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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지옥의 군대가 진군해 오고 있다.

작성자담목사|작성시간08.06.20|조회수78 목록 댓글 0
계 12: 7- 12 영적전쟁
경북 영천의 죽림사 주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한 불교 정토종의 교육국장과 포교국장을 지낸 불교계의 거목인 혜경 스님이 84 년 기독교로 개종하여 목사까지 되자 세간에 화제가 되었고 불교계의 테러 위협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이 김성화 목사님입니다. .
경북대 수학과를 나와 한 때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결국 승려가 되어 불교계의 영향력 있는 자리에까지 올라 불교계를 정화하고 불교 대학을 세워 기독교에 밀리고 있는 한국 불교를 부흥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오늘날 불교가 기독교에 밀려서 쇠퇴하고 있는 것은 불교 승려들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란 생각에 불교대학설립을 강력 추진했습니다. 그는 불교계의 유명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10억원의 토지도 기증받고 일본 불교에서 10억원 기부 약속도 받아냈습니다.
불교대학 학생이 머리도 기르고 평상복을 입도록하며 의식때만 법복을 입도록해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포교를 통한 교세확장을 장담했습니다.
1년에 1천명의 승려를 배출하면 극성스러운 기독교를 물리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현판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시점에 교단 내부의 정치적 역학관계의 악화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대학설립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는 교도소에서 염불과 참선을 거듭하며 교도서 도서관에 있는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승엄경등을 빌려 보며 더 깊은 진리를 탐구합니다.
도서대출은 군 복무중인 경비교도대원이 맡아보고 있는데 가끔씩 기드온협회가 발간한 신약성경을 가지고 옵니다.
그 대원에게 화를 내었지만 "불경은 대출되 없어 심심하실까봐 성경 가지고 왔으니 한 번 읽어 보시죠!

스님 전 세계에 10억 인구가 믿는 기독교에도 진리는 있습니다. 저는 내일 제대합니다. 스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는 괘씸하기도 하고 기독교인은 정말 지독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 같은 골수 불교 스님에게도 전도를 하는 그들의 열의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들어가면서 점점 빠져들었고 말로 못할 큰 충격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평소 그렇게 알고자 희원했던 생로병사 문제가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풀려저 씌어 있었습니다.

옛날 인도의 구시라성의 시디림에 한 젊은 과부가 애통함에 울부짖을 때 부처는 그 사유를 물었고 과부는 병중의 외아들을 살려달라 애원했습니다. 석가모니는 한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쌀 한 줌을 얻어다 죽을 끓여 먹이면 살아날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기쁨으로 이 쌀을 구하러 간 과부는 오후 늦게 빈 손으로 돌아와 부처에게 사람이 한번도 죽은 적이 없는 집을 찾지 못했다고 고했고...
부처는 "자매여 (생자필멸)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며 인연따라 일어나고 인연따라 없어지니 무엇을 슬퍼하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이해가 되고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 그러나 예수님의 처방은 전혀 달랐습니다. (눅7:14~15)
"나인성 과부의 애통함을 보시고 "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같은 과부 아들의 죽음 앞에 부처는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 들이는 인간의 한계를 못 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얻는 기쁨을 맛보게 했습니다.

여기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에게 참 진리가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 진리를 깨닫고 번뇌와 고뇌에 몸부림 치다가 예수님의 품안으로 들어와 평안과 영생을 얻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는 생명이라 말합니다. 일본의 구로자키 목사는 교회는 생명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생명입니다. 영원히 저주 받아 죽음의 길에 있던 인생이 새 생명을 찾는 곳 영원한 진리와 생명을 얻는 곳 그곳이 교회입니다.

교회의 사역은 바로 생명 사역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그런데 이 생명을 날마다 사망으로 바꾸려는 사역이 이 교회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며 신앙을 변질시켜 나도 모르게 생명에서 떨어트리려는 무서운 사역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엄청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살리려 하고 한쪽에서는 죽이려 합니다.

7절-9 절 이 싸움의 대상과 결과를 알려 줍니다.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과 용과 그 사자들이 - 하늘에서 땅으로
용은 옛뱀 - 창 3:1 이하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하게 만든 뱀을 가리
' 사단'(*사타나스) -'대적' 이라는 뜻
' 마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볼로스' 는 참소자나 중상하는 자를 의미

이 사단의 또 다른 이름은 참소자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의 참소자 = 형제를 죽이려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와 같은 예가 욥기에 나옵니다. -(욥 1:6-11 )
그러나 이 싸움의 결과는 10-12에서 사단이 그리스도의 피로 진 것을 봅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싸움을 시작했지만 결국 예수님이 최후의 승리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 있는 모닝스타교회를 담임하는 릭조이너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세계적인 대 예언가로서 2005 년 우리 나라에 와서 잠실에 있는 오륜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때 한국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그 때 우리 나라의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 하며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킨 분입니다.
이 분이 기도하던 중 엄청난 환상을 보았는데 그것이 마지막 때 사탄과의 영적 전쟁입니다.

