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천, 가슴앓이의 시작?
이상홍 사무국장
삶은 때때로 아련함이 쌓여가는 과정이다.
세상에 아련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코 흘리게 시절 짝꿍, 장작을 지펴 온돌을 덥히던 할배집, 여름이면 멱감고 고기 잡던 실개천... 등등
그 추억이 머물렀던 곳에 서 있으면 잠시나마 행복감에 젖는다.
그래서 가끔은 고향마을을 찾고 그 시설엔 한 없이 커 보였던 지금은 너무 작은 운동장에 서 있기도 한다.
내성천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또한 아련함이다.
이제 마흔에 들어서고 시골에서 자란 또래라면 누구나 모래가 흐르는 개울 하나쯤은 친구로 가지고 있었다.
내게도 곳곳에 여러 친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일찍 저 세상으로 갔다.
누천년을 흐르며 샐 수 없는 벗을 사귀어 왔을 그들이 못된 친구를 만나 찰나에 사라졌다.
내성천에 오니 떠나보낸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하다.
모래가 곱다. 새벽부터 내린 비에 물이 불어 강바닥을 볼 수 없었으나 물가의 모래가 곱다.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모래를 쌓아 막대기를 꽂고 한 움큼씩 잡아 뺀다.
놀이를 하는 중이다.
아이들은 장기자랑, 어른들은 술값내기.
훗날 아이들에게 이 금빛 모래도 아련함으로 남을까?
나는 내성천을 찾아 옛 추억을 긷는데 아이들은 또 어디에서 우물을 찾을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아마도 그 때는 내성천이 더 이상 우물이 아닐 게다.
영주댐 위에 있는 금강마을은 수몰예정지다.
수백 년 나이에도 팔팔하던 고택古宅이 한순간 박제가 되어 전시품으로 낙점됐다.
고택은 그나마 연륜이 있어 타향살이라도 하겠지만 나머지 것들은 모두 물귀신이 될 운명이다.
마을 앞 기찻길도 곧 물속을 달린다.
내성천을 가로지른 댐은 위쪽을 수장시켜 없애고 아래쪽엔 더 이상 금빛 모래를 흘려주지 않아 울퉁불퉁 딱딱한 땅으로 황폐화 시키고 있다.
괴물이 따로 없다.
모래가 흐르는 강을 보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가야할 곳이 되어 버린 내성천.
외나무다리를 걸으며 아련함을 느껴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성천에 발을 담근 일은 행운일까?
또 다른 가슴앓이의 시작일까?
< 내성천 생태탐방 사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