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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 然 其 然

상보성 원리

작성자곽내혁|작성시간07.05.30|조회수453 목록 댓글 0

상보성 원리


소광섭 (서울대 교수·물리학)


1. 머리말


상보성 원리는 보어가 1927년에 양자역학의 해석을 위한 틀로 도입한 개념인 바, 원자현상의 입자-파동 이중성 및 위치-속도 측정의 불확정성 등을 이해하는 인식론적 바탕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 원리는 물리현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현상과 사회현상 등에까지 광범하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지혜이며 조직의 원리라고 까지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신체의 제어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상호대립적으로 작용하지만, 또한 둘이 다 있어야만 완전해지는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다른 예로 거의 모든 동물들은 눈과 귀를 상보적인 정보창구로 갖추고 있다. 눈과 귀는 상보적이긴 하지만 상호 대립적인 측면은 없으므로 적절한 예가 아닌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묘하게도 빛에 의존하는 눈은 사물을 주로 입자적 형태로 파악하고 (이유는 빛의 파장이 매우 짧기 때문이다.) 귀가 의존하는 소리는 파동의 형태로 정보를 전달해준다. 그래서 눈과 귀는 물리학의 입자와 파동을 이용하는 적절한 예로 볼수 있다.

보어는 그의 상보성 원리를 빛을 이용한 치료사들의 모임에서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물리학 밖으로의 이 원리를 확대한 첫 대상으로 생명현상을 고려했었다. 그 후, 중국의 음양 사상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태극도를 집안 문장으로 삼기도 했다. 이 글은 이 순서를 따라 먼저 상보성 원리를 보어의 전기에서 간추리고 요약하여 설명했고, 이어 생명현상에의 적용을, 끝으로 음양사상과의 관련성을 논의하였다.


2, 상보성 원리


하이젠버그가 양자역학의 행열방정식을 발견한 후 이것으로 원자세계의 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실험적으로 예측하는데에는 성공했으나 원자현상들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막연하고 때로는 절망스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코펜하겐에서 보어와 하이젠버그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몇 달씩 집중적인 논의를 계속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한채 지친나머지 논의를 잠시 중단하고, 1927년초 보어는 부인과 함께 노르웨이로 스키를 갔다.

이주간의 스키여행 후 원자세계의 역설적 수수께끼들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해법을 갖고 코펜하겐에 돌아온 보어는 이른바 '상보성' Complementarity 이란 개념을 도입하였다. 돌아오자마자 하이젠버그를 찾은 보어는 거의 두달동안 끊임없이 토의와 연구에 몰두하였다. 각종실험 상황에 일일이 적용하여 이 아이디어의 적합성을 검토해보아야만 했다. 날카로운 비판력으로 특히 유명한 파울리 Pauli와도 연락을 해가면서 상보성 가설의 문제점이 있는지를 빈틈없이 따져나갔다.

그 해 봄이 되어 '상보성 원리'의 이론이 완성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디락 Dirac은 "물리학자의 세계관에 대한 굉장한, 어쩌면 사상 최대의 변화를 몰고왔다." 라고 말했으며, 오펜하이머

Oppenheimer는 '인류의 사상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 이라고 표현했다.

'상보성 원리'는 쉽게 말하자면 원자 세계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두 종류의 상반되는 명제가 동시에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서로 모순되는 두 관점이 상호 보완적으로 합쳐서 사용할 때에 원자 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호 모순이면 둘 중의 하나만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으로 버려야 하는 것이 일상생활의 논리인데, 이것이 미시 세계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우리의 지식 활동의 기본문법인 논리가 무너지는 듯한 감을 주는 것이다.

상보성 원리는 입자-파동의 이중성에 대한 인식론적 이해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고전물리의 개념틀에서 보면 입자와 파동은 상호 배타적이어서 하나의 현상에 적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자 현상은 역설적으로 보였다. 예를 들어, 전자는 입자로 행동한다. 전자는 공간상의 한 점을 차지하며, 이 점에 에너지-질량이 모여있다. 텔레비전의 스크린상에 그림을 그려내는 것은 전자가 부딪칠 때 형광을 내는 것이다. 스크린을 확대해 보면 전자 하나하나가 부딪치어 점광을 내는 것을 볼수 있으며, 이것은 전자가 입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자들간의 충동실험을 해보면, 당구공들의 충돌처럼 에너지와 운동량이 바뀌는 것을 보아도 역시 입자임을 알게 된다. 한편 드브로이 파동이나 쉬뢰딩거 방정식이 보여주듯이 전자는 파동임을 의심할 수 없는 측면들이 있다. 파동의 가장 극명한 실험은 간섭현상인 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나타나는 물결 무늬의 모양들이 전자의 실험에서도 뚜렷이 관찰되는 것이다.