그 분의 책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중 지옥의 군대들이 진군해 오고 있다의 한 장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귀의 엄청난 군대가 지옥에서부터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사단 규모로, 연대 규모로 대대 규모로 그리고 중대와 소대와 분대로 편재되어 조직이 잘 갖추어진 정예병들이었다. 그리고 각 부대의 앞에는 군기가 있는데 깃발의 이름은 교만, 자기 의, 존엄, 야욕, 불의한 판단, 질투, 시기등 이었다

이들이 들고 있는 칼의 이름은 협박이요 창은 배반, 그리고 화살들은 참소, 험담, 중상 , 흠잡기라고 쓰여 있었다.
지옥 군대의 선봉대는 앙심, 조급, 용서하지 못함, 정욕이었고 이들은 최 정예병이었다.
이 지옥의 군대를 이끄는 마귀의 대장은 형제들의 참소자였다.
이 군대의 일차 전략은 가능한 대로 모든 관계를 깨는 것이었다.

각 교회들의 상호관계, 성도들과 목사들, 부부, 부모와 자식, 그리고 심지어 어린이 서로간의 모든 관계에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먼저 정찰병들은 교회들과 가정들 그리고 각 개인들 안에 있는 틈새를 찾아 내었고 거기에 선봉대가 치고 들어가 앙심과 조급함으로 틈새를 더욱 벌린 다음 수많은 부대들이 이 틈새를 통해 밀어 닥치고 죽음이라는 비수를 꼿는 것이었다.
환상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 강력한 지옥의 군대들이 말을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어깨를 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 중 대부분은 옷을 잘 차려 입고 존경 받을 만하고 또한 세련된 데다 교육도 잘 받은 듯이 보였으며 사회 각 계층을 고루 대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어깨에 올라타고 지옥의 군대들은 마음 껏 이간질과 비판과 험담과 시기와 질투와 중상모략으로 생명을 사망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허무 맹랑한 환상 같습니까 ?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분열하고 또한 얼마나 많은 성도들끼리 싸우고 원수가 되어 있습니까 ?
분명 교회는 무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스펄젼은 지적합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한 사단의 가장 무서운 노림수는 사탄의 존재를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신앙과 교회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사탄의 노림수에 걸려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신앙의 싸움은 무엇이며 또한 지옥의 군대를 이길 비결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영원한 용서를 통해서입니다. 어린양의 피는 용서의 핍니다.
기독교에서 용서를 빼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게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용서로 시작해서 용서로 마쳐지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생이 마감되면 용서의 문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당해야 될 온갖 수치와 냉대를 받으셨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용서를 완성하시기 위해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용서의 역사를 펼쳐가십니다.
본문은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저 문을 통과하여 이 곳에 들어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하신 놀라운 복음을 믿을 때 우리에게는 용서의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이 강단은 하나님의 용서의 선포장이요 목사는 용서의 대언자요 교회는 값없이 용서를 파는 곳입니다.
성경은 용서의 알림장이요 십자가는 용서의 영수증이요 성령은 용서의 전파자입니다.
용서의 능력을 잃어버렸던 사람들이 주님 앞에 찾아 나올 때마다 용서를 사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이 엄청난 용서의 능력은 예수님은 마18:21-22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자가 임금에게 탕감 받는 장면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1만 달란트는 자신을 팔고 아내를 팔고 자식을 팔아서도 갚을 수 없는 액수입니다. 1만 달란트는 1억 데나리온에 해당됩니다. 1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싹입니다.
그러니 1억 데나리온에 해당되는 1만달란트는 일꾼 천명이 274년을 벌어서 한푼도 안쓰고 모아야 되는 금액입니다.

나라의 세금으로 계산해 보면, 그 당시 유대 전역에서 거둬들이는 1 년 세금이 800 달란트였습니다.
1만 달란트라면 13 년을 거둬야 하는 양입니다. 여기 나오는 탕감 받은 종은 나라를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왕을 얘기합니다.
1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는 것은 과장법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그런 빚을 지고 살 수 있단 말입니까? 과장법입니다.
예수님은 이 과장법을 통해 죄인이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이 얼마나 엄청난 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 모든 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받았습니다.
탕감이라는 단어 “ 아피에미”는 세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① 죄를 멀리 옮겨버린다. ② 죄를 완전히 불태워 먼지로 만들어 죄를 날려버린다. ③ 더러운 오물을 깊이 묻어 덮어버린다.
시편 103편 12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옮겨버렸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피에미 탕감해 준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까?
그런데 왕으로부터 모든 부채를 탕감받고 기쁨에 겨워 나오다가 옛날 친구를 만났는데 자기 돈 떼어 먹고 도망간 친구입니다.
멱살을 움켜쥐고 그 빚 갚으라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친구는 엎드려서 조금만 말미를 달라고 싹싹 빕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너는 감옥에 들어가라. 네 부인보고 갚으라 하라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겨우 백데나리온 때문에 그는 짐승이 됙고 맙니다.

