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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말이 바뀌면 인생이 변한다.

작성자담목사|작성시간08.08.19|조회수126 목록 댓글 0
민14:26-28, 막11:23-24 말이 바뀌면 인생이 변한다.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도와 전라도와 경기도의 참새들이 광화문의 전기 줄에 앉아 미국산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국산 쌀을 선호한다.” 검증되지 않는 쌀은 거부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다시하라 “
점점 시위가 격해지자 포수들이 나타나 참새를 향해 총을 겨누었습니다. 그 다급한 순간을 경상도 참새가 발견하고 재빠르게 소리를 질러 위험을 알렀습니다.
수백발의 총성이 올리고 잠시 후 살펴보니 경상도 참새들만 살아 남아 있습니다. 경상도 참새의 외침은 이것이었습니다. “ 칵 수구리 ”

알아 들어야 삽니다. 설교는 귀에만 들려진다면 그것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내 가슴에 들려져 내 잠자는 영혼을 깨워야 그것이 설교입니다.
내 무딘 양심이 날카로워지고 내 둔한 영적 감각이 민첩해져 나의 육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설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 이 시간에 이런 설교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 감동과 감화로 역사하길 소원합니다.
오늘은 축복씨리즈 세 번째 시간 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변한다가 첫 번째요
꿈이 바뀌면 인생이 변한다가 두 번째였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이 바뀌고 꿈이 바뀐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

말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말을 보면 생각을 알 수 있고 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이 바뀌면 인생이 변한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귀는 두 개를 만드시고 입은 하나를 만드셨습니다. 두 개의 귀는 언제나 그 문이 열려있습니다. 좋은 소식 복된 소식 많이 듣고 살기 위함이지요. 그러나 하나 뿐인 입은 문을 두 개 두었습니다.
부드러운 입술의 문이 있고 그 뒤에는 20개의 강철 같은 이빨로 구성된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 혀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유는 말을 함부로 하거나 많이 하면 손해 보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고 독일 속담에는 "고기는 낚시 바늘로 잡고 사람은 말로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헬라 속담에는 "혀는 뼈 하나 없고 아주 약하나 사람을 찔러 죽이기도 하고 역사를 건설하기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의 중요성을 동 서양의 선현들은 일찍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말은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말은 살아 있습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창조력과 힘을 가진 인생 최대의 에너지입니다.

마치 태양 에너지가 모든 생물을 살게 하듯이 말도 사람의 모든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생명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손으로 주물러 창조하시거나 기계로 구워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던 창조의 계획을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령하실 때 창조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창조를 기록한 창세기 1장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가라사대"란 말이 10번 이상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의 능력입니다. 이런 놀라운 능력을 하나님은 인간에만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수많은 은혜를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능력은 말의 권세입니다.
말은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있습니다.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

모든 생물들은 아담이 말하는 대로 이름과 운명이 결정되어졌습니다. 사자라 이름하니까 사자가 된 것입니다.
기린이라 이름 하니까 기린이 된 것입니다. 사자라 이름했는데 토끼가 되고 사슴이라 이름했는데 돼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말한데로 그것이 동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말한데로 되는 것 그것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들이 자식을 낳아 아무개라 부르면 그것이 곧 그 사람의 평생 이름이 되는 것처럼 아담이 말한데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의 권세입니다. 말한데로 그대로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가진 권세입니다.
오늘 읽은 신약 본문23절을 봅시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 말한 것이 뭡니까 ?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입니다. 직설법으로 바꿔 봅니다. 산아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입니다.
이 말은 얼토 당토 않은 말 아닙니까 ? 산이 인격체도 아니데 어떻게 산에게 말을 해요
그것도 바다에 던지우라는 있을 수 없는 말을 할 수 있어요 말을 그렇게 하는 것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
그런데 분명 산이 바다에 던지우라는 말 그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뒤에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된다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 예수님은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중요하지만 입의 고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아주 좋은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의롭다고 하는 것과 구원은 하나의 개념입니다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살인죄로 20 년을 감옥에서 복역하던 죄수가 진짜 범인이 밝혀져 풀려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 생활 하던 죄수에게 어느 날 저녁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정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받는 그 순간부터 그는 의롭게 된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이 되어 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로 감옥에서 출소한 것은 아닙니다. 밤이 늦었기 때문에 그는 감방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다음 날 출옥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 다음 날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시작이지만 구원은 결과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시작은 마음으로부터 예수를 믿을 때 시작됩니다. 그것이 의롭다 인정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을 때 나의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 다 갚아진 의롭게 된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구원은 나의 입으로 고백할 때 이루어 집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 분은 부활하셔서 나의 주가 되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고 나는 이제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그렇게 할 때 구원이 이루어진답니다. 마음에 있는 믿음은 의로움의 시작이지만 고백이 있어야 구원이 결과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입술의 고백인 아멘이라는 말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여러분 병에서 구원받고 싶으십니까 ? 나았다고 선포하십시오 , 가난에서 해방되고 싶습니까 ? 나는 부자라고 선포하십시오. 고통에서 구원받고 싶으십니까 ? 나는 자유하다고 선포하십시오. 슬픔에서 구원받고 싶으십니까 ? 나는 기쁘다고 선포하십시오
언어 생활이 바뀔 때에야 진정한 구원이 이루어 집니다. 왜요 내가 고백한 그 말에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권세 때문에 예수님은 산아 바다에 던지우라는 말을 사용하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하신 것입니다.