보어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개념이 서로 상반되지만 이 둘을 다 써야만 원자세계의 이상한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입자성과 파동성은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란 것이다. 보어의 말을 빌리면 "처음 보기에 입자와 파동 현상들이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일지라도, 원자세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일상적 언어로 애매모호함이 없이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둘 다를 상보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상반되는 양측면을 함께 잡아야만 미시세계의 경험을 제대로 기술할 수 있으면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예측은 고전물리에서와는 달리 확률적으로만 할수 있도록 특성이 달라지긴 했지만.

상보성 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원리는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 이다. 전자나 광자같은 알갱이들은 위치와 속도(또는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함으로써 상태를 알수있고, 방정식에 따라 그 후의 상태를 계속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고전물리학적 자연지식체계의 기저를 이루고 있었다. 원자현상에서, 예를들어 수소 원자에서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계속 추척하여 궤도를 그려낸다는 것은 실제로는 할수 없는 일이다. 이 사실을 하이젠버그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하는 실제적 실험을 분석해봄으로써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한계를 수치로서 표현할수 있었다. 이것이 불확정성 원리이며 양자역학의 기본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확정 원리가 수학적인 진술인데 반하여, 상보성 원리는 철학적이고 포괄적인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확정성 원리를 이해하는 인식론적 틀을 제공한다고 볼수도 있다. 알갱이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행위와 속력을 측정하는 행위가 서로 방해되는 때문에 동시에 얼밀히 측정 할수 없지만, 이 알갱이에 관한 지식은 두 요소의 정보가 함께 있어야 완전하게 되므로 이들은 상보적 관계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위치에 관한 지식과 속도에 관한 정보가 서로 보완적이란 뜻이다.

보어는 상보성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입자와 파동, 위치와 속도 등 상반적인 개념과 량들을 종합하여 원자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자연에 관한 우리의 지식체계의 혁신을 가능케 했다. 상보성은 자연법칙에서 요구되는 필수불가결의 논리적 도구가 된다고 그는 보았다.

보어가 그의 상보성 원리를 처음 발표한 것은 1927년 9월 이태리의 코모호수 Lake Como에서 볼타 Volta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물리학회의에서 였다. 그의 발표 논문제목은 "양자가설과 원자이론의 최근 발달상황" The Quantum Postulate and the Recent Development of Atomic Theory 이었는데 물리학적이면서 철학적인 논문이었다. 슈뢰딩거 Schrodinger와 폰라우에 Von Laue는 보어의 해석이 설득력도 없고, 결정적 결론에 이르지도 못했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아인시타인은 이 회의에는 없었으나 곧이어 개최된 (1927년 10월) '제 5차 솔베이 물리학회' the Fifth Physical Conference of the Solvay Institute에서 양자물리의 인식론적 측면에 대해서 보어와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아인시타인, 쉬뢰딩거 등은 보어의 상보성원리나 불확정성 원리가 제시하는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일수 없다고 보았다. 그것은 과학의 가장 중요한 바탕인 확실성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었던 때문이다. 아인시타인은 "양자이론의 통계적 특성은 물리계에 대한 불완전한 기술(記述)에 기인함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아인시타인은 상보성 원리를 부정할만한 가상 실험상황들을 제시했고, 보어는 그때마다 날카로운 분석으로 확률해석의 타당성을 입증해보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시타인은 자연의 실재성과 물리계의 완전한 파악에 대한 그의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양자역학 해석에서 확실성과 확률성의 이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3. 상보성 원리와 생물학적 비유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물리학적 진술보다는 철학적 진술에 더 가깝기 때문에 양자물리의 계속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물리학 밖의 과학철학 등에서 더 많이 논의되어 왔지않나 싶다. 1932년 8월에 코펜하겐에서 열린 "빛치료법에 관한 국제학회" 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Light Therapy의 개막연설에 초대된 보어는 '빛과생명' Light and Life란 제목으로 상보성 원리의 의학에의 적용을 시도했다.

