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2026년 06월 17일 수요일
# 산행지: 1400년 역사도 ‘이야기’ 머물러 있는 시대 의 공간 국골(國谷), 찾아
지리의 품속으로...ㅎㅎㅎ
# 산행시간: 13.9Km 07시간 34분
# 산행루트: 성안마을 - 국골 좌골(날끝산막골) - 하봉굴 - 이끼(천상)폭포 -
동부능선 - 두류봉 - 두류봉능선 - 성안마을
국골좌골(날끝산막골) : 물줄기가 영랑재와 영랑대 주변에서 시작됨
국골좌골(날끝산막골) : 평상시에도 수량이 풍부하며 상류측에 아름다운 폭포들이 매우 많이 산재해 있음
국골우골(선골) : 물줄기가 초암능선 촛대봉 주변에서 시작됨
국골우골(선골) : 평상시엔 거의 마른계곡이며 수량이 적고 산사태지역이 있으며 볼것이 별로 없음
초암능선: 영랑대에서 분기하여 염소농장에 이르며 국골과 대륙폭포골을 구분한다.
두류봉능선: 두류봉에서 분기하여 추성동에 이르며 허공달골과 국골을 구분한다.
국골(國谷)
국골·대궐터·추성·두지터’ 등
금관가야 마지막 왕 관련 지명
1400년 역사도 ‘이야기’ 머물러 있는 시대 의 공간
추성리는 1400년도 훌쩍 뛰어넘는 옛 이름과 흔적들이 전해지는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이다. 하지만 이곳의 역사는 아직 ‘이야기’에 머문 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라가 있던 골짜기라 하여 일컬어지는 ‘국골’, 왕이 머물렀다는 ‘대궐터’, 이곳의 마을 이름이 된 ‘추성(楸城)’이라는 산성과 ‘성안마을’, 그리고 식량을 보관하였다는 ‘두지터’ 등의 지명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과 관련되어 전해진다. 이웃 산청군의 구형왕릉, 왕산, 왕등재 등이 추성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지리산의 산줄기로 이어지고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렇듯 추성리는 오래된 비밀의 시간들이 서려있는 ‘역설적 역사 공간’이다.
성안마을
24.04.23 지리 산행사진(성안마을)
성안
추성 산성지
추성산성지(楸城山城址)는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87-2번지 일원, 해발 667m에 위치한 포곡식(包谷式) '
산성이다. 이 성은 성안 마을의 동쪽편 구릉에서 시작하여 반대편 구릉까지 연결하여 쌓은 흔적(성벽)이 남아
있다. 이 추성은 삼국시대에는 마천성(馬川城)이라 하였으나, 고려시대에 들어와 추성(楸城)으로 바뀌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잔여 산성의 주위는 약 1㎞에 이르며, 면적은 4.300㎡ 정도이고, 남쪽 성벽은 가로 30cm,
세로 20cm, 높이 35cm 정도 크기의 할석(割石)들을 사용하여 쌓았다.
축성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두 가지 시기로 추정되고 있다. 하나는 가락국 양왕 때 신라의 공격으로부터
도피장소 겸 군마(軍馬) 훈련장소로 쓰기 위해 축성되었을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이는 인근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전 구형왕릉과 관련된 일련의 유적지로 보는 견해이다. 또 하나는 삼국시대 신라가 백제와의
싸움을 위해 쌓았다고 보는 설이 있다. 산성지역 위에는 신라군들 또는 화랑들의 군마 훈련장이었던으로 추정
되는 ‘말달린평전’이 있다. 또 석성의 통로이었던 동문과 북문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성의 내부에는 군마 조련길을
비롯하여, 수비군의 초소 내지는 망루터로 보이는 유적지 등이 남아 있다. 또 서쪽 끝에는 “망바위”라 불리는
높이 약 10m 정도의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함양,산청에서 마천을 거쳐 남원으로 이르는 도로의 상황을 살피는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성산성지는 천혜의 요새와 같은 지형을 갖고 있다. 성의 서남 방향으로는 험난한 국골과 초암능선이 성의
위치를 숨겨 주고 있으며, 그 뒤에는 창암산 줄기가 외곽으로 둘러쳐져 있다. 또한 성의 동북쪽으로는 벽송사
능선이 막아주고 있고, 그 능선 너머에는 엄천강이 흐르고 있다. 사방에 트인 곳이라고는 오직 마천에서 운봉으로
나가는 길 뿐이다. 트인 길 끝으로는 신라와 백제가 수차례 혈전을 치렀던 운봉지역이 보인다.
