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에서 잠시 언급했었던 "테라야마 슈지"라는 일본의 유명 전방위적 예술가가 자신의 저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테라야마 슈지"는 시인, 작곡가, 평론가, 소설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도박꾼(?)등 정말 전방위적인 활동을 해 온 일본의 유명한 예술가입니다. 아나키스트적인 성향이 강하고 "파졸리니"처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아버지의 부재를 겪은 세대입니다. 테라야마 슈지는 자신도 전쟁의 피해자면서도 가해자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유아적인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들만 봐도 항상 어머니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는 작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슈지의 어머니는 자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홀로 테라야마 슈지를 동경으로 올려보내고, 자신은 술집에 나가 자식의 학비를 댑니다..(물론, 일본사회도 한국과 비슷하기 때문에 아들의 입신을 통해 자신의 결핍 (남편의 결핍)을 아들인 슈지에게 채우려고 한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적 부터 홀로 자취하면서 보냈기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 대한 혐오나 증오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신주쿠의 마담과 친분이 있었던 이유도 아마 어머니와 관련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그런 어머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다방면 적으로 활동을 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도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어머니는 맨날 돈과 편지, 선물등을 보냄에 불구하고 자신은 정작 편지 한번 보내지 않고 있다 뜯어보지도 않은 하모니카를 뒤늦게 뜯어보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여 일본의 명문대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에 입학하여 천재적인 희곡작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나 병에 걸리게 되고 입원하게 되는데, 그때 읽은 앙드레 지드의 <지식의 양식>이란 책을 읽고 그 일생의 일대 전환을 맞이 하게 됩니다. 그는 퇴원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서적을 다 팔아버리고 여행을 가고 학교를 자퇴하고 거리의 마담이나 장사치들과 어울리며 도박에 빠지게 됩니다.
그가 쓴 이 저서는 이렇게 단편식으로 슈지 자신의 사유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자신의 인생관이라고도 할수 있는 "일점호화"론으로 유명합니다 미술의 원근법의 소실점에 영향을 받아 만든 "일점호화"론이란 간단히 설명해서, 원근법의 소설점처럼 인생의 소실점 하나를 정해 그 소실점만을 향해 나아가자는 이론입니다. 물론, 어떤 목표를 정해 차근히 계획을 밟아 나아가자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사회 시스템에 자신을 맞춰, 평생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남들과 똑같이 사느니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그 하나만을 향해 모든것을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자는 주의입니다. 즉 도박같은 삶을 살자는 것인데, 실재로 슈지는 "경마장"의 광팬이자, 저서에서도 "도박"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도박"이 일반인들이 호화로운 삶을 영위할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수단이라는 것이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안전한 마권>보다는 <위험한 마권>에 손을 대어야만 일확천금(비유적으로)의 이상을 실현할수 있다"라고 합니다. 즉 안전한 마권인 남들 처럼 직장을 나와 결혼하고 주택 청약 붓고 돈 몇푼에 치사해지는 그런 삶이 아닌 , 자신의 이상이나 꿈을 위해 '안전한 마권'인 평범한 직장을 그만 두고 세계일주을 간다던지.. 학교에 입학한다던지...소설가가 된다던지 시인이 된다던지 ...아니면, 돈이 없어 못가는 비싼 식당을 가기 위해 일주일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 마지막날에 고급 식당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던지....평생 넣던 주택청약을 깨서 정말 사고 싶었던 비싼 차를 구입한다던지...등도 "테라야마 슈지"가 이야기하는 "도박"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도박"처럼 뭐 하나에 걸어 살아 볼만 하지 않느냐는 거죠..대신 리스크 없는 "안전한 마권"이 아닌 리스크는 있지만 승률이 높은 "위험한 마권"에 걸자는겁니다. 평생 저축을 한다고 해서 정말 멋진 삶을 살지는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 저축을 하느니 차라리 "도박"쪽이 승률이 높다고 얘기합니다. 막 살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체계에 맞춰진 똑같고 평범한 기성복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정말 살아있는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자는 겁니다. 오늘 수업때 제가 설명한 장면을 보지 못해 아쉬워서 그의 글로 아쉬움을 달랠까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시간에 잠시 그 장면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버리고 거리에 나가자"에서 발췌>
당신도 ‘평균적 인간’으로 취급받고 싶은가?
현대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위궤양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들은 창백한 얼굴로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다.
관청에서는 도쿄 대학교 법학과 출신이라는 관료 코스를 밟지 않은 이상 국장 자리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기껏해야 과장이나 과장 대우로 머무르다가 정년퇴직을 맞게 된다. 그러니 자신이 입사한 날부터 정년까지 받을 월급을 따져보면 평생 동안 벌 돈이 대충 계산된다.
(중략)
실제로 외적인 면만을 생각해봐도 직장인들을 비롯한 대다수의 일본인은 절망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정체된 시대에 ‘뭐 재미난 게 없을까’라며 마작과 파친코에 빠지거나 경륜장에 가서 조금이라도 소득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은 자신의 직업이 임시직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 이것이 ‘희망이라는 병’의 첫 번째 징후다.
“지금의 내 생활은 세상의 눈을 피하기 위해 변장한 모습일 뿐, 언젠가 나는 문학가로 성공할 것이다.”
술집 아가씨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어느 직장인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작곡가다.(혹은 화가라도 좋다. 이를테면 뭐든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까지 운이 따라주지 않아 구청의 호적계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변장한 모습이다. 곧 이 임시직에서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가 크게 성공할 것이다. 요즘 <나는 엄마>라는 노래를 작곡하고 있다. 아무튼 구청에서 일하는 여덟 시간은 숨이 턱턱 막히지만, 아파트에 돌아가 펜을 잡으면 본연의 나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직장인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다.”
