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초대석
카르마,우리의 숙명또는 업보
소설가 박영한과의 대담 -김별아(소설가)
글 김별아_소설가. 1969년생. 소설집 『꿈의 부족』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개인적 체험』 『축구전쟁』 등
박영한_소설가, 동의대 문예창작과 교수. 1947년생. 소설 『머나먼 쏭바강 』『지상의 방 한 칸』『왕룽일가』 『카르마』 등
1. 아침 산책에 나섰다가 인적이 드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밭은 숨을 헐떡이며 야산 기슭을 따라 오르는데 문득 이마를 따끔하게 스치는 충격이 있다.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 살피니 작은 도토리 하나가 또르르 굴러 내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울울창창하게 열립한 저것들, 상수리나무다. 반들반들 길이 들도록 드러난 노근을 층계삼아 밟아가며 매일 그 길을 오갔건만 정작 뿌리를 뻗은 본체의 정체는 몰랐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보단 땅만 보고 걷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발밑을 구르는 도토리를 주워들고 물었다. 내게 무슨 말을 건네고픈 게냐? 너는 어느 우주, 어느 시간으로부터 내게 쏘아 보내진 신호인가? 인사동 ‘싼타페’에서 박영한 선생을 만났다. 부산식당으로 갔다가 골뱅이 전문점으로 옮겼다가, 술에 취해 깜박 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정말 그를 만났던 것일까? 다른 생에서 만났다 헤어진 그를 꼭 빼닮은 어떤 사람의 뒷모습을 봤다던가, 다음 생에서 만날 것을 미리 예고하는 그의 그림자와 스쳐 지난 것은 아닐까. 혼곤히 잠에 빠졌다 일어났는데도, 좀처럼 쉽게 술이 깨지 않았다.
2 어느 작가의 단편 중에 ‘자기 소설책을 네 권씩 가질 정도면 무언가 도사 비슷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대목이 있었다. 나는 글을 읽으며 씨익 웃었다. 나 역시 한때 그런 망집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이제 보니 그것이 나의 또 다른 강박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네 권의 소설책을 펴내는 것과 또 다르게, 남의 소설을 네 권쯤 읽으면 그 글쓴이에 대해 돌팔이 도사일망정 뭔가 점괘 비스름한 것을 내놓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것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건 아닌지. 사람 또한 매한가지다. 나는 누군가의 소설책을 네 권쯤 읽으면, 기필코 그를 이해하고 싶어진다. “오늘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수치가 높아졌다며 담당 의사가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말하데. 아직도 담배를 끊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부터 끊겠다고 아내에게 다짐하고 나왔어요. 이것까지만 피우고.” 선생의 담배는 ‘에쎄’, 내 것은 ‘레종’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생의 담뱃갑에는 날씬한 담배가 몇 대 남아있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셨던 저희 숙부께서도 얼마 전에 대장암 선고를 받으셨어요.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에 서류를 작성해서 신청하면 보상금이 나온다던데, 선생님도 그걸 받으시나요?” “난 올해 5월부터 신청해서 받아요. 대장암이라면 월 46만원 지급에 자녀 학비 면제일걸?” “선생님 자제분들은 다 학업을 마쳤잖아요? 저희 사촌들도 마찬가지고.” “그렇지. 빨리 발병하지도 않아요. 그만큼 오래 잠복해 있던 거지. 하지만 나야 고엽제보다 소설이 더 큰 발병 원인이겠지. 소설 때문에 몸을 많이 망가뜨렸어요.” “소설이 ……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나요?” “가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작년 4월 위암 3기를 선고받고 절제 수술을 했던 선생과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나누는 일은 나의 나쁜 선택이었다. 하지만 말릴 수 없다는 것, 그야말로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수술 후 오히려 몸무게가 늘고 다른 환자들과 비교해 회복이 월등히 빠른 편이었다는 선생의 주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년 겨울에 만났을 때도 나는 선생과 함께 폭음을 하고 차가운 밤거리를 쏘다녔다. 취해서 흐릿해진 정신에도 선생이 팔뚝을 불끈 치켜 올리며 열창하던 안치환의 노래 ‘당당하게’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살고 싶소 당당하게 살고 싶소 / 살고 싶소 당당하게 살고 싶소 오늘은 비록 흐린 날에 취했어도 / 내 마음은 언제나 그대들과 하나요 그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고 싶소 / 희망이란 내일 찾아 우리 모두 당당하게……!
