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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백대와 아버지(왕사남과 이보흠 2편)

작성자미진화리|작성시간26.04.28|조회수48 목록 댓글 3

' 왕사남과 이보흠'(2편)

 

장(杖) 백대(百代)와 아버지  

                                                        이화리(소설가. 동화작가)

 

삶도 사람도 지나보면 속을 알듯, 올바른 역사 역시 긴 세월이 흐른 후 제대로 평가받는다. 오백 년이 지나도록 초라한 빈무덤의 조상이셨던 순흥부사 이보흠은 금성대군과 함께 후대의 임금들로부터 명예를 복원받았다.

 

영천에 있는 이대전(이보흠의 호)정사

  ---이보흠은 1429년(세종11년

)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특히 '사창법' 시행을 건의하여 문종의 총애를 받았다. 1454년엔 기주관으로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457년 순흥부사로 부임하였다. 순흥에 위리안치된 금성대군과 새로 부임한 순흥도호부사 이보흠은 왕위찬탈이라는 격동기 순흥에서 단종 복위를 위한 거사를 준비하게 된다.(사진은 영천시 임고면 대전정사)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1457년(세조3년) 금성대군과 이보흠은 만나기만하면 강개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금성대군은 신념의 약조로 산호 갓끈을 이보흠에게 주며, 거사를 꾀하여 비밀리에 남쪽의 인사들과 결탁하며 단종을 복뒤시킬 계획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을 물리치고 이보흠에게 격문을 쓰게 하였는데,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명령하니, 누가 감히 쫓지 않으랴", 라는 한 구절만 전해진다. (중략) (사진은 영천시 청통면 송곡서원)

 

  200여년이 지난 1681년(숙종7년) 단종이 신원되면서 대군(大君)에 추봉되었으며, 1698년(숙종종24년) 임금으로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이라 하였다. <네이버지식백과 참조>  

 

 ◆왕위계승의 가장 순차적 적장자였던 열여섯 어린 왕 단종의 최후, 올바름에 과감히 맞선 선조들의 찬란한 죽음은 사육신의 계유정난(癸酉靖難)과 금성대군과 이보흠의 정축지변(丁丑之變)이다. 

 

---이후 이보흠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해동야헌(海東野䜢),장릉지(莊陵誌),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대전실기(大田實記) 등 18세기 이후 작성된 문헌에서는 이전의 공적 기록과 다른 이보흠의 충신열사적 측면에서의 서술이 부각되었다. 1738년(영조14) 사며되면서 이조판서(判書) 추종되었고, 1791년(정조11년) 충장(忠莊)의 시호를 추종받았다.

이보흠이 과거에 합격하여 집현전 박사에 계수되자 그의 스승이었던 유방선은 그의 학문을 창찬하며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을 기대하였다(이대전유사). 그는 어려서부터 문장이 뛰어나 길재의 묘제문(墓祭文)을 지었으며, '국조인물고' 김종직은 "이보흠은 글을 잘 지었으며, 성품은 검소하여 해진 옷을 입고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중략)-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 발췌.

 

 

 

 

경주에서 지척인 영천과 이보흠

 

대전정사(大田精舍)는 영천시 임고면 덕연리 336-2.

영천 이씨(永川 李氏)는알평공계 이씨에서 분파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문헌상 기록은 고울군(高鬱君 영천의 옛 이름) 봉해진 이문한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이대영을 중시조(中始祖 / 필자는 24대조로 고려 때 경상감사를 지낸 이은(李殷)의 감사공파 18대손이다)로 하며 7대조인 이보흠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이며, 1397년(태조6년)에 태어나 1457년 61세인 10월 27일 교살되었다. 고조는 판도판서(判圖判書)이송현(李松賢), 증조는 경덕재생(經德齋生) 판도판서(判圖判書) 이석지(李釋之),

부친은 부사직(副司直)  이현실(李玄實)로 보승랑장(保勝郞將) 장표(張彪)의 딸이다. (중략)

이보흠은 1791년(정조15년)에 충장(忠莊)의 시호를 받은 후 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영천시 대전동에 이보흠의 행적을 담은 이대전유허비, 집터에 판 연못인 순흥연이 있다. 이보흠이 나고 자란 영천시 임고면 덕연리에 대전정사가 남아있다. 이 외에도 충청도 청안(淸安), 순흥의 성인단(成仁檀), 영천의 송곡서원(松谷書院)에 제향되었다. --향토문화대전자사전 참

 

◆장 백 대와 아버지

 

사람은 다 다르다. 나라가 어디로 가든 무심상한 이도 있고, 불철주야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이도 있다. 발전은 개혁이 가져온다. 후대에게 역사의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도 곤욕을 치르며 쟁취하는 자들이 만든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썩은 물처럼 그런 사회는 악취를 풍긴다. 어떤 사안에 개념을 지닌다는 것은 곧 국민된 도리이며 책임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철학적 성찰과 정치적 함의를 고려할 줄 알아야한다.  

