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6:16
회사를 경영하던 한 가장이 부도를 내게 되었습니다. 몹시도 걱정하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우리가족은 뿔뿔이 떨어져 있어야겠다." 걱정스런 말투로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우리는 어디로 가요?" "너희들은 잠시 외갓집에 가서 살아라." "여보 나는 어떻게 해요?" "당신은 친정에 가 있으시구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하시게요?" "나야 처가댁에 가 있으면 되지요."우리 하나님. 이 가장의 처가댁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곳, 외로울 때 갈 수 있는 곳. 영혼의 고향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영혼의 고향인 교회를 통하여 생명을 얻고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며 꿈을 꿉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보니 교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교회가 있는 교인”과 “교회가 없는 교인”의 두 그룹입니다. “교회가 없는 교인”이 과연 가능할까요 ? 교회 없는 교인이란 교회는 다니지만 진정 그 마음속에, 그리고 그 생활 속에 사실상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교인을 말합니다. 예배출석으로 교회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교인, 교회를 위해서 헌신이 거의 없는 교인, 교회의 문제에 대해 쉽게 불만하고 오해하는 교인, 내 교회 의식이 없는 교인입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는 철새 교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교인들에게 교회는 철새 도래지일 뿐입니다. 잠깐 있다가 맘에 안들면 다른 도래지를 찾아 떠나는 겁니다. 버릇 되면 평생 이렇게 살아요 불쌍한 일이지요 자녀들에게 귀감도 안되고 복도 못 받고 결국 외로움에 진저리를 치게 됩니다.
반면에 “교회 있는 교인”은 피와 땀과 눈물과 물질이 그 교회에 들어가 있는 교인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힘을 다하여 헌신하는 교인입니다. 그 결과 그 교회를 통하여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는 교인입니다. 한마디로 교회 때문에 간증거리가 있는 교인으로 담임목사가 다른 교회에서 설교할 때 자랑하고 싶은 축복이 확실한 교인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교인 되시길 바랍니다. 이 은빛 교회가 우리의 생과 뼈와 살을 묻을 수 있는 영혼의 고향이 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예배에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복은 예배의 복입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요 부흥이 있다면 예배부흥이 있을 뿐입니다. 예배가 타락하면 삶이 타락합니다. 예배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뿌리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중심엔 예배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잘해도 예배를 잘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장 건강한 신앙은 예배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 최우선순위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잃어버린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 버립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도 몇 주일만 한 번 빠져보면 하나님이 계시니 안계시니 마지막까지 가버립니다. 정서가 불안해 지며 인간관계가 불화하며 탐욕에 빠집니다. 실수가 많아지고 자주 시험에 빠집니다. 많은 문제와 사연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영적인 침체에 빠집니다. 예배를 잃어버린 사람은 영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예배는 삶의 뿌리가 됩니다. 예배가 은혜가 되어야 살림살이가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에 뜨거운 가슴을 가져야 내가 살아가는 삶이 뜨거워집니다. 예배는 삶을 반석에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반석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반석 페트라는 바위 돌 정도가 아닙니다.
암벽으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지를 말합니다. 구약에서 감히 넘볼 수 없는 확고부동 안전한 장소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용어로 많이 사용된 그 단어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인생을 보호하며 지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개인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복이 있다고 말한 사람은 신약성경에 딱 한사람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칭찬의 정도를 뛰어 넘는 탁월한 하나님의 축복의 선언입니다. 바요나라는 말은 아람어로 바르와 요나라는 단어의 합성으로 요나의 아들 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의문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아버지의 이름은 요한입니다. (요1, 21) 그런데 요나의 아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처음에 당신을 따라 나올 때 지어주신 이름이고요 (요 1:42)
그런데 왜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을 요나의 아들로 ,베드로라는 이름 대신에 시몬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실수일까요? 누구의 실수일까요 ? 예수님이 헛 갈리셨나요 ? 성경 기록을 잘못했을까요 ? 예수님을 결코 실수 하실 분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어하나 점하나 까지 영감 되었고 서기관들은 이것을 소중히 지켜 내어 우리 손에까지 성경이 전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어떤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중에 대표적으로 불순종하고 흔들린 자가 요나입니다. 니느웨로 가야 하는데 다시스로 갑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토해 내져 니느웨로 가지만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성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외치고 니느웨가 멸망 당하는 것을 보려고 언덕에 올라가 구경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요나는 끝까지 불순종하고 흔들린자 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반석으로 사용했습니다.