생명이 없는 물질만을 다루는 물리학자가 생명에 관해서 논한다는 것이 상당히 위험스런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물질과 생명을 완전히 분리해서 보는 시대는 이미 종언을 고할때가 됐다고 느겼던 보어는 '빛치료사'들의 모임에서 연설할 용기를 내었다. 여기서 그는 일반인들에게 상보 성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빛은 일종의 파동현상이다. 그런데 어떤 물리실험에서는 빛이 입자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역설적 상황은 물리학 사상 처음있는 일로서 물리학자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광량자 하나의 궤적을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조사하려는 광량자의 운동에 관찰행위가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 현상에 관한 완벽한 지식을 얻으려는 생각은 포기할 수밖에 없으며, 오직 확률적 정보를 얻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설명은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과학사에서 종종 볼수 있듯이, 필수불가결한 것처럼 보이던 개념의 근본적 한계를 인식하게 되면 그때까지 상호 배타적으로 보였던 현상들의 합리적 이해를 가능케하는 더 광범하고 강력한 새로운 관점이 얻어진다.

보어는 상보성 원리를 생명현상의 연구에 비유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을 시도했다. 상보성 원리의 인식론적 의의를 관찰행위가 대상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따른 정보획득의 한계에 있다고 본 그는 생명체의 관찰에서도 유사한 한계가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과정을 철저히 분석해내려고 하다보면 조직을 절단하고 죽은 샘플로 만들 수밖에 없게 되며, 이것은 결국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무생명의 물질을 연구하는 것이지 생명체를 연구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생명의 고유한 특성을 연구하려면 생명체의 계를 살아있도록 유지해야 되고 그러려면 물리화학적 구조와 과정에 관한 정보획득을 위한 관찰은 제한되게 마련이다. 이것은 원자의 고전 물리학적 관점에서본 구조를 완벽히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한것과 유사하게 생명현상 고유의 물리화학적 과정에서도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 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보어는 이 비유가 심리학적 관찰의 경우 더 잘들어 맞는다고 했다. 원자물리에서 관찰대상(원자)은 관찰도구 (빛)의 작용에 의해서 근본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관찰되기 전의 원자 자체를 알수도 없고 따라서 논할수도 없다. 심리분석에서도 질문이나 조사행위 자체가 그 사람의 정신이나 생각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관찰이전의 심리 상태를 알수가 없다. 이런점에서 상보성 원리가 제시하는 관찰의 한계에 대한 인식론적 의의는 생물이나 심리문제에 까지도 광범위하게 적용될수 있다.

이 국제 빛치료사 회의에서 청중들의 반응은 실망스러울 정도였으며, 전혀 이해를 못한 가운데 예의상 박수를 쳐준 정도였었다. 그러나. 이 강연이 전혀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날의 강연장에는 코펜하겐 연구소원이었던 델부르크 Max Delbruck란 독일의 젊은 물리학도도 참석했는데 그는 이 강연에 깊은 인상을 받아 강연 원문을 얻어 자세히 공부를 했다. 그는 생물학 연구로 방향을 바꾸어 세계적 명성을 얻게끔 되었다. 이 강연후 30년쯤 지났을 때 델부르크가 꼴로뉴의 '유전학 연구소' the Institute of Genetics in Cologne를 창설하면서 개소식 연사로 보어를 초청하여 '빛과 생명-재고찰' Light and Life-Revisited의 강연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4. 음양과 상보성 원리


