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를 잘못 찾은
'노후 원전 스트레스테스트'
지인이 큰 경사를 맞이하여 청첩장을 받아보면 보통 혼례가 한 달도 더 남았다.
일반 가정의 대소사도 차비를 할 여유를 준다.
하물며 핵발전소 안전을 평가하는 나랏일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정부는 시민사회에 아무런 언질도 없이 4월30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누리집에
떡하니 <스트레스 테스트 가이드라인(기준) 확정> 자료만 올려놓고
의견수렴 기간을 고작 2주로 밝혀 놓았다.
이것은 완전히 기만극이다.
전문 용어들로 가득 찬 두꺼운 문서를 누리집에 몰래 올려놓고 2주 동안 의견을 받겠다는 건
어느 나라 행정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최소한 핵발전소 지역 주민에게는 설명회를 개최해서,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 정부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리면서 의견을 물어야 한다.
정부의 노후 원전 스트레스 테스트는 이처럼 시작부터 참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사실, 월성 1호기처럼 설계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는 스트레스 테스트가 필요 없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원전의 수명을 진단하는 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칭 '에코 모터스'에서 최신형 승용차 ‘풍력’을 개발한다고 상상을 해보자.
풍력은 바람으로 달리는 친환경 자동차다.
그리고 자원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내구성을 30년으로 잡았다.
이때 내구성 30년이 바로 ‘설계수명’이 된다.
부품이 마모되고 일부 녹이 슬어도 최소한 30년까지는 성능을 보장한다는 뜻이다.
30년이 넘으면 브레이크 파열, 엔진 균열이 있을 수 있고, 급커브에서 핸들이 부러질 수도 있다.
유통기한이 넘은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면 소비자의 책임이듯이 이것은 에코 모터스의 잘못이 아니다.
대신 볼트처럼 작은 부품 하나도 30년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설계기준’이다.
설계기준이 핵심적인 개념이므로 잘 이해해야 한다.
풍력은 설계수명이 긴만큼 10년에 한 번씩 대대적인 안전점검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때 풍력이 설계기준을 만족하면서 달리고 있는지 검사한다.
엔진에 사용된 합금의 강도, 볼트의 마모여부, 브레이크의 인장강도 등등을 체크한다.
핵발전소도 10년에 한 번씩 이런 검사를 하는데 바로 ‘주기적안전성평가(PSR)'라고 부른다.
10년 주기로 실시하는 PSR이 설계기준에 근거해 원전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검사다.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 심사도 PSR에 근거해서 진행된다.
월성1호기는 2009년 12월부터 40개월이 넘게 수명연장 심사를 하고 있으나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스트레스 테스트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테스트다.
에코 모터스에서 생산한 풍력이 대형트럭과 정면충돌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폐차 수준으로 망가질 것이며 이것은 설계수준을 초과하는 개념이다.
그렇지만 잘하면 운전자의 목숨만은 살릴 수 있다.
전투기처럼 충돌 시 운전석이 하늘로 날아가 낙하산으로 떨어지거나
에어백이 매우 잘 되어 있으면 목숨만은 겨우 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한 평가가 바로 핵발전소의 스트레스 테스트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처럼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지진, 쓰나미, 테러 등이 발생하더라도
최악의 방사능 유출만을 막아보자는 취지해서 하는 것이다.
물론 스트레스 테스트의 신뢰여부는 알 수 없다.
이처럼 스트레스 테스트는 정상적으로 운전되는 핵발전소에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만일을 사고를 대입하여 최악의 방사능 유출사고 여부와 대응방안을 도출하는 개념일 뿐,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의 설계기준 만족 여부를 측정하는 검사가 아니다.
전혀 번지수가 다른 평가항목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40개월 넘게 진행되고 있는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심사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유럽형 스트레스 테스트만 통과하면 되는 것처럼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오래되어 엔진이 균열되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도 충격을 받으면
에어백이 작동해서 운전자를 살릴 수는 있다.
즉 설계기준을 만족 못해도 스트레스 테스트는 통과할 수 있다.
속된 말로 스트레스 테스트로 수명연장 심사를 퉁 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월성1호기를 앞날이 창창한 정상적인 핵발전소로 가정하더라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스트레스 테스트 계획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테스트의 주체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아닌 (주)한국수력원자력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시쳇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유럽보다 강화된 테스트라고 밝히고 있으나 유럽에선 당연하게 여기는 테러 등에 대한 점검도 없다.
최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많은 국민들의 우려가 유사시 핵발전소의 안전문제였다는 점을 정부는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스트레스 테스트는 강철로 만들어진 원자로의 강도를 직접 측정하는 물리적 테스트 보다는
서류 중심의 테스트를 한다.
이때 참고가 되는 서류가 주기적안전성평가(PSR) 보고서 등인데,
이미 국제원자력기구는 월성1호기 수명연장 심사과정을 살펴본 후
한국의 PSR이 국제기준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즉 지금 한국은 스트레스 테스트의 기초가 잘 못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잘못된 스트레스 테스트가 졸속으로 준비되는 까닭은
‘노후 원전 스트레스 테스트’가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4대강 사업에서 이행되지 말아야 할 “나쁜 공약”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는 좋은 공약일까? 나쁜 공약일까?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 여부가 이를 판가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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