요나의 아들로 부르신 이유는 요나의 영감을 가진 시몬이라는 뜻일 것으로 저는 해석을 합니다. 베드로는 요나처럼 불순종하고 흔들리겠지만 결국 예수님께서 반석처럼 쓰시겠다는 의미이지요 . 비록 베드로가 기도해야 할 때 기도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할 한심한 사람임을 예수님은 아셨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그를 교회를 위해 반석으로 쓰고 말겠다는 예수님의 의지이십니다.
또한 '베드로'라 부르시지 않고 '시몬아'라고 부르신 것은 그의 신앙 고백 때문입니다. 무식하고 거친 어부시몬의 지혜로는 이 신앙고백이 나올 수 없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시면서 교회의 복은 하늘에서만 내려온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베드로의 옛날 이름으로 베드로를 깨닫게 하시며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을 했어도 그는 여전히 시몬이요 요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의 훗날은 정말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신약의 예루살렘 교회를 처음으로 담임하며 부흥을 주도 했습니다.
그것도 베드로의 지혜나 의지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강령하게 임한 성령을 통해서 엄청난 사역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고백이 인간의 지혜나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임이 확인 되었습니다.
신앙의 출발은 모두 시몬 같고 요나 같습니다.
하지만 신앙 고백이 참이라면 비록 지금 앞이 보이지 않고 절망적인 시몬의 상태일지라도 훗날은 반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다 연약한 요나이며 시몬같이 깨질 인생이지만
주님이 나의 구주가 되는 그 순간부터 내 미래와 내 가족은 페트라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귀합니까? 교회가 왜 능력이 있습니까? 인원이 많아서입니까? 재정이 많아서입니까?
교회의 힘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며 이 믿음의 축복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넘어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에 중국에 가서 보고 놀란 것이 만리장성과 자금성입니다. 나는 만리가 될까 그랬는데 사실 만오천리랍니다. 이 성을 평지에 싼 것이 아니라 설악산 공룡능선 같은 험한 산꼭대기에 쌓아 놓았는데 그 높이가 9 미터에 폭이 5 미터입니다.
그것을 인간이 손으로 쌓아다는 것이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그것 왜 쌓아나요 ? 북방의 이민족의 침입을 막고 평와와 번영을 누리기 위해 쌓은 것인데 그 제국은 바로 무너졌습니다.
성이 잘못 쌓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실공사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만 리 가운데 문 하나가 구멍이 생긴 겁니다. 한 곳만 매수를 하니까 그쪽으로 적들이 다 들어와 무너뜨렸습니다.
임금이 살던 자금성은 그 규모가 경복궁의 수십배가 넘어요 웅장하고 화려하고 중국의 임금이 천자로 불릴 만합니다. 직선으로 들어가서 직선으로 나오는데 3시간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10 분 1 밖에 못 본거래요 그 안에 9900 개의 방이 있습니다.
임금이 기거하던 건물 주변은 4 면으로 축구장만한 광장이 있는데 거기를 모두 바위로 깔았습니다. 혹시 땅속으로 자객이 굴을 파고들어 올까봐 땅속까지 4미터 깊이로 바위를 깔고 자객이 숨지 못하도록 나무 한 그루 안 심었습니다. 그 안에서 오래도록 부귀 영화를 누릴 줄 알았는데 명의 역사 200 여년 동안 제명에 죽은 임금은 두 명 밖에 없습니다. 모두 독살 되어 죽고 아버지에게 죽고 아내에게 죽고 어머니에게 죽고 자식에게 죽고 삼촌에게 죽은 겁니다.
아무리 높게 반석을 쌓고 아무리 깊게 깔았어도 그 위에서 더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영화에서 보니까 10.26때도 김재규가 총을 딱 뽑아들자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도 고꼬라지고 장관들 쪼인트 까던 경호실장 차지철이는 화장실 변기 뒤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방비를 잘해도 위기는 옵니다. 아무리 대비를 잘해도 음부의 권세는 우리의 턱밑으로 찾아옵니다.
