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리-나의 이야기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정작 서울에서는 오래 살아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여러곳을 거치며 졸업했지만,
누군가가 이래서 불행했냐고 물으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나는 새로운 동네에 도착하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러 온 것처럼 신이 났다.
학교에서 공부는 그저그랬지만 방과후 밤이 늦을 때까지 운동장에서 피구,축구,발야구를 했고
수영을 배우고 발레를 했으며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고 바이올린과 플룻을 연주했다.
영화 '레옹'을 본 뒤 마틸다와 똑같은 단발머리를 하기 위해 집에서 직접 부엌가위를 들었고,
레옹이 기르던 식물과 비슷한 식물을 찾아 매일 잎을 닦아주며 길렀다.
내 방을 보면 당시 내가 좋아하던 영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무엇을 보고 만드는 것에 고픈 아이였다.
연극을 보고나면 내 방은 연극 무대처럼 꾸며졌고, 내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배우가 되어야 했다.
영화를 보며 배우의 대사와 행동을 따라하거나 방 한켠을 영화 세트장으로 만드는 것이 취미였다.
그래서 나는 그 공간에서 배우도 되었고, 탈옥수도 되었고, 신문 기자도 되었으며 심지어는 수녀도 되곤 했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이 되어서,나는 영화가 아니라 돈이 되는 직업을 바라기 시작했다.
영상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나에게 반짝이는 무엇인가로 다가왔다.
하지만 영화는 돈이 되지 않는 것, 가는길이 어려운 예술이라는 생각에
그렇다면 방송이나 광고 쪽에서 일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이래서는 안되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내가 방과 후 뛰어노는 일과 악기를 연주하는 일, 영화를 보는 일을 모두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내내 내신과 수능 이외의 것에는 점점 야박해졌다.
어딘가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은 두렵고 귀찮은 일이 되었고,
좋아하는 영화와 연극을 보는 일,쓰고 그리고 만드는 일은 시간낭비가 되고말았다.
덕분에 그저그렇던 성적은 올라갔으나 나는 완전히 겁쟁이가 된 것 같아 좌절했다.
수능을 앞두고 추워지는 날씨에 우울해지던 날들,유일하게 날 위로해준건 밤에 보는 영화 한편이었다.
독서실에서 돌아온 늦은밤,몇년간 보지도 않던 영화를 보면서,심지어 보다가 잠이 들면서도,
영화가 끝나면 왠지 마음이 위로받은것 같아 따뜻하게 잠들던 시간덕분에
나는 별 망설임도 없이 동국대 영화과에 지원했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에 늘 자신이 없고 고민과 망설임만 많았던 나였다.
요즘 나는 새로 이사갈 동네를 탐험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딱 그대로의 옷이나 악세서리,가구,그릇을 찾기 위해 시장을 몇바퀴나 돌고,
좋아하는 영화를 몇번씩이나 보며,연극 표를 사기위해 몇시간이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스윙댄스를 배우고, 2주내내 막차를 타가며 연습해서 거리 공연을 한다.
책을 보며 맘에드는 문구를 깨알같이 노트에 옮겨쓰고,
일주일 두번씩 새터민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며 대신 북한 음식을 먹고, 가끔씩 북한 노래와 말을 배운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뒤를 돌아볼때마다 나는 항상 후회했다.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용기가 부족했어'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살았을까'
하지만 이제 후회 없이 가려고 한다.
공부빼고는 다 버렸던 시절을 후회했지만,
엉덩이 붙이고 앉아 인생 최대의 끈기를 발휘하던 그 시절은 내가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길러주었다.
판소리에는 많은 인물이 출연하지만,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은 오직 소리꾼,한 사람 뿐이다.
연기하는 인물이 나쁘다고 성의없이 연기하지 않으며,착하다고 각별히 공을 들여 연기하지 않는다.
그 순간은 오직 그 인물이 되어 살아 움직이고,
그 역할이 끝나면 새로운 역할을 맡아 최선을 다한다.
매 장면은 그저 서로 이어질 뿐이다.
좋은 부분, 싫은 부분, 즐거운 부분, 지겨운 부분,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판소리가 완성된다.
나는 내 인생 전체가 하나의 판소리라고 믿으며,
혼자서 노래해도 무대를 꽉 채우고 자유자재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