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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만 목사님

[스크랩] 송년주일설교-오 신실 하신 주(사63:7-9)

작성자주님의숲|작성시간20.01.02|조회수213 목록 댓글 0

주님이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혜

이사야63:7-9

 

오늘은 2019년 마지막 주일, 송년주일입니다.

송년주일은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인 줄 압니다.

아울러 부족했던 삶을 회개하며 다시 한 번 새롭게 결단하고 결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지나간 삶을 돌이켜보며 감사하고, 회개하며 새롭게 다짐하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권인줄 압니다.

이 일을 잘 하기 위하여 각종 기념일을 제정하여 지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송년주일을 맞이하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고 회개하고 새롭게 우리의 삶을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제3이사야에 속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이사야서 한권으로 나옵니다만 성서학자들은 1장부터 39장까지는 유대나라가 망하기 전의 유대 상황을 기록한 제1이사야로 봅니다.

40장부터 55장까지는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유배당하는 시절에 기록된 제2이사야로 보고, 56장부터 66장까지는 바벨론 포로 이후에 기록된 제3이사야로 봅니다.

그렇게 구분할 때 오늘 우리의 본문은 제3이사야에 해당됩니다.

이때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황폐해진 고국의 처참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 그들의 모습을 시편 126편에서 이렇게 감격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해방의 기쁨이 얼마나 크고 좋았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기쁨을 간직하고 고국에 돌아온 그들 앞에 펼쳐진 고국의 황폐한 모습은 절망 그 차제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충격인지를 느헤미야는 동생 하나니가 전해주는 예루살렘의 상황을 듣고 수일동안 울고 슬퍼하며 금식하였다고 했습니다.(1:3-4)

돌아온 기쁨도 잠시 이 모습 앞에서 백성들은 기쁨이 슬픔으로, 희망이 절망으로, 감사가 원망으로 바꾸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놓으셨습니까? 하는 원망이 싹틀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해방에 대한 감사와 미래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원망의 싹을 잘라버리고 겸손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할 때 미래에 대한 소망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회개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선지자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합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과 그의 사랑과 그의 많은 자비와 큰 은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상황이 어려울 수 있고 절망적인 상황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고 소망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시고 인도하였는가를 말씀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큰 은총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지금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바벨론과의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의 포로생활이 또한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전쟁과 70년의 포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지켜 주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이렇게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시간 정말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어떤 것보다도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때로는 사고로 때로는 병으로 때로는 늙어서 죽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외국의 예를 보면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이 또한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여 주셨다는 반증입니다.

전쟁에서 지켜 주셨고 포로 생활 속에서 지켜 주셨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을 지켜 주셨습니다.

각종 질병에서 각종 사고에서 여러 좋지 않은 환경에서 지켜 주셨고, 밤에도 낮에도 지켜주셨고, 더위와 추위 속에서 지켜 주셨고, 사업장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지켜주셨습니다.

오늘 송년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이 이렇게 건강하게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고 이 사실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베푸신 큰 은총입니다.

 

주님은 왜 이렇게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일까요?

 

8절 말씀을 보면, “그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에즈베리 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와 부총장을 지내셨던 로버트 멀홀랜드 박사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영성집회에 참석했던 여성이 신앙 경험을 나누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일어서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합니다.

그녀는 창녀의 딸로서 누구도 원치 않는 아이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가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다행히 10대부터 교회학교에 나가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사랑도 깊이 체험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 계통의 대학에 진학했고, 거기서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였습니다.

남편은 멋진 사람이었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의 생부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다는 강박관념적인 생각이 그녀를 지배하는 순간부터 단란했던 가정의 행복에는 검은 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확인하고 찾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께 간청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9개월 전 엄마의 손님이 누구였는지 기억해 보세요.”

