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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성지순례

성지순례 30 -(4) 황경한 묘

작성자조화|작성시간25.03.30|조회수342 목록 댓글 0

 

3월 11일(화) 둘째 날

 

순례 이틀째인 오늘 아침은 좀 서둘러야 한다. 황경한 묘가 있는 추자도로 가는 배가 아침 8시에 출항이다. 아침 6시에 모여 미리 준비한 간식으로 간단하게 때웠다. 인근에 마땅한 식당도 없거니와 아침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다.

어제는 비가 예보되었으나 예상 이외로 날씨가 좋아서 무척 다행이었는데 오늘 역시 흐리기는 하지만 비는 참아 줄 것도 같다. 하지만 제주도 특히 추자도는 날씨가 변화가 심해 예측이 어려워 다들 우산이랑 우의를 갖추었다. 추자도는 연중 삼분의 일이 맑게 개이고, 3분의 1이 흐리거나 궂고, 나머지는 개인 듯 흐린 듯하다고 한다.

 

황경한 묘 - 두 살에 유배 당한 황경한의 애절한 사연이 깃든 추자도

 

제주도 제주시 추자면 신양리 산 20-1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 · 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1271(고려 원종 13)까지 후풍도(候風島)라고 불렀으며, 그 후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면서 추자도로 개칭하고 1910년 제주에 속하게 되었다. 바로 이곳 하추자도에 정난주 마리아의 아들 황경한(黃景漢)의 묘소가 있다. 그리고 면사무소가 있는 상추자도추자공소가 있다.

남편 황사영을 잃은 정난주가 겨우 두 살 난 젖먹이 아들 경한을 데리고 떠나는 유배의 길은 너무나도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죄인으로 제주 땅을 밟으면 자신은 차치하고 아들마저 죄인의 자식으로 노비로 평생을 멸시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궁리를 거듭하던 정난주가 호송선의 나졸과 뱃사공에게 뇌물을 주어 매수하여 하추자도 예초리(禮草里) 서남단의 언덕 황새바위에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나졸들은 뱃길에서 아이가 죽어 수장(水葬)했노라고 보고함으로써 이 일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일성록”(日省錄)이나 사학징의”(邪學懲義) 등 관변기록에는 황경한의 나이가 2세로 너무 어려 법에 따라 죽이지 않고 처음부터 영광군 추자도에 노비로 유배시켰다는 판결문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졸을 매수하여 아들을 추자도에 남겼다는 설은 사실이라기보다 애틋한 모성애를 동정하는 민간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30분 전에 개찰하고 탑승을 한다고 하여 710분 경 제주항 여객선 터미널 도착. 항만이 엄청 크고 시설 역시 매우 좋다. 경내는 남국을 연상시키는 야자수 나무와 기념탑, 사적지 표지판 등이 서 있다.

제주항 연안 여객터미널
여객터미널 광장
‘ 四海躍進 ’ 을 새긴 기념탑
화산석 돌탑
추자도 가는 연안여객선
제주항을 등지고

3등실은 온돌방 식이다. 저마다 아예 벽에 기대어 앉았다가 하나씩 둘씩 몸을 바닥에 눕힌다. 2시간을 가야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오래 앉아 있으려니 답답하기도 하여 바람결이 차지만 선상에 올라가니 그저 망망대해, 스크류에 부서지는 포말을 바라보다가 선실을 오가는 등 두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도착 시간이 가까워 다시 선상에 오르니 고개를 쳐든 사자 같기도 하고 스핑크스 같기도 한 해상 섬이 점점 커진다. 10, 하추자도 여객터미널 정시 도착이다. 예약한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추자도 토착민으로 자신은 아직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스핑크스 바위 ?
추자도 항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하추자도 산양항이며 가까운 곳에 성지 황경한 묘가 있다. 하지만 11시 미사를 보기위해 공소가 있는 상추자도를 향했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다른 섬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으며. 면적은 하추자도가 넓지만 면소재지가 상추자도에 있어서 인구는 상추자도가 더 많다.

추자도 지도

20분이 못되어 상추자도 추자 공소에 도착. 공소는 높은 언덕위에 있어서 큰 길 가에 주차를 하고 벽화가 그려져 있는 매우 좁은 길을 걸어야 했다.