 

우리는 해방을 했다. 전작권(전시작전권)이 없는 국가다. 누가 처들어와 때려죽여도 미국의 승인이 있어야 맞대응을 한다. 미완의 해방은 아닌 듯하지만 참 기묘하다. 북한의 핵이 대변한다. 죽을래?

미소중일 강대국이 내민 발톱 아래 식민지 반도의 땅. 일본이 2차 대전 패망 사과파티의 디저트처럼 차린 작은 식탁 위의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식욕. 그중 가장 긴 손톱의 미국과 소련이 절반을 나눠가졌다. 이것이 해방이었던가?  

해방 이후를 자유당시대로 불린다. 말 그대로 자유분방한 시대였다. 협잡이 국민성이 되고, 사기는 정의로 둔갑했다. 모든 관념은 미소좌우의 신념에서 정당화되었다. 

여기에서 이보흠의 후손인 우리 집안의 불행 하나가 처참하다. 당시에는 흔한 잡담에 속했을 인권유린의 시대, 자유가 아니라 신념을 앞세운 자행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경주경찰서에 세 번이나 연행되어 고문을 받았다. 고문한 경찰은 일제 때부터 서슬을 닦은 자(김창도?몇 년 전까지 외웠는데 흐릿하다)였다. 세 번 다 리어카에 실려나왔다. 10촌을 당겨서 큰집으로 삼았고, 백모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다.

리어카에 담긴 아버지는 피걸레였다.

비교하기 싫지만 장 백대와 세 번의 고문은 비등한 폭력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막내삼촌이 있었다. 

이용기. 문화고등학교 3학년. 잘 생긴 외모와 체격, 시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운동도 잘하고 전국웅변대회에 나가 1등을 함. 축구부 조장과 총학회장 역임. 담임선생(46세 가량) 좌익. 축구부원들 대다수 월북 또는 행불.  막내삼촌 이야기는 고종사촌언니가 들려주었다. 첫 마디가 '너거 삼촌 진짜 잘 생깃더라. 경주서 체고' 라 했다. (경주여고 1회 졸업식 날, 졸업장 들고 경주시장실에 찾아가 취직 요구. 수십년 경주시청 호적계 근무한 고종사촌 노화자 증언 / 경주에서 노화자 모르면 간첩이라는 일화 유명) 

시인인 남동생이 올해 초 서울에서 열리는 시화(詩畵) 특선으로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가진 것도, 내가 소설가인 것도 다분히 유전인 것 같다. 배우 공유가 티브이에 나왔을 때 기타치고 노래 잘하던 한량 둘째삼촌이 살아돌아온 줄 알았으니, 아버지가 가장 못 생긴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사진을 사르는 일로 그리움을 버린다 생각했다. 

 

서른 남짓이었던 젊은 아버지는 막내삼촌을 부산에서 양복기술을 배우는 둘째삼촌에게 보내 멀찍이 은둔시켰다. 

휴전 전, 한 여름날 비보가 인편으로 왔다. 

오뉴월 염천에 하숙생들과 강에 가서 천렵을 하던 막내삼촌이 깨진 유리병 조각을 밞았다. 발바닥이 뭉턱 가로로 갈라졌다. 마이신 가루로는 감당이 안 되었다. 부산의 큰 병원은 군인들이 다 접수했다. 젊음의 패기만으로 고통을 참았지만 파상풍과 패혈증을 이기지 못했다. (필자의 미발표 장편소설에 이 부분 묘사) 나는 휴전(1953년 7월 27일) 이듬해 삼일절에 태어나 전쟁을 피했다. 

슬픔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슴을 보듬고, 밥수저를 들게 하는 건 우주의 법칙인 시간이다. 

아버지의 열린 교육관과 할머니의 지독한 사랑 덕분에 우리집 식탁은 다소 소란했다. 밥상에서 온 식구가 다 모이니 이때 서로 맘껏 얘기하라는 게 아버지의 신조였다. 여름의 어느 시점만되면 방안에 적막이 흘렀다. 할머니는 한겨울에도 마루에 나가앉아 장죽에 불을 붙였다. 해녀도 아니면서 캄캄한 어둠의 바다에 숨비소리를 뱉았다.

날이 새면 우리 동네에서 가장 일등 할머니가 되었다. 옆 사진은 아버지가 황성공원 안 일본신사 철거 후 최초의 충혼탑을 건립(조각 김만술)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일제 캐논으로 모든 공사현황은 사진을 부착해 경주시나 월성군에 제출했다. 

