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임란의사추모백일장 수상작
-산문-
초등부
<최우수>
약속 / 옥승민(경주초 5년)
나는 전교부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깨끗한 학교, 인사를 잘 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나는 비록 전교부회장에서 떨어졌지만 내가 우리 학교를 위해 해야 할 약속이라 생각하고 매일 스스로 쓰레기 줍기,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학급회의 시간에도 이것을 건의했다. 내 말이 콧방귀를 뀌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우리 반은 조금씩 변화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가끔 내가 주우려는 쓰레기를 먼저 줍는 친구가 있어 서로 줍겠다고 티격대고, 먼저 인사하겠다고 앞으로 더 빨리 가는 친구들도 생겼다.
나는 친구들 앞에 혼자서 한 약속이었지만 내가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하나 둘 동참하게 되었고 나는 이것을 캠페인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외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지면서 무서워하거나 두려움에 떤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옳은 일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옮겼을 것이다. 우리 경주에서도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경주 문천에서 의병활동의 큰 약속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콧방귀를 뀌고 도망쳤겠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전국의 의병활동이 일어났다. 임진왜란의 혼란 속에서 의병들이 나라를 지키게 되었다.
나는 비록 떨어진 전교부회장이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 깨끗한 학교, 인사를 잘 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학교가 아름답고 깨끗한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훌륭한 무기가, 갑옷이 없었어도 의지로 이겨나간 의병의 숭고한 정신처럼 우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으로 이어가고 싶다.
<우수>
약속 / 최서윤(포항 중앙초 5년)
오랜만에 방청소를 하던 중, 침대 밑에서 먼지가 가득 쌓인 플라스틱 물건이 빗자루 끝에 툭 결렸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넣었다. 어라, 그것은 내가 키우던 도마뱀 ‘마룡이’의 물그릇이었다.
1년 전 나는 부모님을 졸라 새하얀 도마뱀을 입양했다. 그날 나는 너무나 신이 나 하루 종일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께 매일 사육장을 깨끗이 청소하고 꾸준히 밥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성실하지 못하고 귀찮아서 미루게 된 날들이 늘자 결국 마룡이는 하늘 높이 떠나버렸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던 나는 펑펑 울며 마룡이를 묻어주었다.
그렇게 오늘, 나는 마룡이와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마룡이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던 날들, 밥을 줄 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의 손을 타고 올라오던 시간들, 그리고 도마뱀 별로 떠나보내던 그날 밤까지도. 내가 그때 좀 더 신경 쓰고 소중히 돌봐줬다면, 눈을 맞추고 인사해 주고 밥도 많이 줬더라면 마룡이가 떠나진 않았을 텐데….
첫 반려동물 마룡이를 키우고 난 뒤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우는데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마룡이에게 하늘나라에서는 굶지 말고 많이 먹고 좋은 친구들과 주인을 만나서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앞으로는 너를 자주 기억하며 네가 살아간 짧은 세상의 의미를 오래도록 간직하겠다고 약속하고 싶다.
“마룡아, 넌 나에게 작은 보석이었어! 사랑하고 많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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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최우수>
손수건 / 정단아(근화여중 1년)
우리 역사에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마르지 않는 눈물이 있습니다. 6·25전쟁이 남긴 상흔이 바로 그러합니다. 포화는 오래 전에 멈추었고 강산은 몰라보게 변했지만 가슴 속에 가족을 묻고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 비극의 언저리에 멈춰 서 있습니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붙잡고 혹은 북녘 땅이 바라보이는 임진각의 찬바람 앞에서 소리 없이 흘리는 노병과 실향민들의 눈물은 그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이 무겁고 아픕니다. 그 깊은 슬픔의 곁으로 다가가 작은 손수건 한 장을 가만히 건네 봅니다. 거칠고 주름진 그들의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때, 손수건은 단순히 물기를 흡수하는 천 조각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당신의 희생과 아픔을 우리가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후대의 조용한 고백이자 오랜 세월 홀로 견뎌온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가장 따뜻한 포옹입니다.
중등부
<우수>
손수건 / 김승한(계림중 1년)
(수정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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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최우수>
문천회맹 / 이소민(고양예고 1년)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가에 설 때면 그날의 맹세가 떠오른다. 유월의 후덥지근한 날씨 속 부닥치는 나뭇잎 아래에서 단결했을 그 맹세가. 선선하게 불던 바람도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을 것임을 자리에 없던 나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걱정 없이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조상들의 얼이 담긴 서약 덕분이라는 것이 새삼스레 생경하다.
그날의 맹세는 이미 끝난 사건일지도 모른다. 아직 우리 곁에 조용히 남아 현재형으로 흘러가는 역사를 도저히 못 본 체 할 수 없었다. 그건 누군가에게 코앞에 닥친 사건일 수도 있고 우리가 마주하지 못한 미지의 것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가질 수 있는 선택의 크기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선택이더라도 그 결과가 내게 주는 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크나큰 무언가이지 않을까.