공소 가는 길

골목을 오르다보면 가운데 샘이라는 옛 우물하나가 있고 두껑이 덮여져 있는데 물이 맑지 않아 빨래용으로 주로 사용한다고 안내문에 젹혀 있다. 낡은 우물 하나도 이렇게 보호각을 지어 지키는 것으로 미루어 전통을 유지하려는 추자도 주민들의 노력을 알 수가 있다. 벽에는 추자 10이라고 하여 추자도에서 경치 좋은 10개소가 명시되어 있다.

1800 년대에 축조된  ‘ 가운데 샘
추자  10 경

추자 공소

 

골목길이 거의 끝나는 지점 언덕 위에 공소가 나타난다. 마치 유럽 중세의 성과 같다. 옥상에 예수님 부활상이 없다면 성당 건물로 보기에 어려울 정도다. 널직한 마당에 성모님이 환영해 주신다.

푸른 물감을 칠한 하늘 및 추자공소 원경

19085월부터 선교사가 들어와 전교한 기록이 남아있는 추자도에는 1956년 제주중앙 성당 관할의 공소가 시작되었다. 1988추자 공소는 서문 성당 관할로 이관되었고, 상추자도 항구 인근에 위치한 추자 공소 신자들은 황경한 묘소를 돌보아 왔다. 제주교구는 1999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하추자도에 있는 황경한의 묘소 주변부지 600여 평을 매입하여 소공원을 조성하는 성역화를 추진했다.

1975년 건립된 낡은 공소 건물이 2001년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그 해 7월 기공식을 갖고 건축을 시작해 2003630일 지하 1· 지상 2층 규모로 지금의 완공된 새 성전의 축복식을 가졌다. 새 공소 성전은 어린이 집과 영안실을 갖추고 있고, 20여 명이 머물 수 있는 방과 식당도 마련되어 육지에서 오는 순례객들을 위한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추자 공소 입구
마당에서 공소를 지키는 성모님

1층 출입문을 들어서면 추자공소의 현황이 게시되어 있어 공소의 개요를 알 수가 있다. 현재 상주하시는 사제는 김영택 필립보 신부님이시다.

성당은 2층에 있는데 계단 밑에 성모상과 계단 벽면에는 자비의 예수님상과 교황님, 주교님의 사진이 걸렸다.

성모상   자비의 예수상
교황님과 제주교구장

성전 내부는 비교적 단순하다. 제대 후벽에 예수님 고상과 감실이 있고 제대 좌우에는 예수성심상과 성모상이 서 있다. 그리고 벽면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고 그 위로 십자가의 길 14가 있는 것이 전부다.

성당 내부
제대
예수님상 성모상
아름다운 벽면의 스테인드 글라스
성수대 고해실

11시에 미사를 봉헌했다. 7순이 넘은 듯한 신부님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미사 준비에 익숙하지 않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부님은 이곳에 오신지 4일째였다. 그래서 영성체 때 제병이 모자라 열쇠를 찾느라 이리저리 다니시기도 했다.

하지만 미사는 특이하게도 참례 신자들을 모두 제단 위로 올라오게 하여 소감과 인사를 나누게 하는 등 그야말로 친교영성체(?)를 했다. 참례 신자는 우리 12명을 포함하여 16-17명이었다.

친교형 미사
인사
영성체

미사를 마치니 그럭저럭 12시가 가까웠다. 혼자 계시는 신부님이라 혹사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흔쾌히 허락하신다.

신부님과 기념사진

나오는 길 공소 맞은편, 좁은 골목길에 어울리지 않Dio Cafe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이 있어 물어보니 이곳이 구 공소 건물이란다. 새 성전이 신축되자 카페로 이용하는 것이다.

구 공소건물

점심식사는 버스기사가 일러준 대로 오누이 밥상이라는 식당이다. 메뉴는 생선구이 정식. 신부님과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김영택 필립보 신부님은 예수회 소속 수도 사제로 충청도가 고향이며 퇴임을 하고 추자공소에 발령을 받아 부임한지 며칠 되지 않는다. 추자도 신자 현황은 교적 신자가 60여명이고 주일 미사참례 신자는 12명 정도라고 한다. 수도회 사제답게 청렴, 검소가 몸에 밴 것 같다. 조기구이도 뼈채로 다 드신다.