일본의 에모도 마사로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물은 사람의 말에 반응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사람이 물을 향해 심한 모욕의 말을 하면 물의 결정체가 흉하게 깨져 그 모양이 형편없이 변한답니다.
그런데 물을 보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긍정적인 말을 하면 물의 결정체는 아름다운 육각형을 띠고, 나아가 "너를 사랑해!"라고 물을 향해 말하면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로 물의 분자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단순한 소리의 파장이 아니고 말은 형상을 만들고 환경을 만들고 역사를 이루는 능력입니다.
24절을 보세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니라"(막11:24)
기도는 뭐고 구하는 것은 뭡니까? 같은 말 아닌가요? 예 기도와 구하는 것은 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굳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으로 분류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
기도하고 구하는 것 중 앞부분의 기도하고는 사람에게 있는 말의 권세를 어떻게 기도에 적용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고침받지 못했습니다.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먼저 받았다고 이루어졌다고 고침받았다고 해결되었다고 말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하고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24 절 말씀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요11장을 보면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나사로를 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먼저 “ 아버지여 내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
그리고는“ 나사로야 나오라 ” 명령합니다. 그랬더니 나사로가 수의를 입은 채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만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에서 나가는 모든 말을 먼저 듣는다는 것 그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서 나가는 모든 말을 듣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다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형식으로 눈을 감고 머리 숙이는 것만 기도가 아니라 그 전에 어떤 말이든 내 입에서 나가는 것이 다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입술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런 말이나 뱉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말해야 합니다.

기도의 용어는 진실하며 사랑스러우며 아릅답고 거룩합니다.
그 복된 용어를 교회 와서만 쓰지 말고 간구하러 오기 전 일주일 동안 살면서 동일하게 사용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평소에 말은 나쁘게 해놓고 간구만 근사하게 하는 것 그것은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힘들어 죽겠다. 답답해 죽겠다. 어려워 죽겠다. 화난다. 그럴 줄 몰랐다 " 이런 말을 내뱉고는 교회와서는 도와주세요 구해주세요
그러니 기도 응답도 없고 기쁨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가 병들고는 결코 기적은 없습니다.

이런 중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읽은 구약본문에 나옵니다.
본문 민수기14:28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과 성품 그리고 인격을 걸고 맹세하는 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신구약 성경에 이만한 강조어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이건 너무나도 엄청난 맹세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직접하신 맹세이자 하나님의 인격과 하나님의 삶을 걸고한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그 맹세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면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나안 땅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이들은 그 땅을 정탐해 보기로 합니다. 열두 지파로부터 각각 한 명씩 대표를 뽑아 요단강을 건너가 정탐토록하고 보고를 받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믿음의 보고, 긍정적인 말을 합니다.

"저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7-9)
그러나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말, 불신앙적인 보고를 합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그 백성은 모두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 그들 앞에 우리의 꼴은 메뚜기와 같았다"(민13:31-33)
이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말은 60만 이스라엘 장정들에게 염병처럼 전염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불평하고 심지어 애굽으로 돌아가자 외치며 지도자를 돌로 치려 합니다.

바로 이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7-28)
우리에게 말의 권세를 주신 그 하나님은 또 들으시는 하나님이시오 들린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보고를 한 갈렙과 여호수아만 그 땅을 밟게 하고 10 명의 정탐꾼과 부정적인 영향에 물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 년을 방황하게 하며 다 죽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의 말이 빚은 어처구니 없는 결과였습니다.
따라서 할까요 ? 불평하기 좋아하는 인생은 광야에서 그 인생을 보내게 된다.
부정적인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인생도 광야에서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말의 특권은 곧 말의 책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입의 말을 따라 보상도 하시고 축복도 하시지만 그 말이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일 때 책임을 물으시고 심판도 하십니다.
옛날 어느 상인이 시장 바닥에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지혜, 사람을 얻고 지위를 얻고 돈을 얻고 출세하는 지혜를 판다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사람들은 그 지혜를 사기위해 몰려들었고 상인은 선불을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말 한마디를 남기곤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말조심 해!」
하찮은 말 한마디가 무슨 인생을 지배하랴 싶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할 수 없다는 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맛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축복받는 것 아닙니다. 말을 잘해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죽어라고 봉사해 놓고 집에 가서 씩씩 대지 마십시오. 앞에서는 감사하고 뒤에 가서는 욕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말하는 사람이 긍정적인 인생을 사는 것 봤습니까 ? 저주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축복의 삶을 사는 것 봤습니까 ?
말이 거친 사람이 부드러운 삶을 사는 것 봤습니까 ? 더러운 말이 가득한 사람이 깨끗한 생활을 하는 것 봤습니까 ? 비방을 일삼는 사람이 칭찬을 받으며 사는 이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고 사는 이가 있습니까 ? 없습니다.

