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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 위원회

"후쿠시마 사고 1년, 일본사회의 변화의 바람" - 쓰지 신이치 - 2012.4.18.

작성자미루|작성시간12.04.20|조회수118 목록 댓글 1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한 강연인데 괜찮은 내용이라 공유합니다.

 

 

 

* 동영상 보기 => http://vimeo.com/40399546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 교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쓰지 신이치 교수는 슬로우라이프, 행복의 경제학 등의 책으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분인데요.

그동안 3.11 이후 일본에서 많은 분들이 한국에 왔다 가셨는데요
경제피해나, 핵의 위험성 등등을 알 수 있는 강연이나 워크샵 등은 많았지만,
이번 강연처럼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해서 다뤘던 적은 거의 없었던 듯 합니다.
 
저에게도 이번 쓰지 신이치 교수의 강연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고민을 던져 준 것 같습니다.
우리가 탈핵을 이야기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고민하지만, 우리 자신,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많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 핵발전의 에너지를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대안인가라는

 

신이치 교수의 질문이 아직도 머리 속에 깊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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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신이치 강연 속기록

 

“일본의 후쿠시마 핵참사의 사회문화적 충격”

                                                                  2012.4.18 레이첼카슨홀

 

 

<강연>

-일본의 국내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국가의 개념을 현실이 뛰어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원전에 대한 보도를 하지 못했던 언론들이 보도를 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다시 되돌려지고 있다.

  사회전환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현상유지, 다양한 이해관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을 보면 정치나 민주주의의 변화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

  3.11 이후 충격적인 것은 일본에 민주주의가 아무 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주류 미디어나 교육, 정치가 꽉 짜여진 사회 속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은 군사독재 시절이 없었음에도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3.11 이후 위에서의 힘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풀뿌리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아이를 갖고 있는 부모, 특히 어머니들의 움직임이다.

  3.11 이후 일본의 가족이 많이 붕괴되었다.

  남편이 소속되어 있는 조직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엄마와 아이들이 살던 곳을 떠나기 때문이다.

 

-현재 아이들에게 깨끗한 공기, 물, 음식을 줄 수 없다.

 수유중인 엄마들은 모유를 두려워하는 상황. 이것은 마지노선이다.

 이것이 3.11의 교훈이다.

 물론 주류사회는 돈이 우선이다.

 물도 공기도 태양의 빛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3.11 이후 대체(shift) 말이 유행하고 있다.

 원전은 아니기 때문에 대체가 무엇인지 모든 사람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진실된 대체안이 무엇일까?

 대체안은 단 하나 원전을 그만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원전을 대체하는 태양에너지를 제시하는 일이 아니다.

 한국은 21기의 원전이 있는데, 이것을 대체하는 풍력발전기를 해안에 펼쳐볼까요?

 아니면 건물이란 건물에 태양광판넬을 올려 볼까요?

 나는 이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의 전력을 생산, 재생산하고 경제성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환상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전환은 에너지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가치관의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의 공동체, 생명체는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어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비극이 일어난 뒤에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디 후쿠시마를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가치관의 대전환의 촉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작은 모델들이 여러 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도 원전 근처에 새로운 가치관을 갖은 조그마한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원전으로 상징되는 세계관에서, 작고 새로운 공동체적인 세계관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 숫자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3.11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국내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질의 응답>

-작은 공동체, 이동을 한다는 것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

예를 들면 저의 동료들이 규슈지방으로 많이 이동하고 있다.

규슈는 얼터너티브한 운동이 활발히 있는 지역이다.

 반농반X, 반은 농사를 하고 반은 자기 직업을 갖고 이런 쪽의 움직임이 가속화되어 있다.

원전피해를 많이 입지 않은 북해도나 동북지역도 지역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동체화 재로컬화로 3.11 이후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일본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이 행복이다.

하나의 예로, 헬레나 노르베르호지의 행복의 경제학 영화상영운동이 풀뿌리로 엄청나게 진행되고 있다.

 재로컬화, 행복의 경제학이 3.11 이후에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공동체 운동의 한계?

기존의 공동체운동이 발전해서, 현재의 공동체운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유기농, 자연농 운동이 일본에서 활발했지만, 그것은 공동체 운동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가와구치 요시가츠가 시작한 자연농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사람을 모으지 않고, 선전하지도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그가 만들어낸 농법으로 농사를 지었고, 그것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학교가 생기고 배운 사람들이 몇 천 명이 전국에 퍼졌다.

가와구치 선생은 세 개의 길을 말했다.

 생명의 길, 사람의 길, 나의 길. 이 세 가지가 융합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공동체는 나의 길도, 사람의 길도 실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생명의 길을 선택하려 하면, 사람의 길이 소홀이 되거나, 나의 길이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 많았다.

 하지만 가와구치 선생의 방식으로 그의 제자들은 전국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각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는 인터넷 네트워크와 잘 매치된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라미드형이 아닌, 정해진 틀이 없는 연결이 앞으로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일도 그렇고, 공동체보다는 선거 등을 통한 정치변화가 중요하지 않은가?

투표를 통해서 사회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은 일본은 아직 어려운 것 같다.

일본도 7월에 녹색당이 생긴다.

 투표도 중요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사회변화의 예시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것과 동시에 기존의 형식처럼 표를 늘리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 자체가 구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것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는 광기처럼 돌진하는 거대한 힘을 보고 있으면, 어느 날 벽에 부딪혀서 멈춰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후쿠시마의 사고마저도 큰 대전환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비극이 일어나야 되는지 암담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망을 하고 있어도 안되니까요.

