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부 다녀오고 느낀 솔직한 생각 (자연·의료·문화)(2026.03.30.~2026.04.08.)
'숨이 멎는다는 말이, 이런 순간에 쓰이는 거였다.'
인천에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 요세미티, 라스베이거스, 자이언·브라이스 캐년, 그랜드캐년,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7박 9일 일정.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깊이 느끼고 온 여행”이었다.
가장 먼저 마음 깊이 남은 것은 역시 대자연이었다. 요세미티의 거대한 바위 절벽, 자이언과 브라이스 캐년의 신비로운 지형, 그리고 그랜드캐년의 압도적인 규모까지… 사진으로 보던 풍경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듯한 감동이 밀려왔고, 정말 ‘신의 걸작’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신이 미국을 편애한 듯한 자연이었다. 우리나라의 자연도 아기자기하고 아름답지만, 미국의 그 광활함은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하늘이었다. 중국발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로운 그곳의 하늘은 마치 만화 속 한 장면처럼 파랗고 투명했고, 그 위에 떠 있는 뭉게구름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정말 신의 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이 어마어마한 자연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였다. 관광지로 개방은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시설을 과하게 들이거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덕분에 그 풍경은 더 원시적이고 더 경이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풍경 앞에 서니 문득 한 장면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카메라만 켜지면, 어디선가 모래바람을 가르며 카우보이가 걸어 나오고, 서로를 노려보는 총잡이들의 긴장감이 흐르다가—이내 총성이 울려 퍼질 것 같은 순간.
조금만 상상력을 더 보태면, 인디언과 백인 기병대가 거칠게 맞부딪히는 장면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은, 이곳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하나의 서부 영화 세트장이었다.
그만큼 이곳의 자연은, 마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 대륙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듯—몇백 년의 시간을 가볍게 건너 지금까지도 거의 손대지 않은 원형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했다.
여담이지만, 어릴 때는 서부영화를 보면서 무조건 백인 편을 들었었다. 그땐 인디언을, 산채로 사람의 머리가죽을 벗기는 ‘무섭고 거친 존재’ 정도로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콜럼버스가 오기 전부터 이미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고, 활과 화살로 자신들의 터전과 가족을 지키려 했던 것뿐인데…
오히려 총을 들고 와 쏘고, 땅을 빼앗고, 결국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몰아넣은 쪽은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쪽 편만 들던 어린 시절의 나. 지금 떠올리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피식 웃음이 났다.ㅋ
게다가 그분들, 우리와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도 아니고… 같은 동북아시아 계통의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라니. 몽고반점도 같이 찍고 태어나는 사이였다는 게 묘하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미국은 석유 비축량도 많다고 들었는데, 후대를 위해 자국의 자원을 거의 꺼내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이 자연 역시 후손들을 위해 일부러 그대로 남겨 두는 건지, 아니면 땅이 너무 넓어서 굳이 서두르며 개발할 필요가 없는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여유와 선택 자체가 참 부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강하게 느껴졌던 점. 미국의 자연은 ‘위험함까지도 그대로 둔다’는 것이었다.
절벽 끝에 서 보면 아찔할 정도인데도, 울타리 하나 제대로 쳐져 있지 않은 곳들이 많았다. 낭떠러지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는데, 경고 표지조차 거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예전에 “인생샷을 찍으려고 뒤로 물러나다가 사고가 났다”는 해외 기사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직접 가보니 실감이 났다. 정말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지형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안전 울타리를 설치하고, 곳곳에 경고판을 세웠을 법한 상황들—혹여 사고라도 나면 곧바로 안전관리 책임을 따지고 소송으로 이어졌을 장면들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마저도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맡기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둔다’는 인상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았다.
어쩌면 참으로 자유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그 바탕에는 오랜 민주주의 속에서 형성된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한편으로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주한 화려함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도박장의 눈부신 불빛과 밤을 밝히는 도시의 열기, 그리고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곧바로 펼쳐지는 압도적인 대자연. 이 극단적인 대비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미국 서부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공의 화려함과 자연의 장엄함이 공존하는 풍경—그 조화가 유난히 인상적인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그 광활한 자연 한가운데 서 있으니, 어딘가 모르게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자긍심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멀리서 볼 때는 다소 과하게 느껴졌던 ‘아메리칸 프라이드’조차, 이 풍경 앞에서는 결코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또 다른 미국의 매력을 경험했다. 바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였다. 단순히 놀이공원이라고 하기엔 규모와 퀄리티가 어마어마했다. 헐리우드 영화 속 장면들을 실제 세트와 기술로 재현해 놓고, 스릴 넘치는 라이드와 쇼를 결합한 이 스튜디오는 어른들까지도 감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영화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참여하게 만드는 상술은 놀라웠다. 스튜디오 내부 곳곳에는 영화사 자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구조가 숨어 있었다. 영화의 세계를 생생하게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기념품과 다양한 체험 상품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식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방문객을 매료시켰다. 헐리우드 영화 산업의 규모와 그들의 마케팅 전략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행하면서 느낀 사람들의 분위기도 흥미로웠다. 기본적으로 매너는 좋다. 줄을 잘 서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개인의 공간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정이 넘치고 따뜻하게 챙겨주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그래서인지 여행자로서는 편하지만, “살기에는 한국이 더 좋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리고 여행 중 작은 에피소드도 하나 있었다. 시차가 바뀌면서 몸이 적응을 못했는지 방광염 증상이 살짝 올라왔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 힘들었다.