할머니는 빗방울 소리에 우산과 장화를 한 보따리에 이고 지고 1등으로 도착하고, 옥양목 흰버선에 흙탕물 묻을까 맨 발에 새파랗게 돋아올랐던 혈관들, 가을 찬비에 부푼 사랑이란 푸른 눈물이었다.

인물좋고 공부 잘하던 열아홉살 막내가 그리워 할머니가 아침을 거르면 우리도 다 굶고 학교에 갔다. 가슴을 쓸어내린 할머니는 뜨꺼운 밥을 손수 지어 조선솜으로 누빈 가방에 벤또를 두 개씩 사갖고 오셨다. 하나는 쉬는 시간에 또 하나는 점심시간에 묵어라. 끈으로 졸라맨 한 줌 허리의 할머니를 보면서 사랑을 배웠다. 새학기가 되면 누구는 '몣 학년 몣 반'을 관셈보살처럼 외던 할머니.

동네 할매들이 "얼라들이 교문에 몰리나오먼 누구눈지 몬 찾는다", 고 하자 우리 할머니는 "우리 아들은 암만 많애도 빛이 나가 아니더." 그건 우리의 빛이 아니고 할머니 가슴의 빛이다. 사진은 1963년 생 막내동생이 두 돌을 지났을 때니 1965년으로 61년 전의 사진이다. 삐삐머리와 흰망사블라우스에 민소매 예쁜 원피스에 샌들이 요즘 모습 같다.

 

MBTI가 INFJ였을 아버지는 준비성에 치밀한 편이었다. 전란에 보국대에 갈때 장롱 위 일제가죽가방에서 꽁꽁 가죽에 싸맨 여성용 양산을 꺼냈다. 나무 손잡이 돌려서 뺀 홈 옆을 파내어 아버지는 다이아몬드 세개를 숨겨놨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번 돈으로 가장 작고 가치가 높은 재물을 몰래 마련해 숨겨온 것이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아주 급하면 금방에 가서 팔아 쓰라고 엄마(김금연 / 잘 싸우던 엄마와 나는 서로 이름을 부르며 지냈다)에게 말했다. 일단 유리알 한개를 팔았는데 너무나 큰 돈을 줘서 놀란 엄마는 나머지 두개는 아버지가 올 때까지 숨겼다고 한다.

양산 뿐 아니라 한 아름의 일제채권(김종필의 한일합방 때 헐값에 대다수 팔아서 티브이장식장 사고, 화풀이로 아버지 친구들과 거하게 마심)과 지금까지 내가 보관한 일제보험증서와 예금통장, 남동생이 간직하고 있는 옛날 돈과 오동나무와 장식이 아주 예쁜 돈통 등도 꾀많은 엄마는 용케 잃어버리지 않았다. 

너무 터무니 없는 값이라 한일합당 때 팔지 않았던 휴지가 된 조선총독부 보험 및 예금통장. 이후 전국적인 모임이 생겼다가 없어졌다.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아버지의 셈보다 절반이나 깎였지만 엄마는 알수 없었다. 피난 갈 때는 가죽에 싸맨 양산을 장롱 뒤에 던져두어 잃어버리지 않았다. 막내삼촌의 그림 일부는 집 뒤란 시렁에 일부 시화(詩畵)는 큰 집 대밭에 숨겼는데 북한군이 모두 밟아서 망쳐놨다고 했다. 백모님은 우리들에게 두고두고 글그림 다 아깝다고 하셨다.   

암튼 유리조각이 몇 캐럿인지 모르지만 나머지는 아버지가 부산에서 처분해 '주식회사 신광토건(新光土建)'을 건립할 때 쓴 걸로 안다. 아버지는 경주시와 월성군의 학교와 교량, 제방공사 등을 전문으로 했다. 호적에 빨간줄이 남으면 연좌제로 자식들 앞날까지 망치기에 피걸레가 되도록 실토를 안했다.

 

토건업을 하는 아버지는 의외로 일본의 문학전집을 읽었다.

집에서는 엄마와 우리들 여름 더위 식혀주느라 우물물을 길어 뙤약볕 마당에서 양철추녀에 뿌렸다. 자전거 뒷안장에 늘 양은다라이를 묶어서 밀짚모자를 까마득히 실어서 땀에 절어 삭아버리는 노가다들에게 씌워주었다. 밥이 허술하던 시절, 일사병을 걱정해서 굵은소금 자루를 매달고 오이밭에 가서 오이 한 접(100개)을 사서 현장마다 들렸다. 여름밤 별들이 윤슬처럼 내려보는 평상에서  여기에 다 못 쓰는 이타심을 별똥별처럼 들려주셨다.