물론 ‘본래의 모습’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래도 그들이 이렇게 임시직이라는 의식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병(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이들은 2층 도박장에서 죽어가는 직장인들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편견조차 없다. 이를테면 사상적 편견도 없으며 취미상의 편견도 갖고 있지 않다.
뢰벤탈(Leo Lowenthal)의 《편견의 연구》에 따르면, 편견을 갖고 있는 동안은 개인의 내부에 잠재적 경향이 존재하며 이것이 때로는 외적 자극으로 작용해 사회적 폐쇄성으로부터 구제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죽어버린 직장인들은 자신들이 획일적인 기계부품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
“야, 이거 놀랐는걸. 아까 말이야, 우리 회사 직원이 본사 옥상에서 나를 봤대. 근데 난 아까부터 여기서 도시락을 먹고 있어서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 좀 신경이 쓰여서 옥상에 가봤더니 정말 있는 거야.
나와 꼭 닮은 사람이 비슷한 양복을 입고, 게다가 똑같은 넥타이를 하고 말야. 허허, 정말 깜짝 놀랐지. 그런데 자네도 나와 똑같은 넥타이를 하고 있네? 양복도 똑같고. 이봐, 혹시 자네가 난가?”
똑같은 인간을 양산하는 메커니즘을 지닌 사회는 점차 자신이 누군지 모르게 만들어버린다.
예전에는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설문조사에서 대부분 ‘귀신’이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그 대답이 ‘원자폭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원자폭탄이나 귀신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의 괴담은 이른바 이런 ‘무사평온의 공포’를 다룬다.
평범한 아파트 단지에서 전열기를 틀어놓고 오동통한 아내와 더불어 <사키코 씨, 잠깐만>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생활. 그것을 행복으로 착각하면서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동안 “오늘은 어제와 똑같아. 아냐, 어쩌면 오늘이 어제인지도 몰라.”라고 혼동하는 ‘날짜 감각 상실’.
그것이 점차 심해져 “아냐, 어쩌면 오늘은 십 년 전의 오늘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면, 정말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런데 올해 와세다 대학교 축제 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이 스스로 이 ‘날짜 감각 상실’의 길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들은 “대기업에 취직해 괜찮은 여성과 결혼하고 아이는 셋 정도 낳겠다.”든지, “욕조와 잔디가 있는 집에서 매일 밤 아리따운 아내와 마주앉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생활을 원하고, 그런 생활이 가능한 만큼의 돈을 벌며, 밖에서는 타인보다 높은 지위에서 왕성하게 일하고 싶다.”고 한다.
또한 “현대사회는 안정된 분위기라고 하는데, 당신의 휴가비용에 대한 만족도는 몇 퍼센트 정도 됩니까?”라는 질문에 44.3퍼센트라는 놀라운 수치를 보여주었다.
대학생들은 물건을 착실하게 하나씩 손에 넣으려고 하는데, 이것은 분명 ‘타인이 갖고 있는 만큼’만을 원하는 것이고 평균화되는 것이며 괴담 속의 등장인물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정체된 상태 만족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기력의 집합소인 파친코 점에서 축 처진 직장인들이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탁탁 떨어지는 구슬을 지켜보고 있을 때, 흘러나오는 유행가만이 그들을 질타하고 격려한다.
언젠가 두고 보라지
말없이 가슴에 품고
꿈을 좇는 외길 인생
꺾일소냐 좌절할소냐
어차피 한 번 사는 이 세상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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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ginarain 작성시간 10.04.05 그렇구나, 그런데 어쩌지? 동대 영화가, 게다 대학원은 기성복입기엔 부적절한 대학에 전공이라...거참 다른 수를 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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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홍진혁 작성시간 10.04.05 좀 다른 소리지만, 고대생의 자퇴가 고대생이 아니라, 지잡대생의 자퇴였다면 과연 관심이나 받았을까요.
88만원세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도 SKY대학생들의 문제가 되면서 부텁니다. 사회전체의 시스템에 대해서 한마디 던지려면 적어도 어느정도 '윗쪽'에 있어야 가능한 세상이 아닌가요. 슬픕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지요. 공부로 인한 신분상승의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ㅋ -
답댓글 작성자ginarain 작성시간 10.04.05 설득력있다. 그냥 학교 그만두거나 대자보를 안썼을지도 모르지..일단 자신감과 부당함 고백/고발은 양면으로 작동하니...그렇다면 인간답게 살 권리, 노동권 주장한 전태일은 네 식으로 말하면 아래쪽인데... 넓게 보면 그건 완전공식이 아닐수 있지. 네가 요즘 힘들어서 더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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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태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4.05 분명히 <지상의 양식>이라고 확인 했는데, <지식의 양식>이라고 쓴 저의 무의식 발현은 무엇일까요?ㅋ...고마워요~진혁씨
기성복에 맞춰 시작하는 것도 좋겠지만, 사회라는 곳은 기성복에 한번 익숙해지면 왠만해선 빠져 나오기가 힘든거 같더라구요..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저만의 생각이지만....사람이라는게 한번 익숙해지면 거기에 안주할려고 하잖아요..나이 들수록 갑자기 바꾸는거 바뀌는것을 두려워 하고..아마도 테라야마 슈지는 사람들의 안주하려는 에너지가 없는 삶(물론, 이삶은 익숙해지면 매우 편안하게 느껴지고, 이 삶이 나에게 맞는 삶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무서운 삶이죠..)에서 벗어나고자 하려 한것 은 아닐지... -
작성자ginarain 작성시간 10.04.05 그 무의식은 이런 거지...내겐 지식이 필요해, 라는 지식욕망 ㅎㅎㅎ....좋은 실수는 진실을 폭로하는 마음의 창 ~freudian sl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