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현인들은
"지문무자 지악무성(至文無字 至樂無聲)" 이라 하였습니다.
즉 "최고의 문장(文章)은 겉으로 드러난 겉글자에 있지 않고 글속의 뜻에 있으며,
또 최고의 음악(音樂)은 소리의 지름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너머에 있는 무음성의
조용한 우주적 조화에 있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노자(老子)가 도리덕화경의 첫머리에서 말하는
"도는 도라고하면 이미 진정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 설시한 것처럼
문장도, 음악도 그 말초의 겉이름으로 불리면 이미 모두가 그 본체의 순정성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선문방에서 불립문자 이심전심 (不立文字 以心傳心)의 무문자 전통을 지켜나가
는 소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明나라의 홍자성(洪自誠)이 저술한 <채근담(菜根譚)>에서
“은자(隱者)의 풍류에 관한 일이란
모름지기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마음이 내키는대로 즐기기 위해 있다.
따라서 술은 권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바둑도 승부를 관심 밖에 두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피리는 음률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풍류에 맞는 일이며,
금(琴)은 줄(絃)이 없는 것이 고상하다고 여긴다”
는 말들이 있습니다.
불경에서 말하는 마음을 울리는 심금(心琴)이 그렇고
도연명이 옆에 두고 농한 그의 무현금(無弦琴)도 그렿습니다.
"淵明不解音律
而畜無絃琴一張
每醉適 輒撫弄以寄其意。
도연명은 음률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줄 없는 거문고를 하나 비껴두고는
매양 술기운이 오르면
그럴 때 마다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실어 달래곤 하였다"
현대에 들어와서 위와 같은 "무악기 무음성의 최고의 음악"은
미국의 전위적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 9. 5~1992. 8. 12)가
1952년 독일의 도나웨신겐에서 개최된 현대음악제에서 <4분 33초>라는
작품을 발표,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시연한 4분 33초 동안의 무언어 무동작
"침묵의 음악"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어쩌면 모순같이 여겨지는 역설의 진리는 세상만사에 두루 미쳐서,
내가 배운 법률의 속담(法諺:법언)에도
"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법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있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역시 보편타당성을 그 절대속성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적용범위에서도
결단코 그 예외를 인정하지 않나봅니다.
그러나 웃기는 것은, 술 담배 폭력은 인류의 적이기 때문에 더 마셔서 없애고,
더 피워 태워서 없애고, 더 잔혹히 싸워서 이들을 지구로부터 추방시키고 박멸
시키자는 구호가 술고래, 체인스모커, 폭력지상주의자들 사이에 농담조로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것도 웃기는 (현실)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