돈으로 안되는 위기, 권력으로 안되는 위기, 유명한 의사로도 안되는 위기가 분명히 옵니다.
위기가 왔을 때, 환란이 왔을 때, 한순간에 닥치는 어려움이 올 때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그것이 결코 반석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서 아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금주에 삼성에서 7 년 동안 102 억 받으며 구조조정 본부에서 일했고 퇴사하고도 예우차원으로 3 년 동안 2200 만원씩 받았 먹던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했습니다.
재벌 그룹의 비리 어제 오늘 이야기 듣는게 아닌데 저는 그 변호사가 불쌍해요 그 엄청난 돈을 받고도 더 안준다고 고발 한 거예요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은 끝이 없어요 삼성 측에서야 그 엄청난 돈이면 입막음 될 줄 알았는데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같이 무너져 내리는 겁니다. 또 정치적인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 1야당에서 이번엔 한번 바꾸어 보자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후보를 힘겹게 경선을 통해서 내어
놓았더니 막 판에 대쪽같은 정치인으로 소문난 분이 당을 탈당해서 대통령 후보로 나왔습니다.
원칙을 대쪽같이 지키자던 분이 자기 손으로 만든 당에서 자기가 만든 경선 룰과 원칙을 먼저 깨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쪽이 아니라 갈대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누구를 반석으로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 세상의 것은 이렇게 무너지고 맙니다.
동지요 혈맹이요 해도 다 무너집니다. 지연 학연 선후배 관계 다 무너집니다.
가족관계도 다 무너져 부모가 자식 버리고 자식들이 재산 욕심에 부모 죽이고 형제끼리 재산 싸움 하느라 지금도 법정에 올라 있는 건이 수십만 건입니다. 다 믿었던 사람들이요 동지요 형제인 사람들하고 붙은 소송입니다. 뭘 믿고 의지해요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육이 무너졌고 기업들이 무너졌고 사회가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도 무너지고 있다고 하지만 교회는 흔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 흔들림속에서 교회는 더 튼튼해 지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 한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더 튼튼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 개월 전 우리는 아프칸 사태를 지켜보며 샘물 교회를 걱정했습니다. 그 교회 이제 끝난 줄 알았어요
금방 무너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교회가 그 사건 있기 전 보더 더 부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마지막 주에는 교회 설립 9 주년 감사 예배 때 피랍되었던 가족들 중 8 명이 세례를 받았답니다.
그들은 전혀 신앙이 없던 분들이었는데 자식들의 피랍 때 보여준 샘물 교회 성도들의 위로와 사람과 신앙을 보았습니다. 샘물 교회는 셀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위기의 순간에 , 고통의 순간에 그 위기를 자신의 위기와 고통으로 알며 목사와 장로와 제직이 더 하나가 되었습니다. 셀 들이 더 모여 기도하고 더 사랑하고 더 헌신했습니다. 그 모습을 믿지 않던 피랍자 가족들이 옆에서 다 지켜 본 거예요 . 무너져도 열 번 백번은 무너져야 하는데
더 은혜가 있고 더 사랑이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지 못한 교회의 참 능력 , 반석처럼 음부의 권세가 무너트릴 수 없는 놀라운 사실을 다 지켜 본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능력입니다. 무너질 위기 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이 신앙 고백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와 성도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셀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무너지지 않을 패트라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 잡아 주는 관계 이것이 셀입니다. 이제 셀 교회로 주중에 모일 때 여러분 어느 셀이든 들어가셔야 합니다.
셀이 뭔지 잘 몰라도 열심히 참석하다 보면 요나의 아들 같은 시몬이 반석같은 베드로가 될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몰려와도 흔들리지 않는 복있는 사람 , 복있는 환경이 만들어 질 줄 믿습니다.
교회는 무너지는 세상에서 피해오는 도피처입니다. 교회는 흔들릴 수록 더 강해지고 더 튼튼해 집니다.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기에 성도가 교회를 붙들면 일평생 고난과 환란을 이기며 승승장구하는 것입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찬송가 79장)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대고 환란풍파 없도다 (찬송가 439장)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434)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찬송가 539장)
찬송가 어디를 불러 봐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바위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끊임없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만이 굳건한 반석이십니다.