나는 아직 맹세에 대한 질문에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당연하단 듯 알고 있다. 맹세란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결국 물러서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평범한 순간들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직 나에겐 역사책에서나 들을 법한 ‘문천회맹’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을 보며 걸어온 줏대 있는 인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같이 마주한 위기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다짐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었을 것이라는 걸 나는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방금까지도 잔잔하던 강가가 당장 범람할 것처럼 요동친다. 들썩이는 물리 어쩐지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천의 의사들은 내게 단순한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지금 나는, 거창한 다짐 대신 작디작은 선택 하나를 떠올려 본다. 다음에 비슷한 순간이 온다면 조금 더 외면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고.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맹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부
<우수>
문천회맹 / 김가윤(경북외고 1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운 지 벌써 6년이 다 되어간다. 나름 시험 기간마다 열심히 외웠고 점수도 나쁘지 않았기에 내가 우리 한국의 역사나 이야기 정도는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오늘 임란의사추모백일장 시제에서 ‘문천회맹’이라는 단어를 마주한 순간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너무나 낯선 단어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설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고 부끄러워졌다. 문천회맹은 임진왜란 때 경주지역 사람들은 물론이고 영천, 대구, 울산 등 주변의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함께 모여 피를 나누며 맹세한 사건이라고 했다. 내가 매일 숨 쉬고 있는 이 땅이 사실은 수많은 사람의 뜨거운 결의가 모였던 역사의 한복판이었단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 동안 교과서 속 연도나 땅 이름 같은 ‘시험용 역사’만 달달 외우느라 정작 내 주변의 진짜 이야기는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던 거다. 나에게 임진왜란은 그저 1592년에 일어난 먼 옛날이야기였고 의병은 책에 나오는 위인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알게 된 의병들은 달랐다. 멀리 있는 영웅들이 아니라 이곳의 평범한 이웃이었던 경주 사람들과 우리 민족을 돕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와 준 이웃 동네의 평범한 아버지들었다.
총이나 칼 같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으면서 오직 내 가족과 이웃을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끝까지 함께 싸우자”며 손가락을 깨물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얼마나 무섭고 떨렸을까. 상상해 보면 내가 매일 친구들과 웃으며 걷는 등굣길, 주말이면 아무 걱정 없이 가족들과 외식을 하던 평범한 거리, 지루하다고 투정부리던 야자시간까지도 모두 그분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소중한 일상이었다. 내가 누리는 당연한 하루하루가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늘 보던 동네의 하늘과 바람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 백일장 원고지를 앞에 두고 펜을 쥔 내 손 끝이 조금 숙연해진다. 역사를 배운다는 건 시험문제를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내 일상을 지켜준 사람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감사해 하는 것인데 나는 너무 철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백년 전 이곳에 모여 서로의 손을 잡던 경주 사람들과 다른 지역 사람들의 간절했던 그 눈빛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몰랐던 나의 일상 앞에 그리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분께 진심어린 고마움을 담아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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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일반부
<최우수>
반월성 / 김동환(경주시 동천동)
며칠 전 경주 반월성을 걸었다. 초여름 햇살 아래 고요하게 누워있는 성곽은 수많은 세월을 품고 있었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스며있는 이곳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희생, 그리고 나라를 지키려했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듯 했다. 반월성을 바라보다가 문득 임란의사 추모비 앞에 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이름 없는 의사들은 가족과 재산, 그리고 자신의 목숨까지 뒤로 한 채 의병의 길에 나섰다. 그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다. 무너져가는 나라를 지키고 백성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졌다. 반월성의 오랜 성벽과 의사들의 추모비는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했다.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조금 더 편한 것, 조금 더 좋은 것, 조금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애쓰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작은 불편에도 쉽게 불평하고 손해 보는 일은 피하려 했으며 물질의 풍요를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선열들은 달랐다. 그들은 편안함보다 책임을 선택했고, 안락함보다 사명을 선택했다. 자신을 위한 삶보다 모두를 위한 삶을 먼저 생각했다. 반월성의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천 년 전에도 이 바람은 불었을 것이고 임란의 의사들이 나라를 걱정했던 그 날에도 어김없이 불었을 것이다. 바람은 변함없이 불러 오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추모비는 말이 없었고 반월성도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 침묵은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삶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반월성을 내려오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오늘 내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는 결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월성의 푸른 언덕 위에서, 그리고 임란의사추모비 앞에서 나는 역사보다 먼저 나 자신을 만났다. 편하고 좋은 것만 찾으며 살아온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짐했다. 남은 삶만큼은 더 많이 가지기보다 더 많이 나누고, 더 편하게 살기보다 더 의미있게 살아가겠노라고.
대학·일반부
<우수>
반월성 / 이창헌(경주시 효현동)
불어오는 바람이 고왔다. 조용한 오후, 외삼촌댁에 들러 차 한 잔 나누다 보니 오랜만에 대화가 오갔다.
“외삼촌, 한국전쟁 당시 14살이었다고 하셨죠?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참전할 생각을 다 하셨어요?”
“그땐 친구들과 고향 땅을 찾고자 무작정 학도병으로 지원했었지. 하지만 끔찍한 경험이었어.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매일 봐야 했으니까.”
외삼촌의 눈빛은 어느덧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마치 시간이 외삼촌을 그 당시로 데려간 듯 보였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옛날 임진왜란 당시 경주 반월성을 탈환하고자 의병들이 문천가에 모여 결의를 다진 일이 있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그때처럼 외삼촌도 학도병으로 참전한 전투에서 승리의 결의를 다졌으리라. 그러고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삼촌은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날은 비가 참 많이도 내렸어. 그런데 바로 그날, 가장 친했던 친구가 내 앞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거야. 친구를 묻었던 반월성 근처를 이젠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이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나.”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전쟁은 기억으로, 상처로, 그리고 트라우마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며칠 뒤 혼자서 반월성에 올라봤다. 은은한 풀꽃향기가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6월의 풀꽃들은 이맘때면 다시금 피어난다. 위로를 위해 기억을 위해 매년 피어서 우리에게 계속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그날의 희생을 기억하는가?’
임진왜란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수많은 시간 속 의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반월성을 거닐어본다. 그날의 아픔들이 모두 치유되는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