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감사하는 성도의 삶
시편136:1-26
노회 은퇴목사이신 이0희 목사님한테서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자서전으로 쓰신 책인데 제목이 ‘꼬마노름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자기 집에 기거하던 머슴들과 친구들이 하던 놀음을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합니다.
꼬마 노름꾼과 같았던 자신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고 목회자의 삶으로 축복하셨는가를 진솔하게, 재미있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정 속에 정말 고맙고 감사했던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특별히 어머니와 자기를 신학의 길로 인도했던 군대 동료, 목회기간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그 외에 이름을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감사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는 말로 책을 마감하고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과 같이 우리가 살아온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얼마나 감사한 분들이 많겠습니까?
나의 나 된 것은 결코 나의 힘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2024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농경시대가 아니라서 추수감사의 의미가 많이 약해졌습니다만 그러나 농사를 짓든 안 짓든 그것과 상관없이 감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지만 살다보면 감사를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하여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에 나오는 대표적인 감사 시입니다.
이 시편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시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이 아닌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함께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편에는 하나님께 대한 26개의 감사의 내용이 나오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송하면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26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감사의 조건을 찾아 기록하다보니 26개가 나온 것뿐입니다.
개인의 삶을 돌이켜보아도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사가 있는데 국가와 민족의 삶을 돌이켜보며 얼마나 많은 감사가 있겠습니까?
26개가 아니라 260개의 감사도 기록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이 시편에는 감사의 대표 시답게 감사의 대상이 누구이며 감사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렇게 많은 일들을 행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짧게는 지난 일 년 동안, 길게는 지금까지 지내오는 인생가운데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시인은 먼저, 감사의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1절에서 시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면서 우리의 감사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을 2절에서는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3절에서는 ‘주들 중에 뛰어난 주’라고 말씀합니다.
뛰어나다는 말을 다른 성경에서는 ‘가장 크신’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신이라고 불리고 주라고 불리는 존재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며칠 전 다니엘 기도회에 나온 전한길 강사의 말을 들어보면 세상에는 3,000개의 종교가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3,000의 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신들은 진정한 신들이 아닙니다.
신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역사를 주관한다든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신이 되지 못합니다.
그저 명목상의 신일뿐입니다.
많은 신들이 있지만 진정한 신, 가장 크신 신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인간의 역사와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십니다.
그러기에 감사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신들 가운데, 수많은 종교가운데 거짓되고 헛된 신이 아닌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감사의 조건은 없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때에 있을 일을 말씀하신 내용이 마태복음 25장에 나옵니다.
종말에는 모든 사람을 모아서 둘로 심판을 하는데 구원을 받을 자와 심판을 받을 자, 영생에 들어갈 자와 영벌에 들어갈 자로 나누는데,
그때에 왼편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불에 들어갈 두 존재를 보게 되는데요,
하나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했던 존재로서 당연히 영원한 불에 들어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를 따른 사람들입니다. 본문에서는 그 사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귀를 따르는 자들은 마귀와 함께 영원한 불에 들어갑니다.
사람의 인생은 누구를 따르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영원한 생명도 누구를 따랐느냐, 누구를 섬겼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 만큼 인생에게 있어서 지도자는 중요하고 특별히 어떤 신을 따르느냐는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오직 한 분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섬기지 않고 사는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요즘 많은 이단들이 자신의 교주가 참 보혜사다, 참 구세주라고 주장하고 따르는 자들이 많은데요, 생각해보면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그 인간의 교주들이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참신이시고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뛰어난 하나님 홀로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그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시인은 그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몇 가지 큰 주제로 나눌 수 있는데요,
4절부터 9절까지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고요,
10절부터 20절까지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21절부터 22절에서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23절부터 26절까지는 부족한 삶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인도하신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기반을 만들어주신 분이십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낮과 밤을 지으셨습니다. 4계절을 주셨습니다.
손경민 씨는 이 은혜를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우리는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는 것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의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은혜를 누리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 은혜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고 이 축복에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시인은 자기 백성이 구원받은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구원은 애굽에서의 구원을 빼 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요셉 때에 애굽에 들어가 430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마음껏 부려먹던 줄잡아 200만이나 되는 노예를 내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겠습니까?
그 엄청난 자원을 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어떻게든지 붙잡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놓지 않을 수 없도록 크신 기적의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이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감사는 역사 속에서 많은 외침과 지배를 경험했던 우리가 또한 드려야 할 감사내용입니다.
영적으로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내용이기도 합니다.
구원받지 못했더라면 마귀를 따르고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를 사랑하시어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는 언제까지나 잊을 수 없는 은혜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형편 속에서도 감사해야 할 내용입니다.
3. 세 번째로 시인은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고 정착하며 자신의 나라를 세워가며 자주국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입니까?
시인은 이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해야 할 내용 중에 하나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우리에게 주시고 이 땅을 복되게 하셔서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은혜인 줄 압니다.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는 헬 조선이라는 말로 이 땅의 삶을 비하하고 있지만 그러나 민주국가로 하나님을 섬기며 부유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최고의 나라요 축복받은 나라인 것은 분명합니다.
저도 가난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첨단 ai시대를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음식을 놓고 먹으면서 예전에는 임금님도 이런 식사를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만
오늘 우리의 삶은 예전의 임금님도 누리지 못했던 최고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대한민국의 기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4. 네 번째로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26절에 나오는 내용마다 마지막에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든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 주들 중에 뛰어난 주님이라고 말씀했는데요,
그 하나님에게 있어서 인자하심은 빼 놓을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인자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 사랑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왜 천지를 이처럼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까?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우리에게 대한민국을 기업으로 주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에 이르렀을 때 수많은 신들을 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중에 한 곳에는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여 섬기지 못하는 신이 있어서 그 신이 벌을 내리고 화를 내리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여 알지 못하는 신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섬겼던 신은 무섭고 두려운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 사랑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이해하시고 받아주시고 오래 참으시고 필요한 것을 채우시고 언제나 함께 하시고
심지어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축복받고 있고 구원받고 영원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5. 다섯 번째로, 시인은 부족함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셔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비천한 가운데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했고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나타났습니다.
대적이 쳐 들어오면 물리쳐 주셨고 먹을 것을 시시때때로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비를 내려주셨고 풍년이 들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드려야 할 감사의 내용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할 때, 우리가 주님을 마음 아프게 할 때, 우리가 주님을 잘 섬기지 못할 때도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함께 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시고 우리를 늘 돌보아 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우리가 있는 것도 지난 일 년 동안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일 년 아니 지금까지 지내온 시절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지키셨습니다. 필요한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부족함이 없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