이 든든한 반석 위에 여러분의 영원한 헌신의 비를 세우십시오 , 축복의 씨를 뿌리십시오 , 미래의 소망을 투자하십시오
세계 불가사의가 있습니다. 멕시코의 마야 유적지 , 페루의 맞추피추 , 요르단의 페트라 ,인도의 타지마할 , 이집트의 피라밋 ,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다 대단한 건축물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건축물들을 불가사의하다고 자랑하는데 사실 불가사의한 것은 그런 건축물을 만든 나라들이 다 망했고 그 후손들이 가난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 사는데 쩔쩔 매고, 애들은 학교에도 못가고 남자 아이들은 탄광이나 채석장에서 죽도록 노동하며 겨우 입에 풀칠하고 여자 아이들은 10 살 때부터 몸을 팔며 반드시 삽니다. 그렇게 잘난 조상을 두고 잘난 건축물을 만든 후손들이 모두 저주 아래 있습니다.
진짜 불가사의는 건물 하나 무덤 하나 없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민족이 가난한 민족 봤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나라가 망한 나라를 봤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민족은 부해지고 높아집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는 다 예수 믿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쌓아야 할 성이 있다면 신앙의 만리장성이요 자자손손 복받고 번창하는 신앙의 불가사의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를 의지하면 삶의 견고한 바위가 되시며, 예수를 사랑하면 한없는 부유함이 주어지고, 예수께 감사하면 삶은 천국으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교회 성장 연구소의 명성훈 목사님의 간증을 이야기 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당신 교회 성도 중에 만원 헌금도 벌벌 떠는 짠돌이 경찰집사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헌금은 그의 아내가 몰래 드렸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만원의 헌금이 부부 공동 명의로 드려졌길래 이 부부를 불러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그 짠돌이 집사가 어릴 절 친구를 만난 사건 때문에 헌금을 하게 된 것입니다. 기봉이라는 어릴 적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과부로 5남매를 키우시며 교회 건축 때 건축비 부족으로 종탑을 하지 못하자 유일한 재산인 소를 팔아 교회의 종탑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 헌신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 학교도 못 보내는 주제에 소를 팔아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이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야유를 보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종이 울릴 때마다 “기봉이 소가 억울해서 우는 소리”라며 그 착한 가족을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기봉이는 중학교도 못 갔고 자기는 도시로 이사해서 고등학교 나와 경찰 시험 봐서 순경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살다가 20 년 만에 그 기봉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야간으로 공부해서 대학까지 나오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내노라 하는 준 재벌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비오는 어느 날125 CC 오토바이 타고 순찰 돌다가 최고급 벤츠 뒷 자석에 앉은 그 친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집사는 충격과 함께 소를 팔아 교회의 종을 세운 헌신의 기념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본 것입니다. 20년 전의 요나의 아들 기봉이는 반석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옛날의 어부 시몬이 베드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20 년 전에도 비난하는 요나의 아들이었던 것처럼 여전히 요나의 아들로 시몬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깨달은 바 두 자식을 위해 두 마리 소값을 계산하여 축복의 문을 열고자 헌금 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여러분의 교회도 될 수 있고 철새 도래지로 끝날 수도 있으며 이 교회를 통해 시몬에서 베드로가 될 수도 있고 시몬으로 그냥 끝날 수도 있습니다. 나와 내 자녀와 나의 가문을 위하여 축복의 씨를 심을 수도 있고 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은 오직 내 믿음 , 내 마음 , 내 헌신에 달려 있습니다.
