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박성남)
거장,,그림자로부터 의 탈'
동시에 그뿌리를 '예찬'해본다
" 국민화가라고 '불리는 나의 아버지ㆍ
ㅡㅡ탈'kenosis_;ART의 도상
박수근)));아버지는 1950년대와 60년대 전후 ,이 땅의 고단한 서민들의 삶, 슬픔을 캔버스 위에 한 겹 한 겹 묵묵히 두텁게쌓았다 . 물감을 덧칠하고 또 덧칠하여 만들어낸 질박한 마티에르는, 아버지가 시대를 품어 안았던 ,
절규의 방식이자, 당신만의숭고한 사랑의 언어였다.
나는 아버지의 품 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그 궤적을 수액처럼 빨아들였고 자라났다. 그러나 예술가로서 홀로 서기 위해 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 했고,,,선택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물질을 끊임없이 ‘쌓아 올림’으로써 빈결핍의 시대를 위로했다면, 나는 내 화폭에서 물질을 ‘도려내함몰함 으로써 현대의피로를 덜어내고자 했다. 그것은 내 화업의 숙명적인 ‘탈(脫)’의 선택 바른 시도였으며, 신학적 명제인 ‘케노시스(Kenosis, 자기비움)’를 조형적으로 실천하는 고해성사였다.
현대인들은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풍요의 이면은 지독한 무국적성과 무정체성,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망의 허무함으로 번득인다.
나는 화려한 원색과 과잉된 물질들로 가득 찬 현세에 화면을 동그랗게 도려내고 파내는 물리적 공간이 필요했다 ㆍ그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앓고 있는 상처의결핍과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일이었으며, 동시에 내 안의 에고(Ego)와 욕망을 덜어내는 처절한 ‘자기비움’의 의식이었다.
2. 본문: 오목한 상처의 공간, 그곳에 차오르는 영성의 빛
캔버스 위에 오목하게 파인 둥근 구멍들은 인간의 깊은 고독이자 치유되지 못한 상처의 흔적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존재의 본질은 그 텅 빈 공간, 즉 ‘공(空)’의 시학에서 비로소 고개를 든다. 다 비워내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무(無)의 심연 속으로, 비로소 새로운 창조의 기운이 깃들기 시작한다.
태초에 영이신 하나님께서 혼돈과 흑암, 공허만이 가득하던 대지에 "빛이 있으라" 명하시며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셨듯, 내가 의도적으로 덜어낸 화폭의 빈자리에는 배후로부터 은은하고 푸근한 역광이 흘러나온다. 내 작업에서 ‘빛(Light)’은 단순한 광학적 효과가 아니다. 그것은 어둠과 혼돈을 몰아내는 신성한 사랑의 현현이며, 물질에 가려져 있던 영성적 회복의 신호탄이다.
비움의 터널을 통과한 빛은 이내 청각적인 울림으로 치환된다. 나의 대표적인 연작인 ‘나팔 불 때’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나팔의 곡선과 형상들은 소리를 시각화한 매체다. 좁디좁은 통로를 관통하여 마침내 세상 밖으로 확산되는 나팔의 구조는, 내면의 철저한 케노시스를 경험한 영혼이 맞이하는 기쁨의 소리이자 절망을 깨뜨리는 복음의 외침이다. 물질을 탈탈 털어내어 가벼워진 영혼만이 이 축제의 노래를 온전히 연주할 수 있는 법이다.
3. 심화: 달항아리에 정박한 폐전지함, 문명 비판과 영적 충전
최근 나의 사유는 전통과 현대의 이질적인 만남을 통해 더욱 확장되고 있다. 조선 백자의 미를 대변하는 ‘달항아리’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전지함(다 쓴 건전지 수거함)’의 결합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의 달항아리는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이는 분리형 구조 때문에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 못하고 찌그러져 있다. 그러나 그 비정형의 둥근 곡선 안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태반 같은 따스함이 깃들어 있다. 무엇보다 달항아리는 내부가 완전히 비어 있는, 그 자체로 완벽한 조형적 ‘케노시스’의 산물이다.
이 영성적이고 비어 있는 달항아리의 경계선에 나는 ‘폐전지함’을 정박시킨다. 전지(Battery)는 현대 기술문명과 자본주의적 욕망을 구동하는 핵심적인 물질 매체다. 스마트폰을 켜고, 자동차를 움직이며, 도시의 밤을 밝히던 전지들은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면 이내 차갑고 독한 쓰레기로 전락하여 버려진다. 화학적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이 ‘폐전지’들은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초상과 닮아 있다. 끊임없는 경쟁과 성장의 질주 속에서 내면의 영혼을 모두 소모해 버린 채, 번아웃(Burn-out) 증후군에 시달리며 방전되어 버린 인간성의 메타포인 것이다.
그 방전된 괴로움과 생태적 독소를 가득 품은 폐전지함이 달항아리라는 구원의 방주에 닻을 내린다. 가장 세속적이고 오염된 현대의 폐기물이 가장 성스럽고 비어 있는 전통의 공간과 조우하는 순전한 역설이다.
본래 폐전지함은 '다시 쓰기 위해 모으는 재활용의 거점'이다. 나는 이 물리적 수거함의 개념을 영적인 차원으로 upcycling(업사이클링) 한다. 에너지가 고갈된 채 쓸쓸히 찾아온 현대인들의 상처를 달항아리의 푸근한 품 안에 정박시키고, 그 비어 있는 공간을 흐르는 하나님의 신성한 사랑과 달빛으로 다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작업 안에서 폐전지함은 소멸의 무덤이 아니라, 영적 에너지를 새롭게 충전하여 문명으로 되돌려 보내는 ‘재생과 회복의 정거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4. 결론: 상처를 넘어 치유의 복음으로
결국 나의 예술은 채우기 위한 비움이며, 살리기 위한 죽음의 기록이다. 캔버스를 도려내어 만든 오목한 홈도, 달항아리의 텅 빈 내부도, 에너지가 빠져나간 폐전지의 쓸쓸함도 모두 하나의 진리를 향해 수렴된다. 나를 비워내지 않고서는(탈·脫) 결코 신성한 구원의 빛을 담을 수 없다는 역설이다.
나는 오늘도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깎아내고 혼합 재료를 입히며 묵묵히 기도를 올린다. 이 거칠고도 고요한 조형적 행위들이 물질문명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지쳐 쓰러진 현대인들의 마음에 하나의 작은 징검돌이 되기를 소망한다. 방전된 영혼들이 내 작품이라는 작은 항구에 잠시 정박하여, 상처의 구멍 사이로 흘러나오는 위로의 빛을 마주하고, 다시금 살아갈 영적 동력을 가득 충전해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비워진 자리는 결코 공허로 끝나지 않는다. 그곳은 이미 하나님의 가장 따뜻한 사랑의 노래와 생명의 빛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댜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