한국이었다면 바로 병원 가서 진료 보고 항생제 처방받으면 금방 해결될 일인데, 미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산골 지역에도 파머시(약국)는 있었지만, 항생제는 처방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어서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의사를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병원 접근성이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달랐다. 여행자인 내가, 그것도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 신분으로 진료를 받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고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체감상 몇백만 원은 들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은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아플 때 바로 병원 갈 수 있고, 처방 약도 빠르게 조제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 여행 중에야 비로소 제대로 느끼게 됐다.
특히 의료 시스템과 제약 접근성은 확실히 우리나라가 훨씬 낫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 부분이었다.
또 하나, 예상 밖으로 인상 깊었던 건 ‘미국의 소’였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 우리가 흔히 걱정하는 광우병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자연 방목으로 키워지고, 목초를 먹으며 자라는 모습은 오히려 더 건강하고 자연친화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이런 환경에서 자란 소가 더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건 하늘이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깊고 선명한 파란 하늘, 그리고 솜사탕처럼 떠 있는 뭉게구름. 그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과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정말 자유 그 자체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건 단순한 관광 이상의 것이었다. 거대한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지켜보며, 역설적이게도 내가 당연하게 누려온 한국에서의 일상과 그 장점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비일상'의 틈입을 통해, 무뎌졌던 일상의 소중함을 환기하는 데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분명 매혹적이었지만, 여행자의 찬탄과 생활자의 무게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실감했다. "여행은 여행으로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은 그래서 더 확고해졌다.
그럼에도 여행은 일상을 더 버티며 살아갈 힘을 주기에, 우리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시차를 견뎌가며 다시 길을 나서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광활한 자연과 하늘, 그리고 헐리우드의 상상력이 빚어 낸 마법 같은 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미서부 다녀오신 분들, 혹시 미서부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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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전하나 작성시간 26.04.15 몇년전에 저도 같은코스로 다녀왔는대 ~~ 추억속에 미국에 있는듯 했네요
그땐 울엄니가 계셔서 매일매일 통화하면서 안심시켜줫었는대 작년에 떠나시고 안계시니 그때 그시절이 더욱 간절하네요 ~~ 지금 이 순간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프네요 ㅠ ㅠ -
답댓글 작성자아름다운 여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18 몇 해 전 다녀오신 그 길이, 제 글을 따라 다시 기억 나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가 이 여행기를 쓴 보람이 있네요. 감사하게도요.
시간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으셨던 기억이 문득 숨을 고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어머니 생각도 함께 스며나오셨겠지요.
‘엄마’라는 말은 늘 그렇듯, 부르기만 해도 마음 한켠을 조용히 적셔 놓습니다.
오늘 밤, 꿈이라는 가장 부드러운 길 위에서라도 다시 한 번 어머님을 따뜻하게 마주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숲속우산 작성시간 26.04.17 엄마랑 같이 다녀왔던 코스라 다시 그 현장에 있는 듯 소설가 한분이 여기 있네요. 좋은 사진 진정성있어서 감동스러운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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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아름다운 여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18 어머님과 함께 다녀오셨다니 참 부럽습니다. 그만큼 어머님께서 건강하고 여전히 생기 넘치신다는 뜻이겠지요.
제 글을 진정성 있게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어머님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지금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행으로 이어지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전하나 작성시간 26.04.23 new
똑같은 곳을 다녀왔는대도
추억의 글솜씨는 많은 차이가 있내요 ~~
전 표현할수없는 ㅠ ㅠ
다만,,,
금문교를 지나갈때 샌프란시스코 노래를 들려주시는대 신나면서도 눈물이 흐르던 기억이 선명하네요 ~~
이젠 체력이 안되 감히 미국을 간다는게 엄두가 안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