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수명연장의 교훈과 과제
2009. 3.
청년환경센터 이헌석
최초의 수명연장, 고리 핵발전소 1호기
고리 핵발전소 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핵발전소이다. 1971년 착공한 고리 1호기는 78년 상업가동에 들어가기까지 핵산업과 관련 학문이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적 의지를 바탕으로 시작한 상업용 발전소이다.
정부는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인근 지역인 월성에도 원자로형이 다른 (고리에는 미국에서 도입한 PWR (가압형경수로) 방식을 지었고, 월성에는 캐나다에서 도입한 CANDU(중수로) 방식의 발전소를 지었다) 발전소를 건설함으로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핵발전 시대를 맞게 되었다.
발전소명 |
용량(MW) |
운영허가일 (최초임계일) |
상업운전 개시일 |
설계수명 만료일 |
설계수명 |
고리 1호기 |
578 |
72.05.31. (77.06.19.) |
78.04.29. |
07.06.18. |
30 년 |
월성 1호기 |
679 |
78.02.15. (82.11.21.) |
83.04.22. |
12.11.20. |
30 년 |
고리 2호기 |
650 |
83.08.10. (83.04.09.) |
83.07.25. |
23.04.08. |
40 년 |
< 각 핵발전소의 설계 수명>
이렇게 시작한 고리 핵발전소 1호기의 설계 수명이 지난 2007년 만료하게 되었다. 건설 초기에 정해진 ‘설계 수명’은 발전소를 설계할 당시 고려사항과 사용한 주요 부품의 내구연한 등을 바탕으로 정해지게 된다. 최초의 핵발전소였던 고리 1호기와 CANDU 방식으로 지어진 월성 1~4호기의 설계 수명은 30 년 이며, 그 이후 지어진 대부분의 발전소는 40년 ~60년이다.
고리 1호기의 경우 1977년 6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을 했기 때문에-최초임계라고 불리는 이 작업은 핵발전소 내에서 핵물질이 연쇄반응을 일으킨 시점을 말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7년 6월이면 설계수명을 다 채우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고리 1호기 다음에 건설된 월성 1호기의 경우에는 최초임계에서 30년이 지난 2012년 11월, 고리 2호기의 경우에는 최초임계에서 40년이 지난 2023년 설계수명을 완료하게 된다.
이 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을 둘러싼 쟁점과 교훈을 통해 이후 월성 1호기, 고리 2호기 등 이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논쟁에서 반드시 짚어야할 과제와 개선점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핵발전소 수명연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수명연장을 통해 핵발전위주의 전력정책을 고수와 폐로의 부담감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했을 때 나타나는 가장 실질적인 효과는 무엇일까?
서류상 설계수명이 다한 발전소는 더 이상 가동될 수 없기에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게 되면, 그 발전소의 용량만큼 핵발전이 계속 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즉 핵발전소를 하나 더 짓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이는 서구 유럽에서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는 현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유렵의 경우 70~80년대 석유위기에 대응하고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연료 수입에서 벗어나고자 핵발전소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체르노빌사고의 실질적 피해, 핵폐기물 처리 문제, 국민적 반감 등으로 그동안 사용했던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다. 유럽연합위원회는 현재 EU 내에서 가동 중인 155기의 핵발전소 중 50-60기를 향후 2025년까지 폐쇄할 것을 전망하고 있다. 이미 독일과 스웨덴 등이 폐로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으며, 영국과 벨기에 등도 그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여기에는 항상 논쟁이 따른다. 소위 ‘원자력 르네상스’를 둘러싼 논쟁이다. 기후변화문제가 점점 심해짐에 따라 러브록을 비롯 일부 환경론자들의 찬핵으로 개종(改宗)논란이나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의 핵발전 검토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가 실제로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꺼리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부 핵발전소 건설 추진에도 불구하고 탈핵선언국가들의 ‘탈핵발전’ 흐름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운데 수명연장은 아직도 우리정부가 핵발전 위주의 전력정책을 고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다. 물론
2008년 ‘저탄소 녹색성장선언’이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서도 현 정부의 핵발전소 강행정책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설계수명이 끝난 발전소의 수명연장은 당분간 핵발전소 폐로를 하지 않음으로써 핵발전 위주의 전력정책을 더욱 지속적으로 가져가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사실 이미 수명연장결정이 난 고리 1호기의 경우, 용량이 578MW로 현재 건설 중인 핵발전소 용량 1000~1400MW에 비해 절반정도 규모이다.(이는 월성 1호기 679MW 도 비슷하다) 더구나 신고리, 신월성, 신울진 등 대규모 핵발전소 신규 건설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용량이 작은 발전소의 유무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확장일로를 걷고 있는 핵산업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