다음 주일은 한해의 추수를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이 감사의 과일을 드리시고 감사의 물질을 드리시되 헌신될 만한 감사가 될 수 있게 하십시오 헌금자 명단 공개하지 않습니다. 헌금 내역도 주보에 올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마시고 목사도 의식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하시고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대하는 만큼, 소망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시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축복 받을 만큼의 믿음으로 드리시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부매랑이 되어서 반드시 내게 돌아옵니다. 교회는 과거에도 축복의 반석이었고 오늘도 축복의 반석이며 내일도 축복의 반석입니다. 이 사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나는 요나의 아들 시몬인지 아니면 베드로인지 나는 내 자녀들 앞에서 시몬의 아버지 요나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베드로로 살고 있는지 나의 10 년 , 20 년 후는 무너질 것인지 , 아니면 반석이 될 것인지
회사를 경영하던 한 가장이 부도를 내게 되었습니다. 몹시도 걱정하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우리가족은 뿔뿔이 떨어져 있어야겠다." 걱정스런 말투로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우리는 어디로 가요?" "너희들은 잠시 외갓집에 가서 살아라." "여보 나는 어떻게 해요?" "당신은 친정에 가 있으시구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하시게요?" "나야 처가댁에 가 있으면 되지요."우리 하나님. 이 가장의 처가댁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곳, 외로울 때 갈 수 있는 곳. 영혼의 고향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영혼의 고향인 교회를 통하여 생명을 얻고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며 꿈을 꿉니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보니 교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교회가 있는 교인”과 “교회가 없는 교인”의 두 그룹입니다. “교회가 없는 교인”이 과연 가능할까요 ? 교회 없는 교인이란 교회는 다니지만 진정 그 마음속에, 그리고 그 생활 속에 사실상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교인을 말합니다. 예배출석으로 교회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교인, 교회를 위해서 헌신이 거의 없는 교인, 교회의 문제에 대해 쉽게 불만하고 오해하는 교인, 내 교회 의식이 없는 교인입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는 철새 교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교인들에게 교회는 철새 도래지일 뿐입니다. 잠깐 있다가 맘에 안들면 다른 도래지를 찾아 떠나는 겁니다. 버릇 되면 평생 이렇게 살아요 불쌍한 일이지요 자녀들에게 귀감도 안되고 복도 못 받고 결국 외로움에 진저리를 치게 됩니다.
반면에 “교회 있는 교인”은 피와 땀과 눈물과 물질이 그 교회에 들어가 있는 교인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힘을 다하여 헌신하는 교인입니다. 그 결과 그 교회를 통하여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는 교인입니다. 한마디로 교회 때문에 간증거리가 있는 교인으로 담임목사가 다른 교회에서 설교할 때 자랑하고 싶은 축복이 확실한 교인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교인 되시길 바랍니다. 이 은빛 교회가 우리의 생과 뼈와 살을 묻을 수 있는 영혼의 고향이 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예배에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복은 예배의 복입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요 부흥이 있다면 예배부흥이 있을 뿐입니다. 예배가 타락하면 삶이 타락합니다. 예배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뿌리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중심엔 예배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잘해도 예배를 잘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장 건강한 신앙은 예배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 최우선순위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잃어버린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 버립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도 몇 주일만 한 번 빠져보면 하나님이 계시니 안계시니 마지막까지 가버립니다. 정서가 불안해 지며 인간관계가 불화하며 탐욕에 빠집니다. 실수가 많아지고 자주 시험에 빠집니다. 많은 문제와 사연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영적인 침체에 빠집니다. 예배를 잃어버린 사람은 영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예배는 삶의 뿌리가 됩니다. 예배가 은혜가 되어야 살림살이가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에 뜨거운 가슴을 가져야 내가 살아가는 삶이 뜨거워집니다. 예배는 삶을 반석에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반석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반석 페트라는 바위 돌 정도가 아닙니다.
암벽으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지를 말합니다. 구약에서 감히 넘볼 수 없는 확고부동 안전한 장소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용어로 많이 사용된 그 단어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인생을 보호하며 지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개인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복이 있다고 말한 사람은 신약성경에 딱 한사람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칭찬의 정도를 뛰어 넘는 탁월한 하나님의 축복의 선언입니다. 바요나라는 말은 아람어로 바르와 요나라는 단어의 합성으로 요나의 아들 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의문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아버지의 이름은 요한입니다. (요1, 21) 그런데 요나의 아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처음에 당신을 따라 나올 때 지어주신 이름이고요 (요 1:42)
그런데 왜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을 요나의 아들로 ,베드로라는 이름 대신에 시몬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실수일까요? 누구의 실수일까요 ? 예수님이 헛 갈리셨나요 ? 성경 기록을 잘못했을까요 ? 예수님을 결코 실수 하실 분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어하나 점하나 까지 영감 되었고 서기관들은 이것을 소중히 지켜 내어 우리 손에까지 성경이 전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어떤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중에 대표적으로 불순종하고 흔들린 자가 요나입니다. 니느웨로 가야 하는데 다시스로 갑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토해 내져 니느웨로 가지만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성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외치고 니느웨가 멸망 당하는 것을 보려고 언덕에 올라가 구경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요나는 끝까지 불순종하고 흔들린자 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반석으로 사용했습니다.
