈로 칼비노라는 낯선 작가보다는 옮긴이의 이름을 보고 망설임없이 곰팡내 풍기는 그 낡은 책을 펼쳐들었다.
1923년 출생한 이탈로 칼비노는 독일 점령 치하에서 직접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첫 소설 『거미집 속의 오솔길』을 낳는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신사실주의로 명명되는 네오레알리스모(neorealismo)의 조류가 강하게 번져들고 있던 시기였다. 네오레알리스모란 전쟁의 혼란을 겪고 난 인간의 처참한 현실을 증언하려는 목적의식을 밑바탕으로 참다운 인간애와 실존의 가치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현실도피적인 문학을 배격하겠다는 현실참여적인 성격이 뚜렸했다. 이 시기 칼비노 역시 이러한 신사실주의적 문학론의 대표적 리더였던 파베세(C. Pavese)와 함께 교류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칼비노를 신사실주의 작가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문학적 모색을 멈추지 않았던 칼비노를 어떤 특정한 조류의 작가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개 첫 작품은 그 작가의 문학적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비밀의 문이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선조들』이 칼비노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첫 작품인 『거미집 속의 오솔길』은 칼비노를 이해하는 지름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당시 네오레알리스모 경향의 작가들이 객관적인 현실 묘사에만 치중했던 것과는 달리 칼비노는 『거미집 속의 오솔길』을 통해 간과하기 쉬운 현실의 미세한 부분들을 끌어올려 의미화시키고 형상화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독일군이 이탈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당시 유격대에 참여하게 된, 빈민가에서 자라난 아이 피노의 이야기이다.
어린 피노의 친구들은 대개 누나인 창녀, 신기료 장수, 도둑 등 어른들이다. 피노는 제 또래 친구들을 원하지만 그는 이미 어른들 세계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주로 어른들이 모이는 카페에서 담배를 얻어 피우거나 포도주를 마시며 음탕한 노래를 부르곤 한다. 피노가 아는 것이라고는 “침대 속의 남편과 살해당한 사람, 혹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밖에 알지 못한다. 어른들이 그에게 가르쳐준 이야기들, 이해는 못 하고 눈치채기만 할 수 있을 뿐인 갖가지 거짓말과 군더더기를 피노가 덧붙이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듣기에 재미있을 어른들 사이의 이야기들”뿐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도 피노는 여전히 이방인에 불과할 따름이다. 피노는 외롭다. 소설 전편에는 “피노는 혼자다. 단지 혼자다”라는 말이 되풀이 강조되는데 이것은 피노의 운명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피노가 어른들의 사주를 받고 창녀인 누나에게 찾아온 독일군의 권총 한 자루를 훔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되기 시작한다. 훔친 권총을 피노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거미집이 있는 오솔길에 감춘다. 피노는 누군가 거미들이 집을 짓고 있는 그 길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주기를 고대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권총, 적을 쏘아 죽일 수 있는 권총만을 필요로 한다. 훔친 권총은 피노가 그토록 동경하던 어른들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짐작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정작 어린 피노에게 아무런 소용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피노의 삶을 피곤하게 하고 어깨를 짓누르는 곤혹스런 물건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피노에게는 거미들이 집을 짓고 있는 그 오솔길만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런 피노에게 권총이나 여자, 전쟁이 아닌 거미집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난다. 드디어 피노는 진정한 친구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뚱뚱한 사내와 어린아이는 반딧불들 사이로 손을 마주 잡고 어둠 속을 계속하여 걸어간다.” 우화적 세계나 현실적이면서 환상적인 분위기, 절제된 언어의 구사나 상징성,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 등 『거미집 속의 오솔길』에서는 앞으로 칼비노가 추구할 세계의 많은 편린들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을 몸과 상상력의 휴가라고 한 정의는 이탈로 칼비노의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 멈추지 않고 자기갱신의 길을 모색한 이탈로 칼비노의 첨예한 문학적 탐구 자세는 때때로 동일한 주제 반복이나 안일함에 빠져 있는 나를 긴장시키며 소설은 무엇이고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라는 버릴 수 없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