유럽의 경우, 핵발전소 폐로는 핵산업계의 주요한 아킬레스 건이었다. 매번 예산을 초과하는 폐로 비용, 건설과 운영과정에서 수차례 누적된 설계변경으로 인해 생기는 폐로의 기술적 어려움, 다량의 핵폐기물로 인한 폐기물 처리문제, 폐로로 인한 지역주민들과의 갈등 등 폐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신규 건설만큼이나 큰 문제였고, 이는 핵발전 초창기 시설을 많이 갖고 있던 영국, 미국 등에서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매번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 핵산업계가 주장하는 ‘원자력 르네상스’가 있기 전 서구 사회가 모두 겪었던 1980~90년대 ‘원자력 암흑기’에는 이런 불편한 진실이 있었던 것이다.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은 당장의 이런 문제점을 다음으로 ‘미룰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문제’로 바꾸게 된다.(2008년 고리 1호기는 20년 수명연장을 목표로 10년 운영승인을 받는다. 2008년 수명연장 문제를 고민하고 판단했던 이들 가운데 2028년 고리 1호기 폐로를 고민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한 지금, 폐로 문제와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항상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이 사이 에너지 공급체계는 핵발전과 같이 대용량, 대량생산을 중심으로 더욱 확고하게 변하게 될 것이다.(이는 독일과 같은 사회가 점차 재생에너지 보급과 함께 분산형 에너지 체제로 변해가고 있는 것과 정확히 반대이다.) 그리고 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더 오랫동안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2) 핵발전소 건설 비용과 신규부지 선정의 위험 부담 감소
이미 알려진 것처럼 핵발전소는 타발전소와 달리 건설과정에 많은 양의 비용과 시간이 소비된다.
구분(단위:억원) |
신고리 1,2호기 |
신월성 1,2호기 |
신고리 3,4호기 |
총예상공사비 |
49,134 |
47,172 |
57,331 |
기본계획확정에서 준공까지 |
2000.8.~2011.12. |
2000.12.~2013.1. |
2001.2.~2014.9. |
<최근 건설되고 있는 주요 핵발전소의 예상 공사비>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핵발전소는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2기씩 동시에 한 장소에 짓게 되는데, 그 비용이 5조원에 육박하거나 상회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발전설비용량기준으로 신고리 1,2호기의 80% 수준인 영흥화력 1,2호기의 건설비용이 2조 3174억 원이고, 2010년 개통을 목표로 건설 중인 대구~부산간 고속철도 2단계 구간의 사업비가 7조 2천 억원 규모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공사이다.
또한 핵발전소의 경우, 새로 짓기 위한 부지선정에 어려움이 있다. 80년대 초에 부지가 선정된 고리, 월성, 영광, 울진을 제외하고 정부가 추진했던 30여 군데의 핵발전소 신규부지가 모두 지역주민들의 반대나 지질상의 문제로 인해 백지화되었다는 사실은 핵발전소 부지 선정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에 따라 최근 건설되는 핵발전소는 모두 기존 발전소 부지 인근에 “신(新)”를 붙여가면서 짓게 된다. 고리 핵발전소 인근 지역인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지어지고 있는 신고리 1~6호기, 월성 핵발전소 인근의 신월성 1~2호기 모두 그러한 방식으로 건설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핵발전소 수명연장은 사업자에게는 많은 매력을 갖고 있다. 정부측 계산으로 고리 1호기의 경우 수명연장에 들어갈 예상 비용이 2,630억 원이며, 월성 1호기의 경우 6,080억 원이니 설계 수명이 다 된 발전소를 적은 비용으로 다시 가동할 수 있게 되는 수명연장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하게 사업자의 입장에 따른 것이다.
설계수명이 끝났다는 것은 발전소의 기계적 수명이 모두 끝났다는 의미이다. 타 발전소와 달리 안전성이 높게 요구되는 핵발전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수명이 끝난 발전소를 부분적인 교체를 통해 안전하게 가동시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본 미하마 3호기 사고는 노후화된 핵발전소가 얼마나 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고리 핵발전소 1호기와 거의 비슷한 1976년 가동을 시작한 미하마 3호기는 2004년 8월 가동 중 발전소 배관이 파열,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조사 결과 오랜 가동으로 원래 10mm 였던 배관이 노후하여, 0.4mm로 얇아져 있었으며, 정기적인 배관검사에서 이 배관이 점검되어야 하지만 점검되지 않고 30년 동안 가동되다가 아까운 생명을 잃는 사고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정밀조사에서 사고 한 달 전 해당 배관이 오랫동안 점검되지 않고 있는 사실을 담당자는 눈치챘으나, 사고 당일까지 점검되지 못하면서 결국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미하마 3호기 사고는 많은 부품과 복잡한 장비들이 함께 구동되는 노후화된 핵발전소에서 더 큰 사고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에 왜 반대했는가?