요나의 아들로 부르신 이유는 요나의 영감을 가진 시몬이라는 뜻일 것으로 저는 해석을 합니다. 베드로는 요나처럼 불순종하고 흔들리겠지만 결국 예수님께서 반석처럼 쓰시겠다는 의미이지요 . 비록 베드로가 기도해야 할 때 기도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할 한심한 사람임을 예수님은 아셨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그를 교회를 위해 반석으로 쓰고 말겠다는 예수님의 의지이십니다.
또한 '베드로'라 부르시지 않고 '시몬아'라고 부르신 것은 그의 신앙 고백 때문입니다. 무식하고 거친 어부시몬의 지혜로는 이 신앙고백이 나올 수 없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시면서 교회의 복은 하늘에서만 내려온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베드로의 옛날 이름으로 베드로를 깨닫게 하시며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을 했어도 그는 여전히 시몬이요 요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의 훗날은 정말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신약의 예루살렘 교회를 처음으로 담임하며 부흥을 주도 했습니다.
그것도 베드로의 지혜나 의지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강령하게 임한 성령을 통해서 엄청난 사역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고백이 인간의 지혜나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임이 확인 되었습니다.
신앙의 출발은 모두 시몬 같고 요나 같습니다.
하지만 신앙 고백이 참이라면 비록 지금 앞이 보이지 않고 절망적인 시몬의 상태일지라도 훗날은 반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다 연약한 요나이며 시몬같이 깨질 인생이지만
주님이 나의 구주가 되는 그 순간부터 내 미래와 내 가족은 페트라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귀합니까? 교회가 왜 능력이 있습니까? 인원이 많아서입니까? 재정이 많아서입니까?
교회의 힘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며 이 믿음의 축복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넘어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에 중국에 가서 보고 놀란 것이 만리장성과 자금성입니다. 나는 만리가 될까 그랬는데 사실 만오천리랍니다. 이 성을 평지에 싼 것이 아니라 설악산 공룡능선 같은 험한 산꼭대기에 쌓아 놓았는데 그 높이가 9 미터에 폭이 5 미터입니다.
그것을 인간이 손으로 쌓아다는 것이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그것 왜 쌓아나요 ? 북방의 이민족의 침입을 막고 평와와 번영을 누리기 위해 쌓은 것인데 그 제국은 바로 무너졌습니다.
성이 잘못 쌓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실공사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만 리 가운데 문 하나가 구멍이 생긴 겁니다. 한 곳만 매수를 하니까 그쪽으로 적들이 다 들어와 무너뜨렸습니다.
임금이 살던 자금성은 그 규모가 경복궁의 수십배가 넘어요 웅장하고 화려하고 중국의 임금이 천자로 불릴 만합니다. 직선으로 들어가서 직선으로 나오는데 3시간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10 분 1 밖에 못 본거래요 그 안에 9900 개의 방이 있습니다.
임금이 기거하던 건물 주변은 4 면으로 축구장만한 광장이 있는데 거기를 모두 바위로 깔았습니다. 혹시 땅속으로 자객이 굴을 파고들어 올까봐 땅속까지 4미터 깊이로 바위를 깔고 자객이 숨지 못하도록 나무 한 그루 안 심었습니다. 그 안에서 오래도록 부귀 영화를 누릴 줄 알았는데 명의 역사 200 여년 동안 제명에 죽은 임금은 두 명 밖에 없습니다. 모두 독살 되어 죽고 아버지에게 죽고 아내에게 죽고 어머니에게 죽고 자식에게 죽고 삼촌에게 죽은 겁니다.
아무리 높게 반석을 쌓고 아무리 깊게 깔았어도 그 위에서 더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영화에서 보니까 10.26때도 김재규가 총을 딱 뽑아들자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도 고꼬라지고 장관들 쪼인트 까던 경호실장 차지철이는 화장실 변기 뒤로 숨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방비를 잘해도 위기는 옵니다. 아무리 대비를 잘해도 음부의 권세는 우리의 턱밑으로 찾아옵니다.