앞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젊은 세대를 밀어주면서, 그것을 도와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레를 돌리고 있는 간디에게 어떤 사람이 왜 그러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자,

간디는 “정치적인 대변환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 전까지 당신 집 앞에 앞마당을 청소 안할 수 있겠느냐고, 오늘 밤에 자식에게 무엇을 먹일지 고민을 안해도 되는지.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세계 정치, 경제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저희 세대의 남성들은 바로 이 부분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의 변화와 개인의 변화가 함께 가야된다.

 

-방사능오염 등 문제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재로컬화나 공동체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심리적으로 말하자면 굉장히 복잡한 상황이다.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후쿠시마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인데, 남반구로까지 이사를 가는 사람도 있다.

후쿠시마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사는데,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다.

 체르노빌에 몇 번씩이나 다니면서 지원활동을 했던 제 친구들은 새로운 이론을 갖고 있다.

 체르노빌에 사망자가 100만명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 기준으로 따진다면, 어떤 의미에서 후쿠시마는 체르노빌 이상이다.

특히 세슘의 경우 그렇다.

그렇게 보면 후쿠시마를 떠나는 게 좋겠다.

이미 후쿠시마 사람들 중 이미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 사람이 많다.

반면, 나가버리면 보상이 안되기 때문에 보상이 확정될 때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화학자 친구는 원전에서 100km 떨어진 곳에서 제염작업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방사능 측정기를 최대한 많이 입수해서 각자가 스스로 측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고, 자기들의 기준을 정하고 방사능 제염작업을 하고, 그 기준을 맞추어서 살아가자고 한다.

음식에 대한 측정을 해서 그 기준에 넘지 않는 음식을 섭취한다.

저의 동지 중에는 카페쓰루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사람들에게 음식에 대한 방사능측정을 해 준다.

 공식은 없다.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은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가 판단하고,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다른 사람의 선택에 관대해야 한다는 것. 그것에 대해 비판을 하지 말자는 것.

 

-원전없는 겨울의 교훈

일본정부는 제로가 되기 전에 열심히 재가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괜찮지만, 여름에 큰일이 난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거기에 흔들리는 사람들도 있다.

더글라스 라미스의 의자 이야기를 상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전이 일어나고, 다 같이 참으면 되니까요.

그것은 굉장히 작은 한발자국이다.

이미 늦었다.

제로로 멈춘다고 해도, 지진이 날 때마다 두려워해야 하는 폭탄을 엄청나게 갖고 있는 것이니까요.

젊은 사람들은 더 화를 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아이들은 더 큰 짐을 지어야 하니까요.

 가와구치 선생을 말을 빌리면, 이것은 여러 가지로 사람의 길, 생명의 길을 벗어난 것이다.

엄청난 범죄다.

 20년 전 리우에서 12살의 캐나다 여자아이가 6분 동안 연설했다.

현재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녀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녀는 아이를 안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대 간의 범죄다” 한국에서도 21기의 원전이 멈춰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탈핵운동에서 수명이 다한 고리1호기, 월성1호기를 멈춰라, 신규원전건설, 새로운 부지를 무효화해라는 것이 우선적인 요구다. 일본은 새로운 원전을 짓기는 어려울 것인데.

일본이 원전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문제를 방치하면서 그렇게 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현실에서 다른 대체 에너지로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가치관과 세계관의 전환이 없다면, 에너지전환만으로는 언제가 세계는 큰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원전은 석유로 인한 온난화나, 기후변화 문제를 이용하면서 근래 20년 동안 엄청나게 성장했다.

3.11 이후 원전은 이제 아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엄청 많다.

그들은 FTA나 DDA의 추진파다.

그것은 같은 세계관 안에서 무슨 에너지가 좋을지 선택하는 것 뿐이다.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그러한 마인드 세트에서 발생했다.

세계 생태운동가는 현재 마인드 세트를 넘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유럽이나 독일에서의 변화와 일본에서의 변화는 굉장히 큰 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북유럽이나 독일에서는 새로운 세계관의 싹이 존재한다.

거기에서 있어서 에너지전환은 단순히 전환이 아니라 에너지민주주의, 글로벌에서 로컬로 가는 전환이다.

 우리도 그 전환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동체의 정의

문화는 정의로서 로컬, 공동체, 생태. 문화는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로컬은 보편적이다.

각자가 로컬의 삶을 살면서, 그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다.

국가주의 글로벌주의는 로컬을 깨뜨리는 장치다.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것은 단순한 몽상은 아니다.

옛날 역사를 따져봐도 비슷한 문화와 문명을 공유하고 있다.

불교, 도교, 유교도 그렇습니다.

동아시아 안에서 재구성하고, 자기 것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각자의 지역이 소화해서 갖고 있는 것들입니다.

현재의 위기는 서양문명이 붕괴는 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면 동아시아의 고대부터 이어져온 지혜들이 세계에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그 부분은 여러분과 함께 배워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저도 미국에 영향을 받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늦었습니다만, 지금부터라도 젊은 사람들과 함께 스스로의 뿌리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저는 동아시아의 뿌리를 나라를 넘어서 찾아 갔으면 합니다.

                                                                               - 정리 : 환경운동연합 안재훈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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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줏대 | 작성시간 12.04.20 엥~ 올리려고 하니까 벌써 올라와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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