지리산 북쪽, 현재의 남원 운봉지역과 아영면 아영고원에 위치한 아막산성지(阿莫山城址)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으로서, 서로 차지하기 위해 여러 번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격전장이었다. 즉, 남원지역은 백제
땅이었고, 함양은 신라 땅이었기에 국경 경계에 있었던 운봉과 아영지역은 공방전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따라서 수도가 멀리 경주에 있었던 신라에서는 유사시 신라군들을 즉시 출동시킬 수 있는 이 추성지역에 산성을
쌓고 군사들을 주둔시키거나, 군사훈련장으로 쓸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러나
624년경, 백제는 지금의 함양인 신라의 속함성(速含城)을 비롯한 5성을 공격하여 결국 추성을 비롯한 지리산
일대를 점령하게 되었다.
추성산성지와 신라.백제 간 격전지 모산성(아막산성)
삼국사기에 의하면, 모산성에서는 AD 189년에서 624년까지 5세기에 걸쳐 신라 백제 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가 여러 번 벌어졌다. 특히 제26대 진평왕(眞平王 579~632) 때에 이르러 무려 다섯 차례의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수많은 신라 군사들이 전사하였다. 당시 최고의 명장인 김서현 장군(김유신의 아버지)도 전쟁에 출전
하였지만, 백제 무왕이 보낸 8천여 명의 군사들에 의해 모산성이 함락되면서 함양의 마천과 수동, 산청의 생초 등
지리산 동북부지역이 백제한테 점령당하였다. 여러 번에 걸친 모산성 전투에서 신라가 백제에 패한 원인 중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모산성이 신라 수도인 경주에서 너무 멀었던 것이 원인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입장에서 모산성 전투에 신속히 군대를 출동시키기 위하여 운봉 지역 인근에 군사주둔지가 필요하였을
것인데, 그 군사 주둔지가 이 추성과 말달린 평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걷는 다
걷지 못하는 나를
상상하면 끔찍하여
운동하고 걷는다
하나 둘 셋
못하는 일이 많아질
시간이 오겠지만
할 수 있는한
근육을 잃지 않으려
걷고 운동을 한다
내 자신
행복 찾아
걷는 다
자연속으로
행복 찾아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기
늦기 전에
걷는 다
꺼비
# 산행지도
# 산행사진
광점동을 지나 성안마을 안쪽 끝 임도에 주차를 하고 산행 시작
성안마을 안쪽 끝 국골 들머리 가는데 독가에 있던 백구없고, 독가 주인도 없다.
성안마을 출발한지 20분쯤 지나 국골로 들어서니 아담한 소폭 하나,
가뭄으로 이 정도 수량이라도 감지덕지다.
초암능선, 두류봉능선, 사이에서 발원한 물이 국골을 형성,
따라서 국골 계곡을 따라 오르면 두류봉 또는 하봉 아래 초암능선쪽으로 향하게 된다.
국골은 고도 약 860m 지점에서 두류능선 사면길(정통국골)과 계곡길로 갈라지고, 다시 그 계곡길은 고도 약 1,030m 지점에서 날끝산막골과 선골로 다시 갈라지며, 날끝산막골은 마지막으로 고도 약 1,300m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좌골,우골로 갈라진다. 오늘 산행 루트는 날끝산막골 좌골 이다.
편안한 등로선택 국골 사면 길을 걷는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국골 루트 오늘 날씨 무척덥다, 구슬가튼 땀 흘리며 걷다보니, 국골사거리 분기점에 도착, 오늘 산행루트인 골로진입 직등 국골,좌골(날끝산막골)로 걷는다.