지금까지 일반적인 핵발전소 수명연장의 의미와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럼 현재 수명연장이 추진되고 있는 고리 1호기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 수명연장 절차의 졸속적 마련
고리 1호기의 수명이 30년 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핵발전의 역사가 30년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설계수명이 30년 이라는 의미는 애초 발전소를 가동할 당시부터 2007년 6월이 되면 고리 1호기의 수명이 다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불행하게도-우리나라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한 제도와 정책은 2005년에 들어서야 기본 가닥을 잡게 된다. 매 2년 마다 국가의 전력기본 계획을 세워 발표하는 “장기전력수급계획-2002년 부터 이름이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바뀜-”에 따르면 2000년 발표한 5차 장기전력수급계획에서는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가 각각 2008년과 2013년에 폐쇄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후 정부는 내부적으로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한 논의는 계속 진행했으나 결론을 맺지 못하다가 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한 적당한 공청회 한 번 하지 않은 채 2002년 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엣 고리 1호기 폐쇄를 빼 버린다.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한 법ㆍ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엣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전소 수명연장을 결정한 것이다. 핵발전소는 사고로 인한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발전소의 건설과 운영 전반에 대한 것이 상세하게 법률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발전소 수명연장과 같이 안전성과 직결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한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환경단체오 지역 주민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형식적 공청회’도 한 번 열지 않고 법ㆍ제도도 갖춰지지 않은 수명연장이 결정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계속 이어진다.
2002년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암묵적으로 수명연장 의사를 밝힌 정부는 2005년 수명연장 절차를 규정한 원자력법을 개정하면서 고리 1호기에 대해 예외조항을 넣은 것이다.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해서는 설계수명 만료일 2~5년 전에 안전성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단서 조항으로 고리 1호기에 대해서만 1년 전에 안전성평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일상적인 보고서 검토 및 절차를 넘어 고리 1호기에 대해 특혜(!)를 준 것이다. 2007년 6월에 설계수명을 다하는 고리 1호기를 수명연장 시키기 위해서는 더 일찍 법률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나온 궁여지책을 사용한 것이다. 핵발전소를 수명연장하는 데 가장 필요한 법률ㆍ제도적인 측면이 마련되지 못해 안전성평가 검토를 날짜에 끼워 맞춰 만들 정도이니, 거기에 핵발전정책을 전환하기 위한 국민적 여론 수렴 과정이나, 지역주민들의 의사 수렴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사치’로 느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2) 지역주민과 기본적인 협의를 거치지 않은 수명연장
수명연장 절차의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핵발전소 수명연장과 신규건슬은 그 효과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과정의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신규 발전소 건설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지역 주민의 동의, 설명 등의 과정은 법률상 생략되어 있고, 온배수 피해 등 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피해 보상 등도 정확히 설명되지 있지 않다. 다만 발전소 당국이 ‘도의적 차원’에서 선처를 해 줄 것을 요망할 뿐이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 신청이 이루어지기 2주 전인 지난 6월 초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발전소 측으로부터 ‘처음으로’ 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전까지 국회 국정감사나 언론을 통해 고리 1호기 수명연장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있었으나 발전소 측은 그동안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으로’ 받은 수명연장에 대한 이야기는 고리 1호기 수명연장 신청을 앞두고 신청서 접수 1주 전에 ‘고리 1호기 수명연장 설명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왜 수명연장을 하는가?’에 대해 처음부터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명연장을 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하고 이에 대한 설명회를 하니 오라’는 발전소 측의 설명에 많은 이들은 분개했고, 결국 ‘고리 1호기 수명연장 설명회’는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행 법률상 ‘주민 설명회’는 발전소 측의 배려(!)에 의해 진행한 것일 뿐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다. 설명회가 무산되었다고 해서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발전소 측은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양해를 구해야할 어떠한 법적 의무도 갖지 않는다. 만약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로 인한 피해를 인근 주민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데도 말이다.
3) 기본 정보조차 공급되지 않고 있는 발전소 수명연장
현행 법률 체계상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위해서는 “주기적안전성평가보고서”, “주요 기기 수명평가보고서”, “방사성환경영향평가보고서” 등의 관련 심사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는 발전사업자가 발전소의 안전성에 관련한 자체 평가내역을 정부에 제출하는 기본 절차로서 이들 보고서의 내용은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판가름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이들 보고서 내용은 아직까지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는 핵발전소 신규건설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서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바탕으로 지역공청회를 진행하는 절차와 분명히 대비된다.
