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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작성자*-별아저씨|작성시간09.12.01|조회수35 목록 댓글 0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박희진





지난 8월22일자 모 일간신문의 기사 한 토막은 필자에게는 시원하게 내린 한 줄기 소나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기사는 월북한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에 관한 것이었는데, 내용인즉 최근에 그 역시 작가인 홍석중이 숙청을 당했다는 것이었 다. 그 숙청 이유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 3월 중순 연변지부 작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가 “작가는 인간의 본성을 소재 로 글을 써야한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만고의 진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 빛을 발한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 게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문학의 본령은 '인간'

문학이라는, 특히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필요할 때에는 소설이 한시적으로 대중의 계몽수단이나 혁명 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문학의 본질은 절대로 진군 나팔과 더불어 외쳐대는 격문일 수는 없고, 계몽의 도구로 머무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오스카 와일드의 심미주의에 빠져서도 안된다. 문학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영원한 인 간의 본성을 다루는 것이다.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한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f1882-1941)는 초기에는 ‘찻잔 속의 폭풍우’를 다루는 부르 주아적 작가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모더니즘이 어엿한 문예사조로 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모더니즘의 기수’로, 사회 주의가 유행이었을 때에는 사회주의 작가로, 그 뒤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일 때에는 ‘페미니즘의 대모’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이 작가의 대표작 『등대로』(To the Lighthouse)는 물론 모더니즘 기법으로 쓰여졌고, 사회주의적 색채도 농후할 뿐만 아니 라 페미니즘의 메시지 또한 뚜렷하다. 필자는 최근에 수없이 읽었던 이 소설을 번역하느라 다시 읽을 기회를 가졌다. 아니 읽었 다기 보다는 문장 하나 하나와 씨름을 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산문을 시의 경 지로 끌어올린 이 소설도 매우 난해하다. 그리하여 번역이라는 작업이 고생이긴 했으나, 한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사실도 부 인할 수 없다. 이른바 ‘고전’이 갖는 신비한 매력 때문이었을까? 수없이 읽은 작품인데도 문장 하나 하나를 대하면서 “세상에 , 이 소설이 이런 작품이었던가?” 하는 감탄과 경외감에 펜을 놓고 멍청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 소설이 이와 같이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이유를 새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선은 작품의 표면이 그지없이 아름다워서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유는 홍석중의 말대로 이 작품이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필자 가 이 작품을 여러번 읽었다는 사실이 그 이유일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한번 만나보고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듯 작품 도 한번 읽어서는 올바로 그 진가를 알 수 없다.
울프는 분명히 이전 시대의 문학 양식에 반기를 든 모더니스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회주의에 동조했던 작가이며, 또 한 누가 뭐래도 페미니스트이다. 그녀의 페미니즘은 비록 예술이라는 포장지에 곱게 싸여있기는 하나 나름대로 격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이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결코 그녀의 문학의 진수도 아니며, 전부는 더더욱 아니다. 그녀의 문학 은 한마디로 말해 인간주의 문학이다. 사랑을 설파한 문학, 이타주의를 인류 구원의 유일무이한 길로 제시한 문학이다.

'종착역'은 인본주의

모더니즘,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같은 것들은 그녀가 궁극적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잠깐씩 들린 간이역들에 불과 하다. 목적지는 인본주의라는 종착역이었다. 그 동안 이 작가는 모더니즘의 기수라는 훤칠한 한 그루의 나무로, 또 페미니즘의 대모라는 또 한 그루의 우람한 나무로 우리의 관심을 지나치게 끈 나머지 크고도 울창한 숲과 같은 그녀의 문학세계를 제대로 보 지 못하게 한 것이 사실이다.
『등대로』가 모더니즘 기법의 모범적인, 아니면 사회주의나 페미니즘의 선전 도구적인 특성만을 지닌 작품이라면 지금처럼 시공을 초월하여 읽는 이의 심금을 울려주고, 정서를 순화시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영원한 인간의 본성을 다루며, 사랑을 설파하 는 이 소설은 읽는 이의 감성을 순화시켜 예술작품만이 선사할 수 있는 승화된 기쁨을 듬뿍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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