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집본은 독일 도리스도리 감독의 영화 <파니핑크>의 오프닝시퀀스로 파니핑크라는 인물, 이를테면
그녀의 감정이나 가치관, 강한 자의식 등을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샹송이 나오는데, 중반부와 후반부에도 유일한 bgm으로 작용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1. 여자, 파니핑크
파니핑크는 29살의 노처녀이자 공항의 소지품 검색원으로 든든한 직장과 집, 친구와 가족처럼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는 여자다. 유일하게 그녀가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랑’이다. 어느 여성이 사랑을 마다할까 싶을정도로 많은 여성들은 사랑에 대한 판타지 또는 갈망이 강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받기를’ 갈망한다고 해야하나. 파니 핑크도 분명히 부족할 것 없어보이는 삶을 살지만, 그 속에서 마음의 공허함을 느끼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배우자 소개영상 속 파니핑크를 떠올려보면 몇 번이고 고민한 끝에 찾아간 곳일텐데 차마 자신을 상품화시킬 엄두가 나지 않는 듯하다. 여자의 행복에 남자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결론짓고 쿨하게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나오는 그녀이지만, 알수없는 신을 모셔둔 전당에 찾아가 자신이 바라는 남자의 자격조건을 소심하게 따지고 있는. 사랑에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귀여운 여자다. 굳이 파니핑크라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여자. 즉 여성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그녀가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형태의 여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편히 사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라는 소박한 꿈들을 가진 뭇 여성들과는 달리, 파니핑크의 꿈에는 남자가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그렇다. 물론 인생에 대한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최선의 치유책이 ‘남자’일 거라 믿었고, 그렇기에 더 늦기 전에 마지막 남자를 잡아야겠다는 절박함으로 한 남자에게 저돌적인 구애를 하기도 하였다.
결국 이 영화의 엔딩은 “파니핑크는 심령술에 정통해 있는 신비로운 친구 오르페오의 예언대로 자신의 반쪽을 찾는다”이지만 결코 이러한 결론을 그녀의 발목을 붙잡을만한 한계로 봐서는 안될 것이다. 그녀가 찾은 반쪽은 남자(이성간의 사랑)이기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2. Nobody loves me.
나는 아름답다. 나는 아름답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나는 사랑하고....
파니핑크가 항상 주문처럼 외는 명상테잎의 대목이다. 아름답고, 똑똑하고, 사랑하고. 항상 망설임없이 말하는 그녀가 좀처럼 따라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사랑 받는다라는 말은 쉬이 꺼내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녀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우리는 남을 보느라 남을 인식하느라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인간’이 아닌가. 파니핑크도 사랑받기만을 마냥 기다리기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을 것이다. 관찰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똑똑하다는 것은 타인과 구분되어지는 자기만의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그녀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은 것들을 성취해낸 여성이지만 관심과 관찰에서 그쳤다는 것이 공허함을 불러일으키는 시작점이 된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영어로 한 원제 Nobody loves me는 굉장히 함축적이다.
3. 에디뜨 삐아프의 샹송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
영화의 시작-중간-끝에 적절히 녹아있는 이 노래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렇다. 지나간 과거에는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겠다고. 그것(사랑)은 댓가를 치뤘고, 쓸어버렸고, 또 잊혀졌다고. 사람들이 내게줬던 것이 행복이건 불행이건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가사의 한줄 한줄이 파니핑크의 삶과 일맥상통한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이 샹송의 의미를 알고나서 영화를 음미할 때는 처음 봤을때보다 더한 전율이 느껴질 것이다.
4. 음울한 이미지
파니핑크는 다른 여성들과 외관부터 구분된다. 블랙만을 고집하는 그녀가 착용하고있는 의상과 모든 악세사리들은 전부 그녀의 성격 하나하나를 설명한다. 특히 주렁주렁 매달린 해골모양의 귀걸이와 목걸이, 반지가 눈에 띈다. 강렬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주는 어두운 톤, 금속성의 소품들이 또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걸치고있는 파니핑크는 나 이런사람인데? 뭐 어쩌라고. 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