돈으로 안되는 위기, 권력으로 안되는 위기, 유명한 의사로도 안되는 위기가 분명히 옵니다.
위기가 왔을 때, 환란이 왔을 때, 한순간에 닥치는 어려움이 올 때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그것이 결코 반석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서 아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금주에 삼성에서 7 년 동안 102 억 받으며 구조조정 본부에서 일했고 퇴사하고도 예우차원으로 3 년 동안 2200 만원씩 받았 먹던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했습니다.
재벌 그룹의 비리 어제 오늘 이야기 듣는게 아닌데 저는 그 변호사가 불쌍해요 그 엄청난 돈을 받고도 더 안준다고 고발 한 거예요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은 끝이 없어요 삼성 측에서야 그 엄청난 돈이면 입막음 될 줄 알았는데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같이 무너져 내리는 겁니다. 또 정치적인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 1야당에서 이번엔 한번 바꾸어 보자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후보를 힘겹게 경선을 통해서 내어
놓았더니 막 판에 대쪽같은 정치인으로 소문난 분이 당을 탈당해서 대통령 후보로 나왔습니다.
원칙을 대쪽같이 지키자던 분이 자기 손으로 만든 당에서 자기가 만든 경선 룰과 원칙을 먼저 깨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쪽이 아니라 갈대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누구를 반석으로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 세상의 것은 이렇게 무너지고 맙니다.
동지요 혈맹이요 해도 다 무너집니다. 지연 학연 선후배 관계 다 무너집니다.
가족관계도 다 무너져 부모가 자식 버리고 자식들이 재산 욕심에 부모 죽이고 형제끼리 재산 싸움 하느라 지금도 법정에 올라 있는 건이 수십만 건입니다. 다 믿었던 사람들이요 동지요 형제인 사람들하고 붙은 소송입니다. 뭘 믿고 의지해요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육이 무너졌고 기업들이 무너졌고 사회가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도 무너지고 있다고 하지만 교회는 흔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 흔들림속에서 교회는 더 튼튼해 지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 한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더 튼튼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 개월 전 우리는 아프칸 사태를 지켜보며 샘물 교회를 걱정했습니다. 그 교회 이제 끝난 줄 알았어요
금방 무너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교회가 그 사건 있기 전 보더 더 부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마지막 주에는 교회 설립 9 주년 감사 예배 때 피랍되었던 가족들 중 8 명이 세례를 받았답니다.
그들은 전혀 신앙이 없던 분들이었는데 자식들의 피랍 때 보여준 샘물 교회 성도들의 위로와 사람과 신앙을 보았습니다. 샘물 교회는 셀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위기의 순간에 , 고통의 순간에 그 위기를 자신의 위기와 고통으로 알며 목사와 장로와 제직이 더 하나가 되었습니다. 셀 들이 더 모여 기도하고 더 사랑하고 더 헌신했습니다. 그 모습을 믿지 않던 피랍자 가족들이 옆에서 다 지켜 본 거예요 . 무너져도 열 번 백번은 무너져야 하는데
더 은혜가 있고 더 사랑이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지 못한 교회의 참 능력 , 반석처럼 음부의 권세가 무너트릴 수 없는 놀라운 사실을 다 지켜 본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능력입니다. 무너질 위기 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이 신앙 고백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와 성도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셀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무너지지 않을 패트라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 잡아 주는 관계 이것이 셀입니다. 이제 셀 교회로 주중에 모일 때 여러분 어느 셀이든 들어가셔야 합니다.
셀이 뭔지 잘 몰라도 열심히 참석하다 보면 요나의 아들 같은 시몬이 반석같은 베드로가 될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몰려와도 흔들리지 않는 복있는 사람 , 복있는 환경이 만들어 질 줄 믿습니다.
교회는 무너지는 세상에서 피해오는 도피처입니다. 교회는 흔들릴 수록 더 강해지고 더 튼튼해 집니다.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기에 성도가 교회를 붙들면 일평생 고난과 환란을 이기며 승승장구하는 것입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찬송가 79장)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대고 환란풍파 없도다 (찬송가 439장)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434)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찬송가 539장)
찬송가 어디를 불러 봐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바위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끊임없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만이 굳건한 반석이십니다.