이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입니다. 이게 내모습이요 너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일만 달란트 모두다 탕감 받았습니다. 구속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받은 상처, 미움, 손해, 분노는 일백 데나리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용서하지 않고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른 사람의 암덩어리를 내 감기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는게 인간입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태산처럼 느껴지는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준 것은 티끌처럼 느껴지는게 죄악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데, 내가 받은 용서가 자비가 얼마나 큰 것인데, 그것은 다 잊어버리고 내가 받은 손해만 기억하고 살아가는게 인간의 죄성입니다. 이 틈새에 지옥의 군대들이 돌진해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를 분열케 해 생명의 기관이 죽음의 공동묘지가 되게 합니다.

사단의 전위대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잃어버린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험담하며 비판하며 참소하며 분열케 하고 있습니다.
마 5: 22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롬 3:13-18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흘리는데 빠른지라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일만 달란트 가치를 주고 구원해 주신 형제를 업신여깁니다. 참소합니다. 사탄의 앞잡이가 됩니다.
우리는 아무렇치도 않게 판단하고 아무렇치도 않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사탄의 전위병이 숨어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가정의 분열과 교회의 분열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말이 있습니다. 판단하고 비판하고 험담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결국 수많은 상처와 아픔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자존심 세우지 마십시오 , 교만하지 마십시오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이요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겸손과 사랑의 옷을 입고 말해야 합니다. 아픔이 있습니까 ? 무조건 용서하십시오 이해하십시오 관용하십시오
너그러워 지십시오 그것이 영적 전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1 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로 사셔야 합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주셔야 할만큼 어렵습니다.
살다보면 오해당하고 거절당하고 비판과 냉대를 받으며 억울함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결정적인 상처가 생깁니다. 그 때에 참으십시오 말하지 마세요 그 때 정당성 있게 말하는 거기에 사탄이 여러분의 어깨를 탑니다.
미움은 사탄의 틈입니다. 미움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원하든 원지않든 이미 사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불만이 가득하고 시기가 가득하다면 그 사람은 사탄에게 틈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비방하게 됩니다. 형제 눈의 티를 찾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보십시오
벧전 3:10-11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 그것이 우리에게 복입니다.

약 1: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의 옷을 입으세요 사랑의 옷을 입으세요 믿음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용납합니다.
약 4:11-12 -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판단하느냐

절대 믿음의 형제를 참소하지 마십시오 판단하지 마십시오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복입니다. 우리는 입법자도 심판자가 아니라 준행자입니다.
본문12 절에서 '거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케눈테스'는 문자적으로 '장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장소였던 지성소를 지칭할 때 쓰는 말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성소 중에서도 가장 깊이 있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도 하늘의 하나님과 교제하는 깊은 지성소가 있습니다. 이 지성소는 기도의 지성소입니다.

은혜의 지성소입니다. 감사의 지성소요 겸손의 지성소입니다.
기도하며 은혜로 살려하는 자는 지옥 군대의 어떠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사요 의의 병기입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사시사철 푸르르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굳어진 땅, 차가운 바다 같은 신앙 생활하는 분도 있습니다.

늘 불만이 많습니다. 일만 달란트의 은혜는 없고 백 데나리온의 빚에 비판만 합니다. 감사가 없고 겸손이 없습니다.
기도도 없고 영적 체험도 없이 말씀은 자라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사탄이 분을 내며 그의 어깨를 타고 마음껏 공격합니다.
결국 사탄의 졸개 노릇하며 불의의 병기로 하나님의 진노만을 사게 됩니다.
교회는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는 곳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지옥의 군대가 날마다 공격하여 생명을 사망으로 바꾸려 합니다
우는 사자같이 지금도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자칫 내 어깨에 지옥의 선봉대가 올라 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게 건강, 돈,이 필요해요.”
하나님은 이 시간 말씀합니다.“아니다. 네게 용서가 필요하다. 용서는 네게 치료와 회복과 형통의 능력이 되어 줄 것이다.”
남에게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은혜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기도가 불가능해 집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담이 막혀버립니다. 믿음이 약해집니다. 믿음이 떠나갑니다. 손해 봅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영혼도 쇠약해집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고 결국 어깨를 내주고 맙니다.
그럼 이제 죽음의 비수가 내 심장을 겨누고 형제를 겨누는 일 밖에 없습니다.

선한데는 지혜롭고 악한데는 미련하십시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우리 발 아래서 상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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