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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가르침 / 법정스님의 화안애어

작성자광주전남환경연대|작성시간19.01.05|조회수55 목록 댓글 0

철따라 꽃이 피어나는 이 일이 얼마나 놀라운 질서인가. 그것은 생명의 신비이다. 꽃이 피어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꽃의 정기를 머금고 있는 나무가 스스로의 충만한 삶을 안으로 안으로 다스리다가 더 견딜 수 없어 마침내 밖으로 터뜨리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보면 꽃은 향기로운 미소다. 칙칙한 수목들만 있고 꽃을 피우는 나무나 풀이 없다면, 숲은 미소를 잃은 얼굴처럼 삭막하고 딱딱할 것이다.

 

미소를 잃은 얼굴은 살아있는 삶의 얼굴이 아니다. 남의 앞에서 그럴만한 분위기도 아닌데 헤프게 웃는 것은 오히려 천박해지기 쉽다. 그러나 사람을 대했을 때 미소가 없는 굳은 얼굴은 맞은편에게 긴장감을 불러 일으켜 말문을 열기 어렵게 한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보면 온화한 얼굴 상냥한 말씨(和顔愛語)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 어떤 종파를 물을 것 없이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온화한 얼굴과 상냥한 말씨를 지녀야 한다. 아니 그와 같이 지니려고 일부러 노력할 것도 없이, 저절로 안에서 배어 나와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의 표정과 말씨는 바로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들 기억의 바다에는 수많은 얼굴과 목소리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한때 스치고 지나간 얼굴이요 목소리일 뿐, 단 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우리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맑고 투명하게 자신을 일깨워준다면, 그 얼굴과 목소리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수호천사(守護天使)의 그것일 것이다.

 

밖에서 찾지 말 것이다. 우리들 자신은 과연 그 얼굴과 그 목소리로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가 나그네가 되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새삼스레 구경거리를 찾아나서는 것은 아니다. 관광과 여행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관광을 흥청거리는 소비이지만, 여행은 삶의 탐구다. 일상의 굴레에서 훨훨 떨치고 벗어남으로써, 온갖 소유로부터 해방됨으로써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신의 참 모습 앞에 마주서는 것이다.

 

둘레의 사물은 곧 내 자신을 비추는 거울, 그 거울 앞에서 내 얼굴과 말씨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다면, 여행은 자기 탐구의 길이다.

 

[법정 스님 저, 버리고 떠나기, pp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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