3 박영한은 체험의 작가다. 또한 그 자신의 직접 체험을 문학적으로 고양시키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다. 작가의 체험이 작품에 곧바로 투영된다는 것은 매혹적이고도 위험한 일이다. 자신의 절박한 체험과 세계 혹은 독자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작업이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머나먼 쏭바강』이나 『우묵배미』 연작과 같이 생체험을 기반으로 한 소설도 있지만 『인간의 새벽』처럼 온전히 상상력과 자료에 근거해 쓴 작품도 있어요. 내게는 비체험 소설이 더 어렵게 느껴져요. 일종의 알레고리 소설로 상상력을 총동원하는 것이 내게는 꽤 버거운 난제죠. 여러 번 새로운 시도도 했었지만 『지상의 방 한 칸』을 쓰기 직전에 폐기처분한 소설처럼 발자크적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적도 있고……” 작가들은 대개 자기가 쓰고자 하는 소설보다는 자기가 쓸 수 있는 소설을 쓴다. 하지만 박영한 선생의 체험과 문학 사이의 상관관계는 곧 그의 문학관과 직결되어 있다. 이미 『지상의 방 한 칸』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나의 문학관은 잡다한 인간의 생존에 밀착되어 있다’고. 삶, 존재, 그리고 소설. 그에게 어느 하나 분리할 수 없는 이 거룩한 생의 과제들은 작품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서 박영한의 소설을 읽는 일은 흥미진진한 수수께끼를 풀거나 승부욕을 자극하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애초에 장편으로 등단하기도 했지만 단일한 주제를 감각적으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단편보다는 소소한 주제들을 모두 잡아넣은 장편에 주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통 없이 독학으로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특정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물론 등단 초기 『머나먼 쏭바강』을 쓸 때는 소위 전쟁작가라고 하는 헤밍웨이, 말로, 레마르크 등의 작품을 많이 읽었어요. 국내 작가로는 손창섭과 이상이 사표가 되었고요.” ‘독학자’라는 말에서는 왠지 매캐한 냄새가 풍긴다. 이런저런 작가의 이름이 거명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문학 교과서는 오직 현실과 인간, “이데올로기는 변수지만 인간은 영원한 상수”라는 말도 그런 칼칼한 세계 인식 속에서 이해된다. “그래서 『왕룽일가』 같은 작품도 일종의 민중소설이지만 이데올로기 편향은 없지요. 작품의 생명력은 역시 단발적인 이념성보다는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잇닿을 때 얻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설이 이런저런 가지를 치고 멀어졌다가도 언제나 되돌아오는 지점은 현실, 그는 인간의 대지 위에 깊고 넓게 뻗친 뿌리를 결코 놓지 않으리라 하였다.
4 다른 작품들에 비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세 번째 장편 『첫사랑』(민음사, 1994)은 여러 면에서 소설가 박영한을 이해하는데 의미가 큰 저작이다. 본래 『노천에서』라는 제목으로 1982년 발표되었던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 밝힌 대로 ‘자전소설’이다. 자전소설, 작가 스스로 엄연히 한계와 결점을 알면서도 도저히 손대지 못하는 자기연민의 결정체. 하지만 작가는 “폭풍의 계절”과도 같은 청년기를 거치며 “아무 쓰레기통에다 기꺼이 버릴 수도 있던 목숨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참혹한 화두”를 부여잡고 끝내 고백하고야 만다. “나는 살기 위해서 소설을 썼다 ……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이 한 편의 소설을 살아야 했다.” 『첫사랑』은 상처투성이의 소설이다. 청년 박영한이 구차한 목숨을 갖다 버리고 싶어서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기까지, 1970년대의 거짓 유토피아 속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빈곤과 소외감과 냉소, “가난이라는 최초의 원죄” 그리고 “엑서더스의 장렬한 맛”이 깃든 문학과의 운명적 조우가 때로는 거칠게 그리고 쓰리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폐병과 가난과 우울에 찌들대로 찌든 난봉꾼들과 함께 한 스물세 살의 음화에도 오로지 반짝이는 열망 하나가 있다. “이 추악한 환경, 몽매에도 그리던 신분의 이동. 