잠 19:20-21 “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사람은 그 입술의 열매를 먹고 사는 것이랍니다. 말 잘한다고 말 많이 하지 마십시오. 말이 많으면 허물도 많습니다.
말은 권세도 있지만 그 만큼 책임도 큽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것 때문에 복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합니다.
저 어려서 동네에 중풍 환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개 중에는 오랫동안 병치래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집안은 병자인 본인도 고통이지만 그 자식들도 무척이나 고생스러웠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제 어머니께서 “ 난 저렇게 되면 양잿물 먹고 죽어 버릴 거야 ” 혼자말로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식들한테 “난 저렇게 되면 죽을 거니까 밥도 주지 말고 죽게 내버려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께서 쉰 아홉 이른 나이에 중풍으로 대소변을 받아내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장담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말한데로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난 저렇게 되면” - 분명히 우리 어머니께서 난 저렇게 되면 그러셨습니다. 다행히도 양잿물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벧전 3:10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잠 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임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믿음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모두 저주니다. 그것 따라 하지 마십시오
나의 말은 내 자신을 변화시키고 우리 가족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운명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어떻게 쓰며 사느냐에 따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의 삶에는 확실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제 동기 중에 전주에서 50년 된 역사와 200 명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하던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을 제가 2006년 1월에 만나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는데요 그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목회 못해 먹겠네 , 정말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 지난 6 월 그 교회 사임하고 개척을 시작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의 권세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내 입에서 나가는 모든 말이 축복의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내 자신을 향하든 남편을 향하든 이웃을 향하든 모두 축복의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믿음의 말을 잘하는 것 , 축복의 말을 잘 하는 것 그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과 연습이 없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축복의 말이 습관이 될 때까지 우리는 훈련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철저히 훈련하고 연습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믿음의 말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내 모습은 내 말의 결과입니다. 우리 집안,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는 내 말의 결과입니다.
말로 사람을 살리고 말로 사람을 죽입니다. 말로 세우고 말로 무너뜨립니다.
말로 교회를 세우기도하고 말로 교회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내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믿습니까?

사람은 현실에 따라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믿음으로 말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마음으로 정말 진실하게 믿어도 입술이 믿음의 말이 없다면 광야에서 뺑뺑이만 돌 뿐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믿음의 언어와 축복의 언어를 선포하는 인생은 이 세상을 살 동안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기적의 언어를 쓰면 기적을 볼 것이요 평강의 언어를 쓰면 평강을 채험 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니 자신에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부족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언어를 가지고 노래했더니 정말 하나님은 그를 부족함 없는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말은 우리의 환경과 운명, 우리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십니까? 기적의 말을 선포하십시오.
시119:89을 보면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늘에 서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굳게 세우는 겁니다.
현실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고쳐지지 않았고 해결되지 않았고 변화되지 않았어도 우주를 떠 받들고 있는 하나님이 말씀을 굳게 잡고 믿음의 말을 먼저 선포하는 겁니다. 이루어 졌습니다. 고쳐졌습니다. 해결 되었습니다. 변화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세우는 것이요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과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믿음으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불평하고 싶을 때 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원망하고 싶을 때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포기하고 싶을 때 기도하는 겁니다. 그것이 성도의 선한 싸움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제 알아들으셨고 깨달으셨습니까 ?
여러분의 입에 붙은 말은 소리에 파장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권세요 영적인 힘입니다. 말한데로 되어 집니다.
그리고 그 입술의 말은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시며 또 하나님이 들으신 데로 해 주십니다.
어떤 말을 하시며 사시렵니까 ? 광야의 말을 하시며 사시렵니까 ? 믿음의 말, 축복의 언어를 하시며 사시렵니까 ?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축복의 말이 여러분의 입을 통해서 이 땅에 세워지게 하십시오 승리의 말 , 기적의 말 , 축복의 말 , 믿음의 말 , 칭찬과 격려의 말 , 감사의 말 ,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하십시오
그 말을 훈련하시고 연습하셔서 습관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미래는 기적으로 승리로 채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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