국골,좌골(날끝산막골)직등 분기점 쉼바위다.
막걸리 한잔 마시고, 걷는다.
가뭄으로 물이 말라 건계곡 이다.
계곡 걷는데는 편하다.
계곡치기, 대부분의 계곡치기가 그러하듯 진행은 더디고 체력은 배로 소모된다.
국골의 숨겨진 비경을 찾아.
한걸음 한걸음 고도를 올리며 더 깊숙히 들어간다.
어느 정도 고도를 올리니 계곡 정면으로 초암능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좌측 국골,좌골(날끝산막골), 우측 선골(해발 1,030m)합수부 도착
우측방향은 너른 계곡은 초암능선 촛대바위 아래로 이어지는 선골,
좌측 듀류봉 방향의 국골,좌골(날끝산막골)본류 지계곡이다.
골이 깊고 원시미를 고이 간진한 국골 중에서도 최상부 날끝산막골로 진입한다.
국골의 보석들이 그 모습, 본격적인 폭포탐방 산행을 비경을 하나씩 풀어본다.
지리 산신령이 숨겨놓은 보석들
눈과 마음에 차곡차곡 담는다.
국골의 보석들이 그 모습, 본격적인 폭포탐방 산행을 비경을 하나씩 풀어본다.
날끝산막골 마지막으로 고도 약 1,300m 지점 좌,우골 합수부다.
우측은 하봉굴쪽으로 이어지는 골,
초입부터 가파른 실폭이 진입을 막듯 걸려있고,
좌측 골은 두류봉 방향
그 중간쯤에 대형 고산 이끼(천상)폭을 만들고 있다.
우측 하봉굴 담사하고, 이끼(천상)폭포 담사 할까한다.
실폭 하봉굴 가는 들머리
하봉굴, 옛날 이곳을 처음 알았을 때는
지리꾼들의 흔적이 그히 없었는데 이제는 시그널도 많다.
우측은 하봉굴쪽으로 이어지는 골, 실폭포
하봉굴 초입 석벽
하봉굴
하봉굴, 옛날 이곳을 처음 알았을 때는
지리꾼들의 흔적이 그히 없었는데 이제는 시그널도 많다.
국좌골 최상단 이끼(천상)폭포(해발 1,470m)
국좌골 최상부의 이끼폭포,
지리산내 이끼폭으로는 최고의 높이를 자랑한다.
해발 1,470m쯤에 위치한 고도 또한 자랑거리다.
해발 1,470m에 위치한 고산 이끼대폭!!
언제봐도 그 모습이 장관이다.
암사면의 초록이끼는 절정을 이루며 생생하게 살아있고,
녹색융단을 타고내리는 허연 실폭도 아주 매력적이다.
이끼폭포에서 주능선까지는 2~300m 남짓으로 거리 얼마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매우 가파르다.
두류봉 안부로 붙는 산길을 찾아 걷는다.
동부능선
하봉옛길 마암쪽 들머리와 두류봉 사이 주능선
산행루트 두류봉능선 두류봉 방향으로 걷는다.
두류봉(1,617m)
두류봉(1,617m)에 올라서서 초암능선과 국골을 내려다 본다.
그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 국골 위쪽으로, 초암능선이 그 너머의 칠선계곡을 보호하려는 듯 절벽처럼 곧추서 있고, 그 뒤로 창암능선과 오공능선 그리고, 저 멀리 희미하게 삼정산능선이 어렴풋이 가늠되는 영 시원찮은 조망이다. 서북능선 창암산과 금대산 멋진 조망이다.
지리의 멋진 풍광을 몸으로 느끼며, 초암능선과 두류능선 사이의 국골을 내려다보며, 그 속에 숨겨있는 비경을 머리 속에 다시 한 번 그려본다.
두류능선
하산할 두류능선(말달릴평전?)을 바라본다.
겉보기에는 그저 밋밋한 능선길처럼 보이지만 실제 걸어보면 이 또한 만만하지가 않다. ㅎㅎㅎ
국골사거리
두류능선은 길이 없을 것 같은 국골사거리 조망바위를 가로질러 로프를 잡고 내려서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