보어는 그의 과학적 업적과 덴마크 문화생활에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귀족 작위를 받게 되었는데, 귀족 가문의 문장을 선정함에 있어서 방패에 태극도를 그려넣고 그위에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 CONTRARIA SUNT COMPLEMENTA란 문귀를 새겨 넣었다. 이것으로 그가 상보성원리를 자신의 삶과 학문을 대표하는 철학으로 여겼음을 알수있고, 또한 그가 동양사상 특히 주역과 음양에 크게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보어는 1937년 중국을 방문하였고 이때 음양사상에 감명을 받았으며 이것이 그가 동양문화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상보성의 개념은 음양사상의 물리학적 적용이라 할수 있고 뒤집어 말하면 음양사상은 상보성 원리를 일반화하여 모든 자연현상, 나아가 모든 인간 문화생활에서의 본질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모순되고 대립되어 보이는 두 요소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고 보는 전래의 음양사상이 현대물리학에서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것은 놀랄만한 점이라 하겠다.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해석 원리가 곧 상보성이라 할수있겠다. 입자-파동, 위치-운동량 등 현상인식을 위한 개념의 짝이 상호 대립적이면서 서로 보완적으로 둘다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음양사상에는 입자-파동, 위치-운동량 같은 물리적 개념이 적용되기에는 약간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그보다는 동과정, 열과한, 남과녀, 팽창과수축, 밝음과어둠 등 논리적으로 상반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의 역동적 조화에 더 관심이 모아졌다고 보겠다. 따라서 사물의 인식과 지식에 관한 한계보다는 사물존재의 특성을 파악하는 원리로서 음양사상의 특성이 있다는 점에서 상보성 원리와 음양사상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상보성 원리를 물리계의 관찰에 수량적 표현을 한 것이 불확정성 원리이고, 이 후자에 바탕하여 구성한 수학적 방정식 체계를 양자역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양자역학을 생명현상에 응용하면 유전인자들의 복제기작이나 돌연변이의 확률등도 계산할 수 있게된다. 이와 나란하게 음양사상도 구체화의 과정을 밟을수 있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떠오르는 데로 써보면 음양사상의 기호적 구체화가 주역이 되고, 이 주역의 인체에 적용이 한의학이라 할수 있을까? 즉, 다음과 같은 비교가 성립할수 있을까?

수식화

상보성 원리 ---------------→ 양자역학 ------------→ 분자생물학

기호화

음양 사상 -----------------→ 주역 ---------------→ 한의학

음(--)과 양(蝡)을 이진법적 기호내지는 숫자로 파악하면 주역은 단순히 26=64 개의 기호의 복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천년을 두고 주역을 연구하고 그에 빠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옴은 무슨 연유일까? 이에는 무엇인가 깊은진리가 숨어있기 때문아닐까? 그러나 이를 알아내려는 것은 마치 상보성 원리와 파동함수 기호를 받은 원시인이 그로부터 양자역학을 명상으로 얻어내려는 일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다. 한편 그 사람이 상보성 원리와 분자생물학적 법칙을 받았다면 어쩌면 양자역학을 찾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같은 맥락에서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음양사상과 한의학의 지식으로부터 주역의 숨은 진리를 밝혀낼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경우는 주역을 열심히 공부하면 한의학까지도 문리가 트인다고 하는데, 그 반대로 한의학을 합리적으로 이해한다면 주역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제안해 보는 것이다. 상보성 원리나 음양사상은 자연과학이나 의학에 한한 것이 아니라 넓게 경제, 문화, 사상 등에 까지도 그 함의가 논의될 수 있다. 한 예로 이명현 교수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글을 맺고자 한다. "상호 배타적인 관계속에서만 이해되어 온 부분과 전체의 근대적 범주도 이제 설곳이 없어졌다. 그것은 전체의 구조를 내재한 부분(개체)과 전체의 구조를 인식하는 개체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의 근대적 형이상학적 개념은 현실적 적합성이 없다. 자유는 개체의 활성화의 원리로, 평등은 전체의 균형의 원리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욕망의 대상을 무제한하게 획득함으로써 삶의 기쁨을 추구하던 소비지상주의의 삶의 철학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자연이 더 이상 인간의 삶의 보금자리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자연이 숨쉴 때 인간이 웃을 수 있다. 독존과 유아의 문법은 청산되어야 한다. 삶의 질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근대적 경성 국가 (硬性國家)가 사라져가는 국경없는 세계경제 시대에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문법이 요청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들의 관계가 지배와종속, 정복과 투쟁의 관계가 아니라 맞물림의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음양은 맞물림의 전형이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적 모순과 부정의 사유로부터 벗어나 맞물림의 관계를 통한 더불어 있음의 새로운 차원의 사유의 가능성을 엿볼수 있다.








참고 문헌



1. Niels Bohr : The Man, His Science, and the World They Changed by Ruth Moore, The MIT Press, 1985


2.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프리초 카프라 지음, 이성범·김용정 옮김, 범양사 출판부, 1989


3. 송희성 : 양자역학, 교학연구사, 1984


4. 근대성과 한국문화의 정체성, 기조 발제 (이명현), 철학연구회편, 199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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