하지만 어머니는 오래전의 일을 전혀 기억해 낼 수 없었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부엌 싱크대 앞에서 혼자 접시를 닦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찢기는 듯한 아픔과 고뇌가 그녀를 엄습했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렸고, 마침내 크게 소리쳤습니다.

오 하나님, 누가 나의 아버지입니까? 내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그때 갑자기 어떤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의 아버지다.”

그 음성이 너무 또렷해서 혹시 누가 와있는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금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의 아버지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너의 아버지였다.”

순간 그 음성이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임을 직감한 그녀는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찾으려던 강박적 욕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창조 이전부터 택하시고 사랑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앞에 엎드렸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큰 은총을 베푸신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들을 많은 사람들 가운데 택하셔서 자녀로 삼아주셨고 자녀 된 그들을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고 그들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우리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눈동자같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여주십니다.

육신의 아버지, 육신의 부모도 아들딸들에게 정말 잘해주고 싶은 것이 사실인데 좋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큰 은총을 베풀어주지 않겠습니까?

2019년을 이렇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셨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우리에게 어떻게 큰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까?

 

먼저는, 모든 환난에 동참하심으로 큰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9절 말씀을 보면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 먼 곳에 계셔서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으로 살아가시는 분이 절대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형편 속에 함께 하시고 우리의 모든 환난 속에 동참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구약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믿음으로 우상에게 절하지 않다가 결국 맹렬히 타는 풀무불속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그들은 풀무불속에서 타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세 명을 던졌는데 그 풀무불속에 네 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한 명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풀무불속에서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것을 그냥 못 본체하시지 않고 그들 속에 들어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다니엘 3)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겠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고통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지 아니하시고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보고 듣고 알고 함께 하셔서 여러분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어렵고 힘들 때 나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함께 고통을 당하시고 함께 해결해나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문제는 곧 주님의 문제요, 여러분들의 걱정은 주님의 걱정이요, 여러분들의 고통은 곧 주님의 고통이십니다.

 

주님은 자녀 된 우리와 함께 하실 뿐 아니라 때때로 사자들을 보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고

며칠 전 성탄절을 보냈습니다만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현몽합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는 또한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로 돌아가 보니 헤롯의 아들이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무서워할 때 하나님은 또한 사자를 보내 갈릴리 지방으로 가서 살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를 도우시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사자들을 보내서 그를 도우시고 구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병원신세를 참 많이 졌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을 때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간구하였습니다.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런 저를 위해서 하나님은 많은 사자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병원의 의사들을 보내주셨고 약사를 통하여 약을 주셨고 첨단 의료 기구를 보내주셨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의 도움을 받고 약의 도움도 받고 의료기구의 도움을 받아 치료받고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사자들을 보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정 속에 주님이 보내주신 사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사자들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힘을 얻었고 위로를 얻었고 지혜를 얻었고 능력을 얻었습니다.

사자들을 보내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인생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 된 우리들을 드시고 안으셔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을 드시고 안으셨다는 표현이 어쩌면 인간의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은지 모릅니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놀러 가면 처음에는 아주 신나서 잘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힘이 들면 업어달라고 하고 안아달라고 합니다.

그것을 뿌리치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안고 업고 무등을 태우기도 합니다.

어느 때 시냇물을 건널 때에는 아버지가 알아서 안고 업어서 건너기도 합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여정 속에서 때로는 안고 업고 들어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광야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어할 때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업으시고 안으셨습니다.

홍해를 가르게 하심으로 그들을 무등 태우셨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힘들어할 때 하나님은 제사장밖에는 먹을 수 없는 떡을 먹게 하심으로 업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고통 속에 함께 동참하셔서 고통을 함께 겪으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힘들어 도저히 홀로 설 수 없고 홀로 걸을 수 없을 때에는 여러분들을 안으시고 업으시고 그 터널을 빠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지난 일 년 여러분들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앞으로도 늘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믿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 같이 일어나셔서 주신 말씀을 생각하며 오 신실 하신 주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오 신실 하신 주>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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