우리는 대학에 모두를 걸었다. 야망과. 복수와. 저항과. 이 더러운 환경. 신분의 탈바꿈과. 영양가 높은 맛나는 음식과. 시(詩)와. 어머니 약값과.” 그런데 이 『첫사랑』과 함께 읽을 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짜릿함을 주는 작품이 있다. 2002년에 발간된 최신작 『카르마』. 작품 어디에도 ‘카르마’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작품 전체에 이 ‘카르마’가 있다. 카르마(Karma), 힌두교에서 말하는 업(業), 불교의 인과응보 혹은 인연, 그리고 숙명. 시간이 그만큼 흐른 탓일까, 작가는 얼마만큼 변한 것일까. 『첫사랑』에서 드러난 피투성이 상처가 『카르마』에서는 어느덧 딱지가 앉아 아물어가고 있다. 육모초 냄새와 풍년초 냄새, 병자의 시체 냄새를 풍기며 20년 동안 그의 감옥을 지키던 어머니가 강원도 오지의 ‘노룻재 상회’에서 만취하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불구의 주인사내로 환생한다. 정신병을 앓다가 객사한 큰형과 산송장으로 매장되지도 못하고 버려졌던 작은형은 천부적으로 세상과 화해하기 힘든 배덕(背德)적 성향을 가진 박식한 시인으로 이해된다. 더 이상 그는 오직 탈출만을 꿈꾸던 지옥에서 만난 핏줄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체험이긴 하지만, 상처이기도 하잖아요. 상처는 드러내고도 싶지만 숨기고도 싶은 것 아닌가요?” “나는 상처도 팔아먹어요.” 그의 말이 왈칵 독해졌다. “자랑도 아니지만 수치도 아니지요. 그것이 바로 내 문학의 원뿌리니까. 나는 지금껏 나를 혹사시키며, 쥐어짜면서 써냈어요. 나에게는 미술로 말하자면 뭉크나 에곤 쉴레 같은 표현주의적인 성향이 많아요. 내가 화가가 되었다면 아마 에곤 쉴레 같은 그림을 그렸을 거예요. 에곤 쉴레는 평생 자화상을 그렸지. 하지만 나르시시즘보다는 추하고 어두운 부분을 폭로적으로 드러냈고. 자화상 안에 전 우주가 들어있지요.” 어쩌면 뻔하지만 꼭 확인하고픈 의문, 『첫사랑』에서 『카르마』로 이르기까지를 물었다. “『첫사랑』에서 적개심과 배타적인 분노로 가득 차 지나친 자기 노출을 보였다면, 『카르마』에서는 화해와 허용을 말하고 싶었어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그만큼 시간과 깨달음이 있었으니까요. 더 이상 세상에게도 나에게도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학대하지 않으려 해요. 나의 과거, 나의 상처 또한 유장한 시간 속에 자리할 뿐이니까요……” 그리하여 『카르마』의 마지막 대목, 박영한식 판타스틱 리얼리즘 - 내가 노장들의 소설을 읽을 때 종종 느끼는 ‘공포 환타지’ - 은 압권이다. 그는 “어머니와 죽은 형제들의 환생태(還生態)”를 등에 지고 눈보라가 치는 산길로 내달린다. “이걸 타고 가십시다.” “하아, 고얀 일이로고.” 희푸른 별빛이 쏟아지는 눈 쌓인 언덕을 따라 굴러 내릴 제, 고지의 고압선을 훑고 가는 그 쌩 하나 매운 밤바람 소리. 이랴 쯧쯧 이랴 (……) 원래 무거운 등짐 지고 가는 자에겐 길을 가로막는 장애도 많은 법. 소가 지쳐 고꾸라져도 주인은 번번이 내 탓이었다. 5 선생은 부산의 일터와 서울의 본가를 오가며 지낸다. 고되고 바쁜 생활이지만 아침마다 산에 올라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삶, 존재, 그리고 소설은 아직도 헤쳐 갈 길이 멀기에. “겨울에는 장편 작업에 몰두할 계획이에요. 요즘 카드대란으로 개인파산도 많지만 지금의 환란이 디지털식이라면 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현실도피를 내용으로 삼을 작정이에요. 현재 상황의 전조가 들어있는 소설이라고 할까…… 3인칭 소설로 나의 자화상은 아니지만 그 시대를 겪으면서 느낀 정신적 공황이 오버랩 된 작품이지요. 젊은 독자만 독자가 아니기에 중장년층을 위한 소설을 써보려 합니다.” 바특한 현실주의에서 점차 물러나 생명에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 그는 이제 쉽게 분개하지도, 흥분하지도,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대신 세상의 모든 숨붙이들, 물과 바람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박영한 선생의 인터넷 문학 강의 게시판의 대화명은 랍비(rabbi). 그래서 박영한 선생의 제자들은 지혜로운 율법사와 함께 웅숭깊은 문학의 숲을 거니는 일이 그토록 행복하다 입을 모으나 보다. 그와 세계의, 그와 사람들의, 그와 소설의 카르마…… 그는 대체 우주에서 수신된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계간 대산문화 겨울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