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니 오후 1. 신부님의 건강을 빌면서 헤어진 후 다시 버스를 타고 하추자도 황경한 묘로 향했다. 상추자도 항만을 떠나 다리를 건너 하추자도 황경한 묘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2시가 가까웠다. 4시엔 돌아가는 배가 출항한다.

상추자도 항만
다시 다리를 건너 하추자도로

황경한 묘

 

하추자도에 남겨진 경한은 오씨(吳氏) 을 가진 한 어부의 손에 의해 거두어졌다. 경한이 추자도에 떨어뜨려졌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옷섶(또는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이름과 생년월일에 의해 아기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오씨집안에서 아들로 키워졌다고 한다. 오씨의 집에서 장성한 경한은 혼인하여 두 아들 건섭(建燮)과 태섭(泰燮)을 낳았는데, 그 후손이 아직도 추자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낯설고 외로운 유배지에서 생을 다한 황경한은 사망한 후 신양리 남쪽 산의 중간 산등성이에 묻혔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서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하추자도의 황경한이 살던 오씨 집은 1965년 불타 없어졌고, 그때 그 집안에서 간직해온 경한의 젖먹이 때 옷이나 가첩 등도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1900년에 제주 선교를 위해 파견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라크루(Lacrouts, 具瑪瑟) 신부가 추자도를 왕래하던 중 1909년 황경한의 손자를 만나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다. 라크루 신부는 샤르즈뵈프(Chargeboeuf, 宋德望) 신부에게 서한을 보내 순교자 황사영의 아들 경한과 그 후손들의 어려운 생활을 알렸고, 샤르즈뵈프 신부는 이 사실을 전교잡지에 소개했다. 그 후 라크루 신부는 프랑스 은인들의 후원금으로 황경한의 손자에게 집과 농토를 사주었다.

 

오후 150황경한 묘 도착. 제주교구는 1999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하추자도에 있는 황경한의 묘소 주변부지 600여 평을 매입하여 소공원을 조성하는 성역화를 추진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황경한 묘 성지이다.

황경한 묘 안내비

성지는 산비탈에 넓게 조성되어 있었다맨 아래에 평범한 전통 봉분형인 황경한 묘가 있고 맨 위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야외제대와 대형 십자가피에타상과 정난주 마리아상이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주차장 옆 묘역 입구에는 황경한 묘 안내비가 서 있고 묘역 일부 둘레엔 정난주와 황경한 모자에 관한 내력이 새겨진 석벽 담장이 둘러져 있다.

황경한 묘역
황경한 묘
순례단의 기도
묘소 위의 야외제대와 십자가
대형십자가 정난주 마리아 모자상
피에타
황경한 묘역 설명 담장
정자이며 전망대

눈물의 십자가

 

황경한 묘역 부근에 있는 신대산 전망대는 눈물의 십자가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정난주가 제주도에 유배길에 추자도를 지나면서 호송 나졸에게 뇌물을 주고 예초리 물생이 바위 위에 아들을 내려놓았는데, 그 위에 세운 십자가가 눈물의 십자가이다. 거기에 가기 위해서는 계단 길을 따라 10여분을 내려가야 한다.

눈물의 십자가 안내판
눈물의 십자가 내려가는 계단길
눈물의 십자가와 모자상

눈물의 십자가는 가로 3m, 높이 5.5m인데 정난주 마리아의 눈물이 십자가에 맺혀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십자가 아래에는 아기를 안은 정난주 모자상이 있다.

눈물의 모자상

눈물의 십자가를 갔다가 다시 차에 올라 조금 내려오다가 짧게나마 올레길을 걷기로 하였다. 올레길 갈림길에 순례단원을 다 내려놓고 우리가 걸어 내려가서 차와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올레길 걷기
기다리는 차를 타고

차를 타고 하추자도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를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4시에 보길도에서 오는 배를 기다려 타고 제주시로 다시 돌아간다.

하추자도 산양항 여객터미널

오후 6시 제주시 도착. 오늘이 순례일정의 마지막 밤이라 그동안 아침식사도 제대로하지 못했는데 저녁식사만큼은 제대로 먹자는 의견에 따라 미리 예약해 둔 식당 금복촌에 갔는데 찾느라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여 7시 반이 넘어서 식당에 도착. 생선회 정식이 코스로 나오는데 먹지 못할 만큼 푸짐했다. 돌아와서는 펜션에서 마지막 밤이라 어제 못한 모임을 했다. 평가회 윷놀이 등 할 것은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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