이 든든한 반석 위에 여러분의 영원한 헌신의 비를 세우십시오 , 축복의 씨를 뿌리십시오 , 미래의 소망을 투자하십시오
세계 불가사의가 있습니다. 멕시코의 마야 유적지 , 페루의 맞추피추 , 요르단의 페트라 ,인도의 타지마할 , 이집트의 피라밋 ,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다 대단한 건축물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건축물들을 불가사의하다고 자랑하는데 사실 불가사의한 것은 그런 건축물을 만든 나라들이 다 망했고 그 후손들이 가난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 사는데 쩔쩔 매고, 애들은 학교에도 못가고 남자 아이들은 탄광이나 채석장에서 죽도록 노동하며 겨우 입에 풀칠하고 여자 아이들은 10 살 때부터 몸을 팔며 반드시 삽니다. 그렇게 잘난 조상을 두고 잘난 건축물을 만든 후손들이 모두 저주 아래 있습니다.
진짜 불가사의는 건물 하나 무덤 하나 없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민족이 가난한 민족 봤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나라가 망한 나라를 봤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민족은 부해지고 높아집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는 다 예수 믿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쌓아야 할 성이 있다면 신앙의 만리장성이요 자자손손 복받고 번창하는 신앙의 불가사의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를 의지하면 삶의 견고한 바위가 되시며, 예수를 사랑하면 한없는 부유함이 주어지고, 예수께 감사하면 삶은 천국으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교회 성장 연구소의 명성훈 목사님의 간증을 이야기 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당신 교회 성도 중에 만원 헌금도 벌벌 떠는 짠돌이 경찰집사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헌금은 그의 아내가 몰래 드렸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만원의 헌금이 부부 공동 명의로 드려졌길래 이 부부를 불러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그 짠돌이 집사가 어릴 절 친구를 만난 사건 때문에 헌금을 하게 된 것입니다. 기봉이라는 어릴 적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과부로 5남매를 키우시며 교회 건축 때 건축비 부족으로 종탑을 하지 못하자 유일한 재산인 소를 팔아 교회의 종탑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 헌신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 학교도 못 보내는 주제에 소를 팔아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이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야유를 보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종이 울릴 때마다 “기봉이 소가 억울해서 우는 소리”라며 그 착한 가족을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기봉이는 중학교도 못 갔고 자기는 도시로 이사해서 고등학교 나와 경찰 시험 봐서 순경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살다가 20 년 만에 그 기봉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야간으로 공부해서 대학까지 나오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내노라 하는 준 재벌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비오는 어느 날125 CC 오토바이 타고 순찰 돌다가 최고급 벤츠 뒷 자석에 앉은 그 친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집사는 충격과 함께 소를 팔아 교회의 종을 세운 헌신의 기념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본 것입니다. 20년 전의 요나의 아들 기봉이는 반석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옛날의 어부 시몬이 베드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20 년 전에도 비난하는 요나의 아들이었던 것처럼 여전히 요나의 아들로 시몬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깨달은 바 두 자식을 위해 두 마리 소값을 계산하여 축복의 문을 열고자 헌금 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여러분의 교회도 될 수 있고 철새 도래지로 끝날 수도 있으며 이 교회를 통해 시몬에서 베드로가 될 수도 있고 시몬으로 그냥 끝날 수도 있습니다. 나와 내 자녀와 나의 가문을 위하여 축복의 씨를 심을 수도 있고 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은 오직 내 믿음 , 내 마음 , 내 헌신에 달려 있습니다.
다음 주일은 한해의 추수를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이 감사의 과일을 드리시고 감사의 물질을 드리시되 헌신될 만한 감사가 될 수 있게 하십시오 헌금자 명단 공개하지 않습니다. 헌금 내역도 주보에 올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마시고 목사도 의식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하시고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대하는 만큼, 소망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시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축복 받을 만큼의 믿음으로 드리시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부매랑이 되어서 반드시 내게 돌아옵니다. 교회는 과거에도 축복의 반석이었고 오늘도 축복의 반석이며 내일도 축복의 반석입니다. 이 사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나는 요나의 아들 시몬인지 아니면 베드로인지 나는 내 자녀들 앞에서 시몬의 아버지 요나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베드로로 살고 있는지 나의 10 년 , 20 년 후는 무너질 것인지 , 아니면 반석이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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