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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목사 설교

무관심에 대한 경고 (누가복음 16장 19절-31절)

작성자어둠과빛|작성시간16.12.18|조회수437 목록 댓글 0


무관심에 대한 경고

누가복음 1619-31

 

오늘 읽은 말씀은 잘 알려진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비유의 말씀의 핵심은 죽은 후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운명이 뒤바뀐다는 이야기와

죽은 후에는 회개가 불가능하고 살아있을 때 모세와 예언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가지의 핵심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부자들의 무관심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 앞에 보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에 들어가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이 여기사 나사로 보내어 그 손가락 끝으로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 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호소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그뿐만 아니라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너희에게 건너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 없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부자들의 무관심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관심있는 것만 보이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안경을 사러 가면 안경 쓴 사람만 보인다고 합니다.

구두를 사러 가면 사람들의 구두만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그 관심있는 것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죽음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가난한 이웃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고, 죽은 후의 세계가 보이지 않았고, 가난한 이웃의 고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자기의 쾌락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부자의 대문 앞에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려는 나사로의 고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개나 돼지로 취급을 했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모든 일에 무관심한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라.

죽음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라.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라고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돈 벌어서 즐겁게 살 생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했기 때문에 죽은 후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이웃의 고난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됩니다.

부자들 눈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갑질한다.’는 말이 유행하는데 그 이유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인격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 2113절에서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가 부르짖을 때 부르짖는 소리를 외면하면 안 됩니다.

대전에서 목회할 때 부목사님이 계셨는데 부목사님 선친께서 평생토록 전도사로 가난하게 사셨다고 했습니다.

먹고 살기가 힘드시니까 자기 형과 가기를 데리고 큰 교회에 목사님을 찾아 가서 도움을 청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절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그 때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왜 아버지께서 형과 자기를 데리고 가서 도움을 청하셨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부목사님 형은 아직도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부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마리아가 잉태를 하고 세례 요한을 임신하고 있던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때 엘리사벳이 성령이 충만하여 큰 소리로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에 아이도 복이 있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누가복음 146-56)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후로는 말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린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이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라고 마리아가 찬양을 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함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거꾸로 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린 자를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마리아가 거꾸로 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무관심한 부자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운명이 뒤바뀌어서 부자는 지옥에 가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갈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당하고 있는 가난한 이웃에게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림절 네 번째 주일을 지키면서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눈을 감으면 무엇이 보입니까?

교인들이 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닙니까?

예전에 대학총장이 학생들을 보면 학생들이 돈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2000억이 넘는 호화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2000억을 넘게 드려서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에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라는 큰 프랭카드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네티즌이 <하나님께서 당 하셨습니다.>고 말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교회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특권을 누리는 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감으면 무엇이 보입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고통당하고 있는 가난한 이웃에게 무관심한 부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경고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하나님이 보여야 하고 거꾸로 된 하나님 나라가 보여야 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가난한 이웃이 보여야 합니다.

부자가 다시 구합니다.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것으로 오지 않게 하소서.”

그러자 아브라함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두 번째 경고의 말씀은 모세와 예언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살아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디 못하면 죽어서 회개할 기회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오시면 이 세상이 거꾸로 된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린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다고 거꾸로 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을 하였습니다.

눈을 감으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눈을 감으면 내가 관심있는 것이 보입니다.

눈을 감으면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 나라가 보이고 고통당하는 가난한 사람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능력합니다.

가난한 이웃의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것도 도울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무능력함을 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교회가 개혁된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질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거꾸로 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진내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서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죽은 후의 세계를 믿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이 있고 사후의 세계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말씀하는 이유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아계시기 때문이라 하시며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의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영원함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서 경고하고 계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눈을 감으면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이웃이 보여야 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강림절을 보내면서 그리고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이웃을 위해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절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가 눈을 감으면 우리가 사랑해야할 이웃이 보이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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