현재 상태에서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이 공급받을 수 있는 고리 1호기 수명연장에 대한 정보는 관련 워크샵 결과, 지역에서 진행된 지역현안설명회 자료 같은 것들이 전부이다. 이들은 모두 1차 자료를 재가공하거나, 수명연장의 개념들을 설명한 것이지 실제 수명연장의 안전성과 과거와 달라지는 환경영향 등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한 지역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내용 검토 작업 등 발전소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검토 작업은 기초자료가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4) 수명연장을 둘러싼 안전성 논란
앞서 일본의 미하마 3호기 사고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노후화된 발전소의 안전성 문제는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다. 미하마 3호기의 경우에도 배관의 점검이 지연된 것이 단순히 담당자의 실수나 누락이기보다는 배관 점검 업체(보통은 원가 절감을 위해 하청업체들이 담당한다.)의 문제와 원가절감을 위해 안전관리 비용을 삭감하는 것들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노후화된 발전소의 안전 문제가 단지 ‘우리의 기술력을 믿어 달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고리 1호기 : 협상에서 타결까지
안타깝지만,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을 둘러싼 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위의 쟁점은 수명연장을 좌지우지할만한 실질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물론 부산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절차상 문제점, 안전성, 경제성 등을 제기하였으나, ‘공허한 울림’이었을 뿐 정작 ‘키’를 쥐고 있는 정부와 발전사업자는 ‘보상’문제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갔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에 대한 과학기술부의 안저성 검토 결과 발표가 있고 난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한국수력원자력과 인근지역주민들과의 협상이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의 실질적인 대화 테이블이었고, 이 자리에서 절차ㆍ안전성ㆍ경제성 등은 논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수명연장을 하고자했던 발전사업자나 지역발전을 염원하는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협상은 진행되었지만, 협상의 진행과정과 최종 타결 내용이었던 14개 요구사항에 대한 상세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고, 간혹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단편적 사실’이나 세월이 지난 이후 하나씩 공개되는 자로에만 나올 뿐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었다.
물론 핵발전소 가동으로 인해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받아 온 인근지역주민들에 대한 보상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고리 외에도 영광, 울진, 월성 등 많은 지역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보상이 있어왔고, 이는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를 ‘보상’문제-더 정확하게 금전적인 문제로만 덮고 해결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 협상타결을 ‘(원자력발전소 계속운전 문제에 있어) 지역주민들과의 화합의 장을 열었다’고 포장하는 것이 낯 뜨거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외견상, 그리고 행정적 처리에서 ‘화합’으로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화합이 무엇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화합이 얼마나 실질적인 것인지는 경주 방폐장 주민투표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외견상 ‘화합’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살짝 덮어둔 형국’-따라서 언제라도 문제가 다시 튀어나올 수 있는 형국-이 지금의 형국인 것이다.(언론에 그리 많이 부각되지 않았지만, 고리 1호기 수명연장 이후 협상 내용 이행을 둘러싼 갈등이 고리 지역에서는-경주 방폐장 주민투표 이후 한수원 본사 이전 등을 둘러싼 갈등처럼-일어나곤 하였다.)
소결 - 핵발전소 폐쇄,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준비가 필요하다.
인근 지역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명시한 원자력법의 개정, 수명연장 이후를 준비하기 위한 법ㆍ제도적 절차의 마련, 발전소 완전 폐쇄 이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 마련(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이 끝난 이후의 모습)....
이런 것들은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논쟁이 있을 때마다 환경단체들이 주장했던 요구들이다. 이는 수명연장 여부와 상관없이-최소한의 합리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당연히 마련해야할 내용들이다. 그러나 고리 1호기 수명연장 결정이 나고 1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
그 당시 논란이 되던 법조항과 내용을 그대로 가지고 지역만 바꿔 다시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핵발전소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사람이 만든 기계덩어리에 불과한 발전소는 결국 폐쇄해야 한다. 핵발전소 추가 건설계획이 아무리 만들어지고 핵발전 비중이-이명박 정부의 계획처럼 2030년 60%에 달한다 할지라도 수명이 다 된 발전소를 더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사례는 고리와 월성의 핵발전소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수명연장 문제가 신규발전소 건설문제와 다른 것은 이러한 측면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명연장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고 다각도로 검토되어야 할 문제이다. 지금 당장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비젼과 안목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단기적인 목표를 바탕으로 놓고 판단한다면, 그 피해는 반드시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