그런 아버지의 별명을 알게 된 것은 사후였다. 시청과 세무서에서 "오토바이 이사장"이라 불렸다. 건드리면 크게 고함을 쳤다. 집에선 늘 다정다감하고, 바가지 대마여왕 엄마를 "내무부장관"이라며 늘 경어를 쓰고, 우리들에게 흔한 "이놈우 딸아가", "이 가시나가" 소리 한 번 없고, 등짝이나 꿀밤 한 대 안 때리는 분이었다. 엄마 몰래 주던 달콤한 용돈의 맛도 그립다. 

와앙! 아버지를 건드린 내용은 공무원들의 청렴도가 엄청 하위에 머물던 시절의 부정부패 흥정이었다. 공무원들이 공공연히 자전거타고 집에 찾아와 돈 요구를 했다. 공무원들은 늘 돌고도는 발령이고, 줘도줘도 끝없었다. 특히 세무서 법인세과 직원들은 대놓고 드나들었다. 그렇게 미워하던 국세청공무원과 결혼했던 나도 참 모순덩어리다. 암튼 불의와의 협의가 어렵던 아버지는 두 번이나 부도가 났었다. 

 

영화 '왕사남'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권력의 야욕에 맞서는 정의의 결행이다. 

의로움이 무너진 부정적 사회는 혼돈의 시대로 퇴보한다. 

성경의 사마리안인이 갈수록 아쉽다. 

영화의 재미와 생각의 간추림은 별개다. 

힘들고 아픈 이에게 손을 내밀자. 

나부터...

나하나라도...  

 

정의롭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던 아버지는 늘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반성처럼 여겼다.

독서를 많이 했다는 막내삼촌은 자본의 횡포보다 대등한 평등사회를 꿈꾸었을 것이다. 오래 전 무너진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관념적이며 비밀스러운 계급적 관계다. 개개인의 자유는 공산이라는 허구의 논리에 저당잡히고 집단적 폭력조차 당위성을 띄웠다. 

전후 세대로, 기득권들에게 치중한 경제만을 앞세운 반민주와 인권의 혼돈시대를 지나온 나는 수많은 억압의 하층민들에게 희망이 될 정필신문 한겨레 창간주주가 되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지금 중도인 나는 허구의 희망을 선전하는 좌파가 절대 아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위정자들이 쓰는 역사는 힘의 논리에 함몰된다. 정치는 아직 희망에서 멀다. 

역사는 유한한 생(生)인 우리들보다 생명력이 무한하다.

국가가 속한 지구가 광물체의 집합체 우주인 까닭이다. 

이보흠도, 아버지도, 막내삼촌도, 나도 우주의 먼지다.

먼지만큼의 꿈도 잘 살자니 소중하다.

내가 원하는 세상은 서유럽의 인본주의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독일의 <동물권리장전>을 받아들이는 성숙함이다. 

젖을 먹는 포유동물 인간 이 외에 모든 동물은 유사한 희로애락을 느낀다. 

생명을 사랑하는 나라의 국민이고 싶다. 

우리 헌법 기초도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에 기초하고 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진아, 내 새끼, 용진아..."를 잠꼬대처럼 하시다, 마루에 나가 장죽에 불을 붙이던  던 할머니. 신념이 뭐길래?

지금도 어디선가 조사로 바쁠 모친이 살았다면 '왕사남'을 두 번 본 나에게 이보흠 조상님 관련해 고주알미주알 육하원칙을 다면적 입체적으로 다 캐물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생전 우리 금연이 별명은 "경주 경찰서 조사계 김양"으로 좀 길다.

넉넉히 장 백대를 맞아 피걸레가 되었던 아버지는 쉰중반 돌아가시기 까지 지독한 신경통을 앓았다. 중고등 다니는 언니들은 하교 시간이 늦고, 나와 내 아래 동생 미경이는 날이 궂기 전부터 아버지의 전신을 조근조근 주무르며, 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에 졸기도 했다. 

지금 나는 옛날 옛적의 단종 이야기와 장 백대의 이보흠과 세 번의 고문으로 피걸레가 되었던 아버지와 아주 멋졌다는 청년 삼촌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자판으로 주무르고 있다. 

 

역사의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젊은 죽음과 피비린내 나던 고문의 가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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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뻤던 금연이도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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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떠나면......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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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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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원주 | 작성시간 26.04.28 new 왕사남은 아직 못봤는데 볼 계획입니다. 가족사와 얽힌 이보흠 이야기 재미있게 봤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미진화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28 new 네 샘. 오타가 많은데 내일 컴 열어 교정하려고요. 오늘 글 올리고 병원 다녀오느라ㅜㅜ
  • 작성자전인식 | 작성시간